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4)
백 배우 어떤 사람이에요? (5)
서귀호는 ‘악의 링’에서 최종 보스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메인 빌런이었다.
사회에 방치되었다면 연쇄살인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이코패스.
그런 놈이 끓어오르는 살심(殺心)을 링 위에서 푼다면 어떨까···그런 상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선과 악의 중간 지점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주인공에겐 가장 큰 유혹이자, 가장 강한 적이었다.
그렇기에 분량이 많지 않아도 그 존재감은 주인공 이상으로 강렬할 수밖에.
그런 서귀호 롤을··· 누구한테 준다고?
“그건 더 안되죠!”
조규필 감독이 동그래진 두 눈으로 박혜정 작가를 보았다.
가뜩이나 유약해 보이는 그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혜정 작가는 이미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맞받아쳤다.
“그럼 주인공 시켜? 그것도 잘할 거 같긴 해.”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벌컥 소리친 조규필 감독이 얼른 이성을 주우며 조곤조곤 따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동안 좋은 모습 보여준 거? 인정합니다. ‘종갓집 막내딸’에서 그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고, ‘대원군’에서 짧지만 엄청 강렬했죠. ‘그림자 변호’는 제가 이거 준비하느라 아직 제대로 못 봤지만 당연히 잘 했을 거고요. 그래서 캐스팅 리스트에 올리셨을 때도 그러려니 했던 거예요. 근데 주연은 얘기가 다르죠. 심지어 ‘서귀호’는 우리 드라마의 킥이라고 작가님이 얘기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백승결인 거야. 그동안 마음을 짠하게 만들던 배우가 이미지를 확 바꿔서 시청자들의 숨통을 콱 쥐는 거지.”
“그것도 연기를 잘했을 때 얘기죠. 못하면 숨통은커녕 옷깃도 못 잡아요. 지금까진 백승결이 본인에게 찰떡인 연기만 했던 걸지도 모르잖아요. 아시잖아요. 이렇게 딥한 악역은 타고나야 하는 거.”
조규필 감독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연기라는 게 매장에 걸린 천차만별의 옷 같아서, 배우에게 안 어울리는 역할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건 평소 성격이나 성향을 많이 타지.
운 좋게 해별이부터, 안주연과 고종, 그리고 최우진까지. 백승결은 자신에게 잘 맞는 옷만 입어온 걸지도 모른다.
과거, 다른 영화에서 말도 안 되는 발연기를 보여줬던 게 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혜정 작가는 한 번 꽂힌 배우를 만나보지도 않고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미팅을 하는 거지. 동하는 마음을 떨칠지, 확신의 도장을 찍을지 확인하려고.”
지금 한가하게 미팅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잖아요! 당장 다음 달에 본사에서 사람들이 오는데!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선배다. 대선배다. 게다가 거장이라고까지 불리우는 작가님이시다. 근데 나도 잘나가는 감독인데, 젠장!
그렇게 갈팡질팡하며 자신을 도와줄 대표에게 SOS를 치려던 찰나.
“감독님. 손님 오셨는데요?”
“어? 약속된 거 없는데?”
“신승찬 배우 매니저님이라고···.”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밖에 서 있었다. 양손에 커다란 음료 상자를 들고서.
#
딸깍—.
“이것 좀 드시면서 일하세요.”
신승찬의 매니저, 최영기 실장이 얼른 병을 까서 작가와 감독에게 차례대로 건넸다.
“대표님은 오늘 회사로 못 들어오신다고 그러셨는데···.”
“괜찮습니다. 바쁘실 텐데 괜히 방해가 될까 봐 얼른 이것만 드리려고 연락 않고 왔습니다.”
그는 한껏 사람 좋게 웃으며 두 사람을 훑었다. 그리고 테이블 옆으로 치워둔 프로필 사진도 힐끔거렸다.
살짝 눈살이 찌푸려졌다. 분명 녀석이다. 백승결. 어제 회사에서 마주한 그놈의 사진이 아주 큼직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캐스팅이 한창인 제작사 사무실에 배우들 프로필이 쌓여있는 거야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자꾸 거슬리네······.’
최근 들어 김성운만큼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었다.
안 거슬릴 수가 없지.
자신 선에서 커트한 대원군 고종역으로 유명세를 불린 것부터, 그 재수 없는 김성운 팀장이 직접 붙어서 키우는 배우라는 것.
게다가 어제 일로 감정이 제대로 상한 홍보팀장이 해별이, 해별이 거리며 격하게 반기는 것까지.
‘그건 그렇고, 승찬이 사진은 또 왜 저렇게 조그마한 건데?’
그가 화이트보드에 붙어있는 자기 배우의 사진을 보면서까지도 불편해하는데, 박혜정 작가가 불쑥 물어왔다.
“신승찬 배우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얼른 영업용 미소를 불러낸 그가 고객 응대를 시작한다.
“아, 승찬이요? 드라마에만 집중하고 싶다며 스케줄도 최대한 안 잡고 매일 체육관 가서 운동합니다. 아침에 두 시간 헬스하고 저녁엔 체육관 가서 격투기 연습하고. 제가 배우 매니저인지 운동선수 매니저인지 헷갈릴 정돕니다. 최근 몸 사진, 몇 장 찍어놓은 게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첩에 넣어둔 사진을 확대한다.
그러면서도 입은 쉬지 않고 어필을 이어갔다.
“승찬이는 멀티온 본사와의 미팅에서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를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언어가 다르니 연기만으론 그들에게 확신을 주기 힘들 테니까요.”
조규필 감독이 핸드폰 화면을 보며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수 있겠네요. 역시 신 배우··· 이야, 몸이 무슨 그 뭐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같네. 아니, 원래 이렇게 좋았어요?”
“아니죠. 화보 때문에 마른 몸을 유지했었는데, 이번 작품 때문에 벌크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거 다음에 사진 한번 제대로 찍어서 보내줘요. 드라마 홍보로 괜찮겠는데?”
“알겠습니다. 베스트 컷으로 엄선해서 보내드릴게요.”
조규필 감독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최영기가 입꼬릴 올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박혜정 작가를 보았다.
가만히 핸드폰 속 화면을 지켜보던 그녀의 입에도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제가 그리던 주인공의 이미지. 그대로네요. 기대돼요.”
“하핫. 승찬이도 매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작가님, 감독님과 일하게 돼서 너무 기대된다고. 이런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도 영광이고······그런데, 다른 주연들은 좀 정해지셨어요? 대본 연습을 할 때, 상대역이 누군지 알면 조금 더 디테일한 연습이 가능할 것 같은데.”
“그게 신 배우 말고는 아직 확정된 바가 없어요. 여러모로 지금 고민이 많아서.”
박혜정 작가가 팔짱을 끼며 화이트보드로 시선을 던졌다.
그때, 조규필 감독이 뭔가 떠올렸는지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신 배우랑 이번에 같은 소속사가 된 백승결이란 배우 있잖습니까.”
“네? 아··· 네.”
“그 친구 어때요?”
“뭐가 어떠시냐는 건지···.”
어느새 조규필 감독이 몸을 앞으로 쏟으며 묻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들로는 아주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착하다던데, 궁금해서요. 아, 아직 안 만나봤으려나. 신승찬 배우랑 나이대도 비슷하고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승찬이는 아직······.”
재빠르게 눈알을 굴리던 최영기가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그 이름이 왜 튀어나온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쵸? 신 배우가 워낙 바쁘니.”
아쉬워하며 주억거리는 조규필 감독.
그 모습을 보던 최영기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불쑥 내뱉었다.
“근데 저는 봤습니다. 한··· 두어 번 정도.”
어제 한 번 본 게 다지만. 홍보팀에서 보고 2팀 사무실에서 봤으니 두 번 본 거 맞잖아?
“그래요? 아니, 그 배우 무지 착하죠? 욕 같은 것도 잘 못 할 거 같고, 화도 못 낼 것 같은 이미지잖아요? 그쵸?”
하마터면 ‘그 자식이요? 누가 그래요?’라고 되물을 뻔했다.
울컥한 최영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말조심하자. 어제 입 잘못 놀려서 그 사달이 났잖나.
“글쎄요. 그런 것처럼 보이기는 한데······.”
그래도 놈들 좋은 얘긴 절대 못 해주지.
“뭐랄까. 그게 좀 가끔은 섬뜩할 때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왜 영화 보면 그런 악역들 있잖아요. 순둥순둥하게 생겨서 막 연쇄살인마이고. 뭐, 그런··· 하하, 물론 그 친구가 앞뒤 다른 사람이란 건 아니고. 제가 승찬이랑 작품 가지고 이런저런 얘길 많이 하다 보니 상상력이 풍부해져서 말입니다. 그냥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죠. 이미지가.”
유창하게 떠들어놓고 눈치를 보는 최영기였다.
다행히 조규필 감독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지는 게 보였다. 기대하던 바를 놓친 사람처럼.
그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옆에서 박혜정 작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실제로도 그런 이미지가 있단 말이죠?”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가 기울었다.
‘뭐지?’
낭패라는 듯한 조규필 감독의 얼굴과는 확연히 다르게,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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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여느 날처럼 뜀박질을 마쳤다. 오늘은 카페 대신 슈퍼에 들러 우유를 샀다.
또다시 주인 할머니의 일 하라는 잔소리를 듣고서, 어제 회사에서 들고 온 대본들을 읽어내려간다.
‘가만, 생각해보니 억울하네.’
그림자 변호를 재밌게 봤다고 칭찬하신 게 엊그젠데, 벌써 일 안 하냐고 닦달이시다. 드라마만 안 찍지 어제 프로필도 찍고, 그젠 인터뷰도 하고, 대본도 꾸준히 읽고······ 나 바쁜데.
돈을 내고도 잔소리를 듣는 손님이라니.
이게 바로 그 ‘손놈’이란 건가.
그런 실없는 생각에 피식거리며 계속 시놉들을 읽어내려갔다.
여전히 ‘대원군’처럼 확 꽂히는 작품은 없었다.
‘악의 링’은 소재만 들어도 신경 쓰였는데, 여기 널린 대본들은 대사까지 있는데도 자꾸 신경에서 멀어진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몇 번씩 읽는 중이긴 한데······.
마침내 마지막 장을 넘겨 표지를 마주했다. 구면이다. 그것도 꽤.
“흐음.”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포스트잇 하나를 떼어왔다. 표지에 붙여놓고 볼펜을 집어 들었다. 반복해서 읽으니 조금 답답해져 작품에 대한 간단히 감상평이라도 적으려는데, 옆에 던져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팀장님인가?’
내 예상이 맞았다. 너무 쉬운 문제긴 했다.
연락처에 함께 일한 배우들은 물론이고 작가, 감독에 제작사 직원들까지 추가되었지만 여전히 전화가 오는 곳은 정해져 있지.
현태 형, 김성운, 가끔 김상억이나 이준혁. 그리고 종갓집 막내딸을 함께 촬영한 최지연과 이강현에 최근에는 가끔 그림자 변호의 박재준까지······.
생각해보니 꽤 많잖아?
새삼스레 웃으며 전화를 받는데.
“여보세요.”
“어, 승결아. 어디야?”
다급한 것 같은 목소리가 뛰어 들어왔다.
김성운의 질문에 덩달아 빠르게 답했다.
“저요? 지금 집이죠.”
“나, 거기로 바로 출근하고 있거든? 얼른 준비해. 회사로 가야 돼.”
“갑자기요?”
“응, 갑자기. 지금 회사에 네 손님들이 오신대.”
뭐? 손놈··· 아니,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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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운은 2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빌라 앞에 도착했다.
얼른 내려가 차에 올라탔다.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는 나만큼이나 멍한 표정의 김성운. 그가 나를 바라본다. 빤히.
“어······ 나쁘지 않네.”
“뭐가요?”
“네 상태.”
갑자기 내 상태를 점검한 그가 곧장 엑셀을 밟는다. 궁금증이 지금 이 차의 RPM만큼이나 치솟았다.
“근데 무슨 일이에요? 제 손님이라뇨?”
“오늘 아침에 갑자기 연락이 왔어. 그것도 본부장님께 직통으로.”
“본부장님, 중국에서 오셨어요?”
“응, 일 마치고 어제 오전 비행기로 오셨어.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연락이 왔는데, 그 사람들··· 아니, 그분들이 널 보고 싶다고 회사로 찾아오겠다 했대.”
“아니, 그래서. 그분들이 누군데요?”
답답한 마음으로 물었는데, 이어지는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무언가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악의 링, 작감(—작가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