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
대원군 (1)
보글보글 커피포트가 끓었다.
탁, 소리와 함께 전원이 꺼지자마자 스태프가 부리나케 배우들 사이로 달려가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랐다.
정자에 앉은 이태관과 백승결.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찻잔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며 주변이 조용해졌다.
곧이어 안원상 감독이 앵글 속에 집중하며 메가폰을 입으로 가져갔다.
—자, 슛 들어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힘 있는 목소리가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우릴 노려보고 있던 카메라의 붉은 빛이 점화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어인 일이십니까, 상감.”
이태관 배우가 물었다.
대표실에서 마주했던 그 노인, 흥선군의 모습으로.
소름이 팔뚝을 스친다.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걸 티 낼 순 없지.
내색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나의 연기를 시작한다.
“어제 궁에 오셨다길래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어찌 제게 들르시지도 않고요.”
“허허, 그건 좀 의외군요. 절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신하 된 도리로 가지 않는 게 옳다 생각했고요.”
뻔뻔한 반응에 실소를 내뱉는다.
“그토록 제 생각을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헌데 이건 모르셨나 봅니다.”
갸우뚱하는 그를 보며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궁에도 오시지 않았으면 한다는 걸요.”
“······.”
“혹, 아직도 복귀를 꿈꾸시는 게 아닌가··· 심히 의심이 듭니다.”
낮게 경고하자, 흥선군의 시선이 비스듬히 올라간다.
정확히 내가 쓴 갓에서 멈춰선 두 눈.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금지했던 넓은 갓을 보란 듯이 쓰고 찾아온 나.
그건 더 이상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다시 시선을 내린 흥선군이 말했다.
“꿈도 꾸지 말라니, 참 야속한 마음이 듭니다.”
“야속할지언정 억울하다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 궁을 중건하면서 조선의 기둥이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나라 곳간이 도둑질당한다는 이유로 서원을 철폐하셨던 건 벌써 잊으신 겁니까.”
“궁이 곧 왕의 위엄임을 모르십니까. 상감은 지금 자신의 위엄을 세워준 일에 먹칠하시는 겝니다.”
“또 제가 잘못했다 말하는 겁니까?”
“그저 옳은 길을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들이켰다.
그리고 곧바로 얼굴을 굳히며 흥선군을 노려보았다.
“항상 그러셨습니다. 너는 틀렸다. 너는 이리 해야 한다, 저리해야 한다.”
작게 호흡을 가다듬고, 보다 큰 목소리로 가장 날카로운 말들을 벼려 휘둘렀다.
“개똥이는 그저 냇가에서 노는 것이 좋았을 뿐었는데. 집에 들어와 어미의 밥을 맛있게 먹고 잠드는 것이 행복했을 뿐인데. 그것을 모르는 욕심 많은 아비는 제게 악몽을 꾸고 있다 말했습니다. 아들이 무엇을 원하였는지도 모르면서, 기어코 제 욕심이 향하는 자리에 앉히셨죠. 가장 높지만 가장 외로운 이 자리에.”
그리고 지친 듯 목소리를 낮췄다.
“정말 가장 높은 자리가 맞았는지도 이젠 의문이지만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조선이라는 이름처럼 말이죠.”
“그 또한 모를 일이지요. 일본과 아라사, 미리견까지··· 저들이 욕심을 드러내면 조선이 남아날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더욱 강건해지셔야 하는 겁니다.”
“제 강건함에 아버지의 자리는 없습니다. 더는 욕심 부리지 마세요. 내가 왕입니다!”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저는 상감이 국본이란 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하하핫! 모두가 안다고요?”
공허한 웃음 뒤에 던진 물음은 대답 따윌 바란 게 아니었다.
실핏줄이 터져나가라 힘을 주고서, 아비를 노려봤다.
“나는···!”
억눌린 분노가 쏟아져나온다.
비록 간절히 원했던 대상은 다르지만, 그건 내가 가장 잘 아는 감정이었다.
“짐은, 한 번도 내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어.”
#
안원상 감독은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미팅 때 본 장면인데. 그때 이미 충분히 놀랐던 장면인데.
감탄이 전율로, 전율은 희열로 바뀌며 온갖 호르몬이 뛰쳐나와 날뛰는 것 같았다.
⌜짐은, 한 번도 내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어.⌟
헤드셋으로 흘러드는 목소리.
미치겠네!
분명 감독으로서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이 있었다. 그것이 제대로 펼쳐졌을 때의 기대도 있었고.
하지만 이건 단순히 기대 이상이라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이 작은 화면 안에서 뿜어지는 긴장감 때문에 어느새 손이 축축해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잠시만이라도 가만히 있으세요.⌟
백승결의 목소리가 감정이 격해진 만큼 덜덜 떨린다. 그러면서도 딕션은 귀에 콱 꽂힌다.
⌜내가 이 나라를··· 짐의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분노에 가득 차 있던 눈빛은 어느새 애달프다 못해 간절해졌다. 그 변화가 빠르면서도 자연스럽다.
뒤이어 그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공을 쥐듯, 손가락을 오므린다.
⌜잠시. 아주 잠시만이라도 이 손에 쥘 수 있도록.⌟
침묵이 내려앉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잔뜩 상기된 얼굴의 백승결과 여전히 굳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태관.
극 중 고종과 흥선군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라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음을.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각자의 욕심을 채우는 것뿐.
점점 클로즈업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안원상 감독이 조명 감독 쪽으로 손을 뻗었다.
조명이 스르륵 움직이며 이태관의 얼굴 위에 짙은 그림자를 만든다.
어느새 탁해진 그의 눈빛이 그대로 아득해진다.
이를 본 안원상 감독이 발을 구르며 입술을 적셨다.
“좋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적막 속에서도 두 사람의 몰입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미 저곳은 둘만의 세계였다.
얼핏 들으면 로맨틱한 말 같지만, 정작 모니터 속은 그 어떤 스릴러보다 섬뜩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넋 놓고 있던 스태프들도 컷 사인이 떨어지지 않자, 하나둘 안원상 감독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태관의 표정이 계속 변하고 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섞여, 보는 이조차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단언할 수 없을 때.
“컷!”
마침내 안원상 감독의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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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촬영은 하루 만에 끝났다.
준비 시간이 무색하게 짧은 장면으로 끝나버린 촬영이었지만, 스태프들에겐 허무함 따윈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흥분한 얼굴로 정리를 마치자마자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술이 고픈 것처럼 굴었지만 정작 호프집에 도착해선 잔을 비우는 것보다 오늘 촬영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였다.
“그래서 딱 조명을 움직이니까 그림자가 기가 막히게 내려앉는 거지. 그때부터 이 배우님 표정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와, 안 감독님이 왜 컷을 안 외치셨는지 난 이해가 가더라니까?”
“전 모니터 없이 그냥 쌩눈으로 봤잖아요. 무슨 조선 시대 와있는 줄. 두 분 진짜 흥선군이랑 고종인 줄!”
“이거 왠지··· 관객들이 극장 나오면서 이 장면만 기억난다고 할 것 같지 않아요?”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영화 ‘대원군’에서 조연을 맡았던 배우들이 술자리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배우는 분장을 하고 왔나 싶을 정도로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중년 배우, 김상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핫, 다들 오랜만이네요. 안 바빠요, 안 바빠. 그리고 바빠도 술자리는 안 빼먹죠. 어이구, 박 대표님도 계셨네. 대표님!”
“어, 김 배우 왔어? 그··· 빈자리 찾아서 앉아. 내 옆은 말고.”
“에이, 옆에 가방을 두시면 어떡합니까. 요즘엔 좋은 차도 주차 두 칸 차지하면 욕먹어요.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안돼, 안돼. 나 김 배우 템포 못 맞춰. 지난번에 집 기어서 갔다가 와이프한테 얼마나 깨졌는 줄 알아?”
김상억이 히죽 웃으며 옆으로 다가갔다.
박 대표의 앓는 소릴 들으며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뒤이어 이번엔 젊은 남자가 호프집으로 들어온다.
“저도 왔습니다~.”
일단 잘생겼다. 멀리서 봐도 눈썹과 콧대가 대문자 T를 그린다.
점차 가까워지는 얼굴을 보니 ‘대원군’에서 흥선군의 측근을 맡았던 이준혁 배우였다.
고종의 어린 시절 촬영본에서도 몇 차례 나왔었지.
인사를 마친 그가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조감독에게 벌컥 물었다.
“아니, 아까 단톡방 난리 났던데요? 대체 어땠는데 그래요?”
“말도 마. NG 없이 한 번에 끝. 연기며 영상미며 최고였어.”
혀를 내두르는 조감독의 반응에 궁금증이 달아올랐는지 발까지 구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 맞죠? 저기 계셨네. 안녕하세요!”
인사만 보면 이미 몇 번 만나본 사이 같네.
붙임성 좋고 텐션 높고.
재질이 ‘종갓집 막내딸’의 남자주인공, 이강현하고 비슷해.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날 빤히 보던 이준혁이 작게 감탄했다.
“와, 확실히 감독님께서 꽂힐만 하셨네요.”
조감독이 갸웃거렸다.
“그걸 어떻게 딱 보고 알아?”
“마스크가 너무 좋으시잖아요. 감독님 마스크 좋은 사람 좋아하시는데. 그래서 나도 뽑힌 거···.”
그때 소시지를 우물거리던 안원상 감독이 얼른 포크를 흔들며 말을 끊었다.
“아냐, 아냐. 넌 내가 연기만 보고 뽑았어.”
“예? 에이, 그럴 리가···.”
“있어. 그럴 리 있어. 넌 연기가 참 좋아.”
단호한 대답에 배우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 잔을 드는 이태관 배우를 보고 물잔을 맞춰 들었다.
피식 웃은 이태관 배우가 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단숨에 잔을 비운 그가 내게 말했다.
“오늘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의 빈 잔을 채우며 말하자, 이태관 배우가 말없이 끄덕였다.
그러더니 물병을 들어 내 잔에 따랐다.
“잘하더라.”
“예?”
“잘한다고. 기대한 게 있었는데, 그 이상이었어.”
“감사합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다시 한번 잔이 부딪쳤다.
“미팅 때도 잘했는데, 이번엔 눈빛부터가 달랐어. 촬영본 요청한 거며 아침에 주변을 돌아본 것도 다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서였지?”
“네. 대본이 워낙 좋아서 연기하기 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글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요.”
천천히 주억거린 그가 먹태를 마요네즈에 푹 찍어 입에 넣는다.
“아무튼, 아쉽네.”
“어떤···.”
“고작 한 씬이라. 더 많은 씬을 맞춰보고 싶은데, 이번엔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는 말에 잠시 긴장했는데,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었다.
미소가 새어 나온다. 누가 입꼬리에 실을 엮어 잡아당기는 것 같다.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박 대표가 옮겨왔다.
“나 잠시 좀 피난 왔어. 김 배우가 너무 멕여. 그나저나, 뭘 그렇게 조용조용 비밀스런 담소를 나누고 있어?”
“백 배우 칭찬 중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난 우리 안 감독 칭찬 좀 해야겠다.”
건너 테이블에서 안 감독이 미어캣처럼 고갤 치켜들었다.
“전 갑자기 왜요?”
“그냥 임마, 그냥. 솔직히 이번 영화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난 내가 독립 영화 같은 영활 제작할 줄 꿈에도 몰랐다고. 근데 오늘 보니까 멋지더라. 설사 영화가 흥행엔 실패해도 이 정도면 작품성으로···.”
이번엔 옆 테이블에서 김상억이 고갤 쭉 뺀다.
“대표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실패하긴 뭘 실패해요! 한잔 더 드실래요?”
“미안해 김 배우! 어후, 난 쟤가 제일 무서워.”
몸을 떠는 박 대표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아무튼, 이번 영화에서 난 더 바랄 게 없다, 이 소리야.”
이어서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며 결론을 내리던 그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날 바라본다.
“아, 바랄 거 하나 있다. 우리 백 배우 드라마가 앞으로 30회 정도 남았으니까······.”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얼추 우리 개봉날짜하고 비슷할 것 같은데, 그동안 분량 팍팍 늘어서 인지도나 쭉 올라갔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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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 ‘종갓집 막내딸’이 어느덧 50회를 방영했다.
주인공 안보라의 능력이 회사에서 빛을 발하고, 남자주인공과의 사랑도 이뤄지는 등···.
그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번 회차의 반응은 그중에서도 역대급이었다.
—드디어!!!
—오늘 방송 보고 진짜 눈물 콸콸. 왜 이렇게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저도 전철에서 보다가 눈물 날 것 같아서 혼났네요···.
모두가 고대하던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키스도, 결혼도 아닌······.
안주연의 데뷔!
모두의 걱정을 독차지하던 안주연이 드디어 배역을 꿰찼다.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려 영화 출연.
사람들은 환호의 타이핑을 치기 시작했다.
—이러다 안주연 연기 못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는데, 작가님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하긴 한데, 설마 이러고 끝은 아니겠죠? 연기로 잘 되는 모습 보여주실 거죠?
—맞아요. 막방 전에 성공하는 거 보여주셔야 돼요! 제발요!
그런 염원(?)이 실시간 반응란에서 각종 커뮤니티로 퍼져, ‘안주연 성공 기원 운동’으로 번졌을 때쯤.
—안주연 영화 찍었대요!
—뭐지 이 뒷북은. 이미 어제 감독한테 캐스팅되는 장면 나왔어요.
—아니 아니, 안주연 역의 백승결 배우가 영화를 찍었다고요.
—헐 정말요? 어떤 영환데요?
—[httb;//www.mutube.cpm/watch-unstj;=yut%23] 링크 확인해보세요. 오늘 나온 파이널 예고편입니다.
—이거 흥선대원군에 관한 얘기네. 이걸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예고편 나온 지도 몰랐음. 주연이 이태관에 김상억, 이준혁이면 완전 마이너한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약간 독립 영화 느낌이 나네요.
—예고편만 봐선 정적인 느낌이 많이 나긴 하는데, 흥선군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은 하고. 재밌으려나···.
—그나저나 우리 해별인 어딨죠? 예고편에 전혀 안 나오는데요?
—그러게요. 비중이 좀 적나?
그 기세를 발판삼아, 영화 ‘대원군’의 홍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