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면 (4)
LA 공항에 들어서자 무수히 많은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수많은 언어가 뒤섞인 가운데에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기사 만들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인파를 뚫고 나와 준비된 밴에 올라탔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 김성운이 걱정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괜찮아?”
“후, 네. 괜찮아요.”
한숨으로 어지러움을 털어내며 호텔로 향해 짐부터 풀었다.
그다음부터는 오랜만에 만난 당죽막의 주연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마치 잘 짜여진 패키지처럼 곳곳을 누볐다.
확실히 당죽막 영화사에서 이틀이나 먼저 부른 이유가 있었지.
연이은 인터뷰와 촬영에 하루하고도 절반을 쏟아붓고서 비로소 찾아온 휴식시간··· 은 개뿔.
사실상, 내일있을 시상식의 준비 시간이었다.
드르르륵——.
방 하나를 통째로 옷장으로 만든 코디가 어쩐지 광기에 사로잡힌 얼굴로 웃고 있다.
“······팀장님. 아카데미는 하루지 않나요?”
“그렇지.”
“근데 무슨 옷이 이렇게······.”
김성운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코디가 흐흐흐 소름 끼치게 웃기 시작한다.
우리는 무슨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의 웃음소리가 멈추고.
“칸에선 참 서러웠죠. 며칠 동안 일정이 있는데 가져온 옷은 두 벌 뿐이지, 그마저도 인터뷰하면서 다 썼지. 컨택한 곳에 갔더니 옷이 망가졌다 그러더니 찰리 톰린슨이 입고 있지. 그 무시와 홀대······.”
그녀가 희번뜩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근데 이젠 다르다 이거야. 완전 VVIP가 되어 돌아왔다고. 명품,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어떻게서든 우리 배우님 어깨에 옷 한번 걸치고 싶어서!”
“그, 그래도 이건 좀 많지 않아요? 시상식은 하루인데?”
“많아야죠. 자고로 옷은 입어봐야 가장 잘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싹 다 보내라고 했죠. 이거 봐요. 짜잔.”
“···?”
“심지어 이 옷은 찰리 톰린슨이 먼저 찜했는데, 빌라오소피가 우리한테 준거예요.”
“그래도 돼요?”
“그래도 됐었잖아요?”
칸에서 그녀가 원했던 옷을 빌라오소피는 찰리 톰린슨에게 주었다.
그러니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만···.
“근데 이건 어지간히 찰떡 아니면 안 입힐 거예요. 닭 쫓던 개 되어보라죠, 뭐.”
또다시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옷장(?)을 정리하는 그녀.
마른침을 꿀떡 삼키자 김성운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고갤 끄덕였다.
“그, 아무래도 옷 고르는데 꽤 걸릴 것 같으니 나는 현태, 주철이랑 올라가 있을게.”
“안 되죠.”
코디가 단호하게 그를 막았다.
“같이 봐주셔야지, 매니저님들이 올라가시면 어떡해요.”
“아···그, 그런가?”
어쩔 수 없이 딱 잡힌 김성운과 김주철.
그 사이에서 현태 형이 억울해한다.
“전 매니저 아닌······.”
“안 찍으시게요? 이 팬들이 덕질할만한 수트빨의 향연을?”
“······.”
날 두고 도망가려던 이들의 발이 묶이고, 나는 그 모습을 아주 고소하게 바라보았다.
“코디님. 저 뭐부터 입어볼까요?”
#
끼이이익—.
옷장··· 아니, 호텔 방 문이 열리고.
한참 동안 붙잡혀 있었던 나와 세 사람이 호텔 복도로 나섰다.
“출소가 이런 느낌일까···?”
현태 형이 햇빛 대신 조명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다 고갤 돌려 김주철을 보았다. 맞냐는 듯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김주철이 이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린다.
“안 해 봤는데요?”
“출소를? 그럼 뭐 중간에 그냥 나왔어? 탈옥이야?”
“안 가봤다고요······.”
이 와중 에도 김주철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 현태 형.
저러다 한 번 맞지, 라고 중얼거린 김성운이 엘리베이터를 누르며 배를 만진다.
“옷 갈아입는 것만 봤는데 뭐 이렇게 되냐. 배고프다. 내려가서 밥 먹자.”
모두가 허기진 터라 군말 없이 호텔 내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윽고 치킨과 폭립이 커다란 접시에 한가득 담겨 나오고, 전투적인 식사가 시작된 통에 김성운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 참. 이제 공항 도착했겠는데? 전화 해봐야겠다.”
어디로 전화를 걸려고 하는지 눈치를 채고, 나도 핸드폰을 들었다.
“제가 해볼게요.”
사실 시상식에 입을 옷을 찾기 전부터 궁금했었다.
굿픽처스의 박 대표와 영화 ‘흉내자들’의 주역들이 오늘 LA 공항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그 영화의 작가로서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끄덕거리는 김성운에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이윽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는데, 어쩐지 내가 전화를 건 박 대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배, 배우님. 저 이 팀장입니다. 대표님 지금 다른 거 하고 계셔서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아아, 잘 도착하셨죠?”
—네. 잘 도착···.
—어어, 여긴 것 같네. 근데 여기가 렌트카 회사 맞아? 폐차장 아니야?
—그러게요. 차들 상태가 전부···.
“······.”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기다리자 이윽고 핸드폰의 원래 주인이 전화를 바꾼다.
—어, 백 배우. 지금 나랑 이 팀장하고만 공항에서 나와서 렌트카 가지러 왔어.
“아, 그래요? 지금쯤 공항 도착하셨을 것 같아서 분위기는 좀 어떤가 하고 전화해봤어요.”
—하하, 지금 우리 분위기?
내 말에 그가 힘없이 웃음을 흘렸다.
—최악이야, 최악.
#
설레는 마음과 대중의 환호를 받으며 비행기에 올라탄 것도 잠시.
영화 ‘흉내자들’의 감독과 주연 배우들은 LA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세상을 쓴맛을 연거푸 경험하는 중이었다.
“가방이 왜 안 나오냐고······.”
“저희 가방이······.”
“제가 물어보고 올게요.”
“아니, 비행기에 우리랑 같이 싣고 오는 게 아니야? 왜 없어?”
사람은 도착했는데 짐이 연착되는 상황에 한 시간 넘게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고.
가까스로 짐을 모두 찾았을 땐, 웬 배우들이 도착했다며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아 또다시 발이 묶였다.
“이게 무슨······.”
“우리도 배운데···?”
“뭐 저렇게 불친절해.”
“누가 보면 우리가 무슨 저 사람 사생팬이라도 되는 줄.”
“방금 봤어요? 저 배우 자기 사진 찍는다고 나한테 가방 맡기는 거?”
“저 멀리 던져버리지 그랬어.”
박 대표가 껌을 씹으며 저 멀리 사라지는 할리우드 배우들을 노려보았다.
옆에 다가온 직원이 풀풀 웃었다.
“칸에서도 느꼈지만 참 어렵네요.”
“거기도 어지간히 싸가지 없었는데, 여기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박 대표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모두에게 말했다.
“일단 다들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나랑 이 팀장이 얼른 가서 렌터카 업체에 예약한 밴 가져올 테니까.”
“픽업 안 해준데요?”
“저 밖에 지금 기자랑 관광객들로 만리장성이야. 차 잠깐 대는 것도 난리인데 픽업은 어불성설이지. 다들 기다리고 있어 봐요. 얼른 택시타고 다녀올게.”
그렇게 박 대표와 직원이 잰걸음으로 사라지고.
게이트 앞으로 나온 배우들은 순식간에 인파에 밀려나 공항 구석으로 안착했다.
“하루 전 오길 망정이지 딱 맞춰서 왔으면 저희 시상식 들어가 보지도 못했겠네요.”
허탈하게 말하며 저 멀리 바글대는 사람들을 보는 배우들.
“그래도 막 저쪽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있다고 하니 신기하긴 하네. 우리가 지금 LA에 와있다는 게 실감도 되고.”
“아까 우리 못 나가게 하고 나간 배우들 중에 찰리 톰린슨도 있었대요.”
“어쩐지 팬들이 엄청 많더라.”
관광객인 양 게이트 한쪽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그들 앞으로 검은색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전면에 삼각별을 자랑하는 광택 좋은 밴이었다.
“저기 차 한 대 오는데요?”
“그러게. 근데 우리 차는 아닐 거 같은데.”
“아닐 거야. 대표님이 다 퍼져가는 봉고라고 하셨거든.”
“아, 좋다 말았네.”
기대를 버리며 시선을 돌리는데, 차량이 그대로 배우들 앞에 멈춰선다.
이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그들.
덩달아 주변에 경쟁에서 밀려났던 기자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내린 것은 배우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박 대표가 아니었다.
“어어···!”
“대표님이 렌트카 업체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제가 대신 모시러 왔어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 한 명이 내린다.
이에 배우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백승결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공항 앞에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고.
“또? 어제 왔잖아?”
“그러게? 무슨 일이지?”
균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제 백승결의 입국을 놓친 기자들, 놓치진 않았지만 눈치 게임에 실패해 질문 하나 못 던졌던 기자들, 질문도 던졌지만 그럼에도 하나 더 던질 욕심이 남은 기자들이 앞다투어 밴이 있는 곳으로 밀려들었다.
물론 백승결이 밖에 모습을 내보인 것은 찰나.
그와 배우들은 순식간에 밴에 올라타 사라져 버렸다.
안전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
“······.”
“······.”
결국 닭 쫓던 개가 된 기자들이 멋쩍어하며 다시 걸음을 돌렸다.
그곳엔 칸에 이어 두 번이나 주목을 빼앗긴 찰리 톰린슨이 얼굴이 구기고 서 있었다.
“그··· 찰리 톰린슨? 아까 하던 질문마저 해도 될까요?”
“젠장.”
#
“벌써 기사 떴어요.”
LA 시내에 위치한 레지던스 호텔.
장시간 비행에 다들 넋을 놓고 있을 때, 주섬주섬 짐을 풀던 직원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두 평 남짓 거실로 달려 나왔다.
“와 미국은 장난 없네요. 그냥 직설적으로 얘기해버리네.”
“뭔데? 뭐라는데?”
“할리우드의 새로운 별 백승결이 찰리 톰린슨을 제대로 물 먹였다! 찰리 톰린슨을 인터뷰하던 기자들 대부분이 백승결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카메라를 돌렸을 정도니 엄청난 굴욕이었다···.”
기사를 읊던 직원이 멍한 나를 보며 덧붙인다.
“근데 솔직히 배우님이 먹인 건 아니잖아요? 그분이 그 자리에 있다가 그런 거지.”
“그렇긴 하죠. 그분은 매번 저랑 이상하게 동선이 겹쳐서······.”
칸 공항에서도 그랬고, 빌라오소피라는 명품 브랜드에 수트를 빌릴 때도 마찬가지였지.
그 이후로 그가 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생겼는지 뒤에서 날 탐탁지 않아 한다는 얘길 세이디에게 듣긴 했지만.
······솔직히 별 관심 없었다.
안 그래도 지금 영화제에 흉내자들에 차기작인 조선유랑극단까지.
신경 써야 할 게 어디 한두 가진가.
“진짜 대단하더만.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하더라고.”
그때였다.
방이 부족해 오늘 밤 누군가의 침대가 될 소파에 앉아 있던 양기전이 혀를 내두른다.
“백승결! 누가 외치자마자 기자들 돌아보고 달려오고 난리도 아니었지.”
“우리가 인천공항에서 받았던 환대는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
“이래서 할리우드 배우들이 막 비밀리에 입출국하고 그러는구나 싶더라.”
“이 정도면 비밀리에 와도 다 알음알음 몰려오지. 이건 전용기 타고 댕겨야 하는 거 아녀?”
거기에 한마디씩 얹는 배우들.
내가 손사래를 치며 해명했다.
“영화제 기간이라서 유독 더 그랬던 거예요. 평소엔 안 그래요.”
“아니긴. 하나를 보면 열을 알지. 그나저나, 뭔 하루 만에 한식이 그리워지네···.”
“심지어 한 끼세요.”
“그러니까. 속이 느글느글하니··· 라면 가져온 사람 없나?”
쩝하고 입맛을 다시는 배우에 구석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던 박 대표가 퀭한 눈으로 돌아왔다.
“라면은 안 가져왔어도, 여러분들을 위해 이건 가져왔죠.”
“···?”
“계산기 두드리다 보니 스트레스받고 스트레스받으니 확 이게 땡기네.”
박 대표가 본인의 큼직한 캐리어를 열어젖혔다.
그 안엔 팩 소주가 금괴마냥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실제로 그것들을 보는 배우들의 눈빛도 금괴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대표님···!”
“저희를 위해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시고···.”
“공항에서 10kg 추가하신 이유가···!”
다음날이 시상식이니만큼, 아주 가벼운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급격하게 텐션이 오른 배우들을 바라보며 나는 웃었다.
내일 어찌 될까 벌벌 떨고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어, 혹시 백 배우는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잔을 씻어 오던 박 대표가 눈치를 보며 내게 물었다.
그러자 아쉬움 가득한 눈빛들이 덕지덕지 붙는다.
가야죠, 라고 답했다간 기껏 오른 텐션이 고꾸라질 판이었다.
물론 그렇게 답할 생각도 없지만.
“조금 더 있다 가려고요. 할 얘기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