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59)
악의 링 (1)
한바탕 소동 속에서 벗어나 호텔로 돌아왔다.
더는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도, 누구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지만.
여전히 모두 정신이 없었다.
그래봤자 1, 20명의 사람들이 다가온 게 전부였고, 이런 일들이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운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일어난 일은 그런 배우들마저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만 해도 미국에서 이런 걸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이게 뭐냐······.”
“그러게요. 저흴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네요?”
“작년에 여기서 머무는 동안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모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까 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윽고 아울렛을 갔던 일행들이 도착했고, 그들에게 우리에게 벌어졌던 일을 설명하자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부러워하는 배우들, 설레하는 제작진 사이에서 김성운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영상을 아무도 안 찍었다니······.”
“그럴 새가 없었어요.”
“알지. 그러니 내가 갔어야 했는데.”
매니저로서 그 진귀한 광경을 놓쳤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김성운.
그가 혹시나 누군가 영상을 찍어 올렸을까 싶다며 SNS를 뒤지는 사이, 댄이 우릴 찾아 왔다. 더 큰 희소식을 들고서.
“3일 사이에 미국에서의 검색량이 90배가 뛰었습니다. 그리고 시청시간은 400만 이상 늘었고요.”
미국으로 출발할 때 500만을 간신히 넘겼던 악의 링이 지금 천만의 고지를 앞두고 있었다.
“홍보를 하는 만큼 결과가 난다는 걸 보여줬으니, 이젠 위에다 더 강한 푸쉬를 요청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이제 전 세계 홍보에 대한 플랜을 만들어 올리려고 합니다.”
애초에 댄이 얻어내고자 했던 바가 이것이었다.
‘악의 링’의 가능성을 임원들에게 확인시켜서 전세계에 홍보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럼, 마지막화 즐겁게 보겠습니다. 모두 정말 감사하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의 감사 인사와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들뜬 기분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 한복판에서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였던 그 날의 경험은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해외 상황에 곁눈질하게끔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관심은 복리였다.
그사이 누적 시간은 더 올라서 천만을 넘겼고, 마지막화를 하루 앞둔 시점에선 2천만 시간을 돌파했다.
국내외 각종 매스컴에서 이 소식을 보도했고, 기사가 쏟아졌으며, 해외 반응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액션 장르는 별로 안 좋아해서 내키지 않았는데, 주인공 맡은 배우가 너무 잘생겨서 봤음. 근데 웬걸. 이렇게 미친 드라마일 줄이야.
—생각보다 훨씬 재밌네. 늦게 알게 된 게 천만다행. 이걸 한주씩 어떻게 기다려.
—1화 공개됐을 때부터 한주씩 기다리면서 본 사람이 접니다. 이거 재밌다고 글 올려도 아무 반응 없었는데, 이제라도 알려져서 너무 좋네요.
—방금 전부 다 보고 온 소감. 격투기라는 소재야 세계챔피언이 인정할 정도로 잘 표현했고, 주인공의 욕망을 문 너머의 괴물로 연출한 것도 좋았음. 무엇보다 배우들 연기가 미쳤는데··· 말로 설명하기 힘드니 꼭 한 번 보시길 추천. 그나저나, 이제 곧 마지막화라니! 이건 시즌 9까지는 만들어줘야 해!
—주인공과 챔프의 싸움이라니··· 마지막 화 너무 기대되네. 주인공은 챔프처럼 괴물이 되지 않고 벨트를 차지할 수 있을까?
커뮤니티에 번역되어 돌아다니는 해외 반응을 훑던 김성운이 입꼬릴 올렸다.
마음에 드는 댓글은 낭독까지 하면서 콧노랠 흥얼거린다.
마침 SNS에 ‘요즘 한국 배우들 미국에서의 위상’이라는 제목으로 현장 상황을 올린 한국인 관광객이 있어 김성운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 멀티온 로비에 걸려 있던 액자들 기억나?”
“네. ‘전당’이라고 했던 거.”
“맞아, 그거. 거기에 걸리려면 기준이 20개국 이상 1위에 1억 시간이라고 했었나?”
그런 얘길 들은 기억이 있어 끄덕거리자, 그가 무언가를 곰곰이 계산해본다.
그러더니 내달 5일을 가리키며 들뜬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해외반응만 받쳐주면··· 이때쯤엔 악의 링이 거기에 걸릴 수도 있겠는데?”
#
이제는 대형 기획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아티스 엔터테인먼트.
그곳엔 하루에도 수많은 대본들이 들어왔다.
시트콤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본은 창고 신세일 수밖에 없었다.
절반이 투자를 제대로 못 받아 첫 삽도 못 뜨거나 중간에 엎어질 것들이고, 나머지 절반의 상당수도 극장이나 채널에 잠시 걸렸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작품들이었으니까.
그렇게 모두 솎아내어 살아남은 대본들이 본부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우경철 본부장의 손을 거쳐 배우들에게 전달된다.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이게 얼마라고?”
대본을 쭉 깔아놓고 우경철이 물었다.
그의 심복인 박 실장이 냉큼 가격표를 매겼다.
“300억이요.”
“이건?”
“200억인데, 배우들 캐스팅에 따라서 더 오를 가능성이 있대요.”
그러자 우경철이 콧방귀를 꼈다.
“지랄. 그럼 뭐, 누가 들어가면 올려줄 건데? 하여튼 투자사건 제작사건 전부 다 입만 살아서···.”
눈살을 찌푸린 그가 손을 움직였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감독 이름값 제일 높은 게 이거. 그리고 제작비 제일 높은 게 이거. 맞지?”
“맞습니다.”
“그럼 이건 예린이 주고, 이건 아역 비중이 높으니까 도영이로 가자. 나머진 팀장들 불러서 밑에 배우들한테 돌리라 하고.”
“넵, 알겠습니다.”
얼른 대본을 챙겨 나가는 박 실장.
소파에 기댄 우경철이 벽에 걸린 소속 배우들의 사진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분명 한해에 십 수억씩 벌어다 주는 스타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쉽다.
‘몸값은 괜찮지만, 이름값이 약하단 말이지.’
사실 그래서 차도영을 키우고 있었다.
제대로 키워서 이름값 높은 배우로 만들려고.
그래야 아티스 내에서의 자신의 입지가 완벽히 굳어질 테니까.
그리고 그 첫걸음은 신인상이었는데······.
“젠장.”
차도영에게서 신인상을 뺏어간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기에 자신이 뭘 더 기억하고 있을 줄 아냐며 협박을 하던 표정까지도.
“백승결, 그 개자식······.”
그렇게 이를 갈며 얼마나 있었을까.
본부장실로 손님이 한 명 찾아 왔다.
“오랜만입니다, 본부장님.”
“어어, 장 기자님 왔어요?”
반갑게 장 기자를 맞이한 우경철이 가벼운 이야길 주고받다가 이내 아쉬운 목소릴 낸다.
“아니, 그건 그렇고 요즘 도영이 기사가 통 안 보여요.”
“아, 차도영 배우 기사··· 쓰고 있죠. 쓰고는 있는데. 요즘 ‘악의 링’ 때문에···.”
듣기만 해도 열이 뻗치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입술을 비트는 우경철.
이를 보지 못한 장 기자가 계속 떠들었다.
“‘악의 링’이 메인을 다 먹어버리니까. 위에서도 악의 링 기사를 하나라도 더 쓰라면서 성화고요.”
“그래봤자 이제 곧 끝나는 드라마잖습니까. 드라마라는 게 마지막화 딱 끝나면 금세 잊혀지는 거 알잖아요.”
“그냥 티비 드라마였으면 그랬을 텐데, OTT라 마냥 그렇지가 않아요. 게다가 지금 미국에선 이제 시작인 느낌이라···. 난리인 거 들으셨죠? 하루에 시청시간이 막 백만씩 뛴답니다. 미국 시장이 진짜 크긴 큰가 봐요. 하긴 사람이 몇 명이야······.”
어깨를 으쓱거린 장 기자가 덧붙였다.
“게다가 앞으로 홍보도 전세계로 확장할 거라는데, 이러다 초대박 나는 거 아닌가 하고 다들 지켜보고 있어요. 관심이 식으려면 멀었죠.”
“······.”
“쯧, 하람만 노났네요. 거기 두 주연이 전부 그쪽 소속······.”
신나서 소식을 전하던 장 기자가 멈칫했다.
우경철의 얼굴이 구겨져 있는 걸 이제야 발견한 거다.
“그거야 모르는 거죠. 마지막화가 어떠냐에 따라 반응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확장한다던 홍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고.”
“하하, 하긴··· 유종의 미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은 아니죠. 음식도 드라마도 이 끝 맛이 좋아야 기억에 오래 남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우경철은 텁텁한 입맛을 다셨다.
이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악의 링’ 마지막화가 제대로 헛발질을 하기를.
기억에 오래 남지 못할 정도로 끝 맛이 별로이기를.
#
굿픽쳐스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쯤 도착한 톡.
내용을 읽고서 알겠다고 답장했다.
김성운의 걱정이 충분히 이해간다.
제작사 대표와 감독들을 만나는 자리다.
아무리 드라마를 함께 본다는 굉장히 순수한(?) 목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다음엔 술자리로 이어질 거고, 감독들의 신작 얘기가 나올 거다.
그런 와중에 내가 갑자기 구두로라도 도장을 찍고 올까 걱정되겠지.
‘그건 그거대로 기대가 되네.’
사실 ‘악의 링’은 이미 내가 촬영하고, 몇 번이나 편집본을 확인했다.
그러니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를 즐기기엔 이제 무리가 좀 있었다.
대신 함께 드라마를 보고, 영상화에 빠삭한 감독들과 얘기하고, 그들의 신작 소식을 듣는 게 내겐 훨씬 더 기대되는 일이었다.
그러다 대본을 받게 되면 더 좋고.
그렇게 김성운이 알았다면 더 걱정했을 생각들을 이어가며 건물을 올랐다.
주말 오후 8시. 당연히 직원들은 없었다. 대신 내가 대원군 미팅을 했었던 대표실 옆 방으로 들어가자 꽤 넓은 공간에 아는 얼굴들과 낯선 얼굴들이 섞여 있었다.
“어어, 백 배우 왔네. 백 배우 잘 지냈어?”
굿픽쳐스 박 대표가 나를 반긴다.
뒤이어 다가온 안원상 감독과도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
둘 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도, 그렇다고 어린 것 같지도 않았다. 30대 후반 정도일까.
“여긴 배기우 감독. 그리고 이쪽은 한이연 감독. 독립 영화판에서 아주 유명한 감독들이야. 이 둘에 안원상이까지가 원래 독립영화 감독 트리오였지.”
굿픽쳐스 박 대표가 허허 웃으며 두 사람을 추켜세웠다.
허구한 날 안원상 감독이 독립영화 같은 거 찍는다고 불평불만인 그였지만, 이렇게 보면 또 독립영화를 엄청 응원하는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다.
하긴, 그러니 안원상 감독이 대원군을 찍을 수 있도록 자유를 줬겠지.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간단한 인사가 오갔다.
그 뒤엔 기분 좋은 말들이 이어졌다.
“악의 링,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특히 서귀호는 진짜 역대급 캐릭터였어요. 정말이지······.”
“전 오면서 일부러 인터넷도 안 보고 왔어요. 혹시라도 스포당할까봐.”
“저도 톡 알림 다 껐습니다. 다들 온통 악의 링 얘기라.”
감독들이 이렇게 말해주니 느낌이 또 다르다.
현태 형의 팀원들이랑 함께 볼 땐 민망함이 컸는데, 여기선 사뭇 긴장감이 올라온다.
이들에게 ‘악의 링’의 마지막 화는 어떤 인상을 남기게 될까.
“자자. 러브레터 그만 날리고 일단 보고 얘기하자고. 궁금해 죽겠으니까.”
박 대표가 두 사람을 말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미 8화 썸네일을 띄워놓고 대기 중이던 안원상 감독이 빔프로젝터 리모콘을 집어 들었다.
“그럼 틉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