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 (完)
나는 기억력이 좋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저주에 가깝다고 느끼는 것은······.
과거 아버지에게 당했던 정신적 학대와 부모의 불화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전에 있었던 좋은 기억들까지 모두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엄마와 놀던 시간.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빠에게 안기고, 이에 감격스러워하던 웃음소리.
그것이 가져다주던 행복까지, 모두.
그래서 언젠가는 이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오직 선악과를 권한 우경철만이 나쁜 게 아닐까.
혹은 돈과 술이 문제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살아오면서, 기억 위에 또 다른 기억들이 쌓아 올려지면서,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경철도, 돈과 술도, 그저 핑계일 뿐이라는 걸.
그저, 아버지의 잘못이었다는 걸.
“그러니 서운해 말아요. 내가 어떻게 여길 오고 싶겠어요.”
그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애초에 그것에 대해 물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 괜찮아져서 온 건 아니고. 더 이상 미워하진 않겠지만, 용서하지도 않을 거니까.”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그리고 상관도 없었다.
이건 대화라기 보단 다짐에 가까웠으니.
“내가 오늘 여기 온 건,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내 최악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리며 사진을 응시한다.
“지금부터 등을 돌려 전속력으로 멀어질 겁니다. 거기가 내 최고일 테니까.”
담담하게 모진 말들을 내뱉고서, 나는 부탁했다.
“본인의 욕심을 위해 그토록 절 쥐어짜셨으니, 이젠 제 욕심을 위해 이용당해줘요.”
이게 내가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용서이기도 했다.
“······.”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사진을 눈에 한 번 더 담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복도가 길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펌프라도 누르는 것처럼 기억들이 솟아오른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배우로 복귀하는 순간과.
보란 듯이 해별이란 이름을 벗고 배우로서 성장하던 순간들.
내 뒤를 바짝 쫓아오던 아버지의 빚과 과오를 털어내고.
우경철조차 두려워할 높이까지 올라, 결국 그에게 복수를 하고.
내가 겹쳐 보이던 소년, 차도영의 상황을 해결한 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와의 정리까지.
크리스 감독은 글에 대해 말한 거지만, 그의 말을 내 상황에 빌리자면.
딱 여기까지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방금 끝난 것이다.
그리고 이 서늘하고 긴 복도를 나서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질 것을 알고 있다.
이를테면······.
‘그다음엔 자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해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는 이미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우경철이나 아버지가 생각했던 성공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욕심.
내겐 꿔도 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화목한 가족이란 꿈 말이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동시에, 내 인생에서도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물론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줄곧 고민해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내겐 마치 원죄같아서.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소리가 꼭 무슨 예정된 미래 같아서.
책임감을 빙자한 죄책감과 자괴감이 나를 꾸준히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베니스 영화제를 다녀오면서.
정확히는 차도영과 그의 부모가 나눈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그 족쇄를 벗어던지려 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자격이 생기는 걸까.
그 원초적인 질문은 결국 대답까지 뻔하고 고루한, 그럼에도 결코 쉽지 않은 다짐으로 끌어당겼다.
‘그래,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확실히 이것부터인 것 같다.
죄책감과 자괴감을 벗어던지는 것.
그러니까, 내가 나를 보살피는 것.
아주 간단한 논리였다.
내가 나도 못 보살피는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그러니 내가 나를 사랑해야겠지.’
그러면, 그때부터.
‘자격이 생기는 거겠지.’
복도가 끝났다.
어둡고 침침했던 안쪽과는 다르게, 입구엔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커튼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커튼을 걷어 젖히며 밖으로 나섰다.
어쩐지, 무대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
⌜자, 지금 저희는 대배우 백승결의 사생활을 취재하기 위해 그의 집에 들어와있······ 주철아, 카메라 가린다. 옆으로, 옆으로. 어, 그래.⌟
택시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며, 핸드폰으로 내 영상을 보고 있다.
몇 주 동안 쌓인 내 뮤튜브 게시물들이었다.
현태 형이 한 땀 한 땀 만들었을 결과물을 보며 나는 살짝 황당했다.
이 정도면 도촬 수준 아닌가?
현태 형의 카메라는 어느새 배우 백승결을 넘어 그냥 인간 백승결의 공간에까지 성큼 들어와 있었다.
물론 그걸 어느 정도 허락하긴 했다.
이 영상을 찍기 시작한 이유가 그거였잖아.
현태 형의 시선과 입을 빌린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 같아서. 좋고 멋진 사람 같아서.
그런 나를, 내가 보고 싶어서.
⌜자, 지금 차도영과 연기 연습 중인 것 같은데······.⌟
평소의 나.
이걸 보고 있다보면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조려지고, 이불을 천장 뚫을 듯 차버리고 싶다가도.
중간중간 보이는 나의 괜찮은 모습들에 흐뭇해진다.
특히 베니스 영화제에서 차도영과 함께하던 모습들.
[이번 영상 좋은데?]평소 안 하던 칭찬까지 톡으로 툭 보냈다.
답장은 없었다.
그러려니 하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어젖히자,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나를 반긴다.
침입자들이다. 근데 하도 침입해대니 이젠 내가 침입자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식탁에 둘러앉아 집주인을 경계하는 세 사람.
김주철이 스윽 일어나 허리를 굽힌다. 김성운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답장이 없던 현태 형은 어쩐지 내 눈을 피한다.
“뭐하세요?”
“같이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왜 여기서···.”
아니다. 뭘 새삼 묻고 있나. 한두 번도 아니고.
피식 웃으며 다가가 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김주철이 해죽 웃으며 부엌으로 달려간다.
“김치찌개?”
“넵. 형님 먼 곳에서 오시니까 이거 안 데우고 기다리고 있었······.”
냄비 앞에 서 있던 김주철이 멈칫거렸다.
이상함을 눈치채고 내가 물었다.
“내가 멀리서 왔는지 어떻게 알았어?”
“그, 그게···.”
결국, 옆에 앉아 있던 현태 형이 실토한다.
“미안, 내가 말했어. 너 아버지 보러 갔다고.”
“집에 오니 네가 없길래 현태한테 전화했거든. 마트에서 장 보고 있더라고. 너 집에 오면 혼자 있게 하기 좀 그렇다고.”
뒤이어 덧붙이는 김성운.
“연기를 이렇게 못한다, 우리가.”
허허 웃는 그를 보며 나도 가볍게 웃었다.
사실 말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꽤 고맙기까지 하다. 집에 혼자 있으면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 노트북 들고 카페나 갈까 싶었는데.
“맛있겠네요. 마침 배고팠는데.”
군침을 삼키며 엘리베이터에서 벗은 선글라스를 옆에 내려놓았다.
자연스레 김성운의 시선이 그곳으로 따라왔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요즘은 좀 어때?”
“뭐가요?”
“사람들 많으면 어지러워하거나, 그런 거.”
“그래. 이번에 베니스에서도 좀··· 어지러워했잖아.”
그들의 물음에 나도 선글라스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턴가 모자와 더불어 내가 꼭 챙기고 있는 물건 중 하나였다.
남들의 시선을 막아주는데 큰 도움이 되니까.
“······.”
원래 나는 그런 것들이 무섭지 않았다.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며 논란의 중심으로 끌고 다녀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 못하는 척을 이어나갔던 거다.
그런데 이젠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오히려 십수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졌다. 선글라스를 챙기는 게 자연스러워질 만큼.
“그러네.”
“응?”
실소가 새어 나온다.
내가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게, 솔직히 나조차도 살짝 걱정스러웠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 보니 이게 원래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사랑해야겠지.’
오늘 다짐한 생각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하려고 했는데.”
심각하게 물었는데, 얘가 왜 웃나? 어리둥절해 하는 김줠과 현태 형, 그리고 김성운을 보며 내가 웃었다.
“이미 시작했었나 봐요.”
#
이른 아침.
어젯밤 왁자지껄하게 집을 달구던 모두가 떠난, 널찍한 공간에서 눈을 떴다.
곧장 옷을 갈아입고 가볍게 동네를 뛰었다.
뒷산에 올라 한강 물 흐르는 것을 구경하다가, 내려오는 길에 찻집에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신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집이 그다지 공허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느낄 새 없이 씻고 나와 서재로 향했다.
책장 위에 꽂힌 여러 책들과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트로피.
그것들을 지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조선유랑극단’ 개봉 4주만에 1800만 돌파, 마의 2천만 초읽기 들어가나···> [‘조선유랑극단’이 쏘아 올린 신호탄은 한류만이 아니다. 할리우드 배우들, 아역 배우에 대한 관심과 인식 개선······> [아티스 엔터 배우, 가수 5인. 회사가 아닌 과거 매니저 상대로 고소···>자연스레 포털 사이트에 떠오른 몇 개의 기사를 슬쩍 훑어보다가 화면을 내렸다.
내 작품의 성공이 기쁘나, 예전 같지 않았고.
그 여파로 성공한 복수와 연쇄작용들이 뿌듯하나, 마냥 기껍진 않았다.
그냥 단순히 덤덤해졌다라기보단 뭐랄까.
비로소 고요해진 상태랄까.
그리고 나는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충분히 쏟아냈고, 마침내 비웠으니.
이제 다시 채울 차례라는 거다.
새하얀 백지를 화면에 띄웠다.
그 상태로 한참 동안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넘쳐난다.
다만 무엇부터 여기에 적어 내려가야 할지, 그것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꼭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이야기일 필요는 없겠지.’
모두가 내 차기작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정작 나는 지금 떠올린 이 작품이 내 차기작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꼭 이 자리에서 완성시킬 필요도 없고.’
애초에 지금 당장 완성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기엔 내 경험이 부족했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선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였고.
동시에 지금부터 틈틈이 완성해나가야 할 이야기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 순간, 나는 작가가 된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그린다. 카메라 앵글부터 소품, 그리고 배우의 표정까지 세세하게.
그렇게 나는 감독이 된다.
뒤이어 대사를 써 내려갈 때면, 나는 작가의 창조와 감독의 관조를 벗어나 이야기 속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간다.
그곳에서 나는 더이상 백승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존재로 충만해지니.
나는 배우(俳優)였다.
#
깜빡··· 깜빡··· 깜빡···.
타닥, 탁—.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이야기 (가제)]깜빡··· 깜빡··· 깜빡···.
타다닥, 탁—.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깜빡··· 깜빡··· 깜빡······.
타닥탁, 타닥—.
[내가 코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