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조선유랑극단 (3)
“···지금 예상 투자금 얼마나 잡아 놨는데요?”
아티스 엔터 최용길 사장이 슬쩍 입을 뗀다.
지금껏 잠자코만 있던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옳다구나!
박 대표는 미끼를 문 그를 보며 잠시 망설이는 척하다가 말했다.
“200억.”
“···!”
순간, 라운지에 한쪽에 모여있던 모임 전원이 놀란 눈으로 들썩였다.
커도 너무 큰 금액이었던 거다.
제작비 200억 짜리 영화가 한국에 드물어서는 아니었다.
흔히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불리우는 영화 중에는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제목보다 ‘백승결의 감독 입봉작’으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조선유랑극단’이 200억 투자를 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후, 야 그건 너무 많이 잡은 거 아냐?”
이때다 싶었는지 메이커릴 대표가 냉큼 끼어들었다.
자연스레 다른 이들도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하나둘 얹었다.
“그러게요. 그건 좀 많긴 하네. 아무리 P&A 비용이 요즘 많이 든다고 해도···.”
“시놉 보고 돈이 꽤 들 거라곤 생각하긴 했는데, 그 정도일 줄은···.”
“저흰 1억 이상은 어려울 것 같은데··· 큰 도움은 못 드리겠네요.”
소액 투자도 괜찮냐며 관심을 보였던 모 투자사 간부이자 친한 동생이 뒷머릴 긁적였다.
이에 박 대표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빙그레 웃는다.
“괜찮아. 마음만으로 고맙지. 그리고 사실 1억이 아니라 천만 원이어도 지금은 어려워.”
“네?”
“알잖아. 투자금은 채우기도 쉽지 않지만, 마구잡이로 늘릴 수도 없다는 거.”
“그게 무슨··· 목표 금액이 200억이라고 하셨잖아요?”
어리둥절해 하는 상대를 보며 박 대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니까. 방금 형님 5억으로 다 채워졌거든.”
“200억······ 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는 상대뿐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표정이 되어 박 대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획대로 착착 이어지는 반응들.
한껏 여유로워진 박 대표가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발표 직후에 여기저기서 투자가 많이 들어왔어. 외국에서도 관심 보인 회사들이 많았고. 백승결이잖아, 백승결.”
그렇게 말하며 슬쩍 아티스 엔터 최용길 사장을 보았다.
표정이 좋지 않다. 당연하겠지. 이제는 하람이란 회사나 하선경 대표보다 백승결이 더 싫을 법한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록.’
이 과실은 더더욱 달아 보이겠지.
“돌아가서 투자금 늘릴지는 논의를 좀 해봐야겠네.”
#
박 대표가 방금 라운딩 끝나고 아티스 엔터 대표에게 캐스팅 제안을 마쳤다고 연락이 왔다.
투자금을 230억까지 늘릴까 싶다는 의견과 함께.
나는 거기에 좀 더 더해 250억을 불렀고, 박 대표는 손사래를 쳤지.
그럴만 했다.
투자금이란 게 마냥 올린다고 좋은 건 절대 아니니까.
그만큼 손익분기점이 높아지는 거고, 인구가 한정적인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손익분기점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망한다면 정말 크게 망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나도 그렇게 얘기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왕 올릴 거면 금액을 더 높이길 바랐다.
이미 해외 자금도 들어오고 동시에 해외 판권 얘기도 나오고 있는 마당에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어중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선경 대표의 말처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건, 어쩌면 부담이 아닌 기회일 수 있으니까.
—백 배우, 이렇게 저돌적인 사람이었어?
살짝 황당해하는 박 대표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작품에 자신이 있어서요.”
—뭐, 시놉 좋다는 얘긴 나도 요즘 많이 들어. ‘흉내자들’ 작간데 아무렴. 흐흐.
“그리고 약속한 것도 있고요.”
—약속? 무슨 약속?
“이 영화를 성공시키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 때까지.
—누구한테? 혹시 여친? 딱 프로포즈 멘트인데.
“······대표님이야말로 작가 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황당해하며 묻자 흐흐 웃어버리는 박 대표.
나도 덩달아 웃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왕 성공할 거면 아주 크게 성공하는 게 좋잖아요?”
“백 배우, 야심가였네? 아주 공격적이야.”
“그러게요.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네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확실히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생기니 보는 시야가 달라진 걸까?
혹은 평생토록 꼭꼭 숨겼던 내 기억의 불순물을 세상에 보일 생각에 들뜬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경철과 같은 이들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돌려줄 생각에 기대감이라도 생긴 걸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나는 내 작품이 어느 때보다도 성공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되도록 온 힘을 다하고 있었고.
—어쨌든, 캐스팅조차 마무리되기도 전에 투자금이 다 채워진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야. 심지어 그 금액을 50억이나 올리면······.
“캐스팅도 더 순조러워지겠죠.
—그렇지! 아으, 네가 오늘 아티스 엔터 사장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이거 완전 독이 든 성배나 선악과 같은데 너무 맛있어 보여서 안 먹을 수가 없겠는데? 딱 이런 표정이었다니까?
“얼른 좋은 소식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얼른 차도영의 캐스팅이 확정되길 바라며, 박 대표와의 통화를 마쳤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대로 굉장히 수월하게 차근차근 일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아직 산 넘어 산이었다. 남은 투자금을 모두 채워야 하고, 캐스팅도 마무리 지어야 하고, 슬슬 촬영팀도 구성해야겠지.
대본 리딩도 수차례 해야 할 것이고.
거기까지 하면.
그제야 비로소 크랭크인(Crank in)인 것이다.
탁—.
호텔 방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켰다.
“······다시 한번 확인하자.”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점검한다.
머릿속에 있는 대본, 캐스팅 보트, 그리고 연출까지,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돈이나 인맥이 아닌, 매력적인 이야기일 테니까.
그렇게 매일 밤.
나는 내 가장 어두운 면을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의 나를 마주했다.
#
며칠 뒤.
김성운과 호텔 방에서 영화 관련 스케줄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오늘 우경철 본부장 만나고 왔습니다.]그래, 오늘이었지.
내가 비수를 가는 사이, 최기석 실장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팀장님, 잠시만요.”
양해를 구하고 다른 방으로 들어와 얼른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뒤로 최기석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배우님.
“잘 다녀오셨어요?”
내 물음에 그가 하하 웃는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전 직장을 가보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우경철 본부장은 뭐라던가요.”
—음··· 비웃더라고요.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냐고.
“······.”
—확실히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긴 하더라고요. 업계 돌아가는 상황 애들도 뻔히 아는데, 매니지먼트에 반기를 들지도 못 할 거고. 결국, 그 사람 말대로 피해자 없는 싸움이 되겠더라고요.
씁쓸하게 말하는 최기석 실장의 목소리에 내가 말했다.
“감사해요. 앞에서 총대 매주셔서.”
—아뇨, 아뇨. 저야 원래 이렇게 하려고 했고, 배우님이 도와주시는 게 감사하죠.
도리어 감사하다 말한 그가 말을 이어간다.
—그게 정말 위안이 되더라고요. 솔직히 우경철 본부장이 애들 이름 입에 올리면서 다 자기 손아귀에 있는 양 떠들길래 속에서 천불이 났는데, 배우님 생각하니까 확 괜찮아졌습니다.
“그래요?”
—네. 배우님 생각하니 오히려 저도 속으로 우경철 본부장을 비웃어 줄 수 있겠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가 싶어 갸웃거리는데, 최기석 실장이 작게 웃었다.
—그 양반 지금, 고작 저랑 싸우는 줄 알고 있잖아요.
#
“미친놈.”
아티스 엔터테인먼트 4층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자판기 앞에 서서 믹스 커피를 뽑던 우경철이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이를 악 물었다.
오늘 최기석 실장한테 선전포고 당한 일 때문이었다.
“지가 감히 나한테 덤벼?”
컵을 손에 쥔 채로 부들거리는 그를 보며,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이 어쩔 수 없이 그를 달랬다.
활화산이 여기서 터져봐야 그 불똥은 자신에게 튈 게 분명하기 때문.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계약서엔 빠져나갈 구멍이 많으니까요. 아무 것도 못할 겁니다, 최 실장은.”
“언제적 최 실장이야. 그냥 최기석이지.”
“아, 그렇죠. 최기석···.”
“그리고 그게 짜증나는 거야. 구멍이 많든 적든 내가 거기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게.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대체 내가 왜? 막말로 내가 자선단체야? 될성부른 떡잎 찾는 게 뭐 어때서? 안 그래?”
동조를 강압적으로 호소하는 그의 눈빛에 부하 직원이 얼른 끄덕거렸다.
천부당만부당하다는 표정에 기분이 조금 누그러진 우경철이.
“이건 또 뭐야?”
이내 핸드폰 속에서 또 열 받을 일을 찾아냈다.
기회를 틈 타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부하 직원이 서글퍼진 얼굴로 물었다.
“뭐가요?”
“환장한다···.”
“무슨 일 있으세요? 설마 최기석 실장이 기사 제보라도 한 거예요?”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우습지.”
콧방귀를 뀐 우경철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백승결이 제작하는 영화, 그거 투자금 상향 조정됐단다. 너무 빨리 투자금이 다 차서. 무려 200억이었는데. 이, 이게 말이 되냐?”
“······.”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그라데이션 분노를 보며 부하 직원은 사무실로의 복귀를 포기했다.
옆에서 지켜본바, 우경철 본부장에게 백승결은 가장 큰 발작 버튼이었으니까.
옆에서 발작이 격해지지 않도록 온갖 아부를 떨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이 피곤해진다.
“근데 아시다시피 금액이 올라가면 그만큼 리스크가······.”
“여기 계셨네요. 본부장님.”
때마침, 옆 부서 직원이 종이 뭉치를 들고서 카페테리아를 지나가다가 우경철을 발견했다.
얼른 상황을 수습하던 부하 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우경철이 옆 부서 직원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왜?”
“이번 분기 배우들 일정 추가된 게 있어서 가져다드리려고 했거든요. 방에 가져다 놓을까요?”
“그러든··· 아냐, 아냐. 여기 둬. 뭣 좀 확인하게.”
바로 앞 테이플을 툭툭 치는 그.
직원이 종이 뭉치를 그곳에 내려놓았고, 그걸 바로 우경철이 집어들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우리 쪽에서 들어가는 영화 중에 그 새끼 영화랑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게 뭐가 있나 해서. 아예 없었나?”
백승결과 경쟁작이 있는지, 그걸 확인하려던 그가 전혀 다른 지점에서 미간이 구겨졌다.
“······이거 뭐야?”
“예?”
“차도영이 영화에 캐스팅됐어? 나 그런 보고 못 받았는데? 심지어···.”
그의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차도영이 어떤 영화에 캐스팅되었는지가 적혀져 있었다.
조선유랑극단.
그 이름을 모를 리 없는 우경철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여, 여기에 캐스팅 됐다고? 백승결이 만드는 영화에?”
갑자기 불똥이 튄 옆 부서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끄덕인다.
“네. 지시가 내려와서.”
“누구 맘대로?!”
“그, 그건 저도 잘···.”
“이거 백승결 영화잖아! 하람 영화라고! 아니, 누가 이런 미친 짓을!”
격양된 목소리가 날뛰는 통에, 그 위로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거 내가 하기로 했는데.”
우경철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그곳엔.
“···!”
“왜. 뭐, 문제 있어?”
아티스 엔터테인먼트, 최용길 사장이 카페테리아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