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조선유랑극단 (8)
편집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길고 짧은 클립들이 불규칙하게 이어져 있다.
그것들의 합인 시퀀스가 층층이 쌓여 더욱 복잡한 탑을 만들고.
장장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에 이르기까지 장성처럼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마치 길게 늘어선 도미노를 보는 듯했다.
그만큼 살짝이라도 건들면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이 짓은 십수 년 동안 반복해온 편집자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분명 마지막 효과를 적용하기 전에 저장도 했고, 자동저장도 5분 단위로 맞춰놨지만 무용하다.
이건 아주 오래전, 대학생 때부터 머릿속에 각인된 공포였다.
[프로그램이 응답하지 않습니다.]······라는 창이 뜨면 절규하며 온갖 신들을 부르짖던 그 시절.
편집자의 손가락이 조심스레 움직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 안위보다 먼저 반사적으로 손이 찾을 그곳.
컨트롤+S.
‘넌 할 수 있어! 해낼 거야! 메모리야, 힘내!’
그렇게 간절히 빌었고, 동시에 화면이 멈칫했으며 시간도 함께 멈춘 듯했다.
이어지는 저장 완료.
컴퓨터는 다행히 이 어마무시한 용량을 견뎌내고 소화해냈다.
그제서야.
거기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끝···났다.”
편집이 막을 내린다.
나 혼자 아포칼립스인 것 마냥, 일회용 컵과 머그잔이 우거진 수풀처럼 자라나던 편집실에 광명이 찾아왔다.
편집자들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빛.
이 순간만큼은 이 작은 방 안에 부처가 여럿이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백승결이 입꼬릴 들어 올리며 입을 연다.
“고생하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편집자들은 거의 울먹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비록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그였지만, 편집이라는 생사를 넘나든 그들 사이엔 끈끈한 전우애가 생겨나 있었다.
“감독님도요···!”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계속 시키기만 했지. 죄송해요.”
“아뇨, 아뇨. 진짜 고생하셨죠. 추가 촬영까지 하시느라 바쁘셨을 텐데, 매번 이렇게 와서 바로바로 체크해주셨잖아요.”
“맞아요. 그 덕에 일이 훨씬 수월했습니다, 진짜.”
서로가 다독이는 분위기에 함께 동참하던 백승결이 퀭한 눈들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들어가서 쉬세요, 얼른.”
“감독님은요?”
백승결이 어쩐지 편집실을 떠날 것 같지 않은 뉘앙스로 말하자 편집자들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추가 촬영이 그제부터 있었던 거로 안다.
그것도 꼬박 서른 시간 이상 촬영이 이어졌다고 들었고, 곧장 이곳으로 와 지금까지 쭉 자신들과 함께 뜬눈으로 밤을 새운 백승결이었다.
그러니 이어지는 그의 대답에 대경할 수밖에.
“저는 한 번만 더 보고 갈게요.”
······괴물이다.
“오후에 인터뷰가 잡혀 있어서요.”
괴물 신인 감독이 여기에 있다.
#
“오셨어요?”
편집실에서 미팅룸으로 자리를 옮기고 잠시 기다리자 인터뷰어가 도착했다.
KNS 연예부 기자, 신혜원.
그녀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다가와 대뜸 허리부터 접었다.
“감사합니다!”
덩달아 나도 얼른 일어나 인사했다.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고 있다.
‘흉내자들’의 스케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조선유랑극단’에 대해 여러 홍보 활동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촬영 직전까지였다.
촬영에 들어가면서부턴 모든 스케줄을 중단했지.
개봉날짜가 빠듯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난 초보 감독이었으니까.
게다가 배우와 작가의 포지션까지 겸하고 있잖아.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의 촬영이 끝나고, 편집마저 마무리되었을 때쯤.
미국에서 인연이 생긴 신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인터뷰 가능하시냐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절대 가능하다는 대답이 올 리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왜 보냈냐고 물었더니, 이런 기자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설날 인사, 안부쯤이었단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예상을 깨고 수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흉내자들’의 작가가 누군지 끝까지 파고들었던 그녀라면, 이 영화에 연결된 이야기도 파헤쳐 제대로 엮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인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오늘 소개해주신다고 한 분은?”
“인터뷰에 방해가 될 것 같다고, 끝날 때쯤 오신다고 하네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우선 인터뷰를······.”
자리에 마주 앉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그녀의 질문은 시종일관 예리했다.
이미 시놉을 어디선가 구해서 읽어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던 중, 그녀의 예리함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불과 어제 예고편이 공개되었잖아요?”
“그랬죠.”
“솔직히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분명히 감독님이 미국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단 말이죠. ‘흉내자들’과는 정반대의 영화가 될 거라고.”
“그랬었네요.”
“근데 그 의미가 이런 거였나? 싶었어요. 뭐랄까. 예고편 내내 굉장히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셨잖아요? 아이들이 들판을 뛰놀고, 연을 날리고, 모닥불 앞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분명 그랬다.
누군가 봤을 때, 저건 아이들의 한가로운 일상을 찍은 다큐멘터리인가? 싶은 느낌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니 이상하죠? 일제시대에 버려진 아이들로 구성된 서커스단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런 분위기라니. 이쯤 되니 내용은 아예 짐작도 안 가더라고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은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물론 그게 좋은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른데?’ 하면서 엄청난 관심을 보였으니까요. 뮤튜버들은 밤새 분석 영상을 만들어 올렸고요. 그중 저도 꽤 많이 보고 왔는데, 그중에서 맥이라는 뮤튜버의 예고편 분석 영상이 가장 흥미롭더라고요.”
맥이라면, 크리스 감독과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에 대해 인터뷰도 했었던 미국 초대형 뮤튜버였다.
그 사람도 영화를 보는 눈이 꽤나 날카로웠지.
그래서 지금처럼 인터뷰 내내 즐거웠고.
“그분이 ‘조선유랑극단’의 예고편을 뭐라고 표현했는 줄 아세요?”
“아뇨. 제가 오늘 편집이 끝나서 아직 못 봤네요.”
“마치 미드소바라는 영화의 푸르른 장면들만 모아서 엮은 것 같다.”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맥의 영상은 보지 못했지만 미드소바라는 영화는 봤지.
세상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참극.
꽤나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끄덕이자, 신 기자가 말을 잇는다.
“저도 딱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분명 아름다운데, 너무 평화로운데······. 그래서 더 싸늘한 느낌이었죠. 분명 눈에 보이는 건 동화인데, 한 꺼풀 벗겨보면 잔혹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예고편이었어요. 그래서 감탄했어요. 와, 이거 어쩌면 역대급 잔혹동화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제 소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언뜻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눈빛 같았지만.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느낀다.
이 사람 촉만 좋은 게 아니라, 고단수구나.
내가 여기에 코멘트를 다는 순간.
나는 예고편으로 연막을 친 영화의 분위기를 실토하게 되는 셈이었다.
내심 감탄하며 빙그레 웃었다.
“일정부분은 맞기도하고, 또 아니기도 합니다.”
“···?”
모호한 대답에 그녀가 갸웃거렸고.
“우선, 이 영화는 동화 같은 게 아니거든요.”
내가 고개를 돌리며 툭 던지듯 답했다.
“그럼요? 우화인가요?”
“······.”
때마침, 누군가 사무실 안쪽으로 걸어들어온다.
나는 방문에 난 창으로 그를 확인했다. 인기척을 느낀 신 기자도 그쪽을 돌아본다.
최기석 실장···.
뒤이어 내가 말했다.
“현실이죠.”
동화도, 우화도 아닌.
진짜 잔혹한 현실과 싸우는 그가 도착했다.
#
‘조선유랑극단’은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인 동시에 문제작이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 별들의 별이 된 배우이자, 아카데미가 인정한 작가.
그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
단순히 기대감만 쏙 골라 채우기엔 백승결의 체급이 너무 높았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삼촌들의 말처럼, 책임을 잔뜩 등에 업은 백승결의 첫 작품은 전세계 영화인들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문제작에 또 다른 문제가 더해졌다.
개봉 직전,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소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업계인들이 모인 내부시사회에서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
자고로 소문이란 부풀려지기 마련이기에 정말 박차고 나갔는지는 모르지만, 영화를 끝까지 못 보고 상영관을 나간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인 양 후문으로 떠돌았다.
심지어 영화를 끝까지 본 이들 중에서도 별로였다 말하는 이들이 꽤 있어서, 내부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한 기자들은 ‘조선유랑극단’에 대한 평가를 조금씩 수정했다.
하반기 최고 기대작보단, 문제작으로.
“영화가 호불호를 좀 타나 보네.”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지. 애초에 소재도 마이너하고, 예고편만 봐도 묘하더만.”
KNS 방송국 로비에 있는 카페.
뜨끈한 국밥으로 든든해진 뱃속에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들이붓던 기자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조선유랑극단’ 얘기로 대화를 칠하고 있었다.
“문제는 250억이나 들였는데 이런 얘기가 계속 돌면, 개봉했을 때 위험하다는 거지.”
“지금 백승결 걱정을 하는 거야? 당죽막으로만 최소 300억은 벌었을 백승결을?”
“누가 백승결을 걱정한대? ‘조선유랑극단’은 그냥 영화가 아니잖아. 지금 전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기대작인데, 나도 국민으로서 잘 나왔으면 하는 거지. 국뽕도 좀 느끼고 싶고.”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긴 하지. 솔직히 국뽕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냐. 억지스럽지 않고 납득할만한 국뽕은 누구나 바라지.”
모두가 동조하며 끄덕이는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기자 한 명이 물었다.
“그러고보니, 신 기자는 내부시사회 다녀오지 않았어요?”
“아마도? 안 그래도 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요즘 통 회사에서 안 보이네.”
괜히 로비를 두리번거리는 기자들에게 신혜원의 사수나 마찬가지인 선배 기자가 말했다.
“걔 요즘 바빠.”
“왜요?”
“뭐, 갑자기 다른 거에 꽂혀서 취재하고 있나 봐.”
“아니, 요즘 ‘조선유랑극단’보다 좋은 소재가 어딨다고요?”
“모르지. 근데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냅두려고. 지금까지 워낙 잘했잖아.”
그러면서 선배 기자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또 모를 일이기도 하고. 어디서 또 특종을 물어올지.”
저 근본 없는 신뢰가 의아할 만도 했지만.
이곳에 모인 기자들은 은근 납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을 돌이켜보면······ 그럴만하잖나.
“그나저나, 이제 딱 일주일 남았네.”
“‘조선유랑극단’ 개봉까지 말이죠?”
“응. 그때 되면 우리도 알 수 있겠지. 백승결이 이번에도 국뽕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지금 도는 소문처럼 뭔가 문제가 생길지.”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전자를 바라는 것은 당연했지만.
동시에 그들 몸속엔 기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들은 자고로······.
기대작보다 문제작을 좋아한다.
“개봉하면 바로 보러 갈 거지?”
거기야말로 기삿거리 많은, 맛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