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조선유랑극단 (2)
“그, 그야, 당신이 아이를 뺏어가려고 작정을 했으니까······!”
당황하며 목소릴 높이는 여인.
그 모습에 윤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파리를 내쫓듯 손을 휘휘 흔든다.
“이봐요, 아지매. 말은 바로 합시다. 누가 빼앗아. 그러지마, 제발.”
다음 순간, 여인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는 그.
움찔하며 뒷걸음치는 그녀에 윤석이 더욱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가증스러우니까.”
“으윽······.”
“이 돈에 아이를 판 건 당신이야.”
“그거야, 당신이······.”
“어오, 진짜 미치겠네. 내가 뭘 했는데?”
양손을 펼쳐 보이며 억울함을 호소한 그가 결국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이 가난한 게 내 탓이야? 아니면 내가 이 아이를 지금 납치하고 있나? 나 얘한테 손도 안 대고 있는데?”
“그건···.”
“그것도 아니면.”
윤석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음조차 터트리지 못한 채 서 있는 소년.
녀석의 머리 위로 불룩 솟은 곳을 바라보며 윤석이 갸우뚱한다.
“저 아이 머리에서 자라는 돌을 내가 처박아 넣기라도 했나?”
“이익···.”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당신이 판 거야. 그러면서 모성 같은 게 있는 척 굴지 말라고. 아니라고 하고 싶어? 그럼 지금이라도 그 돈 돌려줘. 그대로 애 두고 갈 테니까.”
윤석은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
침묵이라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자식을 버리지 않을 년이었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거든.
“자, 거래 끝이야. 더 이상 딴소리하면······ 그 입을 찢어줄게. 지금 그 억울한 표정 대신 활짝 웃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이미 몇 번 해봐서 실력이 좀 쌓였거든.”
그의 서늘한 협박에 여자는 어느새 두려운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더욱 싸늘하게 웃어주며 윤석이 발걸음을 돌린다.
그곳엔 이 모든 광경을 목도한 소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대로 소년을 지나치며, 툭 던지듯 말했다.
“가자.”
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가는 윤석.
야만적이게 목줄 같은 건 필요 없다. 잘 따라오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방금 전, 저 아이는 눈앞에서 철저하게 버려졌다.
그리고 그렇게 버려진 것들은.
다루기 쉽지.
불구덩이로 들어가라고 하면 기꺼이 몸을 던지고, 사자의 쩍 벌어진 아가리에 목젖이 닿을 정도로 머리를 들이미는.
그런 충직한 단원이 되는 거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산길 바로 아래 공터에 도착했다.
그곳엔 산적의 산채마냥 통나무를 엮어 만든 집이 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유랑극단의 근거지랄까.
“자, 도착했다.”
윤석이 발걸음을 멈추며 툭 말했다.
이윽고 사박 사박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소년이 옆에 다가와 선다.
“여기다.”
윤석의 손이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잠시 움찔거렸지만 이내 잠잠해진다.
“여기가 앞으로 네가···.”
죽는 그 순간까지.
“머물게 될.”
나의 제국.
“너의 보금자리다.”
어깨를 타고 올라간 윤석의 손길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확실히 키가 크다. 그만큼 평소 자신이 데려오는 아이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다.
이러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게 보통이지만······.
어느 순간 뾰족한 돌덩이가 손바닥을 스친다.
그 까끌거리는 느낌에 윤석의 입이 길게 찢어진다.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이런 귀한 놈을 얻게 될 줄이야!
머리에 자란 돌덩이? 뼈? 나무? 뭐가 됐든.
이거 대체 얼마나 단단할까. 칼로 내리쳐도 쪼개지지 않을까? 그것부터 실험해봐야겠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진 윤석.
그가 소년을 내려다보며 사람 좋은 척, 빙그레 웃어주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혼(horn)이다.”
#
“완성된 캐스팅 목록은 박 대표님께 전달했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연락 돌리신대.”
여러 일들로 잠시 한국에 다녀온 김성운이 내게 말했다.
감사하다 말하자, 뒤이어 그가 머리를 긁적인다.
“근데 ‘혼’이라는 역할 있잖아.”
“네.”
“그건 솔직히 캐스팅 안 될 가능성도 염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내가 봐도 그렇고. 알잖아. 지금 아티스랑 하람과의 관계.”
안다. 두 회사의 관계는 지금 ‘매우 껄끄러움’ 상태지.
아티스가 하람의 기둥과도 같은 배우들을 대거 빼내갔고, 하람은 그것에 대해 존중하며 응원을 보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관계일 뿐이었다.
그런 아티스에 소속된 한 배우에게 나는 ‘조선유랑극단’의 주인공인 ‘혼’이라는 역할을 보냈다.
하선경 대표 입장에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쿨한 척 해도 분명 속은 뒤집어졌을 거라는 대중의 시선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줄 기회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아티스 엔터에 요청했다.
과거 나와 신인상을 두고 경쟁했던 아역 배우.
지금은 우경철에게 유기되어 제대로 된 역할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차도영.
그에게 ‘혼’이라는 역할로 캐스팅하고 싶다고.
뭔가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우경철 옆에서 의기소침해 있던 그 아이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그러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것도 의도라면 의도일 수 있으려나.’
여하간, 아무래도 박 대표와 김성운은 내가 던진 패를 아티스가 쉽게 받아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려울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이런 상황에 네가 던진 캐스팅 받으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백승결이랑은 한배를 타고 싶다는 걸 증명하는 꼴인데. 자존심 강한 그쪽에서 그런 선택을 하겠어?”
“음······.”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특히 우경철이 이걸 받아들일 확률은 나도 적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내민 손을 잡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나마 우경철이 차도영에게서 손을 뗐다고 하니 간섭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최기석 실장이 아티스 내의 우경철의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했으니 그것도 모를 일.
고민을 이어가다가, 하는 수 없이 미리 생각해뒀던 2안을 말했다.
“팀장님, 그러면요.”
“응.”
“아티스 엔터가 아니라 아예 윗선으로 연락하면요?”
“윗선?”
“자존심이 아니라 실리를 챙기려는 사람한테 보내는 거죠.”
내 말을 들은 김성운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이내 툭 던지듯 내가 누굴 말하는 지 답한다.
“회사의 책임자?”
가볍게 끄덕이자 김성운도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쪽 사장이라면 분명히 모회사에 실적 압박을 받고 있을 테니까······ 당장의 자존심보다는 더 먹음직스러운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 사실상 지금 그 누구보다 우리가 할리우드에 먼저 깃발을 꽂은 게 부러울 양반이기도 하고. 해볼 만하겠는데? 괜찮네.”
“근데 문제는 아티스 엔터 사장한테 어떻게 다이렉트로 제안을 보내죠?”
적어도 나는 아티스 엔터에 아는 사람이 우경철 밖에 없었다.
아니면 그만둔 최기석 실장을 통해서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려나?
그런 복잡한 생각을 이어가는데, 김성운이 간단하게 답한다.
“그건 걱정마.”
“···?”
“박 대표님이 독립 영화 쪽에만 발이 넓은 줄 알지? 그 양반 업계 인싸 중에 인싸야.”
씩 웃는 김성운에 굿픽처스 박 대표를 떠올렸다.
하긴······.
“워낙 성격 좋으시니까.”
“음? 아, 그것도 그렇지. 근데 그것보단 무지 유명하거든. 라운딩의 무법자로.”
라운딩?
박 대표가 간간이 골프 얘기 하는 걸 듣긴 했다.
대표실 한쪽에 골프채도 몇 개 있었고.
“골프를 잘 치세요?”
“아니. 잘 못 치셔.”
“···?”
“업계에 유명한 모임이 하나 있거든? 거기 멤버가 영화사 대표들, 투자사 대표들, 배급사 간부들, 엔터 대표들 막 이래. 근데 박 대표님이 거길 진짜 꾸준히 나가셔. 골프도 못 치면서. 근데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내기 골프잖아?”
말꼬릴 올린 김성운이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무법자야. 무슨 일이 있어도 계산을 안하는 법이 없다고.”
#
“어, 우리 무법자 오셨네!”
굿픽처스 박 대표가 라운지에 들어서자 커피를 홀짝이고 있던 이들이 그를 반겼다.
박 대표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스윽 주변을 훑었다.
아티스 엔터 최용길 사장이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허허 웃는다.
물론···.
“요즘 아주 굿픽처스 난리야?”
오지 않길 바랐던 사람도 와 있었다.
‘쟤 있으면 계속 방해할 텐데···.’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박 대표였다.
굿픽처스와 비슷한 규모로 시작했지만, 보다 상업적인 방향으로 치중해 회사를 급격히 키운 영화사 메이커릴.
그렇기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 대표 앞에서 엄청 으스댔던 그곳의 대표였다.
‘대원군’이 전에 없던 흥행을 거두면서부터 지금까지.
더는 으스댈 수 없게 상황이 역전되었지만, 어떻게든 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꼬투리를 잡는 건 여전했다.
“칸에 오스카까지 섭렵했으니 이제 다음은 어디지? 베를린인가?”
“그게 뭐 마음대로 되나.”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박 대표에 메이커릴 대표가 멋쩍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잠시 다른 주제에 동참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시동을 건다.
“근데 박 대표. 그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뭐를?”
“승승장구하는 건 좋지만, 지금 좀 오바야. 솔직히 백승결이 감독까지 하는 건 너무 갔다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배우가 감독으로 성공한 사례가 하나도 없잖아. 알지?”
“알지.”
“그러니까. 백승결 코인 잘 못 탔다가 자네까지···.”
“근데 뭐, 언젠 백승결이 남들 다 해본 길로 가서 성공했나.”
박 대표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근데 또 그게 완전 맞는 말이라 말문이 막힌 메이커릴 대표.
벙벙한 표정이던 그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반박한다.
“근데 지금까지랑은 난이도가 다르잖아. 배우? 재능있는 애는 안 배워도 곧잘 하지. 작가? 평소에 책 많이 읽고 글빨 좀 있으면 몇 년 안에 데뷔 가능하지. 근데 감독은 어때? 다르잖아. 5년을 조감독으로 있어도 입봉이 어려운 게 그쪽 세계인데.”
계속 초를 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박 대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슬쩍 아티스 엔터 최 사장의 표정을 확인했다.
평온하기만 한 표정. 오히려 백승결에 대해 안 좋은 평가가 나오니 약간의 미소를 띄는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 박 대표가 미리 포섭한 우군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메이커릴 대표는 입을 쉬지 않았고.
“아무리 백승결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거란 소리야. 자네가 가장 잘 알지 않아? 솔직히 그거 투자도 어려울 것 같고···.
“왜. 난 될 것 같은데.”
박 대표의 우군. 투자사 대표 중 한 명이 말을 싹둑 자르며 끼어들었다.
“박 대표, 나 숟가락 좀 얹어도 되지? 작품에 투자를 좀 하고 싶은데.”
이에 박 대표가 입꼬리를 쭉 끌어올렸다.
“어휴, 고객님.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세요?”
“글쎄. 한 5억 정도?”
“환영합니다.”
미리 입을 맞추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조선유랑극단’에 5억을 투자했다.
그것 말고도 평소 친했기에 이런 부탁을 한 것뿐.
그러자 메이커릴 대표가 화들짝 돌라며 물었다.
“형님, 그렇게나 많이?”
“왜? 안 돼?”
“뭐, 형님 돈이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니, 이상하네. 이 작품 나만 매력적이나? 물론 아직 시놉만 본 거지만, 그래도 난 너무 좋던데. 꼭 ‘판의 미로’ 처음 봤을 때 같아. 음습하고 섬뜩하면서도 동화적인 게.”
누군가 물꼬를 트자 잠자코 지켜만 보던 다른 사람들도 숨겨웠던 소중한 마음을 하나둘 꺼내놓는다.
“솔직히 저도 좀···.”
“저도 시놉 좋던데요.”
“그, 투자 소액도 받죠?”
단숨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아티스 엔터 최 사장의 표정도 비로소 다채롭게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