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조선유랑극단 (1)
—넌 진짜···.
신혜원 기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선배 기자의 목소리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황당함과 벅참이 섞인 목소리.
신혜원 기자는 위풍당당한 웃음소리로 이에 화답했다.
방금, 백승결의 감독 데뷔까지 맞춰버린 그녀였다.
당연히 어깨는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다.
—이야,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진짜.
“이 정도면 실력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선배님?”
—허! 그래, 맞다. 맞아. 편집장님도 인정하시더라. 이 정도면 너한테 뭐가 있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 연예부 일동은 이제부터 널 기연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신기연이. 어때, 신기연 기자.
“오, 뭔가 앞으로도 기연이 막 찾아올 것 같아서 좋은데요?”
꺌꺌 거리며 화답한 신혜원 기자에 선배 기자도 따라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쯧 하고 혀를 차는 선배 기자.
신혜원의 기분을 두둥실 올려놓고 빌드업에 들어간다.
—그나저나, ‘흉내자들’ 배우들한테 연락했는데 답장이 안 온다.
“그건······ 그럴만하죠. 지금 상황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한국의 어떤 연극이 영화화가 되어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사건이었지.
그런데 그 영화가 결국 각색상을 받아냈고, 심지어 그 각색상의 주인공이 작년 한 해 할리우드에 파코스 열풍을 불러일으킨 백승결이었다.
그러니 지금 ‘흉내자들’ 쪽이 어떻겠나.
그들에 대한 관심은 아카데미 시상식장 천장을 뚫고 천조국을 돌파 중이었다.
뒤늦게 미국 상영관이 늘었고, 무대 인사까지 다니게 되었으며, 인터뷰 요청은 거의 비처럼 쏟아지는 수준일 게 분명했···.
—그러니까 네가 닉값 좀 해야겠다.
“에···?”
—또 아냐. 너라면 LA 돌아다니다가 누구 한 명 마주칠지. 예를 들면 주인공인 양기전 배우라던가······.
“저 오늘 드디어 복귀인데요?”
몇 날 며칠을 카펫 깔린 텁텁한 호텔 방에서 지내다 보니 집이 그리워진 신혜원이었다.
그녀도 이렇게 늦어질 줄은 몰랐다.
원래대로였다면 시상식이 끝난 다음 날 곧장 한국으로 복귀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앞서 말한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연달아 겹치며 KNS에서도 현지 상황을 파악할 기자 한 명쯤은 필요했다.
그렇게 체류가 길어졌다.
체류가 길어지니 표류가 되었고, 김 씨 표류기는 명작이었지······.
신혜원의 향수병이 이 정도로 심각해져 있는 상황이란 걸 알 리 없는 선배는 그저 부탁인 듯 부탁 아닌 부탁 같은 명령을 내뱉는다.
—하루만 더 있자. 신기연의 힘을 보여줘! 어디든 가봐!
“안 돼!!”
—안 되는 반말···.
“안 돼요. 신기연인지 신기루인지 안 해요. 다시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셔야지. 그렇게 막 바꿔 부르는 거 좀 아닌 것 같아요. 안 합니다. 안 해요!”
그렇게 애써 외면했지만, 그녀는 기자이기 이전에 회사원이었다.
까라면 까야 하는.
“미국 관광을 이렇게 하게 되네···.”
2주 동안 하지 못한 관광을 하루 만에 몰아서 해치웠다.
정확히는 관광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무슨 도장 찍듯이 LA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람 찾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기 바빴을 뿐.
물론 결과는 꽝.
당연했다. 서울에서 김서방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여긴 심지어 LA잖아.
결국, 마지막 행선지인 공항에 도착한 그녀.
길고 길었던 신 씨 표류기의 마침표를 찍으러 캐리어를 질질 끌던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신기연이니 뭐니 알랑방귀를 뀌며 자신을 이곳에 내던진 장본인!
“네, 서어어언배.”
—뭘 그렇게 이 악물고 받아, 무섭게. 지금 어디야?
“공항이지요?”
—스톱!! 스톱!
“······.”
—비행기 타지마. 멈춰. 아직 수속 안 했지? 빨리 그렇다고 해. 너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 아니잖아?
뭐지. 욕인가?
“아니, 또 왜 그러시는데요. 저 수화물 보내려고 줄 서 있어요.”
—조아써! 그대로 멈춰! 그리고 돌아서 공항 나와! 너 인터뷰 준비해야 돼!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제가요? 누구랑요? 설마 ‘흉내자들’ 배우들이랑 연락 됐어요?”
—아니!
“그럼 누구랑 인터뷰를···.”
—작가!
시종일관 격양되어 있던 목소리가 정점을 찍으며 귀에 꽂혔다.
—야잇! 흉내자들 작가라고! 기연아, 대박이다! 역시 신기연!
“······.”
잠시 멍해졌던 신혜원 기자가 정신을 가다듬는다.
흉내자들의 작가라면 지난주 시상식장에서 밝혀졌다. 그래, 그랬지.
······백승결이라고.
“이거 장난이면 진짜 선배······.”
—장난 같냐? 장난 같아!? 너 나 흥분한 거 안 보여?
“안 보이긴 하죠. 아니, 근데··· 진짜 백승결이 인터뷰를 한다고요? 저희랑요?”
백승결은 원래부터 인터뷰 따기 엄청 힘든 배우였다.
KNS 방송국을 등에 업은 그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지.
심지어 최근엔 휴식기를 갖게 되면서 인터뷰를 일절 받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오스카에 나타나서 폭탄을 투하.
인터넷을 그야말로 ‘백승결’과 ‘흉내자들’만 열리는 밭으로 만들었지.
······이때 현재 백승결의 인터뷰가 가지는 가치를 구하시오.
어떤 공식을 대입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얼마나 큰 숫자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녀의 입에서는 이런 질문이 튀어나올 수밖에.
“왜요?”
#
“‘흉내자들’이 개봉하기 전부터 작가가 누군지 그렇게 파시는 분은 기자님이 유일하셨어요.”
내 대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신 기자.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왔다며 호들갑을 떨던 그녀가 급 쪼그라들었다.
“앗.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감사했어요. 그래서 인터뷰도 하고 싶었던 거고요.”
“네?”
“처음에 제가 전면에서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절 숨겼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아무도 작가가 누군지엔 관심이 없으니 섭섭하기도 했거든요.”
“정말요? 아, 더 열심히 캘 걸 그랬네요.”
아쉬워하던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전 작가님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이런 대단한 작품을 대체 누가 쓴 걸까. 그 대단함이 지난주에 전 세계에 증명되었죠.”
“와···.”
기분이 퍽 좋았다.
연기에 대한 칭찬을 들었을 때와는 확실히 또 다른 느낌.
한이연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왜 내 새끼라고 표현하는지.
김미옥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위해 왜 그토록 오래 걸렸는지.
그 모든 게 설명된달까.
“기분 좋은 말이네요.”
“팩트니까요.”
재빠른 대답에 빙긋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근데 감독 기사는 정말 놀랐어요.”
“아, 그거. 근데 저만 놀라셨을까요. 사실 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있었는데 누가 우스갯소리로 그러더라고요. 감독까지 하시는 거 아니냐고. 근데 그게 묘하게 그럴듯한 거 있죠?”
어쩌면 이 기자도 나나 하선경 대표와 결이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감이 이렇게 좋은 걸 보면.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하는데, 그녀가 물어왔다.
“앞으로 미국에 계실 거예요?”
“당분간은요.”
“감독 데뷔를 공표하셨는데, 아직 어떤 작품일지는 공개하지 않으셨단 말이죠? 혹시 차기작 계획을 여쭤봐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잠시 끄덕거리다가 말했다.
“이미 써둔 게 있습니다. 아마 곧 공개될 것 같네요.”
“오오···!”
양손을 모으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신 기자.
그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자세히 말씀해주시기 어렵다면 ‘흉내자들’하고 비교했을 때 어떻다 정도만이라도 말씀해주세요!”
“흉내자들이요?”
빠르게 끄덕거리는 그녀를 보다가 콧잔등을 긁적였다.
“그 이야기는 제가 존경했던 이들의 모습을 그렸죠.”
“그러셨죠.”
“그러니 이번 이야기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대···요?”
살짝 당황하며 되묻는 그녀에게 나는 느릿한 고갯짓으로 대신 답했다.
그래, 완전히 반대지.
내가 그토록 바꾸고 싶었던.
그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그 시절, 어른들의 모습······.
#
며칠 후.
신 기자와의 인터뷰 뒤에도 나는 여전히 LA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흉내자들’의 작가라는 사실도 만천하에 공개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영화에 최대한 도움이 되기 위해 방송과 인터뷰 활동을 재개했다.
그렇다고 들어 오는 걸 전부 다 할 수는 없고.
김성운과 김주철, 그리고 현태 형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더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엄선했다.
그 과정에서 차기작을 위해 따로 해야 할 일도 있었다.
바로 캐스팅 목록을 만드는 것.
글을 쓰면서 몇몇 떠올린 배우들이 있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한 배역, 한 배역 신중히 채워나갔다.
2안은 애초에 고려조차 않았다.
보통 캐스팅이 불발되었을 경우를 염두해 2안을 생각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캐스팅을 성사시킬 방법에 대해 여러가지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호텔 방 창문을 가득 채운 캐스팅 보트.
차 한잔을 타서 그 앞에 돌아왔다.
향을 음미하며 가만히 창문을 응시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기억의 불순물이네.”
김미옥 작가는 내게 연기를 한 뒤에 남은 감정들로 글을 써보라고 했었다.
배우의 몰입은 색이 진한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것과 같아서 필연적으로 그 배역의 색이 물들게 되니까.
그 불순물을 쥐어짜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말한 것이다.
확실히 배우들이 쉴 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게 다 이유가 있지.
그러다 나쁜 쪽으로 빠지면 손대선 안 되는 것에 눈을 돌리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그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내게 남아 있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불순물과도 같은 기억들.
그것들을 글로서 배출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서 탄생한 기억의 불순물.
‘조선유랑극단’.
그 청사진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
찻잔을 바로 옆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창가에 바짝 다가가 스크랩해둔 배우들의 면면을 눈에 넣는다.
눈으로 본 그들의 얼굴이 머리로 그렸던 배역의 모습으로, 마치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마치 그린스크린 위에 그려지던 배경처럼.
배역들이 유리창 위로 그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씨익—.
창 위에 비친 나의 모습까지도.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그 미소라는 행위 위로.
‘대체 왜 해별이때처럼 못 하는 거야! 대체 왜! 아빠는 널 믿었는데!’
‘저흰 뭐 밑져서 장사합니까? 됐고, 저 발연기 좀 어떻게 해보세요. 가르치든 때리든 고쳐오시라고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기억의 불순물이.
뱀처럼 다가와 똬리를 튼다.
#
다 무너져가는 초가집 아래.
윤석은 혀를 낼름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인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내리치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 상황에 웃다니··· 이 악마 같은 놈.”
“악마라. 아지매. 양인들이랑 빈관을 드나들어서 그런가, 개화가 아주 잘 되었소?”
윤석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여인의 황망한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기 전까진.
뚝,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며 윤석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 난 악마라고 칩시다. 근데 그러면···.”
이윽고 일그러지는 얼굴.
그의 눈빛이 여인을 찢어발길 듯 일렁거렸다.
“악마에게 자식을 판 당신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