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면 (7)
백승결의 수상소감을 듣고 있던 배우들이 또르르 눈알을 굴린다.
귀를 쫑긋 세우는 건 애당초 시상식 5분 만에 포기했고, 대신 눈을 부릅뜨고 주변 반응을 살피기 시작한 그들이었다.
남들이 웃으면 따라 웃고, 손뼉을 치면 얼른 타이밍을 맞춘다.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자연스레 생존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 뭐랍니까?”
그럼에도 지금의 수상소감은 대충 눈치껏 반응하기보단 제대로 알고 싶었다.
다른 이도 아닌 자신들의 영화로 각색상을 수상한 백승결의 수상소감이었으니까.
이에 가만히 시상대를 바라보던 안 감독이 작게 속삭인다.
“본인을 지독히도 괴롭혔다는데?”
“누가요? 감독님이요?”
“나···?”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안 감독이 덧붙였다.
“아니, ‘흉내자들’을 만들게 한 사람들.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의 시선이 나란히 앉아 있는 배우들을 훑었다.
“자네들 같은데.”
“저, 저희요?”
#
내 시선이 무대를 내려가 객석을 타고 올라간다.
수많은 이들을 지나쳐 눈동자가 멈춰선 곳은 ‘흉내자들’의 주역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그곳.
모두가 날 바라보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
“제가 만난 그 누구보다 뜨거웠고, 누구보다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며, 오로지 한 씬, 한 씬 완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그때의 그분들······.”
눈길 위를 눈덩이가 굴러가며 점점 커지듯.
내 눈길이 그들을 스치며 감정을 키워나간다.
“제가 아역 때 만났던 배우분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기 앉아 계시죠. ‘흉내자들’의 주연으로서.”
객석에서 반짝이던 모든 눈들이 내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이윽고 커다란 화면에는 내가 가리킨 배우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화면을 등지고 있지만 모니터 스피커 쪽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주목에 얼어붙어버린 배우들.
“뭐, 뭐래? 뭐라는데?”
누군가 어리둥절해 하며 실수로 목소릴 높였고, 그 모습에 관객들이 하나둘 웃음을 터트린다.
나도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역 배우였습니다.”
다시금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들.
“그리고 아주 긴 시간 동안 배우와는 동떨어진 곳에 있다가 몇 년 전 복귀했죠. 저는 그때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건 운명이라고. 연기에 대한 꿈이 너무 강렬해서 다시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그래서 복귀를 결심했습니다만······ 이 작품을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리 높지도, 그렇다고 너무 낮지도 않게 내뱉은 목소리가 마이크에 빨려 들어가 객석으로 선명히 퍼져나간다.
—나의 복귀엔, 운명 같은 건 없었구나.
“······.”
—운명이 아니라 짧은 인생에서 더욱 짧게 스쳐 지나갔던. 그럼에도 가장 뜨겁게 남아 있던 그분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 박혀 있었구나.
“······.”
—그 기억이 날 움직였고, 결국 이렇게 돌아오게 했구나.
양기전을 비롯한 배우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니 ‘흉내자들’은 안타까운 현실을 딛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이 연기해나가는······ 과거 어린 제가 존경했던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표정은 덤덤하게.
목소리는 담담하게.
그렇게 한 템포 쉬고서 말을 잇는다.
—저는 요즘 계속 깨닫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 인생에도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는 걸. 그래서 지금 나도 그 길을 뒤따를 수 있다는 걸.
후우.
거기까지 말하고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소감을 매듭지을 차례였다.
—완벽히 기억하겠습니다. 철저히 흉내 내겠습니다. 그렇게, 저도······.
언젠가 해별이를 넘어서겠다 말했던 것처럼.
그다음엔 누구도 끌어내릴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가겠다 결심했던 것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보겠습니다.
새로운 다짐과.
—좋은 배우, 작가가 되어가겠습니다.
목표를 말하고서.
—감사합니다.
미련 없이 마이크에서 입을 떨어트렸다.
그러자 그런 나를 향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수상소감이 끝났으니 당연했다.
그 환대를 잠시 만끽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트로피를 안아 들었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나 또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수상을 받아 박수를 받아야 할 이가 대관절 누구를 향해 손뼉을 치는지.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찬사.
그 모든 이야기가 향하던 곳.
그러자 모두가 몸을 살짝씩 틀어 박수받을 대상을 바꿨다.
“어···어?”
“갑자기 왜 우리 보면서 박수치는데?”
나를 비추고 있던 화면에 다시 ‘흉내자들’의 주역들이 나타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춤이라도 춰야 하나?”
“하지마, 하지마. 국제 망신이야.”
어리둥절해 하던 배우들이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 사방을 향해 인사를 한다.
이에 사람들은 더 큰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웃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흉내자들’이란 영화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던 이들이 태반이었다.
하물며 배우들은 어떻겠나.
알아보기는커녕 누가 누군지 설명해줘도 금세 까먹을 정도의 존재감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적어도 오늘 아카데미 시상식을 본 사람들은 저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게 될 테니까.
활짝 웃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걸음이 가벼웠다. 아주 후련했다.
이걸로 오늘 내가 할 일은 모두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다시 무대로 불려 나온 건, 바로 다음 수상에서였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2’가 블록버스터 영화로선 이례적으로 각본상까지 수상해버린 거다.
#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느 해처럼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일어나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기대도 않던 커다란 폭풍에 모두 묻혀버렸다.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그 폭풍은 랜선을 타고 인터넷으로 상륙했다.
그 기세는 대단했다.
심지어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작품상 수상작마저도 시상식이 끝나고 기사 몇 개 올라온 것이 전부.
화제성이 최우선인 기자들은 앞다투어 배우반에서 작가반으로 넘어온 폭풍의 전학생에 대해 기사를 만들어냈다.
작년 한 해, 최고의 연기로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연기상도 아니고 작가상을 2개나 수상해버린 백승결이란 배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의 독무대가 아니었나, 평가할 정도로 인터넷에선 모두가 그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지금 미국 현지 반응이 이럴진대, 한국은 어떻겠나.
새로 고침 한 번에 기사 수십 개가 상단에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기사 수십 개가 그 위를 덮어버리는 상황.
“이건 답이 없네.”
KNS 연예부 신혜원 기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호텔 방에 앉아 자신이 올린 기사를 추적하던 그녀는 결국 포기했다.
올린 지 10분 만에 심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한국에서 온 전화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스피커폰을 틀었다.
“선배님, 식사는 잡수셨습니까.”
—먹었겠냐.
“어? 지금 점심시간 막 지나지 않았나요?”
—근데 오스카로 갑자기 분위기 월드컵이니 밥 먹을 시간이 있겠나. 아니 무슨 시상식을 아침에 하냐.
“······.”
신혜원 기자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깜깜하다. 당연했다. 여긴 늦은 밤이니까.
—야, 그나저나 너 어떻게 된 거야. 기사 올린 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기껏 현지까지 파견 나와 쓴 기사가 곧바로 유기되어버렸으니······.
“그, 기사가 좀 올라가나 싶더니 바로 묻혀버리더라고요. 지금 기사가 너무 많이 올라오고 있어서··· 아무래도 제목 어그로를 더 끌어야 하나 싶은데···.”
—아니, 그거 말고.
“네?”
—오늘 올린 거 말고, 네 이전 기사 봐봐.
······이전 기사?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녀가 덮어버렸던 노트북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작성했던 기사를 찾았는데, 어째선지 기사 하나에 댓글이 만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연극에서 영화로. ‘흉내자들’의 작가는 누구인가?>분명히 이거··· 댓글 백 개도 못 넘긴 아무도 관심 없던 기사였는데?
그랬던 기사가 갑자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그녀가 당혹스러운 목소릴 내자 핸드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 거기다가 ‘흉내자들’ 작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문점하고 추리들을 쭉 써 놨잖아? 결국 너도 작가를 특정하진 못했지만, 이제 와 보니 ‘백승결’이란 이름만 넣으면 모두 설명이 되는 거지. 다들 안타까워하던데? 넌 작가가 백승결인 거 거의 맞출 뻔했다고. 아무튼, 그래서 나름의 성지글로 사람들이 엄청 모여들더라. 이젠 아예 커뮤니티마냥 놀이터가 됐어.
신혜원 기자가 얼른 댓글창을 확인한다.
그의 말대로였다.
—풀이 과정은 맞았으나 정답이 보기에 없어서 못 맞춤ㅋㅋㅋ
—하긴, 지금 백승결인 거 아니까, 와 이거 그냥 완전 백승결이었네! 하지.
—누가 알았겠어. 할리우드 스타가 한국에서 연극 대본을 쓰고 있었을 줄.
—심지어 그러고 오스카상 받음ㅋㅋㅋㅋ
—심지어 각본상이랑 각색상을 동시에 받음. 누가 그러던데 이건 남우주연상이랑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은 거라고.
그녀의 기사는 이미 수많은 팬들의 놀이터가 되어있었다.
—진짜 역대급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내가 살아생전 아카데미상을 챙겨본 것도 처음이지만, 앞으로도 이것보다 재밌을 아카데미도 없을 듯.
—‘흉내자들’ 연극도 영화도 진짜 재밌게 봤는데. 그게 내 인생 영화인 당죽막의 백승결이 쓴 거라니.
—가만, 그러면 이제 백승결은 배우임? 작가임?
—앞으로 둘 다 하겠다고 소감에서 말하지 않았나?
—본인이 써서 본인이 연기할 계획은 없는 건가? 그것도 보고 싶은데.
—와, 그거 소름이겠다. 남이 써준 것도 미친 연기를 보여줬는데 본인이 쓰면 어떻겠어.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댓글을 탐독하던 신혜원 기자가.
—이러다 다음엔 아주 감독도 한다고 할듯ㅋㅋㅋ
문득 하나의 댓글에 꽂혀서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할 수도 있겠는데?”
얼른 새하얀 화면을 띄우는 그녀.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길 20여 분.
뚝딱, 기사 하나를 완성한 그녀가 아까 전화 온 선배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백승결, 배우—>작가—>???, 다음은 감독일까?>이러한 제목으로.
이윽고 선배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황당한 목소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온다.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그럴 듯하지 않아요?”
—전혀.
“그럼 어그로는요?”
—그건···.
잠시 말문이 막혀있던 선배가 이내 인정한다.
—그래. 확실히 어그로는 끌리겠다.
“그쵸!?”
—터무니 없다고 욕도 좀 먹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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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가 백승결의 성공적인 데뷔(?)가 끝나고.
고작 며칠 사이에 무수히 많은 요청이 들어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티비 쇼들과 해외 잡지 화보 촬영, 인터뷰 요청 등등······.
게다가 배우로서 받던 수많은 대본들 위로, 이제는 대본을 달라는 감독들의 러브콜까지 받게 되었다.
그중에는 해외 유명 감독도 더러 있을 정도.
이제는 배우로서도, 작가로서도.
완벽하게 세상에 자신을 증명한 백승결이었다.
“이게 왜 진짜······?”
그런 그가 감독 데뷔를 공표한 건, 바로 그 다음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