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
대원군 (2)
영화 ‘대원군’의 파이널 예고편이 공개되기 보름 전.
굿픽쳐스 박 대표의 얼굴엔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흥행보단 작품성을 목표로 잡은 그였지만, 막상 개봉이 다가오니 불안함이 몰려온 것이다.
요즘 영화관에 걸자마자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그중 하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기자들 반응은 좀 어때?”
“뭐 어떨 만한 게 없어요. 조용해요.”
덤덤한 대답에 박 대표는 자연스레 ‘대원군’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경쟁작을 떠올렸다.
“그, 이지주 감독 신작 반응은?”
“어른들의 밤’이요? 거긴 반응 뜨겁죠. 역대급 느와르 영화다 뭐다.”
“괜찮아. 거기 어차피 최소 15세 판정일 거야.”
“저희도 15세 아래로는 딱히 안 볼 거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전혀 안 괜찮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에게 다른 직원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대표님. 오늘 아침에 배급사에서 온 메일 보니까, 영화 ‘Suddenly’ 개봉일이 앞당겨졌더라고요.”
“서든리?”
“왜 추석 때 개봉예정이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있었잖아요. 전철 뒤집어지고, 비행기 추락하고···.”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 대표가 벌컥 외쳤다.
“아니, 걔넨 또 왜 갑자기!”
“닉값하는 거죠. 빈집이 탐났나 봐요. 추석 때 개봉하면 꼼짝없이 마블하고 붙어야 하는데, 덩치 큰 놈들끼리 싸우면 박터지니까 양보를···.”
“그 양보를 왜 우리 앞으로 하냐고!”
“···만만해서?”
자조적인 대답이었지만 그게 또 사실이었다.
마땅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뻐끔거리던 박 대표에게 직원이 첨언했다.
“이렇게 된 거, 저희도 본격적으로 홍보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박 대표가 이내 고갤 저었다.
“아냐, 아냐. 지금 시작해봤자 ‘어른들의 밤’이나 ‘서든리’한테 묻힌다. 어차피 돈도 없는 거 아예 기 모았다가 한 번에 가자고.”
“개봉이 다음 달인데 언제요?”
“파이널 예고편 나갈 때.”
박 대표가 회의 테이블을 탁 치며 말했다.
영화 홍보의 기본이자 그만큼 중요도가 높은 예고편.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공개되는 파이널 예고편은 본편만큼이나 많은 공이 들어간다.
없는 것도 있어 보이게.
있는 건 더 있어 보이게.
짧고 굵직하게 홍보를 한다면 그때가 가장 적기라고 생각한 박 대표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영화 ‘대원군’의 파이널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굿픽쳐스는 본격적으로 포털사이트부터 SNS. 뮤튜브 리뷰어들을 총동원해 영화 ‘대원군’의 홍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에 대한 반응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박 대표의 마케팅 전략이 완벽히 먹혀들었다기엔 다른 쪽의 도움도 컸다.
“다들 회의실로!”
박 대표가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보름 내내 끼어있던 먹구름을 걷어낸 그가 영화 얘기 대신 다른 말로 서두를 열었다.
“어제 ‘종갓집 막내딸’ 봤어?”
직원들도 저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끄덕였다.
“네, 봤어요. 반응 좋던데요?”
“덕분에 저희 작품도 같이 홍보되고요.”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죠. 인터넷 상에서 백승결 얘기가 가장 시끌시끌할 때 등장인물이랑 파이널 예고편이 공개됐으니.”
물론 모든 반응이 좋은 건 아니었다.
전투씬 없는 사극은 피 안 튀는 느와르고 CG없는 블록버스터라며 초를 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시피 했던 ‘대원군’에겐 이러한 반응조차도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스케일만 보는 영알못들이라며 반박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백승결 배우한테 이번 추석 때 홍삼 말고 소고기 보내라 소고기.”
박 대표가 기분 좋게 덧붙이며 직원들을 훑었다.
“자, 그러면 이제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 회의 시작해볼까.”
‘대원군’이 무관심에서 작은 관심으로 발돋움했지만, 여전히 어른들의 밤이나 서든리는 강적이었다.
애초에 이기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들 만큼 말이다.
그러니 그들의 싸움에 휘말려 등 터지지 않는 게 ‘대원군’에겐 최선.
그걸 목표로 굿픽쳐스의 회의가 이어졌다.
“상업 영화의 탈을 쓴 독립 영화······ 이거 괜찮네. 퀄리티 적당히 짜치지 않고, 거기다 작품성까지 잡았다는 말 같잖아.”
직원이 가져온 헤드라인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박 대표가 덧붙여 물었다.
“제작보고회 준비는 잘 되어가지?”
“네,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오늘은 배급사 직원하고 보고회 장소 같이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톱니바퀴에 맞물리듯 일이 착착 진행된다.
“좋아, 좋아.”
비록 남들보다 훨씬 작은 톱니바퀴였지만, 계속 이렇게 맞물리다 보면 남들만큼 빠르게 달려나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막판 스퍼트 올려서 제대로 홍보 해보자고.”
‘종갓집 막내딸’의 동력을 이어받은 굿픽쳐스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
제작보고회는 사실상 ‘우리 이런 영화 만들었어요’하고 설명하는 홍보의 장이었다.
주연들이 우르르 나와 영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풀어내며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거다.
하지만 영화 ‘대원군’의 제작보고회는 색다른 그림이었다.
오로지 이태관 배우와 안원상 감독, 두 사람만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에 대해 안원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태관 선배가 이 영화의 유일한 주연이라고. 그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에게만 집중한 영화라고.
사실 이런 그림은 독립 영화에선 꽤 흔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제작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극을 이끌어갈 주인공에게만 집중하는 원톱 주연 영화가 많을 수밖에.
결국, 비용적인 문제로 인한 타협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방법에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극의 몰입도를 최대로 끌어올린다는 것.
그게 바로 안원상 감독이 원톱 주연을 차용한 이유였다.
“사람들에게 꼰대의 대표적인 인물로 각인된 흥선대원군에게, 어떡하면 관객들이 최대한 몰입할 수 있을까. 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었던 거죠.”
안원상 감독의 말에 진행자가 낮게 감탄했다.
“마치 1인칭 주인공 시점처럼요?”
“맞아요. 그런 셈이죠.”
“그래서 영화 ‘대원군’을 ‘상업 영화의 탈을 쓴 독립 영화다’ 이렇게 말씀해주셨군요. 이제 이해가 확 되네요.”
진행자가 끄덕거리며 슬쩍 큐카드를 훑었다.
이번엔 이태관 배우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이태관 배우님. 배우님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굉장히 특별하셨다고요?”
“네. 제가 최근 3년간 소속사가 없이 배우 일을 했었거든요. 회사 눈치 안 보고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찍었죠.”
“그러니까요. 그동안 독립 영화를 무려 열 편이나 찍으셨더라고요?”
“그렇게나 됐나요? 세어 보진 않아서, 하하.아무튼 그동안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연출이 뛰어난 감독과 연기력이 대단한 배우들이 한국에 많았구나. 그러다 작년에 독립 영화 촬영장에서 안원상 감독을 만났습니다. 친구 감독 응원차 현장에 왔다고 했는데, 거기서 대뜸 대본을 주더군요.”
“어, 뭔가 느낌이 우연이 아닌 것 같은···.”
진행자가 홱 쳐다보자 안원상 감독이 실소를 흘렸다.
“맞습니다. 제가 친구를 이용했어요. 선배님께 대본을 꼭 드리고 싶은데, 연락 드릴 방법이 없더라고요.”
“역시 그랬네요! 잡았다 요놈.”
진행자의 농담에 웃으며 안원상 감독의 어깨를 두드린 이태관이 말을 이어간다.
“저도 이게 과연 우연일까? 의심하면서 대본을 슥 훑어봤는데······. 다 읽고 나서는 그게 상관없어지더라고요. 이거 해야겠다. 꼭 해야겠다.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 딱 그 중간에 걸쳐 있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조연을 맡으신 배우님들이 대부분 독립 영화 쪽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눈여겨본 배우들이었습니다. 언젠가 그 친구들을 꼭 추천해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안 감독이 먼저 제안하더라고요. 마음이 잘 맞았죠. 마지막 캐스팅만 빼면요.”
“마지막 캐스팅이라면······.”
안원상 감독을 돌아본 이태관이 말했다.
“갑자기 과거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배우를 밀더라고요. 최근에 일일드라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였지만, 저는 내심 내키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화제성을 잡으려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그 친구의 연기를 직접 보고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색안경을 끼고 있었구나.”
“와, 그 정도로 그 배우님의 연기가 마음에 드셨나요?”
이 질문에 대해선 할 말이 산더미 같은 이태관이었다.
상기된 얼굴로 열변을 토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정도지.
하지만 평가는 관객들의 몫.
그는 최대한 절제하며 담담하게 답했다.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연기가 그 친구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
상영관이 밝아졌다.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고, 가장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안주연의 가족이었다.
이윽고, 조용해진 영화관에서 갑자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좋은 날 왜 울고 그래.”
“미안해서··· 엄마가 미안해서.”
얼른 손수건을 꺼내어 다독이는 아버지.
그 모습을 본 나는···.
안주연은 천천히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엄마.”
작게 부르며, 좁아진 어깨를 끌어안으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에 온갖 감정을 담아 보낸다.
“컷! 오케이!”
유종원 PD의 사인이 떨어졌다.
나는 안주연의 자세와 표정을 지우고, 백승결로 돌아왔다.
안주연의 표정으로 가렸던 씁쓸함이 여트막하게 드러난다.
‘좋겠네. 안주연은.’
부러웠다.
안주연이 당당히 배우로 발돋움해서가 아니다.
그건 지금 나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이룰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안주연이 화목한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는 장면은, 내가 결코······.
“수고하셨습니다.”
표정이 드러날세라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대답이 없다. 조용하다. 뭐지?
펑—!
고개를 드는 순간, 터지는 폭죽.
“수고했어요, 형!”
대기업 본부장 남주에서 그냥 잘생긴 동생으로 돌아온 이강현이 고깔 모양 폭죽을 손에 쥐고 헤죽 웃는다.
최지연은 매니저에게 케이크를 받아 내 앞으로 내민다.
뒤이어 모든 배우들이 다가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사이, 내 머리에 얹어진 색종이를 떼어내던 이강현이 말했다.
“으아, 먼저 끝나서 너무 부럽네.”
“그럼 이 장면을 엔딩으로 쓰자고 감독님께 건의하자.”
“에이, 그건 아니죠. 그래도 제가 남자주인공인데.”
그러자 최지연이 냉큼 내 말을 받았다.
“전 좋아요, 선배. 결혼식 장면 너무 싫거든요. 솔직히 시청자들도 저희 결혼하는 것보다 안주연 잘되는 걸 더 보고 싶어 해서 문제없을걸요?”
“야, 누군 좋아서 그러는 줄 아나.”
“그럼 파혼해. 작가님 아직 늦지 않았어요. 연쇄살인!”
최지연이 뒤쪽에 서 있는 서은영 작가를 돌아보았다. 케이크를 자르려고 든 플라스틱 칼을 치켜들며.
오랜만에 촬영장에 놀러 온 서은영 작가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머릴 흔든다.
“얘들아. 나 어제 대본 다 끝냈거든? 지금 활자는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냥 결혼하렴.”
그들의 꽁트 같은 대화에 촬영장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씁쓸함은 지우고 지금은 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집중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수고했어.”
어느새 다가온 유종원 PD가 어깨를 두드린다.
나는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렇게 복귀 후 처음으로 맡은 배역, 안주연을 떠나보낸다.
“그나저나, 이거 봤어요? 제작 보고회 했던데?”
함께 온 서은영 작가가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이태관, 백승결 연기 보고 오히려 자신의 연기가 모자랄까 걱정···>덩달아 몰려든 배우들이 기사를 보고 혀를 내두른다.
“이태관 선배님 엄청 엄격하시다고 들었는데.”
“그런 분이 이렇게까지 극찬할 정도면···.”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이러니까 영화가 더 궁금해지는데? 개봉하자마자 보러 가야겠어.”
“나도 그러려고. 우리 아들 영화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안주연의 엄마 역을 맡은 중년 배우의 말에 유종원 PD가 냉큼 끼어들었다.
“우리 드라마는요?”
“우리 드라마는 이미 잘 됐잖아!”
그러자 유종원 PD가 아직 부족하다며 손뼉을 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드라마는 남은 5회 안에 30% 넘기고. 영화는··· 손익분기점이 몇만이래?”
“120만이요.”
“그럼 200만 아니, 300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