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2)
대원군 (3)
막장이든 웰메이드든, 드라마의 마지막이 새드 엔딩으로 치닫길 바라는 시청자는 거의 없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마음을 써서 응원해온 주인공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을 테니까.
‘종갓집 막내딸’의 마지막 회를 시청하는 굿픽쳐스 박 대표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대박이다, 대박.”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딸이 어느새 엉덩일 붙이고 앉아 목을 쭉 뺐다.
티비 화면은 안주연의 가족을 비추고 있었다.
영화를 본 가족들의 눈물을 보며 안주연이 울음 섞인 미소를 짓는다.
제 허벅지를 찰싹찰싹 두드리던 그녀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왕이면 막 스타 되고 헐리웃 진출했다는 후일담까지 나오면 좋겠는데··· 근데 그건 좀 오바니까 이만하면 난 만족! 잘 됐다, 그치?”
“잘됐네···.”
“엄마 울어?”
“넌···.”
“응?”
“넌 뭐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거 없어? 엄마가 못 하게 한 거 없어?”
울먹이는 목소리에 핸드폰과 티비를 번갈아 보던 박 대표가 황당한 표정으로 끼어든다.
“있겠어? 쟨 뭐 허구한 날 나가서 노는 것만 좋아하는데.”
“너무하네, 진짜.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걸? 나 옛날에 발레도 하고 싶었고······ 근데 아빠 기분 좋아 보인다? 딸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어?”
“딸아. 아빤 너 놀린 거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쳇.”
“그리고 아빠가 기분 좋은 건 백승결 주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서야. 반응이 안주연 데뷔했을 때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댓글들 중에서 백승결 팬 됐다는 사람들만 극장에 와도 그게 몇 명이냐······.”
말끝을 흘린 박 대표가 할 말을 잃은 딸을 힐끗 보더니 갑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그의 손에는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까먹을 뻔했네. 이거 받아.”
“이게 뭔데?”
“시사회 티켓. 주말에 친구들 만나서 영화 보라고. 너랑 친구들도 백승결 팬 됐다며.”
“그렇긴 한데······.”
손에 들린 봉투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이거 재밌어? 스케일도 작고, 내용도 무겁고. 우리가 보기엔 좀 그래 보이던데.”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마라. 아빠가 영화사 대푠데 영알못 소리 들으면 되겠어? 내부 시사회에서 이미 난리 났어. 그러니까 아빠 믿고 한번 봐봐.”
#
며칠 뒤, 박혜진은 아빠에게 받은 티켓을 가지고 친구들과 모였다.
아직 술 마시기엔 이른 시간이라, 카페에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대신 강남에서 시사회를 보기로 했다.
한껏 차려입고 만난 그녀들은 화장품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 맞춰 영화관으로 향했다.
“혜진이 덕분에 매년 시사회 한두 개씩은 보는 거 같네.”
“그니까. 근데 이번엔······ 어, 사극이네?”
친구들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박혜진이 어깨를 들썩였다.
“나도 기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야. 아빠가 만들었으니 딸 된 도리로 보긴 하는데, 솔직히 노잼일 거 같거든. 그냥 큰 스크린으로 백승결 얼굴 보러 왔다 생각하자.”
“오면서 찾아보니까, 백승결은 예고편에서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 사람들이 또 백승결 숨기기냐고 말 많던데. 왜 ‘종갓집 막내딸’에서도 꽁꽁 숨겼었잖아.”
“그게 분량이 엄청 적어서라던데?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 연기력이 엄청나서 단역 정도로만 쓰였을 거래.”
“그래? 아빠 얘긴 그렇지 않던데······.”
어째 자신보다 더 백승결의 팬이 된 것 같은 아빠를 떠올리며 갸우뚱하는 박혜진이었다.
“그래도 이 영화, 평론가들 반응이 엄청 좋더라. 의외로 재밌으면 좋겠다.”
“평론가들이 좋아하면 재미없는 게 국룰 아님?”
“나 과제 때문에 밤샜어. 영화 시작하면 딥 슬립할지도 몰라.”
“아예 푹 자고 밤에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기대감을 부풀리긴커녕 덜어내며 도착한 영화관.
가장 먼저 매점으로 향한 그녀들은 양손에 팝콘과 음료, 오징어 등을 끼고 상영관에 들어섰다.
상영 5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안에는 사람들이 꽤 바글바글했다.
관객 시사회다 보니 대부분 일반인이었다.
가끔 유명인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운이 없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기야, 여기.”
지정된 자리에 주르륵 앉아 기다리자, 이윽고 천천히 사그라드는 조명.
화면 크기가 조정되며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수군거리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배급사와 굿픽쳐스의 로고가 떠올랐다 사라진다.
영화는 흥선군이 서예와 그림을 배우는 것부터 보여주었다.
마치 흑백영화인 것처럼 채도 빠진 색채로 그의 소년기를 느릿하게 그려나갔다.
정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은 없었다.
박혜진과 친구들은 가랑비에 젖듯, ‘대원군’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렇게 흥선군의 행복했던 소년기가 끝나고, 갑작스레 부모와 맏형을 잃으며 인생에 굴곡이 생기는 순간.
영화의 색채가 조금씩 짙어지기 시작한다.
슬픔에 힘들어하던 그는 홀로 이 세상을 버틸 새로운 동기를 찾았다.
야망. 그것을 품게 된 흥선군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철종의 후사가 없음을 눈여겨보던 그의 눈길이 자신의 아이에게 닿았고.
그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킬 방법을 깨닫게 된다.
그 시점부터 영화는 흥선군의 야망을 형상화하듯 화려한 색채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색감 진짜 예쁘다······.”
옆 친구가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그것에 완전 동의하면서도 어쩐지 감탄 대신 몸이 움츠러든다.
아름다운 영상미와는 다르게, 영화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기 때문.
마치 팽팽한 줄을 양 끝에서 끝도 없이 잡아당기는 듯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바짝 긴장하게 된다.
그렇게 한참 동안 보다가 깨달았다.
“근데, 백승결은 왜 안 나오냐.”
“···그러게.”
잠시 소곤거리고 다시 영화에 집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장면이 전환되며 흥선군이 고즈넉한 정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한 남자.
그 모습을 슬로우로 보여주던 화면이 마침내 남자의 얼굴을 담았다.
[고종]자막 위로 나타난 이는 백승결이었다.
팔을 툭툭 치며 ‘나왔다, 나왔다’ 속삭이는 친구를 무시하고 대사에 집중했다.
⌜갑자기 어인 일이십니까, 상감.⌟
흥선군이 대화의 포문을 열었고.
그때부터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짐은··· 한 번도 내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어.⌟
백승결이 연기한 고종이 감성을 터트릴 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격정적인 대화의 끝에서, 흥선군의 얼굴이 화면 가득 담겼다.
안면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보일 정도로 가깝게.
순간,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불길이 번지고,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다.
······그런 미래를 잠시 떠올린 흥선군.
그의 눈빛이 아득해졌다.
오묘한 표정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지며, 방금전까지도 날뛰던 색채가 점차 가라앉는다.
처음처럼, 흑백에 가까운 채도로.
그것을 넘어서, 검은 화면으로.
“······.”
페이드아웃과 함께 영화가 막을 내렸다.
곧바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조명들이 다시 밝아졌지만, 1, 2초 정도의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 뒤엔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옆에 앉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마지막 장면에서 넋 놓고 봤어. 연기력이 무슨··· 어우 잠깐만 목 뻐근해.”
“넌 밤샜다며. 안 졸았어?”
“야, 이걸 보면서 어떻게 졸아. 너무 재밌는데? 혜진아, 대박이다. 얼른 아버지한테 지금까지 시사회로 본 영화 중에서 최고였다고 전해드려!”
친구들의 극찬에도 여전히 멍한 표정이던 박혜진이 고갤 돌렸다.
엉덩일 붙이고 호들갑을 떠는 건 자신의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야, 이거 뭐냐. 졸라 재밌네.”
“기대 1도 안 했었는데 괜찮다. 영상미도 끝내주고 연기력들이 무슨···.”
“마지막 장면에서 백승결은 진짜··· 드라마에서도 연기 잘하긴 했지만, 여기선 완전 차원이 다른데?”
꽤 많은 이들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떠드느라 좀처럼 상영관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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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카페에 앉아 핸드폰을 훑고 있었다.
아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배우 스카웃과 관련된 일을 총괄하는 최 실장.
그는 영화 ‘대원군’의 반응을 꼼꼼히 살폈다.
[오늘 친구들이랑 ‘대원군’ 시사회 보고 왔는데, 영화 잘 만들었더라. 영상미가 진짜 난리 나고, 배우들도 몇몇 빼고는 전부 낯선데 연기력 미쳤고. 그중에서도 마지막 씬은 진짜 역대급!]—시사회 반응 좋다는 소문 돌긴 하더라.
—그놈의 시사회는 맨날 반응 좋대. 그래놓고 까보면 죄다 지뢰고.
—근데 대원군은 지뢰 아녜요. 진짜 수작입니다! 흔한 국뽕 요소는 싹 빼고 가장 암울한 시기 직전을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욕심부리는 게 이해 가기도 했다가, 그래도 어리석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가··· 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네요.
—윗댓처럼 티나게 빨아주는 알바들 보니까 더 믿음이 안 감. 100만도 못 넘기고 일찍 내려갈 듯.
—솔직히 난 취향에 안 맞았음. 근데 연기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글쓴이가 말한 마지막 장면에서만큼은 무표정으로 보다가 소름 돋았음.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임에도 시사회를 본 이들의 반응이 뜨겁다.
오히려 경쟁작인 ‘어른들의 밤’이나 ‘Suddenly’의 반응이 심심할 정도였다.
“그럴 만했어. 솔직히 잘 만들었지.”
그가 주억거리며 게시글에 추천을 눌렀다.
시사회를 본 지 며칠이 지났지만, 그때의 생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영화는 매력 있고 연기는 대단했으며.
그중에서도 백승결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
욕심이 확 솟아 윗사람에게 얘기했더니 그 정도냐며 한번 만나보라는 대답을 들었다.
‘백승결 그 녀석, 안 그래도 연락처 남겨 놓으라고 했는데 연락이 없네. 자네가 그 정도로 탐이 난다면 얼른 계약서에 도장 찍게 해. 영화 개봉하고 나면 늦어. 먼저 손에 쥐고 있어야 대박이 나도 내 손에서 나는 거야.’
윗사람의 태도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늦는다는 생각만큼은 같았다.
영화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대원군’이 개봉하면 백승결은 무수한 사람들 입에 회자될테니까.
그런 연기를 보여줬는데 묻히는 게 더 이상하지.
게다가 심지어 흥행까지 성공한다면?
‘그때가 되면 늦지. 늦어.’
슬쩍 시간을 확인한 그가 옷매무새를 점검한다.
그때, 윗사람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경철 본부장.
발신인을 확인한 그가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갔다.
“네, 본부장님. 안 그래도 지금 만나러 왔습니다. 제가 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뇨, 기분 나쁘긴요. 배우가 바쁘면 제가 발로 뛰어야죠. 그리고 저도 엄청 팬이었는 걸요. 예.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 실장이 목이 타는지 커피잔을 들어 올린다.
때마침 카페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들어왔다.
청년의 얼굴을 확인한 최 실장이 얼른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그가 환하게 웃으며 백승결에게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