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조선유랑극단 (9)
일주일 후.
기대작, 문제작.
어느 쪽이 되었든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조선유랑극단’이 흉흉한 소문 속에서 공개되었다.
개봉 전부터 예약 전쟁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몰린 만큼, 극장은 인산인해였고.
그곳으로 들어선 기자들이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영화 보려면 잡지사 기자가 편하다니까. 시사회 티켓이 마를 날이 없잖아.”
“게다가 취재지도 대부분 에어컨 빵빵 나오는 영화관이지.”
“대신 보기 싫은 영화도 봐야 할 때도 많잖아. 어우, 난 그건 못한다.”
“아, 그건 그렇네.”
보통 이렇게 다 같이 영화를 보는 경우는 아무리 연예부 기지라고 해도 흔치 않았다.
그들은 영화 잡지사 기자가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평일 낮, 업무시간엔 더더욱.
그럼에도 ‘조선유랑극단’은 달랐다.
이 영화의 개봉은 영화계를 넘어 연예계에서도 주목할 만큼 큰 이벤트였다.
이제 곧 첫날 스코어 얘기부터 영화 내용으로 범람할 인터넷 화면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그들도 움직여야 했다.
경쟁이 치열한 이런 이슈는 물량전이 답이니까.
“그나저나, 이거 평가가 엄청 좋네요?”
“오, 스포를 두려워하지 않는 타입?”
“결말 알고도 잘 보는 타입이라··· 아무튼, 벌써부터 사람들 반응이 장난 아녜요. 재밌나 본데요?”
“그래? 근데 왜 내부시사회에선 그런 분위기였을까?”
기대작보단 문제작에 가까우리라 예상했던 선배 기자가 갸우뚱했고.
모두는 그의 의문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동조했다.
그들이 가진 ‘조선유랑극단’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졌다.
“뭐, 보면 알게 되겠지. 슬슬 들어가자고?”
그들은 미리 예매한 티켓을 뽑아 상영관으로 향했다.
미궁 속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
⌜다이달로스의 역작.
미노스가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만든 크레타 미궁 속엔 미노타우로스가 산다.
그 미노타우로스가 어떤 형상인지는, 오로지 미궁을 들여다본 이들만 알 수 있었다.
······각자의 부끄러움이 그곳에 있다.⌟
⌜예?⌟
윤석이 손에 들린 책을 중얼거리듯 읽자, 그의 심복인 청년이 고개를 기울였다.
⌜미노타우로스. 이 이름으로 지을까도 생각했었지. 근데 왜놈들이 발음하기엔 너무 어렵겠더라고.⌟
⌜미누··· 그게 뭔데요?⌟
⌜소와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 괴물. 반인반수.⌟
⌜예? 그, 그런 게 있습니까? 어디에요?⌟
화들짝 놀란 청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진짜 있다는 게 아니고. 신화 속 이야기야.⌟
⌜장산범 같은 거군요?⌟
⌜비슷하지. 대신 아까 말했듯이 범이 아니라 소야. 뿔이 달렸거든.⌟
⌜혼처럼 말이죠?⌟
청년의 말에 윤석이 입을 쭉 찢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역시 그 이름이 딱이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휘적휘적 천막을 나선다.
⌜가자. 돈 벌 시간이다.⌟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조선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결코 저렴하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일본 여인들은 기꺼이 가격을 지불했다.
즐길 거리가 여러모로 다양한 남편들과는 달리,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에게 조선은 다소 무료한 귀양살이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폭죽이 터지며 공연이 시작된다.
철창 안에서 맹수와 함께 생활하는 소년.
아득히 높은 공중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위험천만한 곡예를 보여주는 소녀.
그중엔 허리가 휘어 네발로 걸어야 하는 아이도 있었고, 얼굴이 뭉개져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공연의 내용은 매우 잔혹했지만, 관객들은 더욱 잔인했다.
그것을 보며 진심을 다해 웃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렇게 조롱에 가까운 환호 속에서 찾아온 마지막 순서.
⌜저희 공연의 자랑···! 머리에서 뿔이 자라나는 괴물···!⌟
윤석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가득 차 천막 천장에 닿았다.
그럴수록 고조되는 분위기.
마침내, 혼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허어어어!⌟
누군가는 놀라서 감탄했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누군가는 고개를 내저으며 의심한다.
모든 게, 윤석이 바라던 대로였다.
⌜아무래도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윤석이 한 뼘 정도 튀어나온 혼의 뿔에 줄을 매달았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잡아당겨 천천히 들어 올린다.
혼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그럴 수록 사람들의 얼굴은 흥미로움이 가득해진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는 이들을 무대 위로 불렀다.
그리고 혼을 던져주었다. 마음껏 의심을 풀라고.
퍽—!
혼 또래의 아이가 나와 몽둥이로 뿔을 내리친다.
이를 악 문 혼이 비명소리를 참았고, 금세 지친 아이가 몽둥이를 내던지고 포기한다.
다음엔 유카타를 입은 여인이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물론 결과는 마찬가지로 실패.
⌜어떻습니까. 이건 진짜 뿔입니다.⌟
이제는 관객들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뿔이 자라나는 소년이 있다는 것을.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날 반응만으로도 분명 그랬지만, 그 공연을 본 이들이 입소문을 퍼트리며 더욱 그랬다.
다음 공연도, 그다음 공연도.
무대를 줄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윤석은 돈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일이 계속 순탄하게 흐르진 않았다.
어떤 일본인 순사의 아내가 공연을 봤나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남편은 상사에게 말을 전했겠지.
그 결과, ‘혼’을 빼앗으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탐욕적인 새끼들! 감히··· 감히 내 것을 훔쳐 가려 해?⌟
윤석은 분노했다.
하지만 우선은 혼을 숨기는 게 먼저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혼을 찾은 윤석.
그의 손에는 톱이 들려 있었다.
쩔그렁—.
톱을 바닥에 던지며 윤석이 심복에게 말했다.
⌜뿔을 잘라라.⌟
⌜예?⌟
⌜자르라고. 뿔.⌟
윤석은 혼의 뿔을 잘라 탐욕스러운 일본군의 손길을 가까스로 피했다.
눈앞에 닥친 문제가 해결되자 윤석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때마침 혼을 찾지 못했다는 소리에 그럴 리가 없다며 달려온 순사.
결국, 윤석은 톱으로 잘린 혼의 뿔로 그를 내리쳐 죽여버린다.
네가 원하던 뿔이 여기 있다며.
⌜후우······ 이거 어쩌죠?⌟
심북의 물음에 윤석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놈이 죽기 전에 소집시킨 아이들에게 시선이 닿은 윤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간다.
⌜누가 가장 쌌지?⌟
⌜예?⌟
⌜누가 가장 돈을 못 벌어다줬지?⌟
⌜어···.⌟
심복의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윤석의 차가운 눈동자가 끝끝내 한 아이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너지.⌟
⌜······.⌟
⌜네가 한 거로 하자.⌟
#
“재밌네.”
영화가 끝나고.
느지막하게 극장에서 나온 기자들이 가장 먼저 뱉은 말이었다.
“그것도 엄청.”
신선함으로 따지자면 근 몇 년간 한국 영화 중 대적자가 없을 정도로 새로웠고.
오락 영화로만 봤을 때도 몇몇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장면들만 빼면 최고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영화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 – 흉내자들’의 계보를 이어받아 국내 극장을 먹여 살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근데··· 이해도 가네.”
왜 이 영화가 내부시사회에서 그런 박한 평가를 받았었는지.
몇몇 사람들은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박차고 나갔는지.
“···그렇죠? 저만 느낀 거 아니죠?”
“응. 나도 느꼈어. 왜 그런 소문들이 돌았는지 확실히 알겠더라. “
“기가 막히게 표현했어. 노골적이지 않은데, 너무 노골적이야. 보는데 내가 막 쿡쿡 찔려.”
“우리가 이럴 정도인데 엔터 사장들이나 PD, 방송 관계자들은 오죽했겠냐고. 그냥 단순히 일본 욕이나 하고 그런 영화인가 하고 봤다가 뒤통수 제대로 맞았겠지.”
영화관 건물을 빠져나와 자연스레 카페로 향한 기자들이 카페인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간다.
원래대로라면 테이크아웃해서 회사로 복귀해 기사를 작성했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영화 속 주제의식이 그들에게도 꽤나 아팠기 때문이었다.
“근데, 백승결이 갑자기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백승결이 업계에서 많이 본 거겠지. 영화와 같이 아이들이 사고 팔리는걸. 부모를 자처하는 매니지먼트들은 아이들을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체는 아이들의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어떻게든 지금 당장 이미지를 소모하기 위해 혈안이고···.”
담담하게 추측하는 선배 기자에게 다른 기자가 물었다.
“그럼, 복잡하게 생각해보면요?”
“본 게 아니라 겪은 거지.”
툭 던지는 말에 팍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해별이.
“······.”
기자들은 침묵했다.
모두가 잊고 있다.
지금 자신들이 환호하고 응원하며, 찬사를 보내는 백승결이라는 배우에게.
과거 대중이 어떤 짓을 했는지.
신문에선 아이의 연기력을 화두 삼아 연일 조롱에 가까운 평가를 쏟아냈고.
촬영장은 물론 집 앞, 학교까지 찾아가 플래시를 터트렸다.
심지어는 무당을 찾아가 천재라 평가받던 아역의 몰락에 어떤 신의 뜻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게 혼의 뿔을 내리치고 잡아당기던 관객들과 뭐가 다를까.
커피를 단숨에 비운 선배 기자가.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고, 생각 이상으로······.”
씁쓸하게 말했다.
“문제작이네.”
주억거리던 기자들 중 하나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묻는다.
“그러고 보니 백승결이 아역 때······ 아티스였죠?”
“그랬지.”
“이거, 그쪽이 곤욕 좀 치르겠는데요?”
“그걸 의도했을 수도 있고.”
그때였다.
선배 기자의 핸드폰이 울려댄다.
화면에는 ‘신기연’이라는 발신자가 떠올라 있었다.
신혜원 기자였다.
“어, 우리 신기연 기자. 영화? 방금 봤어. 이제 슬슬 들어가서 기사나 끄적여볼까 하는데, 왜? 기사를 내고 싶다고? 그냥 내시면 되죠. 기연 충만한 신 기자님이신데.”
쿡쿡대는 기자들을 보며 통화하던 선배 기자가 건너편 반응에 웃음기를 줄였다.
“알겠어 그만할게. 그래서, 어떤 기사인데?”
줄어들던 미소가 이내 싹 사라지고.
“들어가서 얘기하자.”
낮게 답한 그가 전화를 끊었다.
이에 기자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인데요?”
잠시 허, 하고 공허한 감탄사를 내뱉은 그가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얘 또 뭐, 범상치 않은 걸 물어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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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 이거 뭐야. 첫날 스코어가 왜 이래?”
고작 하루였다.
일반적인 영화는 한 달 내내 영화관에 걸려있어도 쉽지 않은 관객수를, ‘조선유랑극단’이 달성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 말이다.
한국 영화 사상 역대 최고의 첫날 스코어였다.
우경철은 집계가 발표되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차도영 매니저를 돌아보았다.
“이거 뭐냐고. 내부시사회 반응도 그저 그랬다며? 막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며? 개판이었다며?”
“정말 그랬습니다. 본부장님도 다른 루트로 확인하셨었잖아요.”
말문이 막힌 우경철이 이마를 짚으며 노트북 화면을 다시 살핀다.
그리고 미간을 콱 구기며 으르렁거렸다.
“그래, 첫날 스코어야 백승결 이름값으로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왜 이렇게 호평 일색이냐고. 사회비판적? 이게 그런 영화였다고? 그리고 이건 또 뭐야. 차도영 연기 미쳤다고?”
움찔한 차도영 매니저가 얼른 답한다.
“연기라는 게 아무래도 상대적인 거다 보니까. 그리고 안티일 수도 있죠.”
“안 되겠다. 야, 가장 빠른 시간으로 하나 예매해.”
웬만하면 안 보려고 했다. 극장에선 더더욱.
관객 스코어에 1이라도 보태주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하루 130만이라는 수치에 1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이제는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차도영의 연기 얘기가 아니었다.
지금 인터넷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어떤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왜 해별이 얘기가 나오는 거지? 그때 당시 매니저? 그거 나잖아?’
곧장 자켓을 걸친 우경철이 자신의 방을 빠져나와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약이 어려워 가장 앞줄, 구석진 자리에 앉은 그가 스크린을 올려다보며 부들거렸다.
“······이런 개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