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0)
백 배우 어떤 사람이에요? (1)
“그림자 변호 잘 봤다고 전해주세요.”
“백승결 배우는 회사 언제 와요? 왜긴요, 사인 받으려고 그러지!”
“백 배우 차기작은 정해졌어요?”
회사 로비에서부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즘 백승결 대변인으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김성운.
이것저것 답해주다 보니 자연스레 입 끝이 올라가 있었다.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함께 걷던 1팀장의 말에 김성운이 더 활짝 웃었다.
“아, 요즘 회사 다닐 맛 납니다.”
“얼씨구? 요즘? 내 밑에 있을 땐 다닐 맛이 영 안 났나 봐?”
“에이, 그때도 맛있었죠. 섬섬하니, 건강한 맛.”
“싱거웠단 소리 아냐.”
피식 웃은 김성운이 이유를 곁들였다.
“1팀은 이미 다들 대단한 배우잖아요. 늘 꾸준히 잘해왔고, 또 앞으로도 잘할. 그래서 마음은 편했죠. 근데 여기 오니까 짜릿해요. 자극적이라 좋아.”
“그래, 또 그런 맛이 있지. 밑에서부터 키워 올라가는 맛.”
이해한다는 듯 끄덕인 1팀장.
그의 시선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남자에게 멈췄다.
“어, 최 실장이네.”
그 말을 들었는지, 쥐색 정장을 쫙 빼입은 남자가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1팀장님··· 김 팀장님.”
꾸벅 인사한 그가 뒤이어 김성운에게도 고갤 숙인다.
1팀장이 나란히 서며 넉살 좋게 말을 붙였다.
“요즘 어때요? 이번에 신승찬 배우 들어가는 드라마가 엄청나다는 얘긴 들었는데. 특히 자본이 달러라면서. 멀티··· 뭐라고 했지?”
말꼬릴 올리며 김성운을 돌아보자, 최 실장이라 불린 남자가 얼른 답했다.
“네. 멀티온(Multi-ON)이라고 새로 생긴 OTT 플랫폼이에요. 이번에 한국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오리지날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거기에 우리 승찬이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거고요.”
“이야, 이러다 신승찬 배우 할리우드 가는 거 아닌가 몰라.”
그러자 로비가 쩌렁쩌렁 울리게 웃는 최 실장.
“그래야죠. 그렇게 만들 겁니다.”
세 사람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간다.
며칠 전 본부장님과 식사한 이야기, 대표님이 전화해서 기대가 크다고 했다는 이야기 등을 툭툭 흘리던 최 실장이 3층에서 내리기 직전, 몸을 돌렸다.
“아 참, 김 팀장님.”
“예.”
“오후에 하기로 했던 회의요. 승찬이가 집에 좀 와달라고 해서 참석 못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스케줄은 없는 거로 아는데···.”
“글쎄요. 승찬이가 절 많이 의지해서 가끔 이럽니다. 별일은 아닐 거예요.”
별일은 아닌데, 회의는 못 온다?
“······아, 네. 그러시죠.”
황당한 얘기였지만 이미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김성운도 끝까지 묻지 않고 끄덕였다.
허락이 당연하다는 듯 씩 웃은 최 실장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부유하는 엘리베이터.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1팀장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분위기가 묘하다?”
“묘하긴요. 대놓고 기 싸움하는데. 방금은 팀장님 있어서 아주 젠틀한 거예요.”
“푸하핫! 천하의 김성운이 기 싸움을 당하기도 하는구나?”
“전 심각해요. 대체 왜 저러나···.”
“뻔하지 뭐. 본인도 팀장 짬인데 경력도 비슷한 네 밑에 있는 게 싫은 거지. 게다가 신승찬이란 요즘 가장 핫한 배우가 자기한테 의지한다? 그럼 팀장 따위가 대수겠냐.”
“참··· 쉽지 않네요.”
아깐 입이 귀에 걸려있더니 그새 죽상이 됐냐며 킬킬거리던 1팀장이 김성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알겠지? 내가 1팀 이끄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 안 저랬죠?”
“글쎄.”
“아니라고 해줘요.”
“적어도 배우를 무기로 어깨 세우고 다니진 않았지.”
김성운이 내심 안도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따라 내린 1팀장이 말을 잇는다.
“근데 어떡하냐. 이번에 들어간 그 드라마까지 잘 되면 정말 어깨가 천장 뚫고 올라가겠던데. 그럼 핸들링하기도 더 어려워질 거고. 아, 아니면 아예 대표님한테 단독 팀 만들어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그게 가능해요? 1팀에 대선배들이 몇 명인데.”
“멀티온이 신생이긴 하지만 자본력은 넷플리스만큼 크다며. 전 세계 서비스고. 그럼 한번 크게 터지는 순간 인생 뒤집히지. 지금 신승찬 회당 1억 받지? 다음엔 2억일까? 절대 아냐. 다이렉트로 3억이야. 바로 우리 회사 탑 찍는 거라고.”
그러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매니저의 권력이 그 아래의 스타에게서 나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그땐 대표님조차도 그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리라.
‘차라리 분리되는 게 낫나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달래는데, 1팀장이 물어왔다.
“가만. 근데 너 왜 여기서 내려?”
“아카이브 가요. 승결이 이름으로 온 대본들 정리해놨다고 해서.”
“아, 그래? 그럼 수고해라.”
손을 휘적거린 1팀장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복도 끝으로 향했다.
온갖 대본과 시놉이 모이는 아카이브룸.
종이 뭉치를 정리하던 직원이 그를 반겼다.
“오셨어요?”
“어. 어딨어?”
두리번거리며 다가간 김성운.
직원이 공연을 마친 마술사처럼 손을 펼쳤다.
“여기요.”
“아, 이거야? 생각보다 적네?”
테이블 위에 쌓여있던 종이 뭉치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올려진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직원이 고갤 흔든다.
“그럴 리가요. 여기 있는 거 전부입니다.”
“···?”
김성운의 시선이 테이블 위를 훑었다.
한눈에 봐도 수십 부는 훌쩍 넘어 보이는 대본과 시놉들이 무슨 빌딩 숲처럼 쌓여있었다.
벙찐 그를 보며 직원이 남 일이라는 듯 웃었다.
“이거 다 읽으려면 우리 팀장님 고생 꽤나 하시겠네.”
#
프로필이 많이 나갈 것 같다던 김성운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다만 시기가 문제였지.
프로필 촬영은 다음 준데, 이미 프로필이 불티나게 팔린단다.
게다가 팔린 만큼 시놉과 대본도 밀려들어 왔다.
덕분에 내 방 풍경이 좀··· 아니,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본인이 먼저 대본을 쭉 읽어보고 추려왔던 김성운이 이젠 하루건너 들어오는 대본들을 뭉탱이로 들고 온다.
차곡차곡 쌓아놓고 각자 편한 자세로 그것들을 읽어내려갔다. 가끔 라면도 끓여 먹고. 정말 만화방이 됐지.
말없이 대본 한 부를 쉬지 않고 쭉 읽었다.
툭, 내려놓자 다른 대본을 훑어보던 김성운이 고갤 들며 물었다.
“‘오늘, 별 아래’. 그거 어땠어?”
“음······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단호하네. 나름 이름 있는 작가인데.”
“근데 잘 안 읽히더라고요.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고. 팀장님은 어떠셨어요?”
이마를 긁적거린 그가 피식 웃으며 끄덕인다.
“사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 장르는 완전 순정만화인데 대사는 너무 올드해. 어지간한 PD로는 쉽지 않겠던데.”
김성운의 말에 동감했다.
연출을 맡은 PD의 역량으로 심폐소생술에 성공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장 중요한 건 대본이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보는 눈이 나랑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안도하는 김성운을 갸우뚱하며 바라보자 그가 이유를 설명했다.
“조율 중이야. 너랑 내 코드가 얼마나 맞나. 내가 뭘 가져다줘야 좋아할까. 내 마음에 아무리 들어도 배우가 별로라고 생각하면 말짱 꽝이잖아.”
“아아.”
그의 말에 납득 하면서도 내심 신기했다.
과거 매니저였던 우경철과는 참 달라서.
‘이 일에 엄청 진심인 것 같달까.’
그런 생각이 드니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연기가 좋아서 돌아왔지만, 이 사람은 어떤 것에 매료되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김성운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고, 새로 집어 든 대본을 넘기기 전에 물었다.
“매니저 일은 어쩌다 시작하신 거예요?”
“나? 처음엔 별거 없었어. 그냥, 화려해 보여서.”
담백하게 답한 김성운이 고개를 내저으며 덧붙인다.
“물론 들어와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지만.”
“실망하셨어요?”
“했지. 무지. 첫 출근부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이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구나.”
어느새 안경 너머의 눈빛이 아련하다. 건너면 안 되는 강을 건너는 자신의 과거를 보는 사람 마냥.
“그렇게 사람이 할 짓 아닌 걸 8년째 하고 있으니···. 쯧쯧, 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건데.”
거기까지 말한 김성운이 날 보며 덧붙였다.
“근데 되게 이상한 게, 무지 고생하는데 그 안에 보람이 있더라고. 내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보람. 그거 하나 보고 버텼지. 아마 대부분의 매니저들이 그럴걸?”
그 말까지 듣고 나니 생각이 더 많아지네.
어렸을 적 나에게 배우란 그저 ‘연기하는 사람’일 뿐이었는데, 지금 보니 훨씬 더 복잡한 직업이었다.
혼자 하는 게 아닌, 김성운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완성되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과도 같은 일.
과거에 이런 사람이 옆에 있었더라면, 내 인생은 꽤나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곱씹다가 입을 열었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몸이 고생하셨네요.”
툭 던진 말에 김성운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는다.
나 또한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잘 도와주세요.”
“뭘 도와줘. 해별이 넘는 거?”
“네. 그것부터요.”
“그게 내가 돕는다고 되는 건가. 그리고 그것부터라니? 꼭 시작인 것처럼 말한다?”
“맞아요. 제 첫 번째 목표거든요. 해별이를 뛰어넘는 거.”
“···허, 그게 첫 목표였다고?”
허, 하고 웃음을 흘린 김성운.
그가 입꼬릴 말아 올린 채로 잠시 나를 보다가 들고 있던 대본을 움켜쥐었다.
“그래, 이 맛이지. 해보자. 그래, 까짓거. 한 번 했는데 두 번은 더 쉽겠지.”
#
며칠 후, 또 다른 대본들을 리필해온 김성운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대본 보면서 이상한 거 없었어?”
“이상한 거라면······.”
밤새 독파한 대본들을 스윽 훑었다.
“역할이 비슷비슷하다?”
곧바로 김성운이 끄덕인다.
“정확해. 캐릭터가 너무 다 겹쳐. 안주연과 고종이 비슷한 이미지라서 그런지 뭐라고 해야 할까, 안타깝고 응원하고 싶은 느낌의 배역만 들어와.”
“전 상관없어요. 작품만 좋다면.”
“난 상관있어. 네 연기가 워낙 인상적이다 보니 두 편만으로 이미지가 이렇게 강하게 잡혔잖아. 그럼 세 번짼 어떻겠어. 멀리 봐야 해.”
안 그래도 의욕적이었던 김성운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네.
이글거리는 그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김성운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캐릭터가 겹친다는 것은 결국, 앞으로 내가 연기할 수 있는 세계가 좁아진다는 뜻이니까.
가뜩이나 해별이로 인해 잡힌 이미지가 십수 년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이름을 넘어서려는 목표가 있다면 더더욱 문제겠지.
“변주가 필요한 시기인 거네요.”
“그렇지.”
손가락을 튕기는 김성운.
그가 가져온 대본들로 시선을 옮겼다.
“근데 좀 이상하네요.”
“음? 뭐가?”
“안주연이나 최우진은 그렇다 쳐도, 전 고종이 그렇게 안타깝고 불쌍한 역할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처음 퀵으로 ‘대원군’의 대본을 받았을 때.
그 기억을 곱씹어 본다.
그때 나는 작중 고종에게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광기랄까. 그건 좀 과한 것 같고······.”
그 느낌을 연기하기 위해 같은 대사를 여러 농도로 연습했었지.
결과적으로 나만 알아챌 만큼 아주 미세한 디테일이었지만, 분명히 고종에겐 그런 부분이 있었다.
“어딘가 서늘한 면이 있었어요.”
#
“서늘한데.”
로맨스가 주류였던 드라마 시장에서 스릴러, 판타지, 시대극 등을 성공시키며 장르물의 대가로 칭송받는 박혜정 작가.
그녀가 화이트보드에 붙여놓은 사진들을 훑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시선은 백승결의 사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아래 덧붙여진 키워드는 ‘간절함’, ‘안타까움’, ‘남자 캔디’ 같은 것들.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조규필 감독이 사뭇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뭐가요? 느낌이 막 서늘해요? 이번 드라마 잘 안 될 거 같아요?”
“뭐라는······ 내가 무당이냐.”
“어후, 뭐야. 깜짝 놀랐잖아요. 그냥 춥다고 하시면 되지. 히터 틀어드려요?”
박혜정 작가가 그런 그를 보며 쯧하고 혀를 찼다.
원래 묵직한 연출 실력에 비해 인간 자체가 가벼운 감독이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드라마에 거대 자본이 끼면서 완전히 쫄보가 됐다.
“날씨 말고. 백승결 말한 거야.”
“백승결이요? 왜요?”
“남자 캔디 같은 이미지라기엔 ‘대원군’에서 보여준 고종 역할은 좀 서늘하지 않았어?”
“흐음, 글쎄요. 연기 자체에 소름 돋긴 했는데······ 근데 서늘하다기보단 뜨겁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아요? 그 울분이나 막 그런 게.”
그의 말에 이마를 긁적이던 박혜정 작가가 갑자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챙겼다.
“안 되겠다 다시 한번 봐야겠다.”
“뭘요?”
“대원군.”
때마침 제작사 대표가 들어오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 작가님! 어디 가세요?”
“대표님 오셨어요? 저 영화관 좀 다녀오려구요.”
그길로 쏜살같이 나가버리는 박혜정 작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작사 대표가 조규필 감독을 돌아보았다.
“뭐야, 갑자기 영화관?”
“대원군을 다시 보시겠대요.”
“그게 아직도 할 리가 없을 텐데? 아니 그보다 왜?”
“백승결이··· 서늘해서?”
확신 없는 조규필 감독의 대답에 제작사 대표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백승결이 무슨 에어컨이냐. 그게 뭔 개똥 같은 소리야.”
어처구니없어하던 그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박혜정 작가의 기행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오히려 반겨야 할지도 모르겠네.’
저런 기행 뒤에는 꼭 대박작을 만들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니까.
물론 그런 소문에 기대어 안도하고 있을 새는 없었다.
“일단 작가님 올 때까지 우린 우리 일을 하자고. 아직 후보도 안 정해진 배역은 뭐가 있지?”
“어, 일단 주연으로는······.”
곧바로 두 사람의 회의가 이어진다.
이곳은 마커스필름.
넷플리스의 대항마인 멀티온(Multi-ON)이 한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자체 제작하는 드라마.
‘악의 링’의 제작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