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38)
그림자 변호 (3)
느지막한 아침.
바쁘게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김성운의 전화를 받았다.
주변 소음을 들었는지 김성운이 물었다.
—밖이야?
“네, 뛰는 중이었어요.”
잠시 숨을 고르다 답하자 김성운이 낮게 감탄하며 말한다.
—아아, 조깅? 너도 진짜 대단하다. 아침마다 그렇게 십몇 킬로씩 뛰는 게 쉬운 게 아닐 텐데.
“이젠 습관이 돼서요. 그리고 이렇게 한참 뛰고 나서 대본 보면 더 잘 읽혀요.”
—지금보다 더 잘 읽히면 너무 빠르잖아. 그 속도 맞추려면 이젠 내가 여기저기 발품 팔아서 대본 받아와야겠네.
오, 그거 좋은 거 같은데?
혹해서 대답을 안 하자, 김성운이 픽 하고 웃는다.
—대답 안 하는 거 봐. 지금 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티나요?”
—티를 냈지. 네가.
쿡쿡 웃으며 느릿하게 걸었다. 스치는 바람이 퍽 시원하다.
—나 안 그래도 아침부터 홍보팀 불려갔었다.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부터 영상까지 싹 다 털렸어. 평소에 너랑 나눴던 얘기들도 전부 불었고.
“그건 별로 좋지 못한 소식이네요.”
결국, 나의 흑역사들이 그들 손에 넘어갔구나···!
그들 손에 넘어간 이상 기사화는 시간문제였다.
—요즘 네 상황이 너무 먹음직스러웠나 봐. 얼른 여기저기 네 홍보를 막 뿌리고 싶은데, 그쪽도 소스가 없으니 날 막 닦달하더라고. 중학교 때 형들한테 삥 뜯기던 그 기분이었어.
무서웠다며 허허 웃는 유포자.
그가 덧붙여 말했다.
—아, 그리고 너 조만간 한 번 회사 오긴 해야겠더라. 다들 네 팬이야. 여기가 홍보팀인지 팬클럽인지 모르겠더라.
“양손 무겁게 하고 갈게요.”
—그래. 앞으로 기사 많이 올라가도 놀라지 말고.
김성운의 경고인지 예고인지 모를 소식을 듣고서 전화를 끊었다.
곧장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며칠 전 김성운이 가져온 대본들을 한 아름 들고서.
도착한 곳은 동네 작은 카페.
일일드라마 캐릭터인 안주연 덕분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더러 알아보긴 했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차 한잔을 시키고 앉아, 대본을 읽기 시작한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 보다가 이렇게 나와서 읽으니 확실히 환기가 되네.
김성운의 조언을 떠올리며 주억거렸다. 그리고 다시 대본에 집중하려는데···.
“진짜 있다. 진짜 있어.”
“말도 안 돼. 그냥 혹시나 해서 와본 건데···!”
창밖에서 서성이던 젊은 여자 둘이 카페 안으로 들어와 소곤거렸다.
커피를 시킨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패, 팬이에요.”
“저두요···.”
“감사합니다.”
수줍은 인사에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옆에 있던 단발머리 여자가 아쉬운 얼굴로 탄식한다.
“정말 만날 줄 알았으면 사놓은 선물 가져올걸!”
“내가 말했잖아. 여기서 출몰··· 아니, 출현···.”
옆에 모자 쓴 친구가 마땅한 단어를 못 찾아서 어버버거렸다.
내가 무슨 전설의 포켓몬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인걸.
“···오신다고 그러더라고.”
“널 믿었어야 했는데······.”
아쉬워하는 단발머리 여자를 지그시 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헙, 하고 입을 가리더니 고갤 푹 숙이고 말했다.
“저희가 너무 시끄럽게 했죠? 죄송해요.”
“아녜요. 근데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네! 말씀하세요!”
눈 동그랗게 뜨고 경청하려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표정이 온탕 냉탕을 왔다 갔다 하네.
“피켓이요. 그거 본인이 직접 만드신 거였어요? 엄청 화려하던데.”
“······?”
내가 너무 앞뒤 없이 물어봤나?
벙찐 얼굴을 보며 설명을 붙였다.
“왜, 대원군 무대인사 때 들고 오셨던 피켓이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네?”
“제가 피켓 들고 간 거요. 어떻게 기억하세요?”
놀라는 그녀에게 대수롭지 않게 어깰 으쓱이며 말했다.
“그야··· 세 번이나 오셨잖아요. 어떻게 몰라요.”
물론 한 번만 왔어도 알았겠지만.
귀신이라도 본 것 같던 얼굴이 어느새 초롱초롱해진다.
“제가 간 횟수까지······.”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자, 옆에 모자 쓴 친구가 덩달아 발을 굴렀다.
“와, 진짜 대박이다. 얼굴 기억해주시다니. 나도 좀 더 일찍 입덕할 걸······!”
아쉬워하는 친구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테이블을 가볍게 탁 치며 웃었다.
“오케이, 입력 완료. 이제 기억할게요.”
“정말요? 다음에 만나면 인사해주셔야 돼요?”
“그럴게요.”
“우앗!”
두 사람이 야단법석을 떨며 사진도 찍고, 사인까지 받아 카페를 나섰다. 얼음이 녹아 묽어진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
‘아직 추울 텐데···.’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손을 흔들던 두 사람.
우연히(?) 만난 팬들을 보내고서 다 식은 차를 들이켰다. 아직 온기가 남은 것 같기도?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고서,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
[어제 진짜 대박이었음. 친구랑 카페 갔는데 거기 백승결 배우님이 똭! 바로 옆자리가 똭! 은혜로운 미모에 말문이 막히더라. 근데 그 와중에 진짜 대박인 건, 배우님이 갑자기 피켓 직접 만든 거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무슨 피켓 말씀하시는 거지? 하는데 내가 대원군 무대인사에 피켓 들고 갔던 거, 그거 기억하시는 거였음. 그렇다는 건 내 얼굴도 기억하신다는 거잖아? 나 진짜 거기서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무대인사를 얼마나 갔길래 얼굴까지 알아보냐.
—얼마 안 감. 3번 갔어. 피켓은 한 번 들고 갔고.
—에이, 그게 말이 되냐. 30번 아니고?
—네가 여신이면 가능할지도? 너 여신이야?
—그냥 평범한데···.
—아님 앞자리에서 난리 쳤어?
—중간 자리였는데···.
—그럼 피켓이 진짜 독특하긴 했나 보다.
—화려하게 꾸미긴 했어. 이거. (사진 첨부)
—그 정돈 아닌데?
—평범한데?
—피켓이 너 하나였을 리도 없고······.
—배우님한테 화려하다고 칭찬받았거든?
—백승결 모자란 게 뭐야! 했었는데 미적 감각이 모자랄지도······.
—어쨌든, 기억력이 되게 좋으신가 보다. 저걸 기억하시네ㅋㅋㅋ
헛다리만 짚던 집단지성이 여러모로 진실에 근접해졌을 때쯤.
—그림자 변호, 예고편 떴어요!
큰 게 왔다. 방영까지 남은 시간을 달래줄 아주 큰 떡밥이.
꾸준히 달리던 댓글이 일순 멈췄다.
이 게시물 댓글창뿐만 아니라 해당 커뮤니티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3분쯤 지나서, 예고편 보러 갔던 탕아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한다.
—와, 세 번을 돌려봤는데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이딴 게··· 예고편?
—그래도 기대감은 확 올려주더라. 장훈이랑 최우진이 서로 마주 보고 앉는 장면 진짜 미침.
—마지막에 장훈이랑 같이 있던 남자가 최우진 막냇동생인 거 같은데??
—오, 맞는 거 같다. 이제 진짜 내막이 밝혀지나? 졸라 기대되네.
—솔직히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이번엔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그게 제일 기대됨.
—하아, 4일 어떻게 참냐···.
—참는 법 알려드림. 커뮤를 나가세요. 당장.
아무도 그 말을 따르지 않았는지, 커뮤니티엔 매일 같이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누군가는 13화만 10번을 봤다며 중독 증세를 호소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뮤튜버가 분석한 최우진에 대해 링크를 걸기도 했다.
그동안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 마침내 방영 당일이 되었다.
—3시간 남았음!
—2시간! 숨 참는다!
—1··· 초 남은 거면 좋을 텐데.
마치 새해 카운트다운 하듯 기다리는 시청자들.
······이윽고.
—이제 곧 시작하네요!
‘그림자 변호’ 14화의 방영이 시작되었다.
#
장훈은 최우진이 살았던 곳을 찾았다.
하지만 범행현장이기도 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 후, 임수영이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여 최우진의 막냇동생이 있는 위치를 알아냈고.
그는 곧장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형이 안 죽였어요.”
“······.”
“형이 죽인 거 아녜요.”
진범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19살. 최우진의 막냇동생, 최선진.
이제 곧 성인을 앞둔 그가 고개를 뚝 떨군다.
“제가 그랬어요. 규진이 형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 게 전데. 그랬는데, 형이··· 형이···.”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죽어가는 최규진을 최선진이 외면했고, 이를 알게 된 최우진이 모두 뒤집어썼다.
······뭐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이려나.
그럼에도 실타래의 끄트머리가 꼬여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 끝을 끄집어내기 위해 장훈은 고민 끝에 최우진에게로 향했다.
동생을 만나고 왔다는 걸 알 리 없는 최우진은 여전히 죗값을 받겠다며 대화를 길게 끌지 않았고.
“지금 되게 다급하네?”
장훈은 단번에 그를 간파했다.
“네? 무슨······.”
“조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지? 판결이 빨리 났으면 좋겠지? 그렇게—.”
당황하는 최우진을 몰아붙이는 장훈.
“얼른 네가 범인이 됐으면 좋겠지?”
그제야 마구 흔들리는 최우진의 눈동자를 보며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계속 이상하더라고. 넌 네가 어떻게 될지 이미 아는 사람처럼 굴고, 우리는 딱히 할 게 없고. 뭔가 기분이··· 다른 변호사가 이미 다 정리한 것 같았단 말이지. 근데 변호사는 나잖아?”
장훈이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자신의 사무실, 책장에 꽂혀있던 법전.
턱—.
그 책을 최우진 앞에 내려놓고 묻는다.
“익숙한 책이지?”
“······.”
“너 법 공부 했었더라?”
실타래를 타고 타고 올라간 끝에.
비로소 꼬여있던 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사가 꿈이었다며.”
······.
뚝—. 뚝—.
처마 끝에 매달려있던 눈이 녹아서 떨어져 내린다.
도로 위를 완전히 덮었던 눈은 결국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모든 거짓이 걷히고, 민낯이 드러났다.
그날······.
“어, 선진이 와 있었네?”
“어, 어. 형. 왔어?”
막냇동생에게 인사를 하고서 옷을 챙겼다.
아침부터 공사장 자재를 옮기느라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이 꼴로 남의 차를 운전할 수는 없으니까···..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새하얀 동생의 안색에 의아해졌다.
“추워? 보일러 좀 틀라니까.”
“아, 아냐. 괜찮아.”
“규진인?”
“형은··· 잠들었어. 방금.”
“그래?”
대수롭지 않게 되물으며 걸음을 옮겼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선다. 선진이가 그런 내 뒤를 따라 나섰다.
“형···.”
“응?”
우물쭈물하던 녀석이 입을 뗀다.
“나, 대학······.”
“또 쓸데없는 소리 하려고.”
“······.”
“가기 싫은 거면 모를까 가고 싶잖아, 너. 그럼 가야지. 돈은 걱정하지마. 내가 너희 둘 못 먹여 살릴 것 같아?”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 그때 그냥 돌아서서 집을 떠나면 안 됐다.
방에 들어가서 선진이 얼굴이라도 확인했어야 했지.
그래야 했는데, 병신같이······.
생각의 끝에서 혼자 남은 최우진이 눈시울을 붉혔다.
힘이 탁 하고 풀렸다.
그동안 자신을 얼마나 꽉 붙잡고 있었던 걸까.
한 번 떨리기 시작한 그의 몸은 어느새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거리고 있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예전에 공부했던 법 지식을 총동원해 얼른 재판이 끝나길 원했다.
얼른 판결을 받아 범죄자는 최우진인 걸로 이 사건이 마무리되길 바랐다.
하지만 동시에 계속 의문이 들었다.
이게 옳은 선택일까?
이렇게 지키는 게 맞을까?
이런다고 남겨진 선진이는 괜찮을까?
‘나는 모르겠다.’
누구의 잘못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몸이 아픈 규진인 죄가 없었다.
그가 죽도록 방치한 선진인 희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지 못한 나는···.
덜덜덜······.
그저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