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7)
이게 가능하다고? (2)
갑작스러운 부름에 의문이 가득한 유종원 PD였다.
자신의 담당 CP(-산적 CP)도 아니고 양진호 CP가 갑자기 왜?
물론 과거엔 양진호 CP가 그의 담당이었던 적도 있고, 그와 함께 있는 이진태 PD도 친분이 있었기에 그는 도착하자마자 터놓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내가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뭘요?”
“해별이··· 아니, 백승결 말이야. 어땠어? 넌 최근까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잖아.”
대충 어떤 상황인지 눈치챈 유종원 PD가 곧바로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냈다.
“아, 뭐야. 제 드라마 안 보셨어요?”
“야야, 내가 맡은 드라마가 네 개다. 하반기에 각본 공모전도 있고.”
“일일드라마라 이거죠? 드라마 차별주의자이신 줄은 몰랐네.”
“드라마 차별주의자 같은 소리 하네. 알았어. 볼게, 볼게. 근데 그거 다 보고 나면 캐스팅은커녕 얘 드라마 이미 방영 중이야.”
양진호 CP가 옆에 앉은 이진태 PD를 가리켰다.
“그니까 장난 그만치고 말해 봐. 백승결 어때? 아직 작품이 별로 없어서 판단하기 애매하다는 건 아는데, 내가 궁금한 건 연기력보단 성격, 성향 뭐 이런 부분. 현장에서 제작진하고 궁합은 또 다른 문제잖아.”
질척거리던 이야기가 진척되자, 유종원 PD도 연기를 그만두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윤지수 작가님 때문이에요?”
“어떻게 알았어?”
“보아하니 진태가 승결이를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제작진하고 궁합 얘길 하는 거 보니 승결이를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고. 진태가 윤지수 작가님하고 드라마 촬영 중인 건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올해 하반기 기대작인데.”
셜록 홈스에 빙의한 듯 청산유수로 추리를 쏟아낸 유종원 PD.
양진호 CP는 방송국 짬바가 무섭긴 하다며 끄덕거렸다.
“맞아. 윤지수 작가가 캐스팅에서 진태랑 좀 부딪히나 봐.”
“놀랄 일도 아니네요. 그 양반 사람 가리는 건 유명하잖아요. 히스테릭하고. 그만큼 자기 사람한텐 잘 하지만 그 바운더리에 들어가는 게 어렵고. 그러고 보면 우리 서 작가가 진짜 착한 거야.”
유종원 PD가 문득 깨달은 사실에 뒤늦은 감사함을 느끼는 동안, 이진태 PD는 백승결이 윤지수 작가 눈 밖에 난 이유를 리플레이했다.
“음. 그런 거라면 별 문제 없겠는데요?”
전말을 들은 유종원 PD가 대수롭지 않게 툭 말한다.
이에 CP는 이진태 PD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답답해했다.
“문제가 별나니까 얘가 나한테까지 온 거 잖아.”
“일단 한 번만 보라고 꼬드겨 봐요. 진태는 몰라도 CP님 부탁이면 그 정돈 들어주겠지. 그 다음부턴 승결이한테 맡기면 될걸요?”
“백승결한테···?”
“제가 그랬거든요. 서은영 작가가 괜찮지 않냐고, 한 번 불러보자고 그래서 별 기대 없이 불렀는데. 얘길 나눠보니 그 친구, 연기력도 연기력인데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어요. 응원하고 싶게 만들어. 우리 팀은 서은영 작가부터 막내 FD까지 전부 팬 됐다니까요.”
적어도 연예계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란 건 영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다. 마치 감이라는 게 연기력이나 섭외력처럼 능력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곳이니까.
서은영 작가가 꽂혔던 것도, 이진태 PD가 이고초려를 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라면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도 양진호 CP가 듣고 싶었던 종류의 대답은 아니었다. 여전히 확신이 안 선다.
“그게 끝?”
“아뇨, 그게 시작.”
첫 미팅에서의 모습이 트리거가 되었는지 유종원 PD의 머릿속에 이후의 기억들이 실타래처럼 풀렸다.
자기 자신 챙기기도 버거웠을 첫 촬영에서 다른 배우까지 챙기는 여유하며, 그 방식의 센스. 그리고 통째로 외워온 대사와 닳고 닳은 대본.
다음 촬영에서도, 그 다음 현장에서도.
백승결은 처음 인상적였던 그 모습을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려 나갔다.
늘 일일드라마라는 틀에 맞게, 적당하면서도 꾸준히 적정선을 높이는 연기로.
‘심지어 70회분의 대본을 전부 통째로 외웠······.’
기억을 곱씹던 그가 끝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하다 보니 기가 막혀서.
한편, 말문을 열어놓고 눈알만 굴려대는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양진호 CP와 이진태 PD.
그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유종원 PD는 자신의 감탄을 마저 표현했다.
“허, 그러네.”
“뭐가 그래?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
“아뇨, 정신없이 촬영할 땐 그러려니 했는데······.”
“했는데?”
“돌이켜보니 뭐 그런 괴물 같은 녀석이 다 있었나 싶어서요.”
#
“자, 그래서 이번엔 대원군 개봉 이후의 반응에 대해서 얘길 해볼까 합니다.”
텅 빈 카페 옥상.
남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기는 배경을 두고, 몇 장의 사진을 찍고서 자리에 앉았다.
물 흐르듯 인터뷰를 이끌던 잡지사 에디터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단 한 씬. 이 한 씬만에 관객들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하셨어요. 저도 마지막 장면에서 이태관 배우님하고 주고받는 연기를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모 영화의 유행어처럼 ‘해별이 돌아왔구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감사한 일이죠. 좋아해 주시는 관객분들에게도, 그런 연기의 판을 깔아주신 감독님과 스태프분들, 그리고 상대 배우이신 이태관 선배님께도요.”
“겸손하시네요. 이태관 배우님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셔서 화제였어요.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좋은 배우들을 놓치곤 한다고.”
“저를 콕 찝어 말씀하신 건 아닐 거예요. 함께 연기했던 김상억 선배님이나, 이준혁 배우도 있으니까요.”
“그분들도 영화에서 대단한 씬스틸러셨죠. 아무튼, 저도 에디터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작품이나 감독, 때로는 배우를 너무 쉽게 평가했던 게 아닌가.”
그렇게 말한 에디터가 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배우님만 해도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부담감을 느끼셨겠어요. 감당하기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담감만 아니었어도 우리는 천재 아역으로 유명했던 배우님의 연기를 계속 볼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대원군을 너무 재밌게 본 관객으로서, 지금이라도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얘기해주셔서 감사하네요.”
마주 보고 고갤 기울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저 말이, 사람들의 오해가.
나는 억울한 건지.
부담감 따위가 아닌, 내 선택이었다고.
가족을 지키고 싶은 어린 마음에 그렇게 했다고.
나의 연기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기력을 숨기는데 모두 사용되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지.
역시, 아니었다.
내 흑역사를 지우는 대가로 우리 가족의 비극을 밝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곳은 어두운 것으로 충분했다.
다만······.
“근데, 부담감 때문 아니었어요.”
“네?”
“제가 어렸을 때 연기 못 했던 거요.”
딱 여기까진, 이 정도는.
솔직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흐린 진실로 선명한 오해를 바로 잡았다.
“그땐 그냥, 최선을 다 하지 않았거든요.”
꾹 참았던 나를 위해서.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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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대쪽 끝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던 김성운이 곧바로 다가온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나머진 에디터님께 맡겨. 잘 써주실 거야.”
어깰 두드리며 싱긋 웃는 김성운.
그의 말에 함께 내려온 에디터가 웃음을 터트리며 끄덕거렸다.
“물론이죠. 잘 써드릴게요. 근데 아무리 잘 써도 사람들이 사진만 볼 거 같은데요? 배우님 얼굴이 작품이라 그거보다 잘 쓸 자신은 없는데~.”
여유롭게 받아치는 에디터의 반응에 한참을 웃다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밴으로 항했다.
“인터뷰 요청이 점점 많이 와. 그만큼 관심이 많아진 거지. 이슈에 목맨 기자들이 많아서 대부분 거절하고는 있지만 회사의 이해관계도 있다 보니 오늘처럼 몇 개는 해야 할 것 같아. 물론 모두 너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써줄 기자들이야.”
“인터뷰도 좋고, 관심도 좋지만 그래도 작품이 많이 왔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없나요?”
내 물음에 운전석에 올라탄 김성운이 안전벨트를 끌어당기며 픽 하고 웃었다.
‘왜 없겠어.’라며 설레는 추임새를 뱉은 그가 조수석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가방을 뒤지며 넌지시 말했다.
“‘그림자 변호’있잖아. 네가 고사했다던.”
“네.”
“그 작품에서 다시 연락이 왔더라고. 널 콕 집어서.”
다시?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작품을 기다리긴 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와서.
‘사전제작이라 이미 초 중반 촬영은 모두 끝났을 텐데?’
그때 내가 받았던 역할이 5화였으니까 그 부분은 진즉에 촬영이 끝났을 거고······.
그때 ‘여깄다.’라며 가방에서 대본을 꺼낸 김성운이 후진하듯 팔을 뒤로 넘겼다.
건네준 대본을 얼떨떨하게 받아드는데, 그가 덧붙여 말했다.
“근데 이번엔 배역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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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대본부터 펼쳤다.
표지는 깨끗했다. 몇 회 대본인지도 쓰여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쪽대본. 어쩐지 두께가 얇더라니······.
역할만 내게 어울린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무조건 맡으려고 했을 작품이다. 그런데 다른 역할로 다시 제안이 들어왔다? 기대감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물론 늘 나에게 딱 맞는 역할만 맡을 순 없고, 최대한 가까워지려는 게 배우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이전 역할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제대로 연기할 수 없을 것 같았지.’
캐릭터의 설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말이다.
······어쨌든, 마음에 들었던 만큼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대원군이 마치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찍은 다큐멘터리 같았다면.
이건 지금 당장,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이야기들을 서늘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적어도 내가 받았던 대본은 그랬다.
옴니버스식 구성인 만큼 모든 에피소드를 계속 그 정도의 퀄리티로 끌고 왔을진 이제부터 확인할 부분이고.
‘이번엔 역할까지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서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주한 첫 장면.
다짜고짜 이름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최우진]처음 보는 대본이지만, 익숙했다.
김성운에게 들었던, 내게 제안이 들어온 이름이라서.
[그가 터벅터벅 경찰서로 들어섰다.]작가가 다루는 카메라, 글자로 이루어진 렌즈가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나는 가로로 시선을 움직이며 남자의 얼굴을 엿보았다.
[소름끼치도록 담담한 얼굴이었다. 감정이란 게 모두 연소된 인형과도 같은 눈으로 담당 형사를 바라본다. 그리고 거칠게 마르고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달싹거리며······.]이어지는 다음 줄.
고작 두 줄 만에 내 얼굴을 한 최우진이 나직이 자백했다.
“제가··· 제가 죽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