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면 (5)
할리우드의 핑크빛 노을을 기대하던 이들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이 호텔엔 흔히 ‘뷰’라고 하는 게 없었다.
커다란 콘크리트 도시 속은 야자수 흔들리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고.
태양이 어디에 떠 있든 본인 갈 길이 더 중요한 이 서양인들에겐 남향 따윈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나마 고개를 힘껏 들어 올리면 보이는 좁은 구멍.
건물의 윗선을 따라 퍼즐처럼 그려진 하늘이 검게 물드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몇몇은 내가 술을 하지 않는 것에 아쉬워했지만, 그렇다고 강요하진 않았다.
애초에 그럴 성정들도 아니거니와, 더 큰 문제는 공급의 한계였다.
아무리 박 대표가 수화물에 넣을 수 있는 최대치로 가져왔다지만, 주당으로 유명한 배우들이 취하기엔 그저 입가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양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그것만으로 족한 우리들이었다.
나는 손에 들린 물만으로, 그들은 평소 주량의 반의반도 안 되는 팩 소주 한두 개로.
그걸로 충분히 취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이미 ‘흉내자들’이라는 공동의 결과물에 심취해 있었다.
게다가 시상식 전날 밤이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미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진짜 고맙습, 고마워.”
또다시 이런 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감사하죠.”
내 대답도 항상 같았다.
달라진 건 여기서부터였다.
“이 영화에 배우님을 선택한 건 사심이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 제 죄책감에서 비롯되었거든요.”
“죄책감?”
술잔을 기울이던 양기전이 이번엔 고개를 기울인다.
그의 의문 섞인 목소리에 살짝 시야를 넓혔다.
양기전 말고도 다른 배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보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도 물을 먹인 적 있거든요.”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향해 나는 영화 촬영이 끝나길, 영화가 개봉하길··· 그렇게 미뤄왔던 이야기를 비로소 꺼냈다.
그래도 김성운을 비롯한 팀원들에게 한번 털어놓은 적 있는 이야기라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만 조금 두려울 뿐.
“······모르셨죠?”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고, 아주 옅은 미소만 머금은 채로 말꼬릴 올렸다.
담담했다. 어떤 반응이 돌아오더라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모르긴 했네. 어린 애가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해?”
“그러니까. 거 참 신기하네. 우리 다 감쪽같이 속은 거 아냐?”
“어떻게 안 속겠어. 하긴, 어쩐지. 해별이네에서 연기를 그렇게 잘하던 애가 갑자기 연기를 어려워하길래··· 아휴, 창피해라. 이미 그때부터 나보다 연기 잘 하는 애한테 조언한답시고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정말 그랬어요? 그건 쪽 좀 팔리겠는데~.”
···음?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배우들은 내가 생각한 반응 중에 없었다.
내 담담함이 깨지고,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배우들 중 한 명이 쿡쿡 웃으며 내게 말한다.
“이보세요, 작가님. 뭘 기대하신 거예요. 우리가 그때 일로 뭐 화라도 낼 줄 알았어?”
“그건 아니지만······.”
“정말 그 영화들이 실패한 이유가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배우로서 실패한 것도 본인 때문이고?”
“······.”
말문이 막혔다.
그 틈을 비집고 추임새들이 들어온다.
“아니지. 절대 아니지.”
“그 영화들은 전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어.”
“우리가 이렇게 대본 보는 눈이 없어요.”
“그럼 ‘흉내자들’이 뭐가 되나.”
“그건 우리가 선택했다기보단, 작가님이 컨택한 거지.”
“아, 그렇긴 하네. 우리 대본 보는 눈 없네. 아주 그냥 연기만 하면 좋다고 실실~ 부모님집 바둑이여, 바둑이.”
그리고 그 끝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양기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봐봐, 좋은 영화는······ 나 같은 별 것 없던 배우마저도 하루아침에 이런 과분한 곳에 앉혀놓잖아.”
“아이, 형님. 뭘 그렇게 자학을 하고 그래요.”
“아니, 맞잖아. 연극이나 독립 영화하면서, 가끔 또 운 좋으면 상업 영화 조연도 간간히 하면서 정작 입에 풀칠은 아르바이트로 하던 우리가 지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LA! 아카데미! 오스카! 미쳤다, 미쳤어! 기분 째진다!”
“짜아아아안~.”
술잔이 부딪쳤다.
얼마 남지 않은 술을 아껴 마시던 양기전이 단번에 입안에 털어놓고서 미간을 구긴다.
“아따, 술 달다.”
잔을 내려놓고 그가 입을 쩝쩝 다신다.
“그래서. 이 좋은 작품 만나려고, 그때 그랬나 보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작가님.”
“······.”
“작가님이 쓴 대본에도 있잖아요. 결국, 그 잠깐들이 모여, 나를 만들고 있으니 나는 결국 행복한 것 아닌가. 그게 우리 모습을 보고 쓴 거잖아요?”
그 순간, 방 안에 있는 배우들의 모습이 ‘흉내자들’의 배역으로 바뀌어 보였다. 그럼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 그들은, 그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앉아 있는 이 좁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이 레지던스 호텔이 아주 초라하다고 느꼈다.
나는 내가 좀 전에 했던 생각을 고쳐야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미 충분히 대단하다고?
그렇지 않다.
내가 쓴 흉내자들은 이 정도였을지 모르지만.
이들이 완성해준 흉내자들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다.
내일 상을 받게 될 확률은 희박하다고 하지만.
그걸 떠나서 주목조차 받기 어려울 거라 모두가 예측하고 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오늘 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을 주었다.
재능의 조도가 비껴갈지라도.
운의 농도가 희석될지라도.
그럼에도 버틴 자들에 대한.
존경이었다.
#
다음날, 시상식 당일.
며칠 전부에 LA 구석구석을 누비며 취재 열기에 동참하던 KNS 연예부 신혜원 기자가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에게 뜻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늘이야말로 자신이 장장 수개월간 취재해온 ‘흉내자들’이 무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여하는 날이니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사전에 흉내자들 감독, 배우들과의 인터뷰까지 잡혔다.
그러니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그녀는 빼곡한 질문지를 가방 안에 넣고 LA 시내를 가로질렀다.
회사원들이 자주 빌릴 것 같은 레지던스 호텔 앞 빵집이 오늘의 인터뷰 장소였다.
“흐음, 일단 카메라는 이쪽에 세팅하면 될 것 같고, 녹음기도 충전 충분히 됐고. 빵 냄새 아주 좋고~.”
미리 도착한 카페에 앉아 몇 가지 사전 준비를 마친 그녀가 빵 냄새를 맡다가 퍼뜩 가방에서 질문지를 꺼내 들었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흉내자들에 대한 관심은 지금 한국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까.
원작팬들은 환호했고, 원작을 모르는 이들도 입소문을 퍼트릴 정도였다.
거기다 아카데미 후보에까지 덜컥 오르니 대중의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 상영 종료되고 바늘에 찔린 풍선마냥 다시 쪼그라드는 극장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흐뭇했다.
연극이 입소문을 탈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취재해온 자신의 아이템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과정에서 운도 정말 좋았다.
천광윤과 데이먼 편집장, 그리고 크리스 감독을 극장 앞에서 마주친 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흉내자들’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애정 속에서 발아한 관심은 이제야 남들이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아주 깊은 곳에까지 닿아 있었다.
바로 ‘흉내자들’의 작가가 누구냐는 것.
“대체 누구지······ 보안이 아주 할리우드야. 누가 가서 배워왔나?”
감독이었으면 사람들이 진즉에 궁금해하고 난리였을 거다.
아니, 애초에 영화가 감독이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로 투자가 될 리 만무하지.
하지만 각본은 달랐다.
최근 트렌드가 감독이 각본까지 겸하는 쪽이다 보니 굳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없다.
심지어 스스로 각본을 쓰던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지금까지 혼자 그것에 대해 취재를 해온 그녀였다.
그러다 ‘흉내자들’이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르며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수개월 전부터 취재한 자신이나, 이제 막 궁금해하는 대중이나.
여전히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기 어려웠다.
소문이 흔하다 못해 무분별한 이 업계에서 이렇게 말이 없다니!
“그래도 찌라시가 하나 있긴 한데······.”
바로 ‘흉내자들’이 무려 백승결이 몸담고 있는 소속사, 하람의 대표가 쓴 소원풀이 작품이라는 것.
“뭐,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근데 뭔가 촉이 아닌데···.”
이 찌라시엔 어쩐지 기자의 촉이 척 달라붙지를 않는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숨기는 걸 보면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오늘 알게 되려나.’
누군가 ‘흉내자들’의 작가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수상을 하게 되면 정체도 드러나지 않겠냐고.
이에 또 누군가가 답했다.
‘흉내자들’이 너무 대단하고 좋은 영화인 건 알겠지만······.
아카데미가 장난이냐고.
오스카가 만만하냐고.
사실 후자의 말에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었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수상을 기대하진 않는다.
작품이 덜 좋아서가 아니다.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냥 아카데미 상이라는 게 그랬다.
한때 ‘눈속임’이 칸에서 받은 황금카메라상하고는 그 궤가 달랐다.
특히나 각본상과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로 아카데미에서 무게감 있는 각색상이라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모두가 축포를 일찍 터트린 것은.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은연중에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였다.
‘흉내자들’의 아카데미행은.
선례 없는 재판 같은 것.
전례 없는 도전 같은 것.
그렇기에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저 미완성에서 그치게 될 것이라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도전기.
‘근데 또 사람 욕심이란 게 참······. 차라리 외국어 영화 상이었다면 기대해볼 만했으려나.’
줄곧 ‘흉내자들’을 취재하며 이제는 영화 스태프인 것처럼 애정이 생겨버린 그녀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얕잡아 보는 게 아니다.
대학로 구석탱이 극장에서 시작된 ‘흉내자들’의 아카데미행은 이미 그 자체로 엄청난 서사이니.
“어서 오세요.”
얼마 후 그 엄청난 서사의 주인공들이 도착했다.
‘흉내자들’의 감독과 배우들.
그녀는 바짝 긴장한 그들을 보며 인터뷰를 속행했다.
어제 점심에 뭐 먹었냐는 자잘한 질문들부터, 연극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오늘 있을 시상식에 대한 소감까지.
함께 따라다닌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질문을 해도 해도 줄지가 않았다. 빵은 먹을 새도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 마지막 질문을 앞당겨야 했다.
“그리고 요즘, ‘흉내자들’을 쓴 작가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알고 계시나요?”
“아, 네. 알고 있습니다.”
‘흉내자들’의 수장인 감독이 올 게 왔다는 듯 고갤 끄덕인다.
“제작에 참여한 어떤 곳에서도 아직까지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곳이 없어서요.”
“아. 그렇습니까?”
“감독님이시면 분명히 작가님을 만나 뵀을 텐데, 해주실 말씀 없으실까요?”
“흠. 글쎄요···.”
감독은 고단수였다.
무슨 태극권마냥 공격을 척척 흘려보냈다.
물 흐르듯 피하는 신공에 신혜원 기자는 번번히 미끄덩한 양서류의 피부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아니었다.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움찔거린다. 괜스레 태연한 척 차를 마시다가 ‘아뜨거!’하고 들썩이는 이도 있었다.
그렇기에 기자의 촉은 더욱 넘실댔다.
‘확실하다.’
작가는 우리가 알만한 사람이다.
정말 하람의 하선경 대표일까?
그렇다면 왜 숨기는 거지?
숨길 정도로 파급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결국, 모르쇠를 일관하는 감독에게 그녀는 방법을 조금 바꿨다.
“그러면 작가님의 정체는 저희가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그야··· 본인이 원하셔야겠죠?”
“아니, 감독님. 그러면 만약에 오늘 각색상. 정말 만약에 타버리면요?”
“와. 그러면 진짜 좋겠네요.”
씩 웃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신혜원 기자였다.
“아니, 무슨 뱅크시냐고요. 지금 제가 몇 개월째 그걸 찾는 중인지 아세요? 대체 어떤 분이길래 본인을 이렇게까지 꽁꽁 숨기실까.”
못 참고 탁 터진 그녀의 모습에 허허 하고 웃은 감독이 덧붙였다.
“숨긴 건 아닐 겁니다. 적어도 작가님은.”
“네?”
“음··· 처음엔 본인 작품을 위해서였던 것 같고, 그 다음엔 제 부탁 때문이었고, 그 다음엔 홍보팀의 계획이었고.”
“······.”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더군요. 지금 작가님은 왜 숨기려고 하시는 걸까.”
“그야 방금 홍보팀 때문이라고 하셨······.”
“저도 그런 줄만 알았는데. 어제 딱 알겠더라고요.”
안 감독의 시선이 옆으로 돌았다.
“기다렸던 것 같아요.”
“뭘요?”
용서받을 수 있기를.
그는 옆자리에 앉은 배우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말 대신, 악수를 건넸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기자님, 이따가 시상식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