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54)
멀티온 (1)
본 촬영이 모두 끝났다.
이제 편집 사이 사이에 들어갈 인터뷰만 따면 예정된 촬영은 모두 끝이었다.
“참······ 하하핫······.”
나주영 PD의 웃음소리가 폐광 입구에서 공허하게 울렸다.
그는 달관한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심각한데 웃긴 상황이라 옆 배우들이 웃음을 참고 있다.
“저희도 지금 굉장히 난감하거든요.”
머릴 긁적인 나주영 PD가 얼른 덧붙인다.
“아, 죄책감 가지시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언젠 최선을 다하라 해놓고 이제 와 이러는 게 추해 보여도 어쩔 수 없어요. 저 그냥 추할랍니다. 젠장.”
풀풀 웃은 그가 잔뜩 헝클어진 머릴 정리하며 말했다.
“그리고 자부심도 가지세요. 이렇게 잘하실 줄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시즌1에서 가장 어려웠던 ‘좀비 마을 탈출’ 촬영이 9시간이 걸렸거든요. 오늘 미션들이 그때만큼 어려웠는데도 이제 고작 3시간······.”
시간을 확인하고,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니 인터뷰를 최대한. 최~대한 길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뭐라도 말해줘요. 작품 홍보를 하셔도 좋고, 자축해도 좋아요. 다른 멤버 칭찬을 하셔도 좋습니다. 길게만 해주세요. 아니면 아예 이참에 저랑 토크쇼 찍으실래요?”
케이블 예능의 전설이라 불리는 스타 PD의 간절한 반응에 배우들이 더는 못 참겠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사이 스타 PD의 간절한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약간의 분노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어쨌든, 오늘의 MVP인 최고의 악역은······.”
어느새 제작진, 배우 할 것 없이 폐광 앞에 모인 모두가 날 보고 있었다.
“말 안 해도 이미 다들 예상하시죠? 네, 백승결 배우님입니다. 제일 죄책감 가지셔야 할 분이죠.”
“죄송합니다. 인터뷰에서 말 많이 할게요.”
담담하게 사과까지 하자 이번엔 제작진도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분노와 웃음이 절묘하게 섞인 ‘최고의 악역’ 시상까지 마치고서.
“자, 이제 인터뷰 촬영하러 가겠습니다! 승결 씨는 대기실로, 형준 씨는 첫 번째 방으로 가시고요. 세주 씨는······.”
우리는 각자의 촬영감독과 함께 미션을 수행했던 방으로 흩어졌다.
#
—우선 두 번째 방에서의 활약이 돋보이셨는데요. 그 과정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길 자유롭게 해주세요. 저희가 잘라서 알맞은 곳에 붙여넣을 겁니다.
담요로 무릎을 덮은 임세주가 입꼬릴 올리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녀는 자신이 활약했던 두 번째 방을 회상하며 한껏 들뜬 목소릴 낸다.
“제가 피아노를 칠 줄 알아서 그래도 음감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문제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단 말이죠. 종이나 펜도 쓸 수가 없었으니까. 근데 승결 씨가 갑자기 흥얼거리더라고요?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딱~!”
길쭉길쭉한 손가락을 튕긴 그녀가 반대쪽으로 다릴 꼬았다.
“근데 승결 씨가 음감도 좋더라고요. 대충 흥얼거리는데 음정이 정확해. 목소리도 좋아서 노래도 잘 부를 것 같던데?”
······같은 시각, 바로 옆방에서 안기훈이 성난 근육을 뽐내며 말했다.
“그 친구 머리가 좋은 것도 좋은 건데, 운동신경도 남다르더라고요.”
진심으로 감탄한 그가 그 위에 감탄을 더한다.
“제가 운동을 좋아해서 친한 운동선수 동생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몸만 좀 만져봐도 대충 아는데, 딱 만져보니 돌인 거예요.”
그렇게 계속 감탄 탑을 쌓았다.
물론 자신이 관심 있는 운동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신경이 남다르더라고. 세 번째 방에서 아마 저 혼자였으면 그거 들고 못 뛰었어요.”
······나머지 배우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모든 방에서 활약한 백승결이기에, 그를 얘기하지 않고선 인터뷰가 진행이 안 됐다.
결국, 모든 이야기들 끝에는 백승결이 있었고, 그에 대한 신기함이 뒤를 이었다.
“진짜 신기하더라니까요? ‘최고의 악역’이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죠. 전~혀 없습니다.”
“백 배우님 덕분에 나 PD님 속상해하시는 모습을 다 보내요. 너무 웃겼어요.”
“와, 승결 배우 봤어요? 그 사람 진짜 아이큐 검사 한번 해보면 안 돼요? 천재예요. 천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시만요. 저 이거 한 번만 더 해볼게요.”
김형준.
그는 ‘잠입’이 미션이었던 첫 번째 방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다시 한번 칸 위에 발을 올린다.
곧바로 붉은 불이 들어왔다.
쩝···.
첫발부터 틀린 그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감독의 신호에 따라 밝은 표정을 한껏 끌어올린다.
“아시죠? 어느 정도 재미를 위해서 그랬다는 거. 제작진분들이 열심히 벌칙 준비하셨는데, 그런 식으로 해버리면 안 되잖아요. 전 지난번에 잘했었으니까! 하하핫!”
나름대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본인도 그걸 아는지 웃음에 민망함이 더해진다.
결국, 맥아리 없이 웃던 그가 실토했다.
“···사실 아무 기억이 없네요. 벌칙 수행한 것밖엔.”
#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자 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는 등 뒤풀이 아닌 뒤풀이를 가졌다.
SNS는 없으니 알려 줄 게 없었다. 진짜 시작 해야 하나···.
그렇게 30여 분 정도 이야길 나누다가 김성운과 함께 밴에 올라탔다.
김성운이 내가 받은 상자부터 확인한다.
“어디 보자······.”
스웨이드 원단으로 싸인 상자 안에는 ‘최고의 악역’이라 적힌 금패가 들어가 있었다.
말만으로 기분이 좋긴 하네. 최고의 악역이라니.
“생각보단 크기가 작다? 이거 진짜 금이래?”
“네. 순금 3돈이래요.”
“가만 지금 시세가······.”
“98만 7326원이던데요. 아까 다른 분들이 찾아보더라고요.”
핸드폰으로 금 시세를 찾던 김성운이 피식 웃는다.
“촬영에서도 그런 식으로 해서 이거 받은 거구나?”
뭐, 대충 비슷하긴 하지.
배우들이 뭐가 필요한지 말하면 그걸 알려줬으니까.
지금 가격을 말한 것처럼 말이다.
“거 봐. 재능 있잖아.”
“글쎄요. 제가 망친 거 같은데.”
“왜?”
“너무 금방 풀어버렸잖아요. 상황실은 아비규환이었대요.”
그러자 조소를 띄우는 김성운.
“그래서 망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다들 열심히 준비한 만큼 허무하겠지. 이걸 어떻게 편집하나 머리 터지겠지.”
그가 제작진이 처한 상황을 나열하며 덧붙였다.
“근데 그걸 살리는 게 나주영 PD야. 그러니까 나도 이건 꼭 하라고 민 거고. 아까 너 인터뷰 딸 때 작가님한테 가서 슬쩍 얘기 들어보니 대충 이런 그림 그리시는 것 같더라.”
“어떤 그림이요?”
“한 번쯤 제작진이 당할 때도 된 거 같다고. 악역 특집의 진짜 악역은 제작진이었고, 넌 그 악역을 물리친······.”
김성운이 상자를 돌려주며 말했다.
“악역들의 영웅, 최고의 악역이 되는 거지.”
“어우, 그건 오글거리는데요?”
“이거 자막으로 보잖아? 하나도 안 오글거려.”
“그래도 좀···.”
몸서릴 치며 맛동산 하나를 집어 들었다. 도시락을 먹긴 했지만 좀 부족했다.
“아무튼, 다행이네요. 처음엔 그냥 열심히 하자였는데, 중간부턴 상황에 몰입이 돼서··· 정신 차리고 보니 마지막 방이라 아차 싶더라고요.”
“그럴 줄 알았다. 욕심 덩어리인 네가 뭘 허투루 할 리가 없지.”
“그래서 마지막엔 좀 자제했어요.”
“자제를··· 했어?”
“네.”
끄덕이자 손목시계를 슥 보더니 헛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핸들을 잡으며 말했다.
“그것참, 편집이 어떻게 돼서 나올지 너무 궁금해지네.”
그건 나도 궁금하다.
며칠 후, TZN 측에서 뿌린 기사들을 보며 그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대체 어떻게 편집을 하려고···.
하지만 아직 방영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는 상황.
그전에 우리는 또 다른 편집본부터 확인해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편집이 모두 끝난 완성본이지.
예고편을 통해 서귀호의 재등장을 예고했던 악의 링 4화가···.
—드디어 오늘이네요!
—예고편을 보지 말까? 이번 일주일이 제일 길었던 것 같은데?
—오늘도 숨 못 쉴 것 같으니, 많이 쉬어두겠습니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대중의 관심 속에 공개되었다.
#
————!
거대한 함성이 홀의 천장에 닿을 듯 치솟았다.
열기도 함께 올라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광기 어린 환호가 링 위의 핏물처럼 튀어 올랐다.
—몰아붙이는 임훈 선수!
—혜성처럼 나타나서 아주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죠. 많은 해외 언론들이 서귀호 선수에 대해 이레귤러라고 표현을 하잖습니까? 아시아에서 나올 수 없는 선수라고요. 하지만 임훈 선수의 등장이 그런 이야기들을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베즈 선수 초반과는 다르게 공격이 소극적입니다. 저돌적인 임훈 선수의 스탠스에 많이 당황한 것으로 보여요!
해설자들이 격양된 목소리로 경기 상황을 쏟아낸다.
그 순간에도 임훈은 상대의 안면에 정타를 때려 넣었다. 잠시 휘청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들어가 그라운드로 끌고 간다.
순식간에 엉킨 두 사람.
묵직한 파운딩이 상대 선수의 안면에 내리꽂혔다.
———!
피가 튀자 다시 한번 경기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곳 대기실까지 그 함성이 밀려들 정도로.
그리고 대기실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는 남자.
서귀호가 짧게 자른 머릴 슥 쓸어올리며 고갤 기울였다. 이따금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간이 좁혀졌다가 멀어지고, 눈이 가늘어진다.
그때 그의 매니저인 흑인 남자가 다가와 살갑게 말했다.
“생소한 광경인데? 귀호가 경기를 보고 있다니. 임···훈? 같은 나라 사람 같은데. 혹시 아는 사람······.”
재잘재잘 떠들던 매니저가 말을 멈췄다.
자신을 바라보는 서귀호의 눈에서 진한 살기를 느꼈기 때문.
입을 닫자 곧장 시선을 돌린다.
이리처럼 날카로운 눈이 화면 안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리고 임훈의 모습이 화면 가득 잡히는 순간.
“찾았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매니저가 되물었고, 서귀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찔한 매니저가 뒷걸음질 치며 사과했다.
“미, 미안.”
그러거나 말거나, 서귀호는 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에 떠는 매니저를 지나쳐 문밖으로 나선다.
어둡고 긴 복도의 끝. 그 끝에 광명(光明)이 보이는 듯하다.
걸음이 빨라진다. 호흡이 가빠지고 입꼬리가 들썩이며 그는 경기장에 들어섰다.
때마침, 환호가 폭발했다.
—경기 끝납니다! 임훈 선수가 로베즈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쥡니다!
“흐핫!”
괴기한 웃음이 터졌다.
경기장으로 나온 그가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지금의 짜릿함은 처음 공사장에서 죽음을 목격했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그가 링을 올려다보며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반갑다!”
점차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고.
순식간에 경기장엔 또 다른 흐름이 만들어졌다.
“서귀호잖아?”
“진짜 서귀호네! 챔피언이 갑자기 왜 나온 거지? 이벤트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아. 저기 스태프들 당황하는 거 봐.”
“아니면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어. 임훈도 한국 사람이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둘 다 같은 국적이지?”
어수선한 사람들의 반응에도 서귀호는 오로지 링 위만 바라본다. 초점이 하나뿐인 사람처럼 임훈만 바라본다.
“흐하하핫! 반갑다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그가 환희를 가득 담아 임훈을 환영했다.
“나의 동류(同類)——!”
······.
······이상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중에 나타난 세계챔피언.
자신이 가야 할 길의 정점이 저 아래에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그건 설렘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 뭘까 이 업습하는 감정은······.
‘위험하다.’
저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 그 감정이 결국···.
쿵—!
놈을 깨웠다.
더는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대신 지축이 뒤흔들렸다. 머릿속, 거대한 문이 위태로웠다.
괴물이······ 문을 두드린다.
쿵! 쿵! 쿵!
끝없이. 미친 듯이.
쿵! 쿵! 쿵! 쿵!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