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 (1)
굿픽척스 박 대표는 자신의 영화사를 차린 이래, 가장 극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손을 거친 영화, ‘조선유랑극단’이 천만을 가뿐하게 넘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마의 구간인 천 오백만까지 찍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기세대로라면 한국 영화 관객 수 역대 1위도 충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으니 이게 드라마지 뭐겠나.
이쯤 되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더 어려웠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독립 영화 감독들과 작업하며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에 축배를 들던 그 굿픽처스가 맞나.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박 대표가 허허 웃으며 가슴을 쓸었다.
백승결이 시놉을 가져와 감독 입봉을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상황이었다.
물론 백승결이 직접 출연까지 한다는 것에서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느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화제성의 측면에서였다.
흥행과 평가는 또 다른 문제였지.
그런데 그 두 가지까지 멱살 잡고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둘 줄이야.
“아빠 뭐가 그렇게 좋아?”
“흠흠.”
저도 모르게 들썩이던 입꼬리를 내렸다.
지금 그가 뭔들 안 좋을까.
자신의 딸, 박혜진을 돌아본 박 대표가 물었다.
“그러는 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다?”
“당연하지. 이거 봐봐. 지금 아주 난리라고.”
박혜진이 들이민 핸드폰 화면 속에선 온갖 폭로들이 폭죽처럼 펑펑 터지고 있었다.
누군가 미궁 속에 꼭꼭 숨겨둔 치부.
그 심지에 제대로 불을 붙인 결과였다.
“이거 전부 아티스 얘기 맞지?”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
아티스는 입을 꾹 닫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확증을 키워가고 있었다.
“글쎄······.”
“모르는 척하지 말고.”
“모른 척이 아니라 진짜 몰라서 그래.”
“···?”
박혜진이 보여준 온갖 폭로들.
그것들이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은, 박 대표도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버텨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업계는······.
“이런 짓을 하는 곳이, 아티스만은 아닐 거거든.”
늘 그래왔다. 사람들이 종종 알아차릴 뿐.
“······헐.”
충격받은 박혜진을 보며 박 대표가 쓰게 웃었다.
이윽고 박혜진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 썩었구나?”
“아빠도 거기 몸 담고 있지만, 딱히 부정할 수가 없네.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서 나 연예인 한다고 했을 때 말렸던 거고!”
“그건 아닌데. 가능성이 전혀 없어서였는데.”
단호한 대답에 사납게 눈초릴 바꾸는 박혜진.
그 모습에 허허 웃던 박 대표가 슬쩍 물었다.
“그래서 팬클럽 반응은 어때?”
“아주 불타오르지. 아티스고 뭐고 다 잿더미로 만들 기세야.”
“하긴, 나도 마냥 좋아하기 좀 그렇네. 영화 잘 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나도 책임을 느껴야지.”
“아빠 지금 마냥 좋아. 회춘했어.”
“흐흐··· 아빤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갑다.”
손을 휘휘 저으며 웃음을 터트린 박 대표가 소파에 드러누우며 툭 던지듯 말했다.
“이번만큼은 인터넷 커뮤니티 하지 말라고 한 거 취소야. 아주 지랄을 해버려.”
“아빠, 나 잘할 자신 있어!”
“그래 우리 딸. 예전부터 지랄하나는 기가 막히게 했지!”
“이거구나! 아빠에게 인정받는 기분···!”
이렇듯, 거실에서 부녀간의 우애가 돈독해지는 사이.
평소였으면 무슨 헛소리냐며 달려가 등짝 스매시를 갈겼을 박혜진 모가, 못 들은 척 양념장을 만들었다.
“······.”
그녀도 백승결의 팬이었다.
#
“이게 말이 돼요? 전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현태 형이 능숙하게 선반을 열어 소주잔을 깔았다.
김성운은 랩으로 감싸진 회접시를 뜯으며 쯧하고 혀를 찼고, 자리에 앉은 현태 형이 젓가락을 휘두르며 가상의 적과 싸웠다.
“아니, 지들이 이 악물고 상 안 줘봤자 어쩔건데. 지금 해외에선 여기저기서 ‘조선유랑극단’ 모시려고 난린데. 아주 웃기는 놈들이라니까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영화라 이거지. 여러 이해관계도 얽혀있을 거고.”
김성운의 대답에 더욱 울화통을 터트리는 현태 형이었다.
젓가락으로 식탁을 탁탁 두드려 높이를 맞추며 내가 말했다.
“상 받으려고 만든 영화 아니었어요. 사실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아니, 왜! 전 세계에서 입증한 이 명작을!”
물론 영화가 그럴 급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혼신을 다해 만들었고, 배우들의 열연으로 애초에 그린 청사진 이상의 영화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것은 영화가 아닌 나에 대한 검열에 가까웠다.
이 영화의 탄생이 너무 개인적이진 않았나.
그저 복수로 이용한 건 아니었을까.
결국, 나도 내가 가진 힘을 휘두를 명분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등등······.
요즘, 나 스스로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그렇기에 막상 아티스와 우경철이 전례 없는 곤욕을 겪고 있음에도 마음이 생각보다 후련하진 않았다.
그때 집 비밀번호를 누르며 김주철이 거실로 들어왔다.
“어, 주철이 왔어~!”
현태 형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고, 김성운이 의자를 스윽 빼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어쩐지 상기된 표정으로 티비 쪽을 바라본다.
“영화제 안 보고 계셨네요?”
“영화제는 무슨 영화제.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화딱지나 죽겠는데.”
“오늘 금화영화제 하는 날이지? 근데 그건 왜?”
바로 흥분해버리는 현태 형과는 달리, 김성운이 차분하게 묻자 김주철이 우릴 훑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신승찬 배우님이 ‘피어오르라’로 남우주연상 받으셨거든요?”
“이런 걸 어부지리라고 하지.”
“아냐, 충분히 받을만한 연기였어. 이따가 축하문자 보내야겠다.”
내가 현태 형의 허리를 쿡 찌르며 말했고, 김성운도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최영기 실장, 아주 입꼬리가 귀에 걸리겠네.”
현태 형은 여전히 못마땅한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쳇···. 근데 그게 왜?”
“근데 신승찬 배우님이 수상을 하다가 갑자기··· 아잇, 이거 그냥 한 번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클립 올라왔나?”
이윽고, 김주철이 찾아준 영상 속에서 신승찬이 무대에 올라섰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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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쏟아지는 영화인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그것에 흠뻑 젖은 신승찬의 손에는 손바닥만한 금빛 동전이 들렸다.
꽃다발까지 한 아름 안은 그가 마이크 앞에 선다.
그러자 주변 소음이 점차 줄어들었다.
모두가 그의 소감을 기다렸다.
—어, 남우주연상······.
주변을 둘러보며 말끝을 늘리다가, 이내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한다.
—정말 타고 싶은 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자신이 이곳에 설 수 있는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니 아주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신 백승결 감독님과 ‘조선유랑극단’의 배우들에게요.
동시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치 호그스미드 한가운데에서 볼드모트를 외친 것마냥 어수선해진다.
웅성거림이 밀려들었고, 불안정한 시선들이 넘실댔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저는 그분들 덕분에 이 상을 받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신승찬은 이 상이 자신의 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짚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모두가 알고 있었다.
‘조선유랑극단’이 금화영화제에 이름을 올렸다면, 오늘 대부분의 상은 그들이 거머쥐게 될 터였다.
······옆에서 MC가 뭐 됐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훑는다. 사고다! 그것도 대형 방송사고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고를 낸 신승찬은 엑셀에서 발을 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도 아역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꽤 어렸지만, 신기하게도 꽤나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죠. 저를 응원해주던 분들, 저를 격려해주던 사람들, 그리고 실망한 눈빛을 서슴없이 보내던 이들과 원망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다그치던 모습들까지도요.
“······.”
—참 지독합니다. 그 어린 날의 기억이······ 여전히 이렇게 남아 있다는 건요.
“······.”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싸워주고 계시는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영화제의 꽃! 피날레! 시상식이 실시간으로 불타고 있었다. 아주 활활.
방화범은 태연하게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 상을, 앞으로 배우를 꿈꿀 모든 아역들에게 바치겠습니다.
뒤늦게 박수가 터져 나온다.
엇박자로 삐거덕대는 것도 잠시.
이내 오늘 어느 때보다 더욱 우렁차게 극장을 뒤흔들었다.
그것으로 자리에 앉은 배우들은 부족한 용기를 달랬다.
‘지옥 같았다······.’
진땀을 뺀 MC가 나름대로 수습을 하며 시상식을 이어갔다.
다음은 여우주연상.
‘흉내자들’ 이후에 개봉한 ‘가배’로 수상까지 하게 된 고하윤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전 아역은 아니었습니다.
아, 앙대···!
그녀가 입술을 떼자마자 정신이 와르르 무너지는 MC였다.
—하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그러셨듯, 아역처럼 힘없던 시기가 있었죠······.
MC는 귀를 닫았다.
더이상 들을 자신이 없었다.
그저 이 망할 영화제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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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런 거 처음 봐요.”
프레스석에 앉아 있던 신혜원이 벙찐 표정으로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스트레이트를 날렸고,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막판에 넝마가 되어버린 영화제.
옆에서 줄곧 황당해하다가 이제는 웃음까지 터져버린 선배 기자가 말했다.
“보다 못한 배우들이 뭉치기 시작한 거지. 누가 봐도 노골적이었으니까. 그러게 왜 백승결을 건드려서······.”
“선우영화제도 볼만하겠네요.”
신혜원의 예상대로였다.
다음 일정인 선우영화제에선 이태관 배우와 천광윤 배우를 비롯해 다섯 명의 배우가 수상 소감에서 밥상을 엎었다.
‘조선유랑극단’은 어디에도 유랑하지 않았지만, 어느 곳에서나 그 이름이 불렸다.
그다음 길선영화제는 발빠르게 수상 소감을 축소했으나, 수상권에 있는 배우들 중 절반이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으며.
애초에 수상 소감 축소가 필요 없는 무성 영화제가 되어버렸다.
이렇듯 배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백승결이 화제의 중심에 선 지금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이제는 더 이상 아티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매니지먼트들 전체··· 더 나아가 엔터 업계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사과문을 내놓은 것은······.
“와, 하선경 대표··· 역시 무서운 사람.”
하람이었다.
그 어떤 잡음도 없는 매니지먼트가 가장 먼저 책임을 통감해버렸다.
선즙은 필승이라 했던가.
하선경 대표는 그 기회마저 틀어막아 버렸다.
결국, 선수를 빼앗긴 매니지먼트들은 더 큰 욕을 먹고 나서야 차례대로 사과문을 올렸다.
아티스가 사과문을 올린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악행은 길었고, 사과는 늦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린 신혜원이 마침표를 찍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제 어떻게 될까?
호기심과 기대감 사이, 어디쯤에서 놀던 생각이.
언젠가 백승결 배우와 나눴던 이야기로 넘어갔다.
최기석 실장을 소개해준 백승결에게 그녀가 물었다.
‘왜 저인가요?’
‘흉내자들 때 인터뷰한 것과 같은 이유예요.’
‘집요해서?’
‘네. 집요하게··· 끝까지 지켜봐 주셨으면 해서요.’
그때, 그녀는 백승결에게 기꺼이 알겠다고 답했다.
알량한 정의감 같은 건 아니었다. 굳건한 사명감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그냥······ 화가 나잖아.’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분노하는 것.
거기에 정의감이나 사명감 같은 거창한 것들은 필요 없었다.
“계속 가보자고.”
그때의 기억을 계속 되뇌며, 그녀는 후속 기사를 이어나갔다.
다행히 외압은 없었다.
‘조선유랑극단’이 흥할수록, 자신의 기사도 덩달아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좋은 반응이라기엔 댓글은 전부 욕뿐이지만······.’
어쨌든, 대중의 관심은 끊어지지 않았다.
영화에도, 현실에도.
그러던 중, ‘조선유랑극단’이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게 되었다.
수년간의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베니스 영화제와 서먹해져 있었던 한국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사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입맛이 쓴 것은······.
좋은 영화에 결국 손을 내미는 베니스 영화제가 국내 영화제들과 비교되어서였다.
“아 참, 베니스 영화제 소식 들으셨죠?”
신혜원의 물음에 최기석 실장이 끄덕인다.
“그럼요. 제가 아무리 바빠도 백 배우님 소식은 챙겨봅니다.”
“그거 참··· 쉽지 않겠네요.”
“하하, 그쵸. 소식이 워낙 많은 분이시니까.”
제일인 양 빙그레 웃은 그가 덧붙여 말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물론 배우님 대단한 거야 전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제겐 더더욱 대단하게 느껴져요. 보통 사람들은 과거의 흑역사 하나로 종종 몸서리치도록 불편한데······.”
‘제가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라서요.’
“그 모든 걸 기억하면서 여기까지 오셨다는 게······. 그런 분이 도와주셨으니 더 열심히 싸워야죠.”
주먹을 움켜쥐며 다짐하는 최기석 실장.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혜원이 미소를 머금었다.
내내 가슴에 맴돌던 씁쓸함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끝끝내 이겨낸 이가 최고의 자리에 앉았고.
앞으로 이겨낼 이가 이 자리에 있으니.
“네. 싸우다 보면, 조금씩 바뀔 거예요.”
여전히 이른 생각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촉이 강하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