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55)
멀티온 (2)
괴물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일순 멎었다.
잠깐의 정적 뒤엔 강렬한 락 음악이 드라마의 종착을 알렸다.
더는 다음 화가 없자 홈으로 나가지는 화면.
우리나라 차트 가장 상단에 큼직하게 ‘악의 링’ 포스터가 떠올라 있었다.
볼 때마다 뿌듯함이 올라온다.
동시에 욕심도 한 스푼.
저 차트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딱 저런 모양이었으면 하는 욕심 말이다.
입꼬릴 살짝 올리며 시선을 떼어냈다.
이곳은 현태 형이 일하는 사무실.
그의 팀원들이 숨을 몰아쉬며 날 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보면 세상 선하게 웃고 있는데.”
그녀의 시선이 이번엔 화면으로 향한다.
“저기서는 또 그렇게 소름끼칠 수가 없네. 이게 같은 사람이 맞는 건가.”
“10년을 넘게 본 나조차도 낯설어 죽겠다. 저런 표정도 있었다니. 진짜 천의 얼굴이 따로 없어.”
옆에서 현태 형이 혀를 내둘렀다.
괜히 장난기가 돋아 딴지를 걸었다.
“천 개는 안 되지 않을까? 아역 때까지 합쳐도 이제 여덟 갠데.”
“말이 그렇단 거지. 얜 꼭 남들한텐 착하면서 나한테만 짓궂더라.”
“에이, 좋아서 그렇지.”
능청스럽게 받아치는데, 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쩐지 부담스럽게 변해간다.
“저희한테도 짓궂어져 주실래요?”
“저희는 PD님처럼 저렇게 서운해하지도 않을게요.”
“야, 내가 뭘 서운해했다고 그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PD님은 왜 말이 항상 그렇지?”
“······.”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튀어대는 대화에 피식 웃었다.
좋다. 이런 복작복작한 분위기.
그러고 보니 요새 이런 상황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든다.
홍보팀 직원들에게 둘러싸이고, 악역 전문 배우들에게 둘러싸이고, 지금도 그렇고.
‘확실히 네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나 봐.’
문득 김성운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긴 하네. 늘 이럴 수 있게.
그런 간지러운 생각을 하는 사이, 팀원 중 한 명이 물티슈로 손을 닦아내고 핸드폰을 들었다.
“저, 우리 사진 찍어도 될까요? 배우님이랑 치킨 먹으면서 악의 링 봤다고 하면 다들 안 믿을 거 같아서···.”
“그럼요.”
흔쾌히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사진을 확인한 팀원들이 기함을 토했다.
“와, 이거 보면 다들 놀라 뒤집어 지긴 하겠다. 백승결이 언제 오징어잡이 배 탔냐고.”
“그러게요. 남녀 가릴 것 없이 오징어가 되버렸어.”
“야, 이거 누가 기본 카메라로 찍었냐?”
“어쩔 수 없었어요. 필터 적용하면 배우님 눈이 이따시만해.”
“아싸, 그래도 난 맨 끝이라 그나마 낫다~.”
모두가 사진 확인에 여념이 없는 사이, 현태 형이 말끔히 발라진 닭 뼈를 내려놓으며 툭 말했다.
“바쁜데 와줘서 고맙다.”
“안 바빠.”
고개를 젓자, 안 믿는 눈치다. 그래서 덧붙였다.
“그리고 바빴어도 웬만하면 왔을 거야.”
“너, 날 그 정도로···.”
“내가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응원해준 분들이잖아.”
“아, 나 때문이 아니라?”
“물론 형도 포함이고.”
픽 하고 웃은 현태 형이 팀원들을 보며 ‘착한 애들이지’라고 덧붙인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고갤 돌리며 물었다.
“아 맞다. 근데 갑자기 여권은 왜 발급받아?”
며칠 전, 어디냐는 통화에 여권을 발급받는 중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 것이다.
“아, 그게······.”
딱히 숨길 일도 아니기에 조만간 미국에 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가 크게 놀란다. 사실 내 반응도 딱 저랬지.
갑자기 미국이라니.
그것도 멀티온의 초대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만큼 단순 전화 말고도 뭔가 더 있을 거라던 마커스필름 대표의 말이 맞았던 거다.
“이야, 미국이라니.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난데······.”
현태 형의 말에 어느새 우리 얘길 듣고 있던 팀원들이 들썩였다.
“멀티온이 부를 정도면 진짜 대단한 거 아녜요?”
“그렇겠지. 모든 해외 작품을 다 부르진 않을 거 아냐.”
“영국에서 제작한 ‘체리 온’ 이후로 처음이래요.”
“거 봐! 진짜 대단하네. 미국 가면 외국인들도 막 ‘악의 링!’ 하면서 알아보려나?”
“그러다 거리 마비되고.”
“아님, 공항에서부터 팬들이 기다릴지도?”
점점 커지는 스케일에 내가 웃었다.
“전체 시청시간에 90%가 한국이에요. 미국은 5% 정도밖에 안 되고. 거기 땅덩어리랑 인구 생각하면···.”
“희박하구나.”
현태 형의 대답에 끄덕였다.
“그래서 다른 배우분들은 미국 가면 자유롭게 다닐 생각에 신나셨어. 다들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라 사생활이랄 게 없잖아.”
“넌 아닌 것처럼 얘기한다?”
“하긴, 아니라곤 못 하지. 아니,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당연하고, 과거에도 나는 어디서든 주목받았으니까.
가족여행은커녕 놀이동산조차 가지 못했었지.
이후 내가 택배 일을 하게 된 것도, 어디까지나 혼자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컸고.
“그럼 너도 이참에 자유를 만끽하고 오면 되겠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좀 하고.
그때 직원 중 한 명이 못내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국 시청시간이 그거 밖에 안 된다고? 이렇게 재밌는데 왜 다들 안 보지?”
#
“역시, 다시 봐도 재밌어!”
편한 소파를 내버려 두고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티비를 시청하던 백인 소녀가 그제야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소파에 드러누워 함께 드라마를 본 백인 남자에게 물었다.
“오빠 어때? 재밌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재미없을 거라 확신에 차 있던 얼굴이 어느새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뭐, 나쁘진 않네.”
며칠째 같이 보자고 조르는 걸 무시했었는데, 막상 보니 생각 외로 재밌었다.
그것도 꽤.
‘몰입이 전혀 안 될 줄 알았는데 말이지······.’
머릴 긁적거린 그가 ‘거 봐~’라며 좋아하는 동생에게 말했다.
“얼른 다음 편이나 틀어.”
“없어.”
“왜? 벌써 시즌1 끝이야?”
“당연히 아니지. 원래 멀티온은 한화씩 올라와.”
“아니, 왜 그딴···!”
순간 발끈한 그가 이내 입맛을 다시며 헤죽거리는 동생을 보았다.
승리의 미소가 퍽 얄미웠다.
“보던 거 끊기는 거 원래 싫어해.”
“네, 네~ 그러시겠지.”
으쓱거리는 동생 녀석에게 잠시 살심이 들었다.
방금 전에 본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이해할 뻔했다.
“그나저나, 애초에 격투기를 하던 배우인가?”
“누구?”
“사이코패스.”
“아, 챔프? 그건 아니래. 백승결이라는 배우인데 어렸을 때부터 아역으로 활동했었고, 한동안 연기 일을 쉬었다가 최근에 다시 복귀했어. 제대로 된 운동은 촬영 2달 전부터 시작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고······.”
수도꼭지를 튼 듯 나오는 설명에 남자가 인상을 썼다.
“뭘 그렇게 잘 알아?”
“팬이라니까. 내 원픽이야.”
“죽을 만큼 좋다던 아이돌들은 다 어쩌고.”
“고민 중이야. 슬슬 정리하고 한 명한테 집중할지.”
황당한 눈초리로 동생 녀석을 보았다.
누가 들으면 여러 다리 걸치다가 한 명만 만나기로 결심한 핫걸인 줄 알겠다.
멀쩡하게 생겨서. 심지어 핫걸까진 아니어도 학교에서 꽤 인기도 많으면서.
대체 왜 연예인이나 좋아하고 있는 걸까.
비버나 로버츠를 좋아할 땐 그러려니 했는데, 이젠 비행기로 13시간이나 가야 하는 한국 아이돌과 배우라니.
뭐, 그래도······.
“네가 지금까지 좋다고 난리 쳤던 애들보단 이쪽이 훨씬 났다. 남자가 저렇게 야성미가 있어야지.”
“그래서 오빠 야성미는 어디 가셨는데요. 야성밖에 없으면서. 아,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한 거 있어.”
“뭔데?”
“혹시 오빠도 사람 때리면서 막 기분이 좋은 적······.”
이어지는 말에 남자가 황당한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미쳤냐!?”
“가끔 미친 것 같기도 해서. 역시 아니지?”
남자가 대답 대신 가볍게 중지를 올리며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봤자 매일 들고 다니는 보스턴백을 드는 게 전부였지만.
“어디가? 쉬는 날이라며.”
“할 것도 없고, 운동이나 하려고.”
“어휴. 봐봐 미쳤잖아. 운동에.”
“칭찬 고맙다.”
깔끔하게 무시하며 곧장 집을 나선 남자.
커다란 저택 아래 주차된 고급 차량들 중에 하나를 골라 탄다.
시동을 걸고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막간을 이용해 트위터에 접속한 그가 새 글을 작성했다.
[오늘 멀티온에 올라온 ‘악의 링’이란 드라마를 봤는데, 좀 놀랐다. 재밌더라. 격투기 드라마라 솔직히 거슬리는 게 많을 것 같아 꺼려졌는데 생각 외로 그런 게 없었어. 내용도 재밌고. 아시아 드라마는 처음 보는데, 솔직히 더 보고 싶다. 다음 편만 있다면.]“······.”
여기까지 단숨에 쓰고서, 잠시 고민하던 그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추신. 근데 멀티온 무슨 생각으로 한 주에 하나씩 올리는 거냐? 정신 차려라.]#
공개 전부터 관심을 불러 모은 ‘악의 링’ 4화는 공개 이후에 더 큰 반응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모두가 기다리던 임훈과 서귀호의 만남.
서귀호가 임훈이란 존재를 알게 되고, 그가 자신과 동류라는 걸 알아보는 장면은 그야말로 4화의 백미.
대기실에서 경기장으로 달려가는 원테이크 장면은 마치 악마가 유혹할 인간을 만난 것처럼 비장하면서도 섬뜩했다.
그리고 그런 서귀호를 보고 이유 모를 불안함에 떨던 임훈과, 깨어나버린 괴물.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음향까지.
1~3화 내내 차근차근 쌓아오던 빌드업이 빛을 발했고, 거기에 백승결과 신승찬의 연기가 더해져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강렬함을 선사했다.
이미 1화 오프닝과 더불어 ‘악의 링’ 최고의 장면으로 언급될 정도.
그런 와중에 4화 초반부에 잠깐 나온 서귀호의 경기 장면이 돌연 화제로 떠올랐다.
—자세가 지난 영상보다 더 늘었네?
—깜짝 놀랐다. 거 봐, 2달 그거 개구라라니까.”
—아니지, 오히려 신빙성 있는 거 아냐? 그새 이 정도 늘 정도면 2달 만에 그 실력인 것도 가능할 거 같은데?
—임훈도 나쁘진 않은데, 서귀호는 진짜 선수라 해도 믿겠다.
—잠깐 나온 거 가지고 오버한다 또. 요즘 편집 기술이 발전해서 개떡같이 해도 찰떡같이 만드는 거 모르냐? 격투기가 쉬운 줄 아나.
—이거 가지고 감탄하는 애들은 어디 가서 격투기 안다고 하지 마라. 볼만한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빨 건 아니지. 제작사에서 푼 알바인가?
—넌 뭘 아는데? 저 장면에서 별로인 이유를 대라고. 그것도 못 대면서 무슨···.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덮여 사그라들었던 불씨가 각종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부터 다시 타올랐다.
그 자욱한 연기를 본 격투 뮤튜버들이 분주해졌다.
“형, 얼른 이거 관련해서도 리뷰 만들자”
“그래, 이거 조회수 무조건 터질 거 같다.”
백승결이 샌드백 치는 영상을 리뷰해 구독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채널, ‘격투 쌍둥이 TV’도 그중 하나였다.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때 프로 격투기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그들은.
꽤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로 유명한 뮤튜버이자, 채널 이름대로 진짜 쌍둥이였다.
“근데 솔직히 어땠어?”
동생이 카메라를 세팅하며 물었다.
“뭐? 백승결?”
“응.”
“어떻긴. 개쩔던데.”
“그치? 근데 아까 반응 보니까 그거가지고도 싸우더라. 잘하는 걸 잘한다고 하니까 오버한다느니, 알바라느니.”
너저분한 체육관을 정리하던 형이 괜스레 발끈했다.
“아, 그 얘기 들으니까 벌써 화난다. 우리 영상에도 방구석 전문가들 몰려와서 이러쿵저러쿵 딴지 걸 거 생각하니까.”
“그거 빡치지. 우리가 격투기 선수였고, 지금은 심지어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보고 뭣도 모르느니···. 그 새끼들은 인정이란 걸 몰라.”
“아니 대체 누가 말하면 인정할 건데? 세계챔피언이라도 등판 해야 돼?”
짜증 날 일들이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그럼에도 영상은 만들어야 했다.
양아치 참교육 컨텐츠 이후로 가장 큰 호황이 바로 ‘악의 링’ 리뷰였으니까.
그때 카메라 세팅을 끝내놓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동생이 화들짝 놀라며 형을 찾았다.
“형? 형!”
“왜? 카메라 또 먹통이냐?”
“아니, 웬 외국인이 ‘악의 링’ 재밌다고 올린 게 엄청 리트윗 되길래 뭔가 싶었는데··· 이거 봐. 얼른!”
“잠시만.”
워낙 호들갑이 심한 동생이라 느긋하게 글러브를 마저 캐비닛에 넣고서 다가갔다.
동생이 내민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형이 갸우뚱한다.
“야 임마, 너 나 놀리냐. 이 꼬부랑 글씨를 내가 어떻게 읽어.”
“아니, 누가 본문 보래? 누가 올렸는지를 보라고!”
“누가 올렸길래 갑자기 난리야. 로베노··· 로베노 카를—.”
형이 말을 멈추고 눈을 굴렸다.
재차 살펴봐도 로베노 카를렌.
영어를 모르는 그도 이 이름만큼은 모를 수가 없었다.
“······세계챔피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