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4)
욕심 (2)
우리는 대기실에서 나와 상영관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가장 규모가 큰 8관···을 지나, 7관도 지나, 건너편 5관으로.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걷던 김상억이 우릴 안내하는 직원에게 슬쩍 물었다.
“8관에선 지금 뭐가 상영 중입니까?”
“지금 아이맥스관이랑 8관은 ‘Suddenly’가 상영 중일 거예요.”
“7관은요?”
“음, 지금··· ‘어른들의 밤’이겠네요.”
쩝, 하고 입맛을 다신 김상억이 괜히 아쉬운 얼굴로 끄덕였다.
이에 직원이 얼른 덧붙인다.
“저희 영화관이 워낙 규모가 있다 보니 5관도 다른 영화관에서 가장 큰 관하고 크기가 비슷합니다.”
뒤이어 안원상 감독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쉬워할 거 없어. 애초에 들어간 돈이 다른 영화들이잖아. 중요한 건 관객 반응이지.”
“그렇죠. 맞습니다. 욕심부리지 말자, 김상억.”
김상억이 스킨 바르듯이 자신의 양볼을 두드리며 말했다. 볼이 빨개졌는데, 괜찮나.
“막 영화 끝났습니다. 지금 안내 멘트 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무전기로 대화를 나눈 직원이 우릴 멈춰 세웠다.
그러더니 두터운 문을 살짝 열어젖힌다.
안쪽에서 사회자의 멘트와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자리가 꽉 찼다는 얘긴 아까 전해 들었는데, 반응은 과연 어떨까.
시끌벅적한 상영관 안쪽과 마른 침만 삼키는 우리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달라졌을 때쯤, 사회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우릴 소개했다.
—이제, 배우분들을 자리로 모셔볼까 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순간 누가 축구 경기 영상을 틀었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어? 하는 사이, 직원이 ‘들어가시면 됩니다!’라고 외쳤다.
안원상 감독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이태관 배우가, 그리고 김상억과 이준혁이 뒤따른다.
가장 맨 뒤에 내가 따라붙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팍팍 터진다. 환호성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점점 더 커졌다.
스멀스멀 올라오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물결치는 관객석을 보며 입꼬리도 따라서 들썩인다.
멋진 풍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윽고 우리가 일정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서자, 안원상 감독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인사를 하자마자 아까부터 궁금했다는 듯 관객석에 솟아오른 피켓을 가리켰다.
“아니, 오늘 개봉했는데 어떻게 벌써 재밌다는 피켓이 있는 거죠?”
“저, 시사회에서 봤어요! 너무 재밌어서 티켓 열리자마자 예매했어요!”
“와, 시사회 보고 오늘 또 오신 거예요? 혹시 저분처럼 시사회 보신 분들 또 있나요?”
우르르 손을 든다. 꽤 많다.
안원상 감독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자 아까부터 맨 앞자리에서 엉덩일 들썩거리던 관객이 외쳤다.
“다음 주에 또 볼 거예요! 두 번으론 부족해!”
배우들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안원상 감독이 마이크를 이태관 배우에게 넘겼다. 굵직한 목소리로 담백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
이어서 김상억과 이준혁이 차례대로 인사를 마쳤다.
마침내 내 차례.
마이크를 손에 쥐자 관객들은 내가 주연이라도 되는 것처럼 환호를 보내주었다.
부러워하는 김상억과 이준혁의 눈빛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부러 ‘내가 이 정도야’라는 표정으로 거만하게.
그 모습에 환호가 웃음으로 바뀐다.
옅은 미소를 장착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웃음이 그치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나는 인사보다 먼저 다른 얘길 꺼냈다.
“이미 보셔서 다들 아시겠지만, 사실 제가 이 영화에서 한 장면밖에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서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김상억이 끼어들었다.
“당신만 몰라. 그렇죠?”
울림통이 커서 그런가. 마이크 없이도 성악 하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멀리 뻗어 나간다.
“맞아요! 연기 미쳤어요! 완전 씬 스틸러!”
“그 정도면 한 씬이어도 주연이죠!”
객석에서 번지는 동조의 목소리에 나는 웃음을 머금고 감사하다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하려던 말은 따로 있었다.
“제작사 대표님께 이 생각을 그대로 말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한 씬 밖에라고 하기엔 그 씬을 위해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였다고.”
힐끔 옆을 보니 가장 끝에 선 안원상 감독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주억인다. 그리고 그건 배우들도 마찬가지.
“그 말을 듣고 이 자리에 서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씬, 한 씬을 위해 노력하신 수많은 스태프분들을 대신해서 서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매듭짓고서, 얼른 분위기를 전환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반갑습니다. ‘대원군’에서 고종역을 맡은 백승결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목소릴 높이며.
부유하는 모든 감정을 담아 관객들을 향해 인사한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내 머리 위로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상영관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
‘대원군’은 개봉 첫날 3만을 돌파했다.
OTT 시장이 활짝 열리며 초유의 침체기를 겪고 있는 극장에서, 대형작 두 개 사이에 낀 작품이 이만한 성적이면 충분히 괜찮은 출발이라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지 관객수가 가파르게 늘었다. 학생 때 시험 문제에서 본 것 같은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그래프가 그려졌다.
수학은 담을 쌓아 그래프 울렁증이 있었는데, 방금 치료됐다. 싹.
개봉 첫 주는 그렇게 희소식들로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주. ‘대원군’을 향한 관심은 식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불탔다.
‘Suddenly’는 억지스럽고 ‘어른들의 밤’은 유치하다는 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원군’은 의외로 재밌다는 소문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끊임없이 퍼진 거다.
그렇게 개봉 둘째 주 첫날. 20만 관객이 ‘대원군’을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몰려들었다.
며칠 후, 100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우리는 계속 무대 인사를 돌았다.
대구, 울산, 목포, 부산···.
택배 일을 할 때도 거진 서울 중구 안에서만 돌아다녔던 터라 전국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피곤은 해도 눈은 똘망똘망 뜨고 다녔지.
그리고 오늘이 8번째 무대 인사였다.
오랜만에 서울. 그것도 이미 한 번 했었던 압구정에서.
잡혀 있던 무대 인사는 모두 끝났지만, 성적이 확 좋아지니 굿픽쳐스와 배급사가 ‘감사 무대 인사’라는 컨셉으로 앙코르를 잡았다.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인다.
핸드폰 너머의 현태 형이 말했다.
—그렇게 택시 타라고 했더니, 이제야 택시를 타는구만.
“지난번에 대중교통에서 알아보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인 것 같더라고.”
—잘했어. 난 일부러 소탈해 보이려고 전철 타는 연예인들 별로더라.
나는 소탈해 보이려는 게 아니라, 소탈할 수밖에 없는 거긴 한데···.
—그나저나, ‘대원군’ 반응이 장난 아니던데?
“응, 좋은 것 같더라.”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일이냐. 아주 난리더만. 지금 개봉한 것들 중에서 제일 티켓 값 안 아깝대.
“누가?”
—다들 그래. 요즘 영화값 또 오른다고 해서 다들 민심이 안 좋았거든. ‘어른들의 밤’ 본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알아? 유혈이 낭자하는 아동영화래. 그 돈 주고 볼 게 아니란 거지.
“제 매니저세요? 그만 검색해.”
—궁금한데 어떡하냐. 반응 보면서 내가 다 흐뭇해 죽겠는데. 아까 뭐라더라. 잠시만··· 어, 여깄다. 백승결 이런 연기력 어떻게 숨기고 살았냐. 빨리 돌아오지. 아니, 지금이라도 돌아와 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크으, 들었어?
“···녹음도 했어.”
—흐흐, 아예 좋은 댓글들 캡처해서 보내줄게. 넌 검색하지 마라? 부러워서 욕하는 새끼들 몇놈 때문에 괜히 소중한 멘탈에 흠집 날라.
알겠다는 확답을 받아낼 때까지 신신당부한 현태 형이 쯧쯧 혀를 찬다.
—그러게 다들 왜 애한테 그렇게 부담을 줘서. 이렇게 잘하는 앤데 말이야. 부담감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나도 사장님한테 부담 좀 주지 말라고 말해야겠다.
“형은 부담이 약이 되는 스타일이잖아.”
—야, 그건······ 부정할 수가 없긴 하지. 넌 날 너무 잘 알아. 네가 내 상사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킥킥거리며 혀를 내두르던 형이 갑자기 목소릴 늦추며 은근하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 개런티는 차곡차곡 잘 모으고 있는······.
그 타이밍에 대기실 문고리를 잡아당기다가 멈칫했다.
현태 형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 안 상황 때문에.
얼른 전화를 끊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각양각색의 풍선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뭐예요?”
어서 오라며 다가오는 이준혁에게 물었다.
그가 헤벌쭉 웃으며 한쪽 벽을 가리켰다.
[100만, 정말 감사합니다!]“오늘 아침에 집계됐대요. 심지어 108만.”
“그래서 이 선배님까지 오시면 사진 찍어 올리려고.”
삐뚤어진 풍선을 섬세하게 고정하던 김상억이 다가와 덧붙였다.
108만이라고? 손익분기점이 12만밖에 남지 않은 숫자였다. 불과 2주도 안 돼서!
내 얼떨떨한 표정에 소파에 앉아 지켜보던 안원상 감독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중요한 건, 입소문이 계속 퍼지고 있다는 거야. 아직 제대로 된 스퍼트는 받지도 않았다는 거지.”
#
안원상 감독의 말이 현실이 된 건, 100만을 돌파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우리는 200만 돌파라는 레터링 풍선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가장 들떠 보이는 건 역시 김상억과 이준혁이었다.
그들은 무대 인사 전부터 끌어올린 텐션 그대로, 술자리에서까지 잔뜩 들떠있었다.
“이거 봐요. 난리라고요!”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그 말 저번에 하셨어요.”
“···또 올 줄이야!”
그들을 지켜보며 허허 웃던 안원상 감독이 날 돌아본다.
“역시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서 그런가. 승결 씨는 침착하네?”
“···?”
그럴 리가. 지금 심장이 이렇게 벌렁벌렁한데.
나한텐 오히려 10년도 더 된 ‘해별이네’의 성공보다 지금이 더 흥분된다.
오해라며 정정하려는데, 이태관 배우가 몇 마디 거들었다.
“그땐 지금보다 더했지. ‘해별이네’는 지금도 한국 영화 열 손가락에 드는 초대박 영화가 됐잖아.”
“하긴, 그때 열기가 대단했죠. 확실히 승결 씨한텐 별일 아닐 수 있겠네.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어.”
“아뇨, 아닌데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봤자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 죄다 날 놀리려는 사람들뿐.
그래서 그냥 삐뚤어지기로 했다. 몰라,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맞습니다. 뭐 이 정도로 신나셨어요, 다들. 곧 300만도 갈 텐데.”
에라 모르겠다 던진 말에 다들 웃는다.
그때 이준혁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들썩거렸다.
“맞다, 저희 300만 공약 걸어야죠?”
“그런 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내 생에 이런 날이···.”
“또또 오셨네요. 되게 자주 오시네. 아무튼, 뭐 할까요? 300만 공약!”
김상억의 말을 싹둑 자른 이준혁이 우릴 훑었다.
모두가 입을 다문 채로 생각을 이어간다. 늘 무게감 있던 이태관 배우조차도 골똘히 고민 중이다.
그때 안원상 감독이 말했다.
“난잡하게 하면 별로일 거 같은데. 딱 이 선배님만 하는 게 나아.”
“결국, 난 해야 한다는 거지?”
“그럼요. 선배님은 하셔야죠.”
단호한 반응에 이태관 배우가 뒷머릴 긁적인다. 그러다 이내 끄덕이며 툭 던지듯 말했다.
“그래. 공약은 내가 할게.”
“쩝, 한 명만 해야 한다면 선배님이 하시는 게 맞긴 하죠.”
김상억이 아쉬워하며 술잔을 들었다.
템포가 너무 빠르다며 괴로워하는 안원상 감독과 이준혁.
그사이에 앉아있던 이태관 배우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신 자네들은 고민을 좀 해.”
“어떤 고민이요? 선배님께서 어떤 공약을 해야 할지요?”
“흥선군 복장으로 프리허그 어떠세요?”
“언제적 공약이에요. 요즘은 어디 방송 출연하겠다, 뭐 이런 거. 그동안 예능 잘 안 나가셨죠? 예능 나간다고 하면 대박일 거 같은데.”
이런저런 말을 하며 잔을 부딪쳤다.
술잔을 쭉 비운 이태관 배우가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젓는다.
“공약 말고. 앞으로 어떡할지 고민하라고. 자네들에겐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거니까.”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김상억과 이준혁의 표정도 가라앉았다.
두 사람을 훑은 이태관 배우의 눈이 나에게까지 다가왔을 때, 그가 덧붙여 말했다.
“이번에 계약 얘기 중인 회사가 있는데, 거기에 자네 세 사람을 추천할까 해. 자네들 의견이 먼저라 지금 이렇게 묻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