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52)
악역의 조건 (2)
요즘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악의 링’ 3화가 오늘 오후 5시에 공개되었다.
1화에서 서귀호(백승결 분)와 임훈(신승찬 분)의 이야기로 시선을 잡아끌고, 2화에선 임훈에 초점을 맞춘 ‘악의 링’이 3화에서부턴 본격적으로 격투기 세계에 들어선 임훈을 보여주었다.
2화의 마지막에서 뛰쳐나오려는 괴물을 막기 위해 격투기를 시작한 임훈은, 3화에선 증상이 점차 호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위태롭긴 했지만 결국 충동을 참아내는 모습들을 보여준 것.
그럼에도 벌써 2주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서귀호 때문에 긴장감을 놓을 순 없었다.
그가 언제 나타나 임훈을 뒤흔들지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이날 방송에 대해 시청자들은 ‘정말 어딘가에 저런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무섭다’ ‘오늘도 숨 못 쉬게 만드는 재미였다’ 등의 호평과 ‘서귀호도 저런 이유로 처음 격투기를 시작했을까?’ ‘서귀호와는 언제 만나려나.’ ‘이상하다. 오늘도 서귀호가 안 나왔다.’ 등의 백승결 배우를 찾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공개 첫날부터 계속 멀티온 한국 차트 1위를 달리고 있는 ‘악의 링’은 3화 만에 시청시간 100만 시간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뤄내, 마지막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일지 국내외 드라마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마커스필름 대표가 톡방에 올린 기사를 쭉 읽었다. 좋아요도 남겼다. 두 번은 못 누르나 보네.
덜덜덜—.
‘룸6’ 촬영장으로 가는 길.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가로지르며 김성운에게 소식을 전했다.
“멀티온에서 마커스필름으로 연락이 왔대요.”
“종종 하는 거 아니었어? 화상 회의도 한다며.”
“댄이 아니라 더 윗선에서요.”
“총책임자보다 더 위면······ 임원?”
“네.”
흥미가 솟았는지 김성운의 눈도 룸미러로 솟았다.
“뭐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이로써 멀티온이 한국 컨텐츠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김성운이 하하 웃으며 핸들을 탁 쳤다.
“이야, 그 정도면 ‘악의 링’이 애국하고 있는 거 아냐?”
“그 정도는 아니어도, 도움이 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특히 제작 업계에.
이미 OTT 플랫폼들 때문에 급변하고 있는 업계가 앞으로 더 큰 변화를 예고하는 중이었다.
“아, 그리고 제작진이랑 배우들 다 같이 마지막회 시청하기로 한 거요.”
“어, 어.”
“그거 좀 미뤄졌어요. 어차피 티비 드라마처럼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라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바쁜 스케줄들 다 끝나고 모여서 뒷심 발휘용으로 뮤튜브에 올릴 영상을 만들자고 하시네요.”
“오케이. 그럼 그거 스케줄에서 지울게.”
“대신, 그날 굿픽쳐스 가기로 했어요.”
“굿픽쳐스? 거긴 왜?”
바로 오늘 아침 주고받은 문자를 떠올리며 말했다.
“박 대표님이 안원상 감독님이랑 다른 감독님들 몇 분하고 같이 ‘악의 링’을 챙겨보시나 봐요. 그래서 그땐 저도 합석하기로 했어요.”
“알겠어. 그건 추가해놓고.”
끄덕거린 김성운이 덧붙여 말했다.
“확실히 네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나 봐.”
“갑자기요?”
“이 업계가 건바이 건이잖아. 한 번 모였다가 훅 흩어지는. 물론 그럼에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꾸준히 연락하긴 하지만 너처럼 모든 사람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 특히 네가 그렇게 인싸 스타일도 아닌데 말이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
그런 게 정말 나한테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 이내 넘겼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끌어당긴 사람들을 얼마나 지키냐의 문제겠지. 시청률처럼 말이다.
“다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죠. 그나저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마지막회 약속을 왜 벌써 잡으시는지······.”
내 말에 김성운이 모르겠냐는 듯 말한다.
“그거야 너 때문이지.”
“저요?”
“그래, 너.”
룸미러에 담긴 김성운의 얼굴에 뿌듯함이 번졌다.
“앞으로 네가 얼마나 바빠질지, 그 사람들 눈엔 뻔히 보이니까.”
#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카메라도 없는데 배우들이 밴에서 내려 말을 걸어왔다.
내가 사람을 끌어당기는진 모르겠지만, ‘악의 링’은 확실히 끌어당긴다.
“진짜 재밌던데요. 아, 너무 일찍 봐버렸어.”
“왜 한 번에 안 푼 거예요? 그거 일부러죠? 한 달 더 구독하게 하려고.”
“두 달 치··· 아니, 석 달 치 그냥 낼 테니까 한 번에 풀어주면 안 되나?”
“2, 3화에 왜 서귀호 안 나왔어요? 4화엔 나오죠?”
다들 익히 아는 얼굴들이다.
크고 작은 작품에서 꾸준히 악역을 맡아온 배우들.
계속 멈칫거리게 된다. 다들 칼과 밧줄, 음모와 배신이 연상되는 사람들이라 자연스레 인지 부조화가 온다.
이렇게 부드러운 표정들이라니.
“다들 한 명씩 물어보세요, 한 명씩. 승결 씨 정신 없겠다~.”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여배우가 말했다.
영화에서 팜므파탈 역할로 자주 나오는 임세주.
그녀 옆에 서 있던 근육질의 남배우.
깡패 역할로 자주 나오는 안기훈이 크게 웃었다.
그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당황했는데?”
“당황스럽긴 하네요. 뭔가 이렇게 둘러싸이니까 당연히 협박을 당해야 할 것 같은데, 다들 친절하셔서.”
담담하게 말하자 듣고 있던 배우들이 모두 웃음을 빵 터트렸다.
나도 입꼬릴 올리며 나머지 배우들도 확인했다.
그들 모두 각자의 컨셉에 맞게 의상을 준비했다.
나도 서귀호 캐릭터에 맞게 새하얀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여벌도 넉넉히 준비했고.
“난 대원군 때부터 진짜 만나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아니, 연기를 너무 잘해.”
“난 승결 씨, 무지 날카로운 이미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촬영 끝나고 살이 다시 붙어서 그런가··· 전혀 안 그렇네?”
“대단하다. 얼마나 뺐어요? 아니, 어떻게 뺐어요? 나 요새 진짜 입 터져서 큰일이에요···.”
한동안 계속 내 얘기가 이어지다가, 스태프들이 분주한 모습에 오늘 촬영 얘기로 넘어갔다.
임세주가 자꾸 말려 올라가는 원피스를 정리하며 물었다.
“어 그러고 보니, 형준 선배는 여기 출연하신 적 있죠?”
“시즌1 때 나온 적 있지.”
“그때 꽤 활약하셨잖아요!?”
배우들의 이목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자, 사기꾼 전문 배우라 불리는 김형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유경험자의 후기가 이어졌다.
“그랬죠. 뭐, 별거 없어요. 깜짝깜짝 놀라는 지점들이 몇 개 있긴 한데···.”
“으, 무서워요? 무서운 거 싫은데.”
“전 무서울 게 없지만, 세주 씨는 무서울지도. 하핫, 근데 걱정 말아요. 여기 지금 남자가 몇인데.”
“난이도는 어때요? 생각보다 쉬우면 어쩌지? 너무 쉽게 탈출하면 민폐인가?”
“음, 그건······.”
“전혀요.”
신이 나 떠드는 김형준의 말허릴 끊는 목소리.
녹색 조끼를 입은 남자. 나주영 PD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여기 모여계셨네.”
곧 우리 앞에 선 그가 우릴 쭉 훑으며 당부했다.
“전혀 민폐 아니니까 온 힘을 다해서 탈출해주세요. 저희도 그런 그림을 잡고 싶어서 온 힘을 다해 준비했거든요. 예능 스킨을 씌운 다큐멘터리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리얼하게,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을 재차 강조한 그가···.
“구면인 분들도 계시고, 오늘 처음 뵌 분들도 계신데.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룸6’의 시즌2 첫 방송이 여러분들 손에 달렸어요.”
#
······이윽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매니저들과 일별하고 얼마나 걸어 올라갔을까.
산 중턱에 다다른 우리는 놀란 눈으로 눈앞에 있는 폐광을 바라봤다.
카메라들이 그런 우리를 신나게 찍는 중이다.
“무슨 이런 곳이 있었어?”
“어쩐지 오는 길이 험하더라니.”
“이거 터널이에요? 아니, 광산인가?”
폐광에 조그맣게 난 문으로 들어선 대기실.
10여 분 정도 대기하자, 나주영 PD가 들어왔다.
그의 신호에 따라 광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다가와 안대와 수갑을 건넨다.
그걸 차고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끌려갔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
때아닌 기차놀이를 얼마나 했을까.
앞사람을 따라 멈춰서서 드디어 안대를 풀었다.
“코드네임 ‘신흥 악역’. 앞으로.”
철컥. 광부 옷의 남자가 가장 먼저 내 수갑을 풀어주었다.
손목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활한 밀실이었다.
좀 전에 여배우의 ‘어멋!’하는 비명이 크게 울리는 걸 듣고 눈치채긴 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크다.
살짝 시선을 내리자 우리 맞은편엔 다음 방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이 보인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체스판처럼 생긴 격자무늬 칸들을 통과해야 했다.
딱 봐도 그냥 성큼성큼 걸어가면 안 될 것 같이 생겼다.
그때, 나주영 PD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우리는 ‘최고의 악역’을 가리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맞다, 그런다고 했었지. 6개의 방을 탈출하며 가장 많은 활약을 하는 배우에게 ‘최고의 악역’이란 칭호와 상품을 준다고.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뭐, 최고의 악역이란 타이틀도 막상 받으면 기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뭘 하면 되나 다른 배우들과 함께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바닥에 깔린 수많은 칸에 불빛이 들어왔다.
대부분은 적색으로, 일부는 녹색으로.
뒤이어 목소리가 이어졌다.
[첫 번째 악역의 조건은 ‘잠입’입니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상황실에 둘러앉은 제작진들이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주영 PD가 다리를 꼬며 모니터링에 집중했다.
안내한 대로 첫 게임은 ‘잠입’.
그들 앞에 있는 400개의 칸을 제작진이 정해둔 경로로 통과해 다음 방으로 향하면 되는, 일종의 지뢰 찾기였다.
또 한 번 바닥에서 빛이 반짝인다.
그렇게, 세 번. 앞으로 5분마다 이렇게 세 번씩 점등된다.
대신 제한시간이 있었다.
15분.
“······그러니 기본적인 힌트는 앞으로 두 번. 그 안에 다음 방으로 통과하셔야 끔찍한 벌칙을 피하실 수 있습니다.”
안내를 마친 나주영 PD가 마이크를 끄고 음흉하게 웃었다.
“너무 어려우려나?”
그런 그를 카메라 한 대가 찍고 있다.
‘룸6’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에는 이렇게 출연자들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듯한 제작진의 모습도 있었기에.
“오, 그래도 생각보다 잘하는데요?”
김지회 작가가 카메라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것도 연출이었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제작진의 반응을 원하니까.
한편, 화면 속 사람들이 미적미적 앞으로 나아간다.
꽤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 있게 다음 발을 내디딘 김형준의 밑에서 붉은빛이 점멸했다.
틀린 길이었다.
[아, 망했네···.]유경험자라는 이유로 리더처럼 굴던 그가 광부들에게 질질 끌려간다.
이제 밀실에 갇혀 혹독한 벌칙을 수행하고 돌아오게 되겠지.
“첫 벌칙자도 생겼겠다, 슬슬 특별 힌트를 줘볼까?”
물론 그냥 줄 생각은 없었다.
저 연기만 잘하는 배우들에게 온갖 장기자랑을 시킬 생각에 나주영 PD는 싱글벙글이었다.
악역 PD라는 컨셉에 사로잡힌 그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더욱 활짝 웃는데, 옆에서 김지회 작가가 의아한 목소릴 냈다.
“어···?”
그 소리에 고갤 돌린 나주영 PD.
화면을 보니 백승결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가 발을 올리는 칸이 연달아 녹색으로 바뀐다.
길이 맞았다. 심지어 거침이 없다.
“이야, 잘 가는데?”
“오, 이번에도?”
“저걸 어떻게 저기까지 기억하지?”
감탄이 이어졌다.
그렇게 백승결의 걸음이 이어졌다. 단숨에 절반 지점을 지나친 그.
오오~ 하던 소리가 점차 잦아들다가 어느새 뚝 끊겼다.
다른 카메라에 잡힌 배우들의 놀란 표정처럼, 제작진도 모두 얼빠진 얼굴로 침묵한다.
“······.”
어느새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여전히 백승결은 움직이고 있었다.
산책 나온 듯, 고민조차 없이 다음 발을 내디딘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자, 적막을 깨며 누군가 다급한 목소릴 냈다.
“···어, 어? 저래도 돼요? 저러다 진짜 한 번에 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