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1)
백 배우 어떤 사람이에요? (2)
김성운이 가져온 대본을 읽은 이후로, ‘이미지 탈피’라는 과제 하나가 굴러들어왔다.
내가 고종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를 했든,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일 뿐.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는 회사로 들어오는 역할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좀 더 욕심 가득한 느낌을 냈어야 했나.’
아니다. 그건 아마 안원상 감독이 막았을 거다.
그는 ‘대원군’이란 영화에서 누구에게도 선역과 악역이라는 이분법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김성운은 더 나은 대본을 찾아보겠다며 걱정 말라고 말했다.
걱정은 안 된다. 욕심이 날 뿐.
자연스럽게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되는 캐릭터를 떠올려보았다.
감정적이지 않고, 절제되어 있는.
서늘하면서 광기가 묻어나는.
그런 연기를 찾아보고 상상하며 연습하기를 며칠.
김성운이 예고했던 프로필 촬영을 위해 매니지먼트 하람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사옥 안에 만들어진 스튜디오.
김성운에게 듣기로는 작가부터 장비까지, 여느 청담의 고급 스튜디오 못지않은 곳이라지.
사진만 봐도 ‘이거 어느 스튜디오에서 찍었네?’하고 바로 견적이 나오는 업계인지라, 아예 회사 안에 스튜디오를 만들었다고.
대표님이 매니저 출신이라 디테일을 챙기는 것부터 다르다는 김성운의 말이 뒤따랐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훨씬 넓네.’
촬영 준비가 한창인 백색의 스튜디오를 훑어보다가 소파에 앉았다.
이윽고 레게 머리에 두툼한 뿔테를 쓴 남자가 커다란 책자를 들고 나타났다.
“어, 팀장님 오셨어요?”
옆에 앉은 김성운과 먼저 짧은 인사를 나눈 그가 이어서 내게 다가왔다.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늘 피사체님이 아주 마음에 드네.”
먹잇감을 바라보는 듯한 사진작가의 눈빛에 오한이 든다.
프로필 촬영이 아니라 메뉴판 촬영이었나···.
살짝 몸을 떠는 사이, 사진작가가 빙그레 웃으며 가져온 책자를 건넸다.
“아직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이것 좀 보고 있어요. 다른 배우들 프로필 사진. 봐두면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는 이따 보자며 스태프들에게로 돌아갔다.
손에 들린 책자를 넘겨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태관 배우의 사진.
아무래도 최근에 찍은 순서인가 본데.
‘멋지시네.’
원목으로 된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강렬한 대비로 얼굴에 있는 주름을 모두 부각시킨 게 오히려 중후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작게 감탄하며 다음 장을 넘기자 이번엔 김상억. 쾌남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를 정도로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이준혁은 브랜드 화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된 이미지를 담았고.
함께 무대 인사를 돌았던 이들의 사진에 빙그레 웃으면서도 눈은 사진을 디테일하게 살폈다.
“배우들의 장점이 명확하게 담겨있네요.”
내 말에 김성운이 끄덕였다.
“그게 바로 화보와 프로필 사진의 차이지. 화보는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지만, 프로필은 사람 그 자체가 부각되어야 하니까. 촬영 전에 작가님이 오셔서 네 컨셉들도 설명해주실 거야.”
끄덕거리며 계속 사진을 훑는다.
‘대원군’ 멤버들의 사진이 끝나자 이번엔 낯설면서도 익숙한 사람이 나왔다.
말이 이상하지. 근데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티비로는 정말 많이 봤으니까.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달까.
함께 보던 김성운이 사진 속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신승찬 배우네.”
요즘 드라마계에서 섭외 일 순위라는 배우.
택배 일을 하면서도 그가 나온 드라마는 자주 봤다. 그의 팬이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성공한 드라마를 많이 찍어서.
“연기 정말 잘하시던데···.”
“그치, 잘하지. 그래서 이번에 아주 좋은 기회도 붙잡은 거고.”
“좋은 기회요?”
“이번에 멀티온이라는 OTT플랫폼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거기서 자체제작 드라마를 만들거든. ‘악의 링’이라고. 수완 좋은 제작사에 거물급 작가, 감독까지 싹 모아놓아서 메이드하는데, 그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어.”
“어떤 드라만데요?”
“기본적으로 액션이야. 격투기가 주요 소재.”
김성운이 새하얀 손으로 파이팅 포즈를 하며 말한다.
거물급 작가, 감독을 모았다는 거에서 평범한 소재는 아닐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생각도 못 한 소재네요.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은.”
“장르물의 대가라는 박혜정 작가가 펜을 잡았으니까.”
흥미가 돋다 못해 왈칵 넘친다. 평소 격투기엔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격투기 드라마라고 하니 확 관심이 생기네.
어느새 신승찬 배우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갔다.
“시놉도 보셨어요?”
“아니. 아직.”
김성운이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쓴웃음을 머금으며.
그렇게 내 호기심은 해결되지 못한 채로 작품 얘기는 끝이 났다.
뒤이어 다가온 사진작가가 펼쳐놓은 신승찬의 프로필 위로 프린트해온 컨셉 자료들을 쭉 깔았다.
“자, 컨셉 얘기만 좀 하고 촬영 시작할까요?”
#
장장 30분 동안 나눈 컨셉 회의의 결말은 이러했다.
자연스럽게.
뭐,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키워드이긴 한데, 막상 하려니 자연스러운 게 뭔질 모르겠단 말이지.
갑자기 혀 위치가 평소에 어느 자리였는지 헷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찰칵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기관총처럼 연달아 들려왔다.
아역 때 화보도 많이 찍어봤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퍽 어색하다. 몸이 삐그덕 거린다.
괜찮게 나오고 있는 건가?
오케이. 좋아요! 좋아!
연신 좋다고 말하던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내렸다.
그제야 삐그덕대던 내 몸도 힘을 풀었다.
“잠깐 사진 확인하고, 다시 할게요. 승결 씨. 와서 한번 같이 볼까요?”
조명을 벗어나 배경지 밖으로 나왔다.
사진작가와 김성운이 커다란 모니터 앞에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2팀 라인업이 진짜 옥석이네. 어디서 이렇게 다양한 얼굴들을 구했어요? 각기 매력이 다 달라. 뭐 하나 겹치는 게 없어.”
“신경을 많이 썼죠. 저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음~ 난 하람의 이런 변태 같은 면이 너무 좋단 말이지. 덕분에 미쳐버린 청담 월세 걱정 없이 이렇게 예술의 혼을 불태우지, 내가.”
그들 너머로 보이는 내 사진들. 나는 말 없이 그것들을 훑었다.
“승결아 네가 보기엔 어때?”
“너무 잘생긴 것처럼 나와서 큰일이네요. 실물논란 생기면 어떡하죠.”
허 하고 웃는 김성운과 입을 가린 채로 호호거리는 사진작가.
“무슨 소리예요. 딱 봐도 실물이 훨씬 낫구만. 실물 따라잡으려면 포토샵을 얼마나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되는데.”
“에이, 아닙니다.”
살짝 웃으며 사진을 계속 확인했다.
방금 전의 말이 마냥 입바른 소린 아니었다. 사진은 분명 기가 막혔다.
다만, 생각이 많아지는 건.
다른 배우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지금 내 결과물들을 확인하면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상이 아닌, 정적 매체의 끝인 사진에서도······.
여러 감정을 담을 수 있겠는걸?
“자, 이대로만 해볼게요!”
촬영이 재개되었다.
다시 조명 안에 들어와 세팅된 의자에 앉고 아까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검은 목폴라에 잿빛 슬랙스. 옷까지 똑같으니 아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아주 조금만. 이렇게만 바꾼다면······.
“그건 방금 했던 자세니까, 포즈 한번 바꿔볼······.”
카메라를 슥 내리며 내게 말하던 사진작가가 갑자기 말을 멈춘다.
다시 카메라에 얼굴을 파묻은 그가 급하게 말했다.
“아, 아녜요. 잠시만!”
뭔가 바뀔세라 손까지 치켜들던 그가 카메라를 고쳐잡는다.
“그대로. 그대로 있어요. 그대로······.”
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
‘뭐가 달라진 거지?’
고개를 돌린 사진작가가 화면에 떠오른 백승결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틀린 그림 찾기를 해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옷도 자세도, 심지어 표정까지도.
그런데 어떻게······.
“다르네요.”
“그렇죠?”
김성운의 말에 사진작가가 홱 돌며 말한다.
“분명 방금까진 부드러운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뭔가···뭔가···.”
“섬뜩해요.”
“그러니까. 자기야! 혹시 조명 뭐 건드렸어?”
“아뇨, 전혀요!”
멀찍이 서 있던 스태프가 양손으로 엑스자를 만들어 보인다.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얼굴로 다시 모니터 속 사진을 유영하는 사진작가.
그가 김성운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근데 프로필 사진으로 쓰기엔 너무 강한 것 같은데······ 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프로필 사진은 마냥 강렬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너무 강한 이미지는 오히려 한계를 보여주는 꼴이니까.
개성은 살리되, 너무 튀는 부분들은 쳐내야 했다.
“작가님 말대로 이미지가 너무 셉니다.”
김성운의 의견까지 체크한 사진작가가 백승결을 돌아보며 말했다.
“승결씨, 방금 건 뭐랄까······ 너무 인상파였어요. 아까랑 똑같은 표정이긴 했는데, 너무 다르거든? 나 뭐라니. 아무튼, 내 말은······ 혹시 아까랑 지금. 그 중간의 느낌도 가능해요?”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바보 같다 생각하는 그였다.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두 느낌의 중간이라니. 무슨 아수라백작도 아니고.
황당해하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게 뻔한······.
“해볼게요.”
백승결이 그렇게 답하며 자리로 돌아간다. 황당한 얼굴은 커녕 어떤 의구심도 내비치지 않고서. 기다렸다는 듯이.
사진작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깨를 으쓱이는 김성운 팀장. 그도 이 상황이 흥미로운 듯 팔짱을 끼며 백승결을 바라본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뷰파인더 속 백승결이 다시 자세를 잡는 게 보인다.
이번에도 전과 같은 포즈.
연한 회색 백컬러를 배경 삼아 검은 의자에 앉아 편안한 실루엣을 그린다.
가늘면서도 길쭉한 손가락이 서로 깍지를 끼고, 가슴은 너무 펴지도, 그렇다고 구부정하게 말지도 않은 채.
연붉은 입술이 정색처럼 보이지 않도록 미묘한 곡선을 만들고, 부드러운 눈매가 꿈틀거린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향하는 두 눈동자.
그 순간.
눈의 초점이 콱! 하고 렌즈를 붙잡았다.
“허···.”
작은 감탄은 시작일 뿐이었다.
백승결의 표정이 변하면서,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라떼 거품처럼 부드러운 느낌의 얼굴 너머로.
에스프레소처럼 짙은 표정이 조금씩 드러난다.
마치 필요한 농도로 맞춰 마시라는 듯, 야금야금.
백승결이 풍기는 분위기가 완벽히 자신이 원하는 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찬다.
‘사진에 담기긴 할까?’
그가 말없이 검지를 셔터 위로 올렸다.
이 비싸디비싼 카메라가 부디 제값을 하길 바라며.
#
······프로필 촬영이 끝나고.
“이건 후작업도 별로 필요 없어. 오히려 많이 건드리면 이 묘한 느낌이 안 날 수도 있으니까.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 하네요. 역대급 프로필이 될 것 같은데.”
잔뜩 흥분한 사진작가의 감탄과 기대를 잔뜩 받고서,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물론 약속했던 대로 양손 무겁게.
[홍보팀]요즘 내 기사가 정말 많이 올라오는데, 그중 상당수가 여기 손을 거친다고.
벽에 화살표와 함께 적힌 글자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반투명 유리가 둘러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마침 복도로 나오던 직원과 마주쳤다.
“어, 김 팀장니······ 드디어 같이 오셨구나!”
김성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던 직원이 날 보고 백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곧장 파발마 역할을 했다.
“여러분! 백승결 배우님 오셨습니다!”
그녀의 외침에 안쪽에서 모니터와 씨름 중이던 직원들이 파도처럼 들썩였다.
“뭬야? 모두 일어나라. 어서 상감 용안을 보러 가자!”
“저는 그림자 변호 시즌2를 기원하는 상소도 써놨습니다.”
“오호, 그것도 챙겨라. 센스가 오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