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2)
백 배우 어떤 사람이에요? (3)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는 직원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진다.
매니지먼트 하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런 건지, 아니면 홍보팀만 유독 이렇게 텐션이 높은 건지.
순식간에 홍보팀 직원들에게 포위되었다.
김성운은 멀찌감치서 강 건너 불구경 중이다.
한 직원이 내 손에 들린 빵과 커피를 인터셉트했고, 다른 직원이 나를 의자에 앉혔다.
“요즘 아주 난리인 거 실감하시죠? 대본도 엄청 들어왔잖아요. 그 얘기도 저희가 잘 가공해서 홍보에 활용할 거예요.”
“그런 것도 기사가 되나요?”
“기사도 되긴 하는데, 기사로 내보내진 않을 거예요. 방금 승결 씨가 보인 반응처럼 이런 것까지 기사 낸다고 사람들이 거부감 느낄 수도 있어서. 그래서 활용하는 게 SNS죠. 말 나온 김에 SNS 하실 생각 없어요?”
“아직은···.”
“그럼 저희한테 맡기실 생각은요?”
희번뜩 묻는 직원을 보며 그건 안 되겠다 싶었다.
어떤 게시물이 올라갈지 무서워서.
“하게 되면, 제가 직접 하고 싶어서요.”
“오! 좋아요. 요즘은 배우들이 직접 하는 게 진정성 있고 좋지. 그럼 기다릴게요?”
그렇게 SNS를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하게 되면’이라니까? 뭔가 제대로 낚인 느낌인데···.
그때 ‘너도 당해봐라’라는 표정으로 옆에서 웃기만 하던 김성운이 물었다.
“유 팀장님은요?”
“안에 계세요. 근데 지금 안에······.”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팀장실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왔다.
“왜 이렇게 소란스럽나 했더니, 팬미팅 중이었구나?”
홍보팀장으로 추정되는 40대 여자가 날 보더니 빙긋 웃었다.
근데 이상한 건, 뒤따라 나온 남자의 표정이었다.
웃으면서 나오다가 갑자기 누가 입꼬릴 아래로 잡아당긴 듯 미소를 지운다.
찰나의 모습에 의아해하는데, 김성운이 말했다.
“오늘 승결이 프로필 촬영이 있었는데, 온 김에 팀장님께 인사하고 싶다 해서요.”
“아, 프로필 촬영! 그것도 엄청 궁금하네. 1차 보정본 나오면 불러요. 내려갈게. 내가 또 눈 좋은 거 알죠?”
그러면서 홍보팀장이 내 쪽으로 고갤 돌렸다.
“아니, 드라마 너무 잘 봤잖아요. 머리 아파서 법정물 같은 거 잘 안 보는데, 오랜만에 진짜 재밌게 봤다니까?”
“감사합니다.”
무대 인사로 단련된 미소를 장착하며 화답했다.
그러자 이번엔 홍보팀장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소개한다.
“승결 씨. 신 배우 알죠? 신승찬 배우.”
“네, 알죠.”
“이분이 그 신승찬 배우 매니저님.”
“아, 안녕하세요.”
“최영기 실장입니다.”
짧은 인사가 오갔다.
그새 화제를 돌려 사진 괜찮게 찍혔냐며 김성운과 수다를 떨던 홍보팀장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무튼, 백 배우 너무 반가워요. 사실 여기 영한 애들은 이제 막 팬 된 애들이고, 진짜 찐은 나였거든. ‘해별이네’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예요. 몇 번을 봤는지 몰라. 처음 본 게 내가 스물······ 이 얘긴 하면 안 되겠다. 나만 슬퍼져.”
호호 웃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게 뭘 부탁할 일인가~ 당연한걸. 내가 열심히 푸쉬해볼게요. 가장 예민할 어린 나이에 마음고생 많이 했죠? 아역 출신은 크게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함께 부숴보자고.”
아자 아자.
주먹을 움켜쥐는 홍보팀장. 그녀의 화려한 손톱이 반짝였다.
이를 지켜보던 신승찬의 매니저, 최영기 실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팀장님, 승찬이도 아역이었습니다.”
“어머 정말?”
“저희도 같이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당연하죠. 같은 식군데. 근데 신 배우는 이미 성공했잖아? 그것도 엄청나게. 편견을 이미 이쪽에서 부쉈네?”
홍보팀장이 추켜세우자 덩달아 입꼬릴 올리는 최영기 실장.
그때 홍보팀장이 덧붙여 물었다.
“근데, 신 배우가 어떤 영화에 아역으로 나왔어요?”
“‘메모리얼’이라는 영홥니다.”
메모리얼, 메모리얼···.
여러 번 중얼거린 홍보 팀장이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요. 기억에 없는 영화네. 언제 상영했어요?”
“15년 전쯤이었어요.”
“그럼 ‘해별이네’랑 비슷한 시기 아닌가?”
“······맞습니다.”
“아, 그래서 기억에 없구나! 하긴, 그땐 영화관에 ‘해별이네’만 걸려있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니까.”
최영기 실장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가 이내 원래의 얼굴로 복귀했다.
하지만 뒤이어 홍보팀장이 해맑게 덧붙인 말에······.
“오랜만에 ‘해별이네’나 다시 볼까. 얘기하니까 갑자기 끌리네.”
미간이 쩍 하고 패였다.
#
정신을 쏙 뺀 홍보팀 투어가 끝났다.
멍한 내 표정을 본 김성운이 피식 웃었다.
“어땠어?”
어땠냐고?
입구에서부터 느꼈던 대로, 홍보팀은 팀장부터 직원까지 텐션이 장난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과하진 않아서 함께 있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지.
유쾌했어. 오히려 적응하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을 정도로.
“저분들이 왜 저기 앉아 계신지 모르겠어요. 얼른 시트콤을 찍으셔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에 폭소한 김성운이 격하게 끄덕였다.
“그러게. 그게 우리 회사 홍보에도 더 도움 될지 몰라.”
분명 그럴 거라 생각하며 홍보팀에서 마주한 얼굴 하나를 더 떠올렸다.
신승찬 배우의 매니저인 최영기 실장.
그 사람은 뭐랄까······.
날이 곤두서있는 느낌이었다.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나를 처음 보는데도 은근히 경계하고,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 같달까.
아티스 엔터테인먼트의 최기석 실장과는 같은 최 실장인데 느낌이 많이 다르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끝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김성운의 회사 투어가 계속 되었다.
“대표님하고 본부장님은 지금 안 계셔. 배우들 해외 진출 건으로 한 분은 미국에, 한 분은 중국에 가셨거든.”
그 덕에 대표실과 본부장실이 있는 5층은 투어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마지막 4층 카페테리아까지 훑어보고서, 김성운의 회사 투어가 끝이 났다.
그가 타준 차를 홀짝이며 숨을 돌리는데, 잠시 미뤄뒀던 이름 하나가 툭 하고 떠오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커져 머릿속에 꽉 차버린다.
벌컥 입이 열렸다.
“저, 팀장님.”
“응. 왜?”
“‘악의 링’이요.”
“어, 어···.”
신기한 일이다.
오늘 꽤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그 이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리고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진 시놉을 돌다리처럼 두들겨보고, 대본조차도 무수히 곱씹고 나서야 끌리는 작품을 알 수 있었는데.
오늘 들은 그 ‘악의 링’이라는 드라마는 고작 김성운의 짧은 몇 마디만으로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가? 그것까진 모르겠다. 근데 신경 쓰여.
이렇게 소재만 듣고 끌리는 건 또 처음인데···.
“그거, 시놉 구할 수 있을까요?”
#
잠시 후.
지하 스튜디오에서 선물이 올라왔다는 소식에 두 사람은 카페테리아를 나섰다.
프로필 사진이 1차 보정을 마치고 중간 컨펌을 위해 사무실로 올려보내진 것이다.
2팀 사무실로 향하는 김성운의 얼굴에선 번뇌가 피어나고 있었다.
‘‘악의 링’ 시놉을 승결이가 원한다······.’
거대 OTT 플랫폼 멀티온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드는 오리지널 드라마. 거기에 박혜정 작가와 조규필 감독.
확실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솔직히, 치명적일 정도지.
그러니 김성운 본인도 당연히 시놉을 주고 싶었다.
‘문제는 그 시놉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고.’
일반적인 지상파, 케이블 드라마였다면 인맥으로 어떻게 해결하겠지만, 해외 OTT 플랫폼의 보안은 차원이 달랐다.
결국,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시놉을 가진 최영기 실장한테 묻거나, 제작사인 마커스필름에 발품을 팔거나.
근데 지금까지 노골적으로 ‘악의 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던 최영기 실장이 과연 시놉을 줄까?
아닐 것 같다는 생각하면서 2팀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사무실 안 풍경을 보며 백승결이 듣지 못하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 이럴 때만 자리에 있네.’
홍보팀에서 만났던 최영기 실장이 자리에 있었다. 2팀 직원이 2팀 사무실에 있는 게 뭐가 문제겠냐마는···.
매번 이런저런 핑계로 자리를 비우던 그가 하필 이 타이밍에 있으니, 매니저로서 시놉 얘길 안 꺼낼 수가 없었다.
“오셨어요?”
자칭 배우 심리학 전문가이자, 2팀의 관제소 역할을 하는 정민우 대리가 둘만 있는 게 불편했는지 활짝 웃으며 반겼다.
“어, 별일 없지?”
“네. 뭐···.”
자리에서 일어난 정민우의 눈동자가 뒤쪽을 힐끗거렸다.
그제야 늘어져 있던 최영기 실장이 몸을 일으킨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네, 실장님도 별일 없죠?”
“별일이야 늘 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승찬이가 많이 예민해졌어요. ‘악의 링’ 때문에 운동에 식단조절까지 빡세게 하고 있어서. 슬슬 가서 상태 좀 봐야겠네요.”
“그래요?”
짧게 대답하고서 눈짓으로 정민우를 자리에 앉혔다.
백승결과도 눈이 마주쳤다. 별생각 없어 보인다. 맑다, 맑아.
조용히 숨을 들이쉬며 자리 정리 중인 최영기 실장에게 다가갔다.
“그, 최 실장님.”
“네?”
“우리 얘기 좀 할까요?”
김성운의 대화 요청에 최영기 실장이 그를 빤히 올려다봤다.
“그러시죠.”
그렇게 백승결과 정민우를 사무실에 남겨두고 복도로 나온 두 사람.
복도 끝 창가에 기댄 김성운이 밖을 내다보다가 몸을 돌려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악의 링’ 진행 상황을 들은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문제없는 거죠?”
“그럼요. 문제 있을 게 뭐 있겠어요.”
짧은 대답이었다. 팀장에게 하는 보고치곤 성의조차 없는.
“그게 끝입니까?”
“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승찬인 열심히 몸 만들고 있고요.”
“······.”
“흐음, 뭘 듣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네요. 아, 멀티온에서 직원들이 한국에 방문한다더군요. 작가랑 감독, 그리고 주연 배우들이랑 같이 얘길 나눠보고 싶다는데. 그게 사실상 또 다른 오디션의 느낌이라 대표가 여러모로 똥줄이 타나 봐요. 이 정도면 될까요?”
3번의 추궁 끝에 그제야 정보다운 내용이 나왔다.
그것도 팀장이면 아직도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그럼 전 이만···.”
“지금까진 2팀 팀장으로 물었던 거고, 매니저로서도 묻고 싶은 것들이 좀 있는데.”
“···?”
돌아서는 최영기 실장을 김성운이 붙잡았다.
“악의 링 시놉. 공유 가능할까요? 어렵다면 내용이라도.”
그러자 최 실장이 삐딱하게 묻는다.
“왜요?”
#
사무실 너머로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유리가 방음이 잘 되는지 뭐라고 하는 지까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정민우 대리는 더욱 안절부절이었다.
“팀장님이 실장님을 따로 불러서 얘기한 적 처음인데··· 일 커지진 않겠죠?”
“괜찮지 않을까요? 아마 제가 ‘악의 링’ 시놉을 보고 싶다고 해서 그거 얘기하시려는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정민우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악의 링’이요? 허, 그럼 더 문젠데.”
“왜요?”
갸우뚱하며 되묻자,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떠들었다.
“그게 무슨 벼슬인 양, 무지 으스대거든요. 그걸로 팀장님을 살살 긁어. 보통 같은 팀이면··· 아니, 심지어 팀장이면 극의 내용뿐만 아니라 진행 상황 같은 걸 다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일절 공유를 안 해요. 제작사에서 유출하지 말라고 했다고 핑계 대면서, 누가 보면 마커스필름 직원인 줄!”
그동안 억하심정이 많이 쌓였는지 말하다가 욱한 그가 심호흡하며 덧붙였다.
“게다가 오늘 홍보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저기압이더라고요.”
“엄청 감정적인가 봐요.”
“딱 봐도 그렇잖아요. 막말에, 다른 팀 욕도 얼마나 하는지 몰라요. 그러다 당사자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확실히, 홍보팀 직원들도 알고 있는 것 같았지.
최영기 실장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란 걸 그 눈치 빠른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본인은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은연중에 나오는 모습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달까.
아까 홍보팀을 나오며 내가 그에 대해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시선을 돌려 복도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성운은 침착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니 별일이 없을 것 같지만, 변수는 최영기 실장이다.
‘괜히 시놉 얘길 꺼냈나?’
그렇게 언뜻언뜻 움직이는 실루엣들을 보며 머릿속에서 공을 굴리다가.
기억나는 게 하나 있어 얼른 봉투를 찾았다.
스튜디오라고 적혀있어 찾는 게 어렵진 않았다.
“이건 가요?”
“네?”
“제 프로필 사진 보정본이요.”
“아 네. 맞긴 한데···.”
이 와중에 그걸 보고싶냐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짓는 정민우.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리님. 그러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