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조선유랑극단 (4)
“사장님,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피한 카페테리아.
우경철이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최용길 사장을 보았다.
그러자 최용길 사장이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뭐가~.”
“아니, 이거. 하람이 던져주는 일거리를 받는 거잖아요. 심지어 백승결이 만든 일거리를요.”
우경철이 답답해하자 최용길 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요즘 차도영 스케줄 있어?”
“······.”
“없지? 근데 영화 주인공 제의가 들어왔어. 심지어 250억짜리 영화야. 넌 이거 안 잡아?”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백승결이 아니라 원수의 손이라도 잡는 게 비지니스 아니야?”
“영화도 영화 나름이죠. 어디 그런 근본도 없는 게 감독한다고 설치는 영화를······.”
“그 근본도 없는 게 설쳐서 할리우드 스타가 됐고,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고, 200억을 넘게 투자 받았어. 지금도 해외에서 이 작품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고.”
“······.”
“가뜩이나 하람이 할리우드에서 먼저 성공하면서, 아티스 엔터 간부들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그룹 이사회에서 나오고 있어. 쏟아부은 돈이 몇 배인데, 밀리냐고. 그쪽에서 어디 책 잡을 거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마당에 지금 이만한 선택지가 우리한테 있어?”
“그래서 저희도 하람 쪽 기둥 같은 배우들 빼 오고 여러모로 견제하고 있잖습니까.”
“하람에서 기둥들 다 뽑아오면 뭐 해. 하람은 그런 거 없어도 백승결 하나로 더 높이 떠오르고 있잖아. 젠장, 지가 초전도체야 뭐야.”
최용길 사장이 씁쓸하게 중얼거리자, 우경철이 좀 더 목소릴 높여 말한다.
“그래도요. 자존심이 있지,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 냉큼······.”
“우 본부장.”
“···예.”
최용길 사장의 톤이 확 낮아지자, 우경철이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거기까지 해. 너 지금 선 넘고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푹 고개 숙이는 우경철에 최용길 사장이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그 옛날 백승결 쓸모없다고 버린 게 우경철, 자네야. 지금 상황에 네 책임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고.”
한껏 짜증이 오른 목소리로 책망한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인 우경철에게 이 사태의 시발점이 어디서부터였는지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차라리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지언정, 남한테 넘기진 말았어야지.”
#
“50억이 누구 집 애 이름도 아니고······.”
한편, 굿픽처스 박 대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혀를 내두르는 중이었다.
추가 투자금이 그새 다 채워졌다는 소식 때문.
“참, 사람 심리가 이래. 200억이 고작 한 달만에 다 채워졌고, 외국 투자 회사들도 움직였다고 하니 추가된 50억은 더 빨리 차버리네.”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목소리로 박 대표가 덧붙여 말했다.
“아무튼, 이제 쩐은 다 해결이 됐고······.”
캐스팅도 하나둘 확정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 차도영까지 캐스팅에 응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캐스팅도 전혀 문제없을 것 같네.”
—잘됐네요.
이 소식을 들은 백승결이 전화 너머로 작게 웃는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팀을 구성해야겠네요.
“그렇지. 그래야지···.”
살짝 말끝을 흐리는 박 대표였다.
백승결이 출연도 한다는 엄청난 메리트 때문에 이 작품을 시작한 그였지만.
솔직히 걱정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 첫 번째가 투자 문제였고, 그 다음이 캐스팅이었지.
그 두 가지가 해결되었지만, 박 대표의 머릿속에선 아직도 여러 가지 고비가 남아 있었다.
그중 그의 머릿속에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팀 구성.
“안 그래도 오늘 촬영 감독부터 만나기로 했어. 자네도 만난 적 있을 거야. 대원군이랑 눈속임에서.”
—네, 기억하고 있어요. 이 감독님.
“내가 그 친구한테 슬쩍 한 번 운을 띄워볼게. 근데 아마 바로 오케이하진 않을 거야. 오디오나 다른 파트들도 마찬가지고.”
박 대표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가 걱정하는 것을 백승결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한테 저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감독이니까요.
“그렇··· 아니, 뭐 그렇다기보단 얘네가 상업영화 찍으면서 그 와중에 은근 장인정신까지 있는 애들이라 그래. 이쪽 업계 특유의 곤조가 있단 말이지.”
당황한 박 대표가 얼른 얼버무렸지만, 백승결은 조금의 타격도 없는 듯 차분하게 답했다.
—저한테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일 수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곧 한국 들어가니까 다음부턴 저도 함께 만날게요. 제 영화인데, 제가 설득해야죠.
“그, 그래. 그러자. 조만간 보자고. 그때까지 나도 발품 많이 팔고 있을 테니까.”
전화를 끊은 박 대표가 내심 감탄했다.
언제까지고 배우로 먼저 인지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정말 감독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굿픽처스에 손님이 도착했다.
앞서 백승결에게 말했던 것처럼, 굿픽처스와는 수차례 영화로 연을 맺은 촬영팀 이 감독.
“대표님 저 왔습니다.”
“어어, 왔어? 앉아, 앉아.”
풍채 좋은 이 감독을 자리에 앉히고 박 대표가 아끼는 초콜릿을 주섬주섬 꺼내왔다.
“이게 우리 딸이 준 건데······.”
한바탕 이 초콜릿의 소중함에 대해 설파한 그가 이 감독에게 건네며 마른침을 삼킨다.
“그, 이 감독. 우리 이번에 프로젝트를 하나 하는데 말이야.”
“알죠.”
“아, 알아?”
“업계에 모르는 사람 있나요? 백승결 배우··· 작가? 감독? 뭐라고 불러야···.”
“일단 지금은 감독이라고 부르자고.”
“네. 백승결 감독이 찍는다는 거.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초콜릿을 오물거리며 묻는 이 감독에 박 대표가 끄덕였다.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눈치를 살피며.
“그게 아주 여기저기서 관심이 커. 알지? 해외 언론도 엄청 관심 보이는 거? 게다가 소식 들었어? 투자금도 금세 다 채워버려서 추가로 50억까지 올렸는데, 그것마저도 다 찼어.”
“오, 그렇군요.”
“그래서 이제 팀을 꾸려야 하는데 말이야···.”
“그걸, 저한테 부탁하시려고요?”
열심히 어필을 했지만,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괜찮다.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다.
“자네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있다는 거 내 충분히 이해하는···.”
“할게요.”
“···응?”
“하죠. 합니다.”
반응이 그냥 그랬던 게··· 당연히 할 생각이어서였나.
잠시 멍한 눈으로 이 감독을 바라보던 박 대표가 팔걸이를 탁 치며 웃었다.
“허헛! 그래? 그래, 이렇게 해외 관심까지 받는 대작 영화 참여하는 게 흔한 기회가 아니라니까?”
“그것도 영향이 아예 없진 않은데, 솔직히 그게 아니었어도 전 했을 거예요.”
“그, 그래?”
“네. 다른 파트도 걱정 마세요. 백승결이랑 현장에서 같이 뛰었던 감독들 위주로 물어보면, 아마 백이면 백 거의 다 하겠다고 할 겁니다.”
계속 예상을 벗어나다 못해 뛰쳐나가 버리는 대답들이었다.
“······안 고까워?”
“전혀요. 뭐 고까울 만한 애가 나대면 고깝겠죠. 근데 솔직히 전 그 친구 언젠가 감독하게 될 줄 알았어요. 생각보단 엄청 빠르긴 한데, 어쨌든.”
“백승결이 감독 하게 될 줄 알았다고?”
“그렇다니까요. 아니,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해. 현장 흐름을 그렇게 잘 읽는데. 그게 진짜 감독의 재능인 건데.”
촬영 당시를 떠올리는 듯 눈알을 굴리던 이 감독이 허허 웃었다.
“그런 친구가 배우하고 있다는 게 뭔가 아쉽다가, 또 촬영 들어가면 연기를 미친듯이 잘해서 소름이 돋으니 저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아주 본인 재능에 맞게 딱 포지션 잘 잡았네 싶었어요. 배우건 감독이건 다 해 먹는 거로.”
“그 정도라고···?”
“대표님도 알고 맡기신 거 아니었어요?”
“몰랐어. 그냥, 배우로도 출연한다길래 땡잡았다 하고······.”
퍽 박 대표스러운 결정에 피식 웃은 이 감독이 밤송이처럼 난 수염을 긁적였다.
“아무튼, 전 합니다. 궁금하네요. 제가 슬쩍 엿본 재능이 대체 어디까지 성장할지.”
그러면서 테이블에 올려진 초콜릿 하나를 더 집어 들며 중얼거린다.
“어떻게 전부 다 그렇게 타고났지? 유전자가 남달라 유전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 대표가 남은 초콜릿을 스윽 쓸어 다시 원래 자리로 회수했다.
#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로 ‘흉내자들’은 꾸준히 미국에서 상영관을 늘렸다.
‘대체 어떤 영화인데?’ 라는 호기심에 몰려든 관객들이 입소문을 퍼트렸고.
영화를 걸 생각이 없었던 주에도 하나둘 상영관이 생겨나며 관객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수준이었지만, 한국 영화가 미국으로 건너가 얻은 성과 중에서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자연스레 미국 스케줄도 늘어날 수밖에.
시상식만 참여하고 끝날 줄 알았던 배우들의 미국행이 그 끝을 모르고 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지익——.
나는 유리창에 붙은 배우들의 사진을 모두 떼어내 파일에 끼워 넣었다.
마지노선까지 미국에 남아 ‘흉내자들’의 배우들과 함께했고, 이제는 나 혼자 돌아가야 할 때였다.
팀까지 꾸려지고 있는 마당에 감독인 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이제는 걱정 안 해도 되는 ‘흉내자들’보단 차기작에 집중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렇게 짐을 싸고 있는데, 누군가 호텔 방 문을 두드렸다.
“어, 선배님.”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흉내자들’의 주인공, 양기전이었다.
그가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짓는다.
“좀 들어가도 돼?”
“그럼요. 들어오세요.”
호텔 방 안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거실 소파에 그를 앉히고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음료수들을 몇 개 가져왔다.
“탄산 좋아하시죠?”
“크으, 역시 센스 있으십니다. 작가님.”
껄껄 웃으며 음료를 딴 양기전이 입을 축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한창 정리 중인 캐리어를 보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간다며?”
“네.”
“가서 또 엄청 바빠지겠네.”
“정신없을 것 같긴 해요. 초짜라.”
“하하, 초짜······ 진짜 놀랍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해도 작가님이란 사실에 놀라고 있었는데, 그새 감독이 됐네. 대단하다, 대단해. 진짜.”
한참을 감탄하다가 남은 음료를 입에 털어넣는 양기전.
그가 짧은 침묵 뒤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시상식 전까지만 해도 줄곧 너한테 궁금한 게 있었거든.”
“뭔데요?”
“왜 나였는지. 그게 물어보고 싶었어. 영화 촬영 끝나면 물어봐야지, 영화 개봉하면 물어봐야지, 스코어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물어봐야지. 계속 그렇게 미뤘지만.”
빙긋 웃으며 내가 물었다.
“지금도 궁금하세요?”
“아니. 이젠 알지. 모를 수가 없지. 그 큰 무대에서 그렇게 말해줬는데.”
여전히 얼떨떨한 듯. 그 와중에 후련한 듯.
풀풀 웃은 그가 덧붙인다.
“그래서 내가 대표로 왔어. 비록 우리는 객석에서 보고 듣는 게 전부였지만··· 아니 사실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 다들 영어를 몰라서. 흐흐. 아무튼······.”
조금 차분하게, 털털한 웃음 대신 미소를 띤 그가 말한다.
“고맙다. 누군가는 미래가 없다며 한심하게만 바라보던, 그 꿈 좇는 모습을 좋게 봐줘서.”
“······.”
“고맙다. 우리가 쫓던 꿈이 허황되지 않다는 걸 알려줘서.”
“······.”
“넌 분명 좋은 어른이 될 거야. 아니, 이미 좋은 어른이지. 그때의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
“그러니 이젠 우리가 너를 보며 나아가마.”
그건 내가 원하던 용서가 아니었다.
“이거 대답해주고 싶어서 왔어.”
분명, 더 큰 무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