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3)
백 배우 어떤 사람이에요? (4)
“승결이가 ‘악의 링’ 시놉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김성운.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최영기 실장이 손을 휘적휘적거렸다.
“아뇨, 아뇨. 그 배우가 관심이 있고 그런 거 말고요. 그 시놉을 왜 저한테 물으시냐고요.”
“신승찬 배우가 시놉을 받았으니까요.”
“그러니까요. 승찬이 시놉을 왜 백승결한테 넘깁니까. 원래 이 바닥, 본인 밥그릇 본인이 챙기는 곳 아닌가요?”
노골적인 표현에 김성운이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주유등에 불이 들어왔는데 이대로라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불안불안했다.
“이봐요, 최 실장님. 이전 회사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하람은 아닙니다. 소속 배우들끼리 무슨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이죠.”
최영기 실장이 조소를 흘리며 툭 말했다.
작품 하나에 배우가 뜨고, 지고. 덩달아 매니저들의 위치도 오르고 내린다.
대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금고를 사고, 그걸 훔치기 위해 열쇠공을 부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 업계 아닌가.
“하람이라고 뭐 다릅니까?”
인내심 주유등에 불이 들어온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았던 김성운이었다.
유명 배우를 거느린 것도 아니면서, 경력도 비슷한데 팀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꼬웠다.
자신은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무려 신승찬을 하람에 데려왔는데.
하람이 자신한테 이따위로 한다는 것에 불만이 가득했다.
게다가 오늘 홍보팀에서 얼마 있지도 않은 인내심을 모두 사용한 그였다.
“막말로 하람도 똑같잖아요. 배우들 돈 잘 벌어오는 순으로 줄 세우고. 변변치 않은 배우는 방치하고. 될 것 같은 배우들만 홍보팀에서 입맛대로 골라 푸시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서 아닌 척은. 제 말이 맞잖아요?”
최영기 실장이 못 참고 쏟아내자, 김성운이 갑자기 입을 닫았다.
반박할 수 없겠지. 이 업계가 다 그런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씩씩거리던 최영기 실장이 어느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김성운이 자신이 아니라 뒤쪽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틀린데.”
그 순간, 뒤쪽에서 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갤 돌리니 우두커니 서 있는 홍보팀장, 유연주.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저희 일 그렇게 안 해요. 최 실장님.”
“어어··· 유 팀장님. 하하, 아. 그게···.”
최영기 실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홍보팀장이 비스듬히 입꼬릴 올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백 배우 프로필 사진 나왔다길래 신나서 내려왔더니, 별 얘길 다 듣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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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유 팀장님 오신 것 같은데요?”
실루엣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을 확인한 정민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승결 씨, 덕분에 안심이네요. 어떻게 그 상황에 프로필 사진 핑계로 유 팀장님 부를 생각을 했어요?”
“아까 홍보팀에서 하셨던 말이 기억나서요.”
프로필 사진 보정본이 나오면 불러 달라고 그녀가 말했었지. 보는 눈이 좋다며.
“그 말 많으신 분 얘길 기억하시는 것도 신기하고, 그걸 연결 지어서 자연스럽게 내려오시게 한 센스도 최곱니다.”
정민우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밖의 상황은 모르지만,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그녀가 잘 말릴 거라 생각하는 듯 했다.
‘사실 난 말리기만 하라고 부른 건 아니긴 한데······.’
그건 기본이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시놉을 언급해서 생긴 문제를 무마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으니까.
근데, 이왕이면······.
‘최영기 실장이란 사람이 난감해지는 그림을 만들면 더 좋고.’
그런 말 있잖나.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여기가 안이다. 그리고 저기가 밖.
저기서 한창 새는 중일 때 홍보팀장이 나타나면 어떨까?
마침 오늘 홍보팀에서의 일로 샐 것도 많을 거 같은데. 욕이든, 험담이든. 뭐 그런 거.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무실로 김성운이 들어왔다. 홍보팀장과 함께.
최 실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 챙겨둔 짐까지 놓고서.
미간을 찌푸리며 들어오는 홍보팀장을 보니,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민우 씨.”
“네, 네.”
“오늘 아주 잘 불렀어요. 하마터면 최 실장님이 우리 홍보팀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네. 뒤에서 그런 식으로 얘길 하셨다고? 참 내, 어이가 없어서.”
“무, 무슨 일 있으셨어요?”
김성운이 묻지 말라는 듯 고갤 흔들었다.
홍보팀장이 정수기로 물 한잔을 내려 마시더니 프로필 사진을 찾았다.
정민우가 얼른 건네자 그녀가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사진을 훑었다.
“휴. 이거 보니 평화가 찾아오네. 이거 홍보할 맛 나겠어, 진짜.”
“다행이네요.”
“아, 물론 실물이 더 나아요.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새 원래의 텐션으로 돌아온 그녀가 아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사진들을 넘긴다.
회복탄력성이 용수철 수준이네···.
그녀의 멘탈에 감탄하는데, 정작 그녀는 내 사진을 보다가 감탄했다.
“이거 되게 묘하다. 당사자 앞에 놓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이 착한데 나빠 보여.”
옆에서 함께 사진을 보던 김성운이 얼른 거들었다.
“그거 배우한테 엄청난 칭찬이잖아요.”
“그런가? 하긴, 두 역할 모두 소화 가능하다는 거니까? 이걸 소재로 기사 하나 또 짜봐야겠다. 선악이 모두 가능한 배우. 슬로건 좋네.”
그렇게 한참 동안 감탄만 하던 홍보팀장이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 얼른 사무실을 나섰다.
올라가서 최영기 실장 관련해서 팀원들에게 해줘야 할 이야기가 많다며.
다시 조용해진 2팀 사무실.
김성운이 씁쓸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결국 ‘악의 링’ 시놉에 대해선 못 들었어. 아무래도 발품을 좀 팔아봐야 될 것 같다.”
“아녜요. 괜찮아요. 그냥 소재가 신기해서 궁금했었나 봐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사실 나도 멀티온이란 이름에 끌린 건 아닐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소재가 달랐더라면 이렇게까지 끌리지 않았을 것 같지.
괜찮다는 말에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발품을 팔아보겠다고 말한 김성운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래도 한 팀인데 어쩌겠나···.’라고 중얼거리며 최영기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지가 무슨 연예인이야? 라며 중얼거리는 정민우.
김성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민우야, 유 팀장님 자연스럽게 잘 불렀다. 여기 싸움 날 것 같다고 불렀으면 2팀 꼴이 뭐가 되겠어. 마침 나도 아슬아슬했거든.”
“저, 그게. 승결 씨가 갑자기 프로필 사진을 찾더니······.”
정민우가 방금 전 일의 내막을 풀어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프로필 사진을 세세하게 뜯어보며 수정할 부분들을 체크했다.
사실 뭘 체크해야 할지 몰라 느낀 점을 쭉 적었다.
그 사이, 자초지종을 들은 김성운이 정민우에게 속닥거린다.
“하하, 그랬단 말이지?”
“네. 팀장님 말대로 기억력도 좋고, 밉보이면 절대 안 되겠단 생각이······.”
“내가 말했지?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그러니까요. 그땐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오늘 보니······.”
내 이미지···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
한편, 김포에 위치한 2층짜리 단독주택.
영화관을 간다며 마커스필름 사무실을 나선 박혜정 작가는 며칠째 자신의 집이자 작업실인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건 또 아니었다.
그녀는 이 집에서 가장 큰 방을 커다란 스크린과 값비싼 사운드시스템으로 개조해 ‘영화관’이라 불렀으니까.
“흐으으으음······.”
깊고 긴 침음성을 내지르며 그녀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캐릭터 노트로 향했다.
이번 악의 링에서 활약하게 될 크고 작은 역할들.
그중에서 그녀가 집어 든 건 ‘김호철’이였다.
이름 있는 선수였지만, 챔피언에 의해 큰 부상을 입어 재기가 요원해진.
그래서 주인공의 조력자로서 활약하게 되는 조연 캐릭터.
‘원래는 이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이 안타까운 캐릭터에 백승결은 아주 찰떡처럼 보인다.
마커스필름 대표와 조규필 감독 모두 동의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백승결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고 대원군을 다시 보면서부터 그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
‘뻔한 건 재미 없잖아. 그리고 그렇게 소비되기엔······.’
흥선대원군 앞에서 힘없는 분노를 표출하던 고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단 한 씬. 하지만 극 내내 이어지던 갈등을 모두 머금은 배우의 연기는 결코 한 장면이라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랬다.
‘가능성이 훨씬 큰 배우야.’
생각이 종착했다. 어제부터 이어진 고민이 오늘에서야 멈췄다.
역시······.
“이 역할은 안 되겠네.”
결심을 마친 그녀가 ‘김호철’의 캐릭터 노트를 도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인형 뽑기의 로봇팔처럼 천천히 손을 움직여 허공을 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손이 또 다른 캐릭터를 잡아들었다.
“네가 좋겠다.”
그리고 며칠 후.
박혜정 작가는 매니지먼트 하람에서 뿌린 백승결의 프로필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봐봐. 착한 얼굴과 나쁜 얼굴이 공존한다니까? 이거 진짜 귀한 거거든!”
옆에서 커피를 물처럼 들이키던 조규필 감독이 다가와 물었다.
“무슨 두 얼굴의 사나이예요?”
“엄밀히 따지면 아수라 백작에 가깝지.”
“······.”
둘의 차이점을 곰곰이 생각하는 조규필 감독.
그러거나 말거나, 박혜정 작가가 프로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그래서 김호철 말고 다른 역할로 제안을 해볼까 해.”
“어떤 롤로요?”
“주연.”
대수롭지 않게 물었던 조규필 감독이 홱 돌아보았다.
사실 백승결 정도면 이제 주연롤이 딱히 어색하지 않은 배우다.
그림자 변호의 성공이 그 입지를 더욱 견고히 다졌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그랬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건 다르지.’
무려 멀티온이 수백억을 들여 제작하는 드라마다.
한편 한편이 영화처럼 만들어질 거고, 전 세계 시장에 선보일 거다.
‘와 저 배우들이 다 같이 찍는다고?’소리 들을 정도로 배우진을 탑급으로만 채울 수도 있는 작품이란 소리다.
그런데 백승결에게 주연을 준다?
“어, 어떤 역할이요.”
불안이 커져간다.
백승결이 선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좋아하는 박혜정 작가.
그리고 ‘악의 링’에서 유일하게 선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역할······.
“작가님 설마···.”
“눈치챘어?”
“아 안돼요. 안됩니다. 두 얼굴이든, 세 얼굴이든. 아무튼 안돼요.”
손사래를 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박혜정 작가를 보며 조규필 감독은 방법을 바꿨다. 거절이 아닌 호소로.
“작가님, 주인공은 신승찬으로 하셔야 해요. 이제 와서 절대 못 바꿔요. 게다가 백승결이랑 둘이 이제 같은 소속사라서 일 무지하게 복잡해진다고요. 진짜. 진짜 안 돼요!”
그의 절규가 무색하게 박혜정 작가가 콧방귀를 꼈다.
“알아. 누가 뭐래? 내가 미쳤다고 신승찬 빼고 백승결을 넣겠니?”
···그런 미친 짓을 많이 하시잖아요! 라는 대답을 꾹 삼킨 조규필 감독이었다.
그래. 아무리 그녀라도 해외 거대 자본이 낀 이번 프로젝트에서까지 그딴 미친 짓은 못 하겠지.
“아니, 선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역할이 주인공뿐인데, 그렇게 얘기하시면 당연히 오해하죠.”
그렇다고 백승결이 다른 주연 자릴 꿰차도 되는 건 아니었다.
반쪽짜리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대체 어떤 역할을 제안하려고요?”
“지금까지 착한 얼굴은 많이 보여줬잖아. 우린 그 반대쪽에 집중하는 거지. 지킬보단 하이드. 완벽히 나쁜 얼굴만.”
잔뜩 흥분한 창작자의 얼굴로 화이트보드에 다가가는 박혜정 작가.
조규필 감독이 다시 벌컥 불안해진 얼굴로 그녀의 뒤를 쫓았다.
짚이는 게 있었다. 아니길 바라지만······..
마침내 박혜정 작가의 시선이 화이트보드에 적힌 주연롤 중 하나에 닿았다.
[서귀호]드라마의 주요 소재인 격투기로 챔피언 벨트까지 차게 된.
불세출의 천재이자,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지닌 악역.
이러한 설정들이 쇠사슬처럼 얽혀있는 절대악.
주인공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존재감이 클지도 모를 역할.
“설마··· 아니죠?”
일명, 최종 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