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 (2)
“월드프리미어(—최초 공개) 원칙을 고수하던 베니스가 이미 전 세계에 공개된 영화를 경쟁부문에 올린 것은 정말 이례적인데요, 이번에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예상하고 계십니까!”
“무려 입봉작으로 최고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소감이 어떠십니까!”
“여기도 한번 좀 봐줘요······!”
우리는 지금 영화 ‘부산행’이 떠오를 만큼 격한 추격전을 찍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공항행이다. 공항행.
국뽕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많은 기자들과 팬들이 눈 대신 카메라를 번뜩이며 달려들었고.
대답을 갈구하는 그들의 질문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 공항 밖에서부터 따라 들어왔다.
이내 공항 일대는 마비되었다.
“괜찮아?”
현태 형이 스윽 옆으로 붙으며 물었다. 김주철과 김성운도 뒤이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틈을 비집고 다가왔다.
“응, 괜찮아.”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일행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공항에 들어서던 배우들과 제작진.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불규칙적인 파도라도 만난 것처럼 이리저리 치이고 있었다.
경호원들의 빗장 같은 수비 덕에 라운지로 도망친 우리는 한숨 돌리며 서로를 확인했다.
“다들 괜찮지?”
가장 안 괜찮아 보이는 박 대표의 물음에 모두가 끄덕거렸다.
“아주 혼이 빠졌네.”
“도영이 여깄는데? 안 빠졌는데?”
“아, 노잼···.”
“무슨 그런 개그를. 도영이 충격먹은 거 봐.”
뒤이어 배우들이 농담을 던지며 키득거렸고.
그 사이에서 이쁨 받고 있는 차도영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지금 뜨거운 감자를 넘어 찐 감자가 되어가고 있는 아티스 엔터 소속, 차도영의 매니저였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라니. 이게 내 마지막 일정인건가······.”
그의 공허한 눈이 우리 쪽으로 움직였다.
정확히는 내 옆에 있는 김성운에게로.
“저 곧 잘릴지도 몰라요.”
이에 김성운이 토닥거린다.
“저 잘리면 책임져주셔야 해요.”
“······.”
“티, 팀장님?”
“다 큰 어른끼리 무슨 책임이야.”
“아니, 팀장님? 팀장··· 아니, 이제 와 이러시면···.”
배후에서 그를 조종해 우경철의 눈과 귀를 막은 김성운.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괜스레 짐을 확인한다.
사색이 되어 눈알을 굴리는 차도영 매니저를 구경하다가 우리는 간단히 기자회견을 하고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내 자리는 차도영의 옆자리였다.
비지니스석이라 통로가 우리 사이를 가로질렀지만, 고개만 슬쩍 돌리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거리였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여전히 공항 로비에서의 열띤 응원에 얼떨떨한 것 같은 차도영이었다.
영화 내내 녀석을 괴롭히는 역할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 중에서의 관계일 뿐.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촬영장에서 항상 붙어있으며 많이 친해져 있었다.
“······.”
아닌가. 어쩌면 나만의 생각일지도.
바짝 얼어있는 듯한 차도영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녀석이 날 돌아보았다.
“그, 감독님.”
“응?”
“아까 기자님들이 황금사자상? 은사자상? 막 그런 거 받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그랬지.”
“근데 인터넷에서 다들 그러더라고요. 상 받는 거는 불가능할 거라고. 지금 우리가 베니스에 가는 것도 말도 안 되는 거라고.”
“그렇긴 하지. 베니스 영화제는 원래 개봉한 영화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그러니 수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월드프리미어 원칙을 깨버린 작품이지 않나.
아무리 수상을 노릴 수 있는 경쟁부문이라고 하지만, 이미 그곳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내 대답에 아쉬운 듯 주억거리는 차도영을 보며 나는 그냥 말을 맺을 수 없었다.
“그래도 기대해보자.”
“네? 그치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잖아요.”
“그럼에도. 실망이 너무 커서 힘들어져도.”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차도영에게 내가 말했다.
“더 이상 바라는 걸 외면하지 말자. 그거 습관 돼.”
경험담이다. 아주 농도 짙은.
뒤이어 끄덕이는 차도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상이 왜 받고 싶은지 궁금했지만 이내 그러려니 했다.
상이란 건 그냥 좋은 건데, 이유랄 게 있나.
그렇게 16시간을 날아서 도착한 베니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짐부터 풀었다.
호텔 방을 보며 우와 입을 못 다무는 차도영.
역시 아직은 어린애···.
“우와아아아아! 죽인다.”
“이야아아아아아!’
그래 뭐, 어른이라고 다를 거 있나.
차도영보다 더 야단법석인 배우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자, 이동합시다.”
하지만 아무리 방이 좋아도 마냥 감탄하며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곧장 스케줄을 밟아나갔다.
먼저 개막식에 참석했고, 미리 잡아둔 외신들과의 인터뷰까지 마무리지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가장 중요한 일정이 남았다.
바로, 시사회.
“칸 영화제 생각나네······.”
널찍한 차 안. 박 대표가 화려한 밤거리를 보며 추억에 잠겼다.
한참 동안 칸에서 은근한 차별과 무시 받던 이야기를 지나 아카데미에서 괄시받았던 뒤끝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내던 그.
곧이어 차량이 멈춰 섰고, 그제야 우리는 나갈 준비를 하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일동 얼음이 되어 진한 선팅 너머의 일렁이는 군중을 마주한다.
많다. 정말 많다.
“여기 우리 상영관 맞아요? 사람이······.”
굿픽처스 직원 중 한 명이 혀를 내두르며 하던 말을 흘리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박 대표가 덧붙였다.
“그때랑은··· 많이 다르네.”
“그러게요. 사람이 너무 많은데요?”
“와, 내가 다 긴장되네.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어지는데?”
제작진의 호들갑까지 얹어지자 배우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를 본 박 대표가 얼른 표정을 풀며 손을 휘적거렸다.
“아니, 근데 왜들 다 얼어있어. 오는 내내 사람 없으면 어떡하냐고 걱정했잖아. 완전 반대네! 얼른 내려, 얼른!”
우리 중 가장 얼어붙은 박 대표가 애쓰는 모습에 배우들이 입꼬릴 올린다.
하나둘 긴장이 풀린 듯한 모습에 내가 먼저 움직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차창 밖 일렁이던 인파가 더욱 또렷해진다.
수많은 기자들과 관계자들, 그리고 팬들이 우리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다! 왔어!”
“내린다! 누구지?!”
“백승결이야! 백승결!”
솔직히 나조차도 이럴 줄은 몰랐다.
공항행의 속편을 베니스에서 찍게 될 판이었다.
그 정도로 상영관 앞은 시상식장을 방불케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외신들이 우리의 시사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베니스에서 조선유랑극단의 서커스가 열렸고.
아주 대흥행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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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우리는 베니스 영화제를 마음껏 즐겼다.
그도 그럴 게, 매일 같이 다양한 영화가 상영하고 있었고, 음식도 맛있으며, 도시는 아름다우니 사실상 휴가가 따로 없었다.
물론 낮에는 스케줄이 빽빽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뭘 구경했냐고? 차도영을 비롯한 ‘조선유랑극단’의 배우들이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이랄까.
영화의 시사회가 기사에 날 정도로 대흥행을 하며, 적어도 이 도시 안에선 우리를 못 알아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가 올랐다.
다들 한국에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심지어 영화제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의 인사를 받게 되는 일은 전무했기에 지금의 경험이 더욱 값져 보였다.
“와, 어딜 가도 알아보네.”
차도영 매니저가 낮게 감탄한다.
방금 전에도 유럽의 유명 배우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다가왔다가, 차도영과 다른 배우들에게까지 영화 잘 봤다는 코멘트를 남기고 사라졌다.
“내 마지막 출장으로 손색없을지도······.”
이제는 체념한 듯한 그의 모습에 픽 하고 웃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오늘이었다. 영화제의 마지막날.
그 말인즉, 영화제의 피날레인 시상식이 바로 오늘이라는 걸 말했다.
“자자, 떨지 말고.”
“대표님이 지금 가장 떠세요.”
“알아. 안다고. 나 지금 무지 떨려. 근데 난 카메라 앞에 안 서잖아?”
직원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린 박 대표가 이어서 말한다.
“수상에 욕심부리지 말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이미 우린 최고로 잘했어. 이 동네 전체가 우릴 알아보잖아?”
“그것도 대표님이 가장 욕심나 보이는데···.”
“야잇······ 그래. 사실 욕심 나. 상 받고 싶어. 베니스에서도 받으면 우리 회사 영화가 지금 칸이랑 아카데미까지 세 곳에서 상을 받는 거잖아. 와 그거 진짜 군침돈다으아······ 이게 아닌데.”
애써 신포도로 만들려는 박 대표의 노력이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상을 받지 못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베니스 영화제는 우리를 초대하기 위해 원칙을 깼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수상은 줄 수 없을 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영화제의 원칙이란 건, 연달아 두 번이나 깨질 정도로 가벼운 게 아니었다.
“사실 저도 욕심나요.”
그럼에도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정말 의외였는지, 모두가 놀라는 눈치였다.
뒤이어 차도영이 움찔거리다가 슬쩍 손을 든다.
“저도요.”
이쯤 되자 다른 배우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도영이가 원한다잖아! 아 주라! 아 좀 줘!”
“그래! 좀 줘라! 그 뭐냐 월드프리뭐시기.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영화가 잘 만들어진 게 중요하지!”
“옳소! 베니스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덕분에 긴장이 풀린 배우들이 시시덕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시상식장.
목표는 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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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별들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베니스 영화제의 공식적인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우리는 그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꽤나 빛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쥘 수 없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나는 감독으로서 은사자상도 받지 못했다.
이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모든 게 당연하게만 흘러가진 않았다.
시상식이 끝났을 때, 우리는 하나의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또 한 번 원칙을 깨고, 상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3등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위원 특별상을!
특별상이라는 성격 때문에 가능했던 수상인지는 몰라도, 이 또한 유례없이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함께 지켜보던 전세계 배우들의 놀란 표정과.
이윽고 그럴만했다는 듯 인정하며 쏟아지던 기립박수는······.
다시 떠올려도 전율이 돋아날 정도였다.
어쨌든, 시상식은 끝났다.
이제는 별들이 아닌, 기자들의 시간이었다.
수많은 기사들이 은하수처럼 쏟아졌고, 그중엔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았다. 아니,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내가 작밍아웃을 했던 아카데미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상까지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모든 이들이 3등상인 우리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기사가 올라오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황금사자도 은사자도 포효하지 못한 밤이었다.
서커스가 시작되니, 길들여진 사자는 침묵할 수밖에.
조선유랑극단이 보여준 잔혹한 서커스가, 베니스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