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35)
고작 (3)
방금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티비로 볼 땐 느낄 수 없었던 묘한 흐름이 테이블마다 피어오른다.
앞으로 남아 있는 상들은 이전의 수상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성적표를 받는데 마냥 들뜨기만 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이윽고, 화면에 금빛 가루가 휘날리며 후보 소개가 시작되었다.
새하얀 피부에 큼직한 눈.
길에서 아주머니들한테 ‘얘 연예인 시켜야겠네!’ 소리를 수없이 들어봤을 법한 아이가 엉엉 울며 열연을 펼친다.
—들에 피는 꽃, 차도영님.
MC의 목소리에 화면 속 아이를 빤히 보았다.
쟤가 우경철이 데리고 다닌다던 차도영이구나.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했나?
그 나이대 남자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그보다는 더 어려 보였다.
이윽고, 장면이 다음으로 전환되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나.
두 눈 그렁그렁한 안주연이 엄마를 향해 억눌린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
울분 섞인 안주연의 바람이 시상식장에 울려 퍼지고, MC의 소개가 이어진다.
—종갓집 막내딸의 백승결님.
아역을 보며 잠시 복잡해졌던 마음을 뒤로하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안주연, 성공했네!
극 중 안주연이 영화에 캐스팅되어 그 영화가 개봉까지 했지만, 그 이후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못내 아쉬웠었는데.
이번 신인상 후보에 오른 게 그 아쉬움을 달래준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좋다.
뒤이어 다른 후보들도 화면에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여러 번.
이제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작년 신인상 수상자였던 배우가 무대에 나타났다.
그가 품 안에 넣어온 봉투를 천천히 열어 카드를 꺼낸다.
—저도 이게 얼마나 떨리는지 알아서 뜸 들이지 않고, 신인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신인상 수상자는······.
배우가 카드를 힐끗 본다.
나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차도영이 앉은 자리를 찾았다.
그 아이가 받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게 꼭 아니더라도 괜스레 눈길이 간다. 신경이 쓰인다.
오늘 만난 아이의 매니저는, 변함없이 나쁜 사람이었거든.
그때였다.
—‘종갓집 막내딸’의 백승결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팡파르가 터지며 사람들이 박수를······.
뭐?
다음 순간, 벌떡 일어나 환호하는 우리 테이블의 배우들. 그들과 눈을 맞추다 시선을 올리니, 화면에 내 얼굴이 담겨있다.
얼떨떨한 표정, 어정쩡한 자세로 화면 속 나를 마주한다.
진짜, 나?
MC가 축하한다는 멘트를 읊는다. 근데 솔직히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린다.
조금도 예상 못 해서, 기대하지 않으려고 했어서.
정말 내가 받은 게 맞나 싶어 상황을 받아들이기 바빴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 역의 중년 배우가 뒤로 넘어갈 듯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핫! 아니, 얘네 베스트 커플상 받을 땐 본인이 받은 것처럼 엄청 좋아하더니. 막상 신인상이라니까 표정이 왜 그래? 정신 차리고 얼른 올라가!”
······맞아, 올라가야지.
무대 위에 올라서는 내내 시선이 비처럼 쏟아졌다.
박수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걸음마다 넘치는 흥분에 속수무책으로 젖어 들었다.
그제야 실감이 되었다.
내 이름이 불렸고, 그래서 이 무대 위를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내가 신인상을 받았다는 게.
무대에 올라 꽃다발부터 받았다.
뒤이어 손에 들린 황금빛 트로피.
묵직하다. 과연, 이게 신인들을 대표하는 상의 무게······ 는 무슨.
정신 차리자. 아래에선 멍청한 표정이 그대로 잡혔지만, 무대 위에서까지 그럴 수야 없잖아.
꿀꺽, 침을 삼키고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배 갑판에 올라선 것처럼 수많은 배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관계자들과 누군가의 팬들까지.
—안녕하세요. 배우, 백승결입니다.
일순 고요해진 분위기에, 일단 인사부터 뱉어놓고 고민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진짜 준비를 안 했는데···.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이렇게 받게 되니 감사하고, 기분이 좋네요. 평생에 딱 한 번 받을 수 있다는 신인상을 받아서라기보단, 그런 상을 안주연으로서 받게 되어서 더 뜻깊은 것 같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급해지니 어디서 들은 듯한 말들을 줄줄이 이어갔다.
—그래서, 지금쯤 배우로서 훨훨 날고 있을 안주연에게 가장 먼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안주연을 응원해준 유종원 PD님과 서은영 작가님. 그밖에도 안주연의 가족들······.
한 명, 한 명을 지목하며, 아래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찾았다.
그러면서 새삼 느낀다.
‘이렇게 배우들이 많구나.’
그리고.
이곳에 오지 못한 배우들은 훨씬 더 많겠고.
—······.
아, 모르겠다.
요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 것 같다.
잡지사 인터뷰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아니, 더 하지.
나는 백승결일 때 늘 연기 중이었다.
택배 일을 하면서도 연기에 미련 없다고, 그러니 이 삶을 계속 살겠다고.
나를 속이는 연기를 계속 해왔는데······.
다시 연기를 시작한 뒤로, 나는 백승결일 때 더욱 솔직하다.
—많은 배우분들이 연기에 꿈을 두고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꿈을 놓지 않고서 말이죠. 마치 제가 연기했던, 안주연처럼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지만 저는 그 꿈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돌아와 이 상을 받는 게, 정말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해별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돌아올 수 없었을 거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해야 할 말을 한다.
—그러니 열심히 하겠다는 말보단, 제 목표를 얘기하겠습니다. 저는 해별이라는 이름을 넘어서겠습니다. 그 이름을 뛰어넘어—.
그렇게······.
—저를 증명하겠습니다.
연기하지 않는 내가 되어간다.
#
한 해의 마지막 날 시작된 연기 대상이 새해 첫 방송으로 마무리되었다.
배우들의 퇴근길은 레드카펫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1년을 열심히 살아온 이들의 마무리이자, 시작이었다.
마중 나온 김성운이 내 꽃을 나눠 들며 등을 두드렸다.
“오늘 멋졌다. 특히 수상소감.”
웃으며 그가 건네는 롱패딩을 어깨에 얹었다.
“너무 감정적이지 않았나 싶은데.”
“그게 멋졌다고. 다들 고맙다, 감사하다만 외치는 간질간질한 축제에 그런 선전포고라니.”
“선전포고까지야···.”
이게 칭찬인가, 놀리는 건가 고민하며 방송국을 빠져나오는데, 내 시선 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경철이 보였다.
그도 나를 발견했는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날 노려본다. 2차전인가.
“······.”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는데, 그것도 잠시.
차도영이 그에게로 다가가자 내 시선을 피하며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그냥 가네.’
나의 시선은 곧 차도영에게로 이어졌다.
아이의 표정부터 살피게 된다. 괜찮나.
“씁쓸한가 보네.”
김성운이 내 속을 대변하듯 말했다.
물론 날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의 시선도 날 노려봤던 우경철에게로 가 있었다.
“아티스 본부장 말이야. 표정이 별로잖아.”
“그러게요.”
“작정하고 키웠는데 신인상을 못 받아서 실망한 건가. 아님, 본인이 발굴한 배우가 다른 곳에서 다시 빛나는 게 싫은 건가.”
차도영과 나를 두고 하는 말에 내가 어깨를 들썩였다.
“적어도 전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왜?”
“아직 어리잖아요. 누군가의 실망을 정면으로 받기엔.”
“그렇지. 어리지.”
주억이는 김성운을 보다가 우경철과 차도영이 사라진 쪽을 한 번 더 돌아봤다.
“이제라도 안 그랬으면 좋겠네요.”
속마음을 툭 내뱉고서, 우리도 걸음을 옮겼다.
밴으로 향하는 내내 꽤 많은 배우들과 마주쳤고,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들 중엔 ‘해별이네’에서 함께 연기했던 배우들도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복귀했다는 소식 듣고 너무 반가웠는데.”
“드라마건 영화건 정말 잘 보고 있어. 오늘 축하한다.”
“해별이도 돌아왔는데, 조만간 해별이네 출연했던 배우들 한 번 뭉쳐야 하는 거 아냐? 날 한 번 잡자!”
그들과의 회우에 우경철과 있었던 안 좋은 기억들을 지우며 밴으로 돌아왔다.
꽃다발을 내려놓고서, 품에 안고 있던 신인상 트로피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를 본 김성운이 웃는다.
“덤덤해 하더니 그래도 좋긴 좋나 보네?”
“좋죠. 안 좋을 리가.”
“그럴 줄 알았어. 넌 욕심 많은 녀석이니까.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걸 참는데 도가 텄긴 한데, 나는 못 속이지.”
그도 기분이 좋은 듯 목소리 톤이 많이 올라가 있었다.
오랫동안 뭔가를 참는데 익숙해지긴 했지.
“가자. 제대로 축하받으러.”
밴이 방송국을 빠져나와 종갓집 막내딸의 회식 장소로 달린다.
붕 떠 있던 기분이 도로로 나서자 어두운 새벽의 고요함처럼 잦아들었다.
그제야 패딩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연기대상 내내 온 연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승결아. 방송 봤다. 축하한다. 이제 새해인데 가족들끼리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니. 네 아버지 그렇게 되고······] [신인상 축하해, 오빠. 엄마가 연락 한 번 하라셔서. 큰 아빠 장례식 때 못 간 건 내가 그때 고3이었어서······.]이따금 친척들의 불편한 연락도 끼어있었지만, 대체로 반가운 연락들이 대부분이었다.
좋은 날이니 좋은 것만 보자, 좋은 거.
‘그나저나, 이 형은 갑자기 웬 영상을 보냈어?’
현태 형이 보내온 톡을 보고 의아해하며 영상 메시지를 재생했다. 그러자 사무실 모니터 앞에 모인 현태 형과 직원들이 보였다.
양손에 치킨, 캔맥주 같은 것들을 들고서 집중하던 그들이 신인상 수상의 순간.
—와아아아아!
—신인사아아앙!
살이 튀고, 뼈가 날아다닌다. 물론 치킨이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웃다가 늦은 답장을 보냈다.
[대체 퇴근은 언제 해?] [컨텐츠 제작자에게 퇴근이란 없지. 출근만 있을 뿐.] [치킨이랑 맥주도 있던데? 거의 호프집이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로 톡방을 도배한 현태 형이 연달아 톡을 보내온다.
[아무튼 진짜 축하한다. 언제 시간 돼? 내일 돼? 가능하면 꼭 보자. 내가 너 먹고 싶은 거 다 사주마.] [무슨 소리야. 밥은 내가 사야지.] [크으, 신인상 클래스 보소!]분명 문자인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
피식 웃으며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근데 내일은 안될 거 같아.] [아, 그래? 선약이 있구만?]선약은 아니었다.
방금 마음먹은 약속이라.
‘그냥······.’
갑자기 자랑이 하고 싶달까.
시선이 잠시 옆에 내려놓은 트로피로 향했다.
저 트로피를 책가방에 쑤셔놓고, 한달음에 달려가 마음껏 자랑하고 싶다.
손이 닿지도 않는 책장에 이걸 올려놓겠다고 우겨, 기어이 도움을 받아 내 손으로 놓고 싶다.
그리고 손을 잡고서 뿌듯하게 올려다보고 싶다.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이, 그토록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