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조선유랑극단 (10)
거대한 천막, 그 아래에서 잔혹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생과 사의 경계 어디쯤에 매달려 몸부림쳤고, 그 모습을 보는 관객들의 얼굴에선 흥미를 넘어 쾌락과 광기까지 엿보였다.
더 위험하게, 더 아슬아슬하게.
단원들이 사선을 넘나들수록 공연은 더욱 성공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갖가지 이유로 그 선을 넘어가게 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발을 헛디뎌서, 손아귀에 힘이 빠져서, 한순간의 실수로······.
상관없었다.
관객들이 내는 한 번의 공연 값이 한 아이의 몸값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윤석의 곳간이 가득 차는 것은 단순한 이치였다.
이에 윤석이 입을 쭉 찢어 웃었다. 그리고 환희 덮인 한탄을 내뱉는다.
⌜단원들이 상하거나 부서지는 것은 안타까우나, 그 재산의 죽음이 더욱 큰 부를 가져다주니.
더 잔혹해지지 않을 길이 없구나!⌟
그 다음부터 윤석의 행보는 그의 말대로 더욱 잔인해졌다.
아이들을 끝끝내 사지로 내몰았으며, 그 와중에 크게 다치거나 병에 걸린 아이는 가차 없이 버렸다.
아이들은 그저 공연을 채울 소모품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지금껏 윤석에게 막대한 부를 준 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 오늘은 아주 특별한 순서가 마련되어있습니다!⌟
관객들을 향해 소리친 윤석이 그대로 방금 막 공연을 끝낸 혼의 뿔을 잡아챘다.
그리고 무대 앞으로 질질 끌고 나와 모두를 향해 말한다.
⌜이 뿔이 탐나시는 분? 생각해보세요. 사람에게서 자라나는 뿔입니다. 사슴뿔 따위와는 그 희소성이 비교도 안 되죠. 전시를 해도 되고, 한 번 달여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사람의 뿔이라니! 어떤 효험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웅성거리던 관객 쪽에서 하나둘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본인의 뜻대로 반응이 만들어지자, 윤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혼의 뿔은 보름이면 자라난다. 이대로라면 매번 잘라서 팔아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터.
곧이어 인간의 탐욕이 뒤엉킨 경매가 벌어졌다.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승자는 극단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타지의 거부.
서걱, 서걱——.
곧바로 혼의 뿔이 잘려나갔다.
환희에 찬 표정으로 뿔을 들어 올리는 윤석.
그 아래 깔려 고통스러워하던 혼은 다짐했다.
차라리 버려지더라도, 맞아 죽더라도.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그날부터 그는 밤에 몰래 자신의 뿔을 자르기 시작했다.
신음소리가 새어나갈까 이를 악물고서, 날카롭게 벼려진 것들을 챙겨 아주 은밀하게.
그러니 윤석의 입장에선 더이상 뿔이 자라나지 않는 혼이 쓸모가 없어졌다.
그렇게 혼의 계획대로 그를 버릴 준비를 하는데.
늘 변수는 간절함을 비웃듯,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찾아온다.
⌜이보게, 진행자 양반! 그 뿔을 뽑아보는 건 어떻소? 그 뿔을 땅에 심으면 자랄지도 궁금해지는데! 만약 뽑는다면 내가 사겠소!⌟
윤석에겐 더할 나위 없는 제안이었고.
곧장 혼의 뿔을 뽑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평생 자신을 괴물 취급받게 했던, 비수와도 같았던 뿔.
그 뿔이 이가 흔들리듯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서서히 그의 머리에서 뽑혀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텁—.
혼이 자신의 뿔을 잡았다.
온갖 기구들을 가져와 안간힘을 쓰고 있던 윤석이 혼의 행동에 갸웃거렸다.
⌜너···.⌟
뭐 하는 거냐는 말을 하기도 전에 혼이 뿔을 낚아채 버렸다.
마저 남은 뿔을 쭉 뽑은 혼이 날카로운 뿌리 쪽을 윤석에게 겨누고, 그대로 밀어 넣었다.
푹——.
윤석의 가슴팍에 꽂힌 혼의 뿔.
뿔을 뽑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윤석의 몸에 뿔을 내리찍었다.
그 잔혹한 광경에 얼어붙은 관객들.
혼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꿈틀거리는 윤석에게 한 번 더 비수를 박았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어하며 웃는다.
⌜왜 박수 안 쳐? 너희들 이런 거 좋아했잖아? 우리가 팔이 빠지고, 다치고, 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사지가 부서져도 환호했잖아. 근데 이건······ 뭐가 달라?⌟
대답은 없었다.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듯 혼은 느린 걸음으로 무대 뒤로 내려와 천막을 빠져나간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이곳.
하지만 뿔이 뽑힌 탓일까.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이 지옥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혼은 얼마 못 가 바닥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신문엔 딱 한 줄짜리 기사가 난 게 전부였다.
미개한 조선인이, 조선인을 죽였노라고.
어차피, 그마저도 며칠 안에 사그라들 얘기였다.
누군가는 관심이 없어서.
누군가는 자신이 연관되어 있어서.
누군가는 부끄러워서.
다시 새로운 미궁을 만드는 것이다.
#
이야기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관객들이 150분짜리 한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우후···.”
우경철은 진즉에 밖에 나와 있었다.
자신의 차, 운전석에 앉아 한참 동안 욕을 내뱉던 그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차도영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신호음만 길게 이어지다가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
“이런 개새끼가······.”
우경철이 보기에도 차도영의 연기는 결코 어설프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봐온 모습들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건 헷갈릴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차도영 매니저, 이 새끼가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
“불시에 촬영장에 갔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우경철은 그럴 수 없었다.
백승결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상급 배우, 작가가 된 놈을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젠장··· 이 새끼 왜 안 받아!”
핸들을 내려치며 핸드폰도 집어 던졌다.
사실 지금 문제는 차도영이 아니었다.
언뜻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보이는 이 영화 속에 자신에 대한 은유와 비유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우경철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인터넷에도 사회 비판적이라느니, 아역 배우들의 인권이니, 심지어는 백승결의 전매니저가 누구냐는 댓글까지도 떠도는 것이다.
“상관없어. 영화가 사회비판적인 거야 흔한 거고,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뭐. 게다가 대체 몇 년 전 일이야. 그래봤자 금방 묻힌다, 이거······.”
그렇게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는데, 조수석 밑으로 들어간 핸드폰이 지이잉 울려댄다.
차도영 매니저일 거라 생각한 우경철이 다시 화를 끓어올리며 손을 뻗었다.
—우 본부장.
하지만 상대는 그가 애타게 전화하던 차도영 매니저가 아니었다.
“예, 사장님.”
—지금 인터넷이 시끌벅적하더라고.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에 우경철이 순순히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배를 가를지언정 빼앗기진 말았어야 했다고. 그 빼앗긴 대가가 지금 아티스 전체의 이미지를 위태롭게 만드네?
최용길 사장의 책임 전가에 우경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큰 회사니 뭐니 해도, 결국 대기업의 자회사일 뿐인 아티스 엔터.
최용길 사장도 그래봤자 한낱 직장인이요, 빨랫줄에 걸려 바람 따라 펄럭이는 바지사장이었다.
그러니 겁이 얼마나 많겠나.
이제는 대놓고 폭탄을 ‘이거 네 거야’하고 들이미는 최용길 사장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화 때문에 그러십니까? 사장님. 지금이야 다들 뭔가 심오해 보이니까 해석해보겠다고 저렇게 난리들이지만, 이거 어차피 다 금방 시들해집니다. 그래봤자 영화일 뿐이에요.”
—그래봤자, 영화지. 그래. 근데 그래 봤자 영화인 게 백승결이 만들었다는 게 문제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걔가 가지는 영향력을 몰라서 그러나?
“압니다. 누구보다 제가 잘 알죠. 그래서 사장님이 차도영 영화에 넣자는 거 저도 납득한 거 아닙니까. 이런 영화인 줄도 모르고요.”
당하고만 있을 우경철이 아니었다.
최용길 사장처럼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근하게 폭탄을 돌린다.
우리 뒤통수를 칠 영화에 소속 배우를 꽂아 넣은 건 당신이라고.
그러자 핸드폰 너머에서 헛헛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떤 영화인 줄도 모르고 차도영 캐스팅하겠다니까 옳다구나 하고 넣었지. 그건 확실히 내가 속았어.
“물론 그쪽에서 작정하고 속이려 했으니, 사장님도 방법이······.”
—그리고 자네도 날 속였고.
“···예?”
슬쩍 어르고 달래려던 우경철이 예상 밖의 전개에 말꼬리를 올렸다.
—최기석 실장하고 문제가 있다는 걸 왜 숨겼지?
“······그걸 어떻게.”
드라마 속 삼류 악당이나 할 법한 대사를 내뱉은 그가.
“잠시만요.”
얼른 스피커폰으로 바꾸고서, 핸드폰을 확인한다.
[대형 기획사의 도 넘은 갑질, 스카우터 B씨의 폭로······>‘조선유랑극단’이 점령하다시피 한 포털 사이트 메인에 당당히 올라와 있는 기사 하나.
들어가 보니 첫 줄부터 우경철은 알 수 있었다.
이 기사는 최기석 그 새끼가 인터뷰한 내용이라는 걸.
그 사이, 잠시 조용하던 최용길 사장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으로 이어졌다.
—그래봤자 영화일 뿐인 게 문제의식을 깨우고, 때마침 대중들이 공분할만한 실제 사례까지 올라왔어. 아직도 자네는 지금 상황이 별 거 아닌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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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소속 연예인들에겐 들어오는 일감조차 주지 않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게다가 계약이 끝난 후에도 그의 입김은 연예인들의 앞날을 좌지우지했다. 수년 전 이와 같은 일을 당하고 꿈이었던 배우 생활 대신 전혀 다른 업계에 정착한 A씨는 그가 늘 심심치 않게 업계에서 매장시킨다는 소리를 했다고 회고했다. 한편, 이를 참지 못한 B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계약서상에 문제가 없음을 근거로······⌟
—계약서가 허점 투성이라는 거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인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일을 안 주는 건 진짜······.
—계약할 땐 열심히 도와주겠다고 했겠지?
—유배지로 통하는 팀이 있다는 게 더 소름.
—이거 아티스 엔터 얘기라는 얘기가 있더라. 제보한 B씨가 아티스 엔터에서 일하던 스카웃 담당 이라고 그러더라고.
—자기가 데려온 애들이 회사에서 그런 취급을 당하니까 칼 빼든 거구나.
—아티스면······ 헐 우리 오빠, 요즘 안 나오는 이유가 이런 거였어?
영화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된 사이트에 점처럼 찍힌 하나의 기사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화의 내용을 말하는 기사와 현실의 문제를 짚는 기사 사이에 묘한 공통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만, 아티스 엔터면 백승결이 예전에 있던 곳 아님?
—그래서 안그래도 지금 난리임. 백승결은 다 알고 있던 거 아니냐고.
—제대로 걸렸네. 이 영화 지금 전 국민이 다 볼 기세인데.
—전 국민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다 볼 거 같은데? 해외 커뮤니티도 난리더라.
—할리우드도 최근에 그런 문제들을 많이 겪어왔으니까.
—그래서 B씨가 말하는 게 누군데?
—지금 정황상으로는 백승결 아역 때 매니저였던 사람이라던데?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 지랄을 한 거?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하니 아무래도 그런듯?
그렇게 기사 하나가 수많은 영화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태풍의 눈이 되었다.
자신의 기사가 그렇게 된 것을 보며 신혜원이 피식 웃었다.
기분이 좋아서라기보단, 이제서야 해당 사건을 다루는 기사들이 앞다투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진 단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던 기사가 말이다.
우경철이 이 바닥 다 그런 거라며 최기석 실장을 조롱했듯이.
이 바닥, 원래 다 그런 거니까.
영양가만 충분하다면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먹잇감이었다.
“참··· 역겹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자들의 습성을 이용한 결과, 대중들의 관심은 끊어지지 않았다.
관심이 끊기지 않으니 기자들은 열일을 했고.
숨어 있던 피해자들이 나타나 최기석 실장에게 힘을 보탰다.
물론 지금 이 사태는 단순히 아티스 엔터나 우경철 본부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매니지먼트에 피해를 입었던 이들도 한 명씩 나타나 현실을 밝혔다.
그 모습을 보며 신혜원은 생각했다.
“그래도, 이젠 바뀌게 되려나.”
아직은 이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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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랑극단’의 전세계 성적이 공개되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북미에서만 첫날 200억.
전 세계에서 하루 만에 400억을 벌어들인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위상이 무색하게······.
그해, 한국의 그 어떤 영화제에서도 ‘조선유랑극단’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