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 (3)
베니스 영화제는 시상식이 끝나는 순간, 공식적으로는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다.
다만 심사위원들과 영화제 관계자들, 그리고 수상자들에게는 하나의 비공식 일정이 남아 있다.
바로 애프터파티.
파티라고하니 뭔가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상 가볍게 먹고 마시며 교류하고 서로의 노고에 대해 격려하고 칭찬하는 뒤풀이 자리였다.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이변을 들어 올린 우리도 이 뒤풀이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도 우리는 모든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고, 술이 어느 정도 오른 박 대표가 파티장 한쪽에서 감격의 축배를 들어 올린다.
“우리 영화사 영화가··· 칸, 아카데미, 베니스에서 전부 수상을···!”
···열 번째 같은 축배를 들어 올리고 있다.
“이게 다 우리 백 대표 덕분이야!”
“백 대표요?”
“아, 아니. 대표는 나지. 우리 백 배우, 백 감독······ 백 작가? 아잇, 하나만 해 하나만.”
“정말 하나만 해요?”
“아니! 아니지. 감독도 하고 작가도 하고 배우도 해야지. 내가 지금 무슨 소릴···.”
잔뜩 신이 난 박 대표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승결이라고 하세요.”
“그, 그럴까? 승결···아? 승결아! 아하핫, 야이 승결아! 가만있어봐. 나 딸내미한테 자랑 좀 해야겠다. 내 핸드폰 어디 갔지?”
두리번거리는 박 대표를 보며 웃다가 시선을 돌렸다.
시야에 보이지 않는 배우가 있어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도영이는요?”
“아까, 매니저랑 저기 테라스 쭉 있는 쪽으로 가던데?”
김성운의 대답에 슬쩍 발걸음을 옮겨본다.
가뜩이나 우리 쪽을 힐끔거리던 사람들 반, 다가와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 반이었던 마당에.
무리에서 벗어나자마자 동네방네 어그로가 끌려버렸다.
“감독님! 여기 계셨네요. 계속 찾아다녔거든요.”
“안녕하세요. 지난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잠깐 인사드렸었는데. ‘흉내자들’에 이어 이번 ‘조선유랑극단’도 정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악수와 악수.
“감독님, 정말 뵙고 싶었어요~.”
“네, 감사해요.”
그리고, 귓속말. 너무 가까운데···.
“이번 윤석 연기는 정말 여러 번 소름 돋았습니다. 굉장했어요.”
또다시 악수.
대여섯 걸음마다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거는 통에 인파 속을 헤집고 나오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끝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복도 쪽으로 나오자, 그 끝에 조용한 테라스들이 연이어 보였다.
무슨 공중전화 부스마냥 사람들이 나가 담소를 나누거나, 밀회를 즐기거나,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 앞에 서 있는 차도영 매니저와.
테라스 너머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인 차도영.
마침 전화를 끊었는지 핸드폰을 귀에서 떼는 차도영에 다시 걸음을 옮긴다.
차도영 매니저가 나를 보곤 가볍게 인사하며 옆으로 슬쩍 비켜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도영이 반색한다.
“아, 감독님.”
“뭐하고 있었어?”
“부모님이랑 통화했어요.”
“그래? 뭐라셔?”
대수롭지 않게 테라스를 가로질러 난간에 기댔다.
그러자 차도영이 잠시 머뭇거린다.
아차 싶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는데,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아티스 일이 세상에 밝혀진 이후로 계속······ 부모님은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얼마나 힘들었냐고. 몰랐다고. 그래서 더 미안하다고.”
“······.”
“그리고 더 이상 연기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필요했구나. 상.”
이곳에 오면서 들었던 의문이 이제야 해결된다.
그땐 그냥 상은 다 좋은 거니까··· 바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다.
“네. 다시 연기를 해도 될 만큼, 부모님을 안심시킬 만큼 아주 큰 상이요.”
“그래서, 상 받으니까 괜찮아졌어?”
“축하한대요. 그리고 고맙대요. 잘 버텨주어서.”
차도영이 또박또박 하는 말들은, 내게 여러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그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과거였으니까.
“감사해요, 감독님.”
“나한테 감사할 게 뭐 있나. 오히려 내가 감사하지.”
빙그레 웃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네 선택이 널 이 자리로 이끈 거야.”
촬영장에서 열연을 하던 차도영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에서 어린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잘할 수 있었는데.
그랬는데······.
“난 그때, 그 선택을 하지 못했거든.”
이 씁쓸한 말을 내뱉는데, 이상하게도 아쉬움이 자욱해지는 대신 도리어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차도영에 나 자신을 투영할수록, 마치 내 과거가 바뀐 듯 안도감이 들어서인 것 같았다.
나는 그 생각을 그대로 녀석에게 말했다.
“그런데 널 보니 그게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네. 꼭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를 바꾼 것마냥.”
어깨를 으쓱거리자, 차도영이 ‘음···’하고 뭔가를 생각하다가 툭 물었다.
“웹소설처럼요?”
“웹소설?”
엉뚱한 흐름에 고개를 기울였다.
“거기선 주인공들이 전부 회귀란 걸 하거든요. 과거로 돌아가는 거요. 그렇게 안 좋았던 과거를 바꿔요. 아주 멋지게요.”
간략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왜 녀석이 그렇게 물었는지 이해가 됐다.
“아, 그런 내용이구나···. 왜 그런 구조가 인기 있는지는 확실히 알겠네.”
나 또한 그런 기적을 바랐던 적이 있었으니까.
아니,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피식 웃으며 차도영에게 물었다.
“그치만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일어나진 못하잖아?”
“그렇죠.”
“근데, 그렇다고, 우리가 주인공이 아닐 필요는 없지.”
“···?”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대단하지 않아? 우리는 회귀 없이도 바꾸고 있잖아. 이렇게, 멋지게.”
그 순간, 차도영이 살짝 입을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고.
화려한 조명들이 소년의 눈동자에 머문다.
“······.”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오로라 아래에서 소녀의 손을 잡으며 느꼈던 감정이 다시 한번 나를 스치듯 지나간다.
‘이젠 좀 알겠네. 이 감정이 뭔지······.’
아직은 너무 작고 단편적이라.
당장 쓸 자신도, 연기할 용기도 없지만.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였다.
#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그러다 멈칫.
방황하는 눈동자.
“왜, 왜 네가······.”
떨리는 목소리까지.
분위기만 봐서는 전여친이라도 만난 듯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는 배불뚝이 아저씨다.
심지어 나와는 영 안 좋은 과거로 점칠 된.
“네가 왜 여깄는 거지?”
“최기석 실장님 대신 나왔어요.”
“그러니까 왜?”
“본부장님이 전 안 만나주시니까요.”
“······.”
말문이 막힌 우경철이 이내 얼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젠장···.”
“오늘 최기석 실장님한테 빌러 나오셨죠?”
그의 상황이 안 좋다.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끈 떨어진 연 앞에 강풍이 부는데, 비까지 온다.
그러니 최기석 실장한테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약속을 잡을 수밖에.
물론 그거에 순순히 응할 최기석 실장이 아니었다.
“걱정 마세요. 저한테 빌라는 말 아니니까. 최기석 실장님은 내가 대신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시지만, 제 생각은 다르거든요. 최기석 실장님과 다시 약속 잡으셔서 비세요. 어우, 난 마음이 약해서 안 돼.”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러자 우경철이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이거 지금 나보고 빌라는 건가? 하는 표정이랄까.
‘이러다 진짜 빌겠는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얘기 들었어요.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시라고.”
“그게 다···!”
확 언성을 높였던 그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며 작게 속삭인다.
“너새끼 때문이잖아.”
“아뇨, 본인 때문이죠.”
“······.”
오늘 참 여러 번 말문이 막히는 우경철.
“긴 싸움이 될 거예요. 최기석 실장님은 멈추지 않을 거고, 그 모든 과정을 길게 봐주기로 하신 분도 있고요.”
그가 잠시 본인 상황을 까먹은 것 같아 낮은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차례대로 소송에 당하실 겁니다. 과거 버리고 협박했던 이들에게, 지금 아티스에 날개를 잘라 가두다시피 한 이들이게, 그리고 결국엔 본인이 그렇게 일군 아티스에게까지. 다른 매니지먼트들은 옳다구나 침묵하거나 오히려 당신을 손가락질하겠죠.”
그리고 친절히 미래의 청사진까지 그려주었다.
“제가 과거 영화 실패의 제물이 되었듯이, 당신은 이 모든 사태의 제물이 되실 거예요.”
결국, 터져버린 우경철이 나를 보며 눈을 부릅뜬다.
“······은혜도 모르는 새끼! 네 아비가 그랬지. 아주 똑같네. 그 피 어디 가겠어.”
놈은 안다.
내 어디를 찔러야 가장 아픈지.
하지만 놈은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 피가 섞여 있는 건 누가 뭐래도 사실이니까. 다만, 많이 다를 거예요. 제 아버지는 한낱 돈에 무너졌지만, 전 아니거든요.”
나와 내 아버지가 어떻게 다른지.
“···뭐?”
나조차도 그것에 대해 확신이 없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지.
그게 내가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서 가져온 가장 큰 상이니까.
“전 아버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큰 걸 바라요.”
우경철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그게 대체 뭐냐는 듯한 눈빛에 답하지 않았다.
답한다고 이해할 리도 없고.
“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내가 내 아버지와, 그리고 당신과 어떻게 다른 길을 가는지.”
부들거리는 우경철을 보며 쯧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뭐, 앞으로 그럴 정신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
“승결이 형! 우리 왔어요!”
김주철이 덩치답지 않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백승결의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자 갸우뚱하며 멈춰선다.
“안 계시는 것 같은데요?”
뒤따라 들어온 김성운이 가장 가까운 화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여전히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
“그래? 어디 갔지. 우리가 너무 일찍 왔나. 현태한테 한번 전화해봐라.”
“옙.”
김주철에게 전화를 시키고, 김성운은 의아해하며 방문을 차례차례 열었다.
그러다 백승결이 연기 연습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 서재 문을 열어젖혔다.
역시나, 이곳에도 백승결은 없었다.
아무래도 집안에는 없는 것 같······.
“음?”
문을 닫으려던 김성운이 문고리를 붙잡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 안.
낡아 보이는 종이상자 하나가 뜯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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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걷는데.
바닥이 물결치는 듯 어지러웠다.
심장도 울렁거렸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이가 이 길 끝에 있었다.
신발 밑창이 아스팔트 위에서 폭염이라도 만난 것처럼 쩍쩍 달라붙는다. 실제로 그런 게 아니라 기분이 그렇다. 그만큼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길 끝에서 내가 찾던 곳에 다다랐다.
정사각형 작은 집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곳.
“B······137.”
그중에 내가 찾아온 집은 딱 내 눈높이에 있었다.
이 집이 맞다는 듯 반기는, 나와 비슷한 이름 석자.
탁—.
비로소 들고 온 사진을 내려놓았다.
주인이 여기 있으니, 그저 돌려주는 것이었다.
“저 왔어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