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조선유랑극단 (7)
“방금 들어갔습니다.”
차도영의 매니저가 벽에 기대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흡족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매니저도 안도의 입꼬릴 올렸다.
“예, 예. 많이 화가 난 것 같아 보이더라고요. 아, 함께 들어가진 못 했습니다. 네, 도영이 나오는 대로 물어보겠습니다. 옙, 들어가세요~.”
승모근을 바짝 끌어올리고 통화를 마무리한 그가 핸드폰을 내림과 동시에 표정을 싹 바꾼다.
“에라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버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일일이 보고를 하래. 귀찮아 죽겠네. 회사 크다고 좋아했더니 하는 일은 어째 더 자잘해진 거 같아. 월급이라도 올려주던가, 젠장.”
나도 하람을 갈 걸 그랬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우경철이 뭐 같긴 하지만 아티스 내에서 부딪힐 일은 별로 없었다.
자신이 맡고 있는 5팀은 우경철 눈 밖에 난 이들만 모인 일종의 유배지였으니까.
이번처럼 차도영에게 특별한 일이 생긴 경우를 제외하면, 우경철은 자신의 상사라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먼 사이였다.
‘하지만 하람엔······.’
거긴 우경철만큼··· 아니, 솔직히 어떤 부분에선 더 지독한 사람이 있었다.
백승결의 매니저, 김성운.
그 양반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전 회사에서 위아래 상관 않고 다 뒤집어엎는 걸 봤잖나. 오죽하면 그 악명이 아직도 업계에서 파다할까.
하선경 대표라는 독특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어디에서도 안 받아줬겠지.
우경철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무서운 양반이었······.
“어, 여깄었네.”
호랑이가 제 말도 안 했는데, 생각만으로 나타났다.
고개를 돌리니 무슨 수양대군 등장씬 마냥 복도를 꽉 채우며 세 사람이 다가온다.
김성운과 그의 팀원들이었다.
‘다시 봐도 무슨 덩치가······.’
그중 한 명은 깡패라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저 한 사람만으로도 복도가 꽉찬다. 진짜 깡패 아냐?
맹수를 마주한 눈이 정어리마냥 스르륵 시선을 피한다.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잘 지냈어?”
“예? 아, 네.”
“아티스 갔다는 얘긴 들었다.”
“아, 예. 하하···.”
“경찬이가 얘기해주더라고.”
“겨, 경찬이가요? 아, 경찬이가···.”
매니저의 얼굴이 점점 더 잿빛이 되었다.
자신의 치부책을 손에 쥔 이의 이름이 나와서였다.
심지어 그 치부책은 김성운의 과거와도 연관이 있었다.
“경찬이가 너에 대해 더 많은 얘길 해줬지.”
“······.”
“내가 전에 회사 엎을 때, 너를 빠트렸더라고. 그 사건에 네가 관여되어 있는 줄 몰랐었거든.”
“······.”
“뭐, 다 지난 일이니까. 이제 와 뭐라 할 생각은 없어. 쫄지 마. 하하.”
“하하하······.”
어느새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는 김성운.
바짝 쫄은 매니저에게 그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나 뭐 부탁 좀 해도 될까?”
“어떤······.”
그러니까, 물어봤다는 게 아니라.
“별로 어려운 건 아닌데, 어려워도 해야 할 거야.”
콱, 물었다.
#
며칠 뒤.
나는 굿픽처스에서 감독들과 회의를 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과 약속을 잡고 시간 맞춰 미팅룸을 비웠다.
잠시 후, 차도영이 어색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의 꼬리가 짧은 것을 보고 내가 물었다.
“매니저님은요?”
“차에서 기다리시겠대요. 노래도 아주 크게 틀어놓고.”
“성능 확실하네.”
가볍게 주억거리며 차도영과 함께 미팅룸으로 들어왔다.
미리 준비해둔 음료수를 건네며 내가 물었다.
“그때 나눈 대화, 그거 대답하려고 온 거예요?”
“아뇨.”
“···?”
“지난번에 못했던 장면, 한 번 더 맞추고 싶어서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걸로 대답이 되었기에.
그 사이, 대본을 꺼내는 차도영.
자리에 앉으며 내가 물었다.
“어디 해볼래요? 차도영 배우가 하고 싶은데 해보죠.”
“어, 감독님 대본은······.”
“괜찮아요. 다 외워서.”
“······?”
눈을 크게 뜨고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며 입꼬릴 말아 올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겨 물었다.
“근데 어떻게 여기 왔어요? 본부장님이 뭐라고 안 해요?”
“그게요, 사실······.”
“···?”
우물쭈물하는 차도영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또 무슨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건가? 우경철이 뭔가를 지시했나? 그런 가정들이 스치는데, 차도영이 입을 열었다.
“감독님이 부르셨다고 했어요.”
“뭐?”
“감독님이 연기 연습해야 한다고 부르셨다고. 그래서 가야 한다고···.”
“허!”
“그러니까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연기를 못 하긴 했나 보더라고······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는 차도영을 보며 나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녀석이 놀란 얼굴로 머리를 든다.
그런 녀석에게 계속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똑똑하네. 나보다 낫다, 야.”
진심으로 웃겼고, 진심으로 안도했다.
다르다.
나와 비슷한 길을 향하는 듯하던 이가 방향을 튼 것이다.
이로써, 이 아인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
그 사실 하나가 뭐길래···.
대체 뭐라고 이렇게나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어쩌면, 나의 치유는 복수가 아니라 이곳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해별이를 막는 것, 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자, 그럼 맞춰볼까? 어디 해볼래?”
복수가 필요한 건 변함이 없지.
#
잠시 차도영의 문제로 롤러코스터 정점에 멈춘 것 같던 시간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미친 듯이 속력을 냈다.
세 번의 대본 리딩이 더 있었고, 서른 번 이상의 회의가 있었으며, 삼 백 번에 가까운 수정이 있었다.
내심 감독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 한 명을 깊게 파는 배우와는 다르게, 감독들은 극 전체를 관조한다.
하지만 숲을 본다고 해서 나무를 대충 보는 것도 아니다.
이파리 하나가 움직이는 행태까지도 신경 써야만 했다.
원하는 숲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선 말이다.
‘근데 참 아이러니하지.’
이 과정에서 나는 감독으로서의 성장보단.
“자, 여기까지 하면 우리 쉬는 시간이에요. 오늘 쉬는 시간엔······.”
아이들을 다루는 스킬이 늘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맞나···.
어쨌든,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촬영 준비가 막바지였고, 어느새 리허설이었으며, 어느새 크랭크인.
영화의 첫 촬영이 다가왔다.
첫 씬이라고 해서 극 중 첫 장면은 아니었다.
제작 환경상 최대한 한 장소에서 하루에 많은 씬을 찍어야하는 만큼, 극 중 시간 흐름에 맞게 촬영하는 것은 어려웠으니까.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바로 컷 해주세요.”
첫 씬부터 윤석이 등장해야 할 차례였다.
나는 조감독에게 내 자리를 맡기고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함께 카메라 속으로 들어오는 또 한 사람.
영화의 주인공인 차도영이 내 건너편에 서서 촬영이 시작되길 기다린다.
마주 보고 서 있는 나와 차도영.
우리 두 사람은.
레디——, 액션!
조감독의 목소리가 끊어지기 무섭게, 윤석과 혼이 되었다.
······혼이 저벅저벅 걸어온다.
사뭇 비장해 보였으나, 그 속엔 농도 높은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채로 다가와 멈춰서는 혼.
그가 내게 말했다.
⌜저, 이제 안 울어요.⌟
⌜······.⌟
⌜단장님 마음에 들게 할게요.⌟
입꼬리가 들썩거렸다.
이 괴물을 비로소 자신의 품 안에 가뒀다 생각한 윤석의 환희.
나는 분명 그것을 표현해야 했지만.
기분이 묘하다.
윤석에게 복종하겠다는 녀석의 말이.
어쩐지, 우경철을 거역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으니까.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 위로 얹었다.
그곳엔 조금 더 자란 것 같은 단단한 뿔이 있었다.
⌜잘 생각했다.⌟
거기까지 말하고서, 몰입이 확 깨졌다.
순간, 너무 따뜻한 말이 나와버린 거다.
“아이구야.”
나도 모르게 탄식했고, 웃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이토록 기분 좋은 실수가 있었나 싶다.
얼른 웃음기를 지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갈게요.”
그렇게 나는 내 영화 첫 NG의 주인공이 되었다.
#
‘조선유랑극단’의 촬영 막바지.
우경철은 불안한 마음에 차도영 매니저를 불러냈다.
이왕 불러낸 김에 갈 곳이 있어 운전도 시켰다.
뒷좌석에 앉아 발 마사지를 하던 우경철이 구두를 신으며 묻는다.
“도영인 문제 없지?”
문제없이, 연기를 못하고 있냐는 말이었다.
“아··· 네.”
매니저가 답했고, 우경철은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백승결 그 새끼, 지 옛날 생각나서 차도영 못 쳐내지.”
“저, 근데 촬영장에 오실 계획은 없으세요?”
“촬영장?”
쩝하고 입맛을 다신 우경철이 어딘가 불편한지 자세를 고쳐앉는다.
“안 가. 백승결 그 새끼가 있는데 갔다가 무슨 수모를 당하라고.”
결국, 백승결이 무서워 피한다는 소리였다.
슬쩍 우경철을 떠본 매니저가 끄덕거린다.
우경철이 촬영장에 방문할 계획이 생기면 미리 알려달란 김성운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그였다.
한편, 백승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분이 안 좋아졌는지, 우경철이 쯧하고 혀를 차며 차 문을 열어젖힌다.
“여기서 기다려.”
“알겠습니다.”
휘적휘적 인도를 가로질러 카페로 들어간 그.
그의 시선에 백승결에 비하면 가소롭기 그지없는, 나약한 중생 하나가 보였다.
“흣짜. 왜 불렀어?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뭐가 잘 안 돼?”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묻는 우경철에 최기석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말씀드린 내용들, 다 정리해서 이제 곧 제출합니다.”
“뭐야. 난 또 제가 경솔했습니다, 빌러 온 줄 알았지.”
“그럴 리가요.”
“그래서, 뭐. 나 고소한다고 보고라도 하러 온 거야?”
비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말하는 우경철에 최기석이 물었다.
“이제라도 애들 놓아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어차피 본부장님한테 필요 없어서 버려진 애들이잖아요.”
“아주 지랄을 한다. 내가 왜? 그거 버렸다가 누가 주워서 대박난 바람에 내가 얼마나 수모를 당했는 줄 알아?”
“······.”
“그나저나, 왜 이제와 회유를 하려고 그래. 막상 고소하려니 이건 아니다 싶어? 변호사가 못 이기는 싸움이래? 아니면, 기자들한테 그렇게 제보하는데 기사 한 줄 안 올라오니까 잘못 건드렸구나 싶어?”
“······.”
“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너 아주 여기저기 기사 한 줄 내보려고 발품 팔더만. 그 기자들이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이거 어떻게 할까요? 이게 이 바닥이야.”
한껏 비아냥거린 우경철이 입이 마른다며 최기석의 커피잔을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이쯤에서 관둬라. 너 무서워서 하는 말이 아냐. 귀찮아서 그래, 귀찮아서.”
“······.”
“너도 슬슬 느끼잖아. 네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
#
“이상하네.”
차에 타자마자 우경철이 한 말이었다.
“예, 예?”
이에 제 발 저린 차도영 매니저가 들썩거렸고.
우경철이 갸우뚱하며 룸미러를 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
“갑자기 이상하다고 하셔서.”
“아니, 너 말고.”
“···무슨 일 있으세요?”
“있지. 이상한 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제 할 말을 이어가는 우경철.
“아니, 최기석 그 새끼가 은근 다혈질이거든. 그러니까 못 참고 나한테 들이받았지. 주제도 모르고.”
그가 못내 찝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더 이상하지? 내가 면전에 대고 그렇게 긁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