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면 (6)
‘흉내자들’ 배우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할리우드의 핑크빛 노을이 덜 뭉친 솜사탕처럼 하늘에 풀어졌다.
누군가 마법 지팡이를 휘두른 듯 가로등엔 불빛이 솟아났고, 널찍한 도로엔 주변 전경을 모두 머금은 광택 좋은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다.
수많은 인파가 특별함을 가르는 리본을 따라 광장에 몰려들었고, 그 끝에 새빨간 레드카펫이 돌비 극장으로 향하는 실크로드처럼 곧게 뻗어 있었다.
그 위로 별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며, 카메라 플래시가 발산하는 빛들이 별을 더욱 반짝거리게 만들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혹은 오스카라고도 불리우는.
영화인들의 가장 권위적이고 거대한 축제.
그곳에 도착한 차량의 문이 열렸다.
매끈한 로퍼가 카펫을 지르밟는다.
지면을 디디며 자연스레 차에서 딸려 나온 길쭉한 다리와 곧은 상체가 이어서 정렬을 맞춘다.
카펫을 밟은 청년.
그는 자신의 코디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자캣의 어깨선을 앞으로 당겼다.
잠시 늘어났던 소매가 다시 핏하게 맞아떨어지며 그 안에 하얀 셔츠와 반짝이는 시계를 스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백승결.
작년 한 해, 파코스라는 이름으로 가히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
그의 등장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셔터를 눌렀고, 목청을 높였다.
이윽고,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주역들이 모두 그의 곁에 선다.
그들이 다 함께 레드카펫을 걷기 시작했다.
시상식이 열리는 극장으로 다가갈수록, 플래시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터진다.
그 모습이 정말 멀리서 보기엔 그들이 빛으로 반짝이는 듯했다.
별.
그야말로 별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라는 거대한 은하의 별들에 주목하고 있을 때.
꿀꺽—.
정작 그중 가장 빛나는 백승결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 끝이, 이제 막 차에서 내리는 또 다른 배우들에게로 향한다.
‘흉내자들’의 안 감독과 배우들이었다.
그들이 활짝 웃으며 기자들과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든다.
‘걱정 안 해도 되겠네.’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물가에 애 내놓은 것처럼 초조해하던 백승결이 안심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붉은 레드카펫과 황금빛 조명.
그 길 끝에, 별들의 전장이 있었다.
#
휘황찬란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 위에서.
큐카드를 손에 쥔 시상자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스카 상이 안길 곳은······.”
그렇게 이제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운이 띄워지면.
모두가 곧 탄생할 주인공을 위해 박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호명.
———!
사람들은 환호로 수상자를 부르고.
수상자는 온갖 감정의 향연을 맛보며 무대로 나아간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모든 명예와 영광이 그의 품에 안긴다.
트로피와 함께.
그 모습을 전 세계가 바라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의 영광스러운 소감을 듣기 위해서.
이 순간만큼은 하나의 영화가 아닌 세상의 주인공이 된 배우, 감독, 작가들.
심지어 대관식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무대 위에 서 있노라면 들뜨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너무 들뜬 인간은 종종 실수를 몰고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긴장을 해서. 다시 하겠습니다.”
그 실수는 귀엽게 봐줄만큼 사소하기도.
“정말이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순간을 사랑하는 나의 에밀리······ 아니, 이자벨라에게 이 상을······.”
혹은, 절대 그렇지 않기도 하지.
“이자벨라는 자기 와이프인데, 에밀리는 누구야?”
“에밀리··· 에밀리··· 설마 그 모델 에밀리?”
“맞네. 두 사람, 패션쇼에서 같은 무대에 선 적도 있지?”
“근데 그 에밀리면 휴스턴 와이프잖아?”
“잠깐, 휴스턴은 저 양반 친구 아니야?”
“······맙소사.”
오늘도 평화로운 할리우드랄까.
수군대는 소리에 짧은 수상소감을 마치고 내려가는 모 영화의 감독.
확실히 그에게 역사적인 순간이긴 할 것 같았다.
핸드폰이 자연발화가 가능할 정도로 뜨거워지는 아주 끔찍한 밤을 보내시겠네.
그렇게 필름 릴 위에 선 황금인(黃金人) 트로피 23개가 하나씩 주인에게로 안기고.
가장 뒤쪽에 발표하는 본상들에 가까워질수록 시상에도 조금씩 무게감이 얹어졌다.
그 와중에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은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 목록에서 알뜰하게 상을 챙겼다.
블록버스터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상으로 알려져 있던 시각효과상을 자연스레 거머쥐었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술상도 챙겼다.
음악상에서는 한국의 사운드필름이 맡은 영국 영화, ‘백 파이프’가 수상을 하며 아쉽게도 후보에 그쳐야 했지만.
아직 노미네이트가 된 하나의 상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작품상과 감독상과 더불어 본상이라 불리우는 각본상.
물론 그보다 먼저 각색상의 주인공을 호명해야 할 차례였다.
여섯 후보들이 하나씩 화면에 떠오른다.
전세계에 베스트셀러로 팔렸던 소설 원작 영화가 거의 전부였다.
단 한 작품, 연극을 원작으로한 ‘흉내자들’만 제외하고.
“다음으로 오스카 상이 안길 곳은······.”
화면에 떠오른 안 감독과 그 뒤로 보이는 배우들.
그들의 표정엔 마냥 신기함과 흥미로움, 그리고 주목받고 있다는 긴장이 뒤엉켜 있으나.
정작 다른 후보들 얼굴에 냄비 뚜껑처럼 들썩거리는 기대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을 보는 대부분도 비슷했다.
저 조각난 화면을 꽉 채우며 등장하는 수상자는 적어도 저들은 아닐 것이다.
굳이 이렇게 생각하진 않아도 은연중에 그럴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흉내자들’입니다!”
적막을 뚫고 그 이름이 호명이 되는 순간.
그들도 굳고, 이를 지켜보던 이들도 굳은 것은.
아주 잠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정적이 흐르는 듯했다.
그리고.
—, ——! ———!
정전이 난 도시의 불이 순서대로 들어오듯, 시상식장을 가득 메운 별들의 박수가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흉내자들의 주역들.
안 감독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가렸고, 배우들은 온갖 감정이 다 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환호에 동참했다.
“이런 미친···!”
“진짜 우리라고? 진짜!?”
“어흑···우리가 지금 상을 받았다고?”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들의 모습에 모두가 점잖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기다려주었다.
뜨거운 감정이 가라앉으면 대표자가 올라가서 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들에게도 이변인데, 저들에겐 어떻겠나.
하지만 당연히 대표자인 줄 알았던 안 감독은 앞으로 나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아예 무대 위가 자신의 자리가 아닌 것처럼 등을 돌리며 배우들을 격려하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시선 끝에서.
“어···?”
천천히 일어나는 한 사람.
어색한 공기를 가르며, 그가 저벅저벅 무대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
“······뭐?”
작은 의문이 입술을 비집고 빼꼼 튀어나왔다.
그럴만 했다. 흉내자들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함을 토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백승결이 시상대에 올라서다니.
KNS 연예부 신혜원 기자는 자신의 숙소에 반쯤 누워,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 괴리감 있는 외모의 스타들도 표정만큼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모든 시선을 받으며 황금빛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 백승결.
옆에서 시상자조차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어··· 대리수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긴 들었는데, 백승결 배우가 하게 되는 건가요?
그는 프로답게 어떻게든 연결점을 찾아 이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백승결의 대답에 다시 한번 멍한 표정을 짓게 된다.
—아뇨, 대리 수상이라는 말은 지금 적합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흉내자들은 제가 쓴 각본이거든요. 원작도, 그리고 영화도요.
“오마이갓···!”
결국, 자신의 이마를 탁 하고 치는 신혜원 기자였다.
이내 입이 쩍하고 벌어지고, 거기서 놀라움과 황당함이 뒤섞인 웃음소리가 뚝뚝 끊어지며 흘러나왔다.
“허···하···하···.”
취재가 이어질수록 더욱 궁금했다.
대체 ‘흉내자들’의 작가가 누구길래 이렇게 숨기는 걸까.
그건 오늘 오전에 감독과 배우들을 만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랬는데······.
‘너무 황당한데, 또 이러면 다 이해가 되네.’
백승결이다. 할리우드에서 그 이름이 완벽하게 각인된. 심지어 국내에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도 같은 독보적인 국민 배우.
그런 그가 하는 다른 활동이 대중의 영향 없이 진행되려면 아예 입을 틀어막는 방법밖엔 없었을 터.
“그러네. 그랬어······.”
천광윤 배우도, 데이먼 편집장도, 가장 생뚱맞았던 크리스 감독도.
그래서 그곳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거다.
작가가 백승결이라서!
여전히 화면 속은 얼어붙어 있다.
이 정도면 방송사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보는 이들도 모두 얼어있을 테니 문제 될 게 없겠지만.
“와··· 백승결이 글을 썼다고? 미쳤다. 진짜 미쳤어.”
이건 정말 그랬다. 미친 이벤트였다.
화면 속 면면들을 보아하니, 이벤트라기엔 정작 주최측도 전혀 몰랐었던 것 같지만.
그녀가 얼른 옆에 던져져 있던 노트북을 끌어당겼다. 그러다 멈칫하며 다시 화면을 보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각색상 다음은··· 각본상.
거기 유력 후보엔···.
이윽고, 양손이 노트북에서 떨어져 그녀의 머리를 짚었다.
“가만, 만약에 당죽막이 각본상까지 받게 되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지?”
의문과 함께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
그녀가 동그래진 눈으로 화면을 바라본다.
얇은 입술이 빠르게 달싹거렸다.
“각본상과 각색상을 동시에 받은 사람이 지금까지······.”
있을 리가.
#
마이크를 앞에 두고서 잠시 망설였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 소감을 준비했고, 준비하며 자연스레 외워졌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단순히 준비한 말을 읊기만 하려는 것은 아니기에, 약간의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저는 백승결이라고 하는 배우입니다. 한국인이고요. 음,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1, 2편에 출연했었고요. 파코스라는 이름으로요······.”
우선 자기소개부터 차근차근.
내 설명에 사람들이 곳곳에서 웃음을 터트린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내 모습이 황당하다는 듯이, 지금 여기서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눈빛들이었다.
의도대로 분위기를 한번 환기하고서, 나는 가뿐히 본론으로 넘어갔다.
“제가 저만의 작품을 쓰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제대로 쓰기 시작한 건 제작년이었죠. ”
살짝 목소리 톤을 낮추자 잠시 휘어져있던 모두의 눈들이 확 내게 집중되는 것을 느낀다.
“그때 저는 문득 제 안에 남아 있는 감정과 기억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가 의문스러워하고 있을,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넌지시 밝히고서.
그럼에도 ‘흉내자들’이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포문을 연다.
“이 작품은, 저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분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