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천재 (3)
“···!”
생각지도 못한 백승결의 물음에 친구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 상태로 어버버하던 녀석이 벌컥 답했다.
“유, 유빈이요? 걔 지금 면접 갔어요. 알바 면접.”
“아아. 그렇구나.”
“혹시라도 만나서 자기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못 와서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했었는데···.”
절대 전할 일 없을 것 같던 당부까지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몰래카메란가?
“그게 왜 죄송해요. 당연히 알바 면접을 가야지. 좋은 일 구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줘요.”
“네, 네! 근데 진짜 저 기억해주셨네요?”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기억하겠다고 3초나 얼굴 봤잖아요.”
백승결이 빙그레 웃는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행복사 직전이었다.
뒤쪽에 사람이 몰리며 백승결이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얘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을지도···?
“제가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미안해요. 들어가 볼게요.”
“어, 네. 얼른 가세요! 얼른!”
그렇게 백승결이 뒤돌아 걸어간다. 가는 내내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얼른 가라며 최애를 떠나보낸 친구는 아직 얼음인 상태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툭 쳐서 땡을 해줘야 하나.
“대박이다···.”
뒤이어 작게 중얼거리는 친구.
그녀가 홱 몸을 돌리며 물었다.
“야 봤어?”
“어··· 봤어···.”
남소영이 끄덕였다.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기억했고, 먼저 아는 체를 해왔다.
이게 단순히 이미지 관리로 할 수 있는 걸까?
······아닐 것 같았다.
“거 봐! 나 알아봐 주기로 했다니까~.”
“진짜 신기하네. 기억에 남을만한 얼굴이 전혀 아닌데.”
“야, 뒤질래?”
그때 티격태격하는 그들 옆으로 누군가 다가온다.
정말 사람 머리통만 한 커다란 카메라를 든 여자.
그녀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네? 아, 네.”
끄덕거리자 그녀가 카메라를 슬쩍 들어 올린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제가 승찬 오빠 찍으려다가 어쩌다 보니 방금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버렸는데, 이거 혹시 올려도 돼요? 너무 신기하던데.”
#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교통체증에 던져졌다.
삼성역 부근에서 벗어나는 데만 40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결국,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이런 상황이 운전자 입장에서 얼마나 곤욕인지 알기에.
“졸리진 않아요?”
“나? 안 졸려. 너 졸리면 좀 자.”
“아녜요. 저도 안 졸리네요. 아직 저기서 받은 에너지가 남아 있어요.”
코엑스를 가리켰다.
음··· 저게 아직도 보이네. 출발한 지 40분인데.
그나저나, 영어 공부를 위해 혹사한 귀가 얼얼하다. 헤드셋이 더 나으려나? 근데 그건 답답할 것 같던데······.
그렇게 기계치답지 않게 기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김성운이 물었다.
“요즘 노래 자주 듣더라?”
“노래요?”
딱히 그에게 영어 공부 중이라는 얘긴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노래를 듣는 거로 오해할 수밖에.
잠시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할지.
솔직하게 말해도 문제 될 건 없지만, 왠지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게 말해서 의아해하는 걸 보는 것보단, 의아해하는 눈빛에 확신을 줄 수 있을 때.
그때 얘기해야겠단 결론에 이르렀다.
다행히 대수롭지 않게 던진 질문이었는지, 그가 금세 화제를 바꿨다.
“아 참, 인터뷰 관련해서 홍보팀에서 회의를 하려고 하는데, 이왕이면 너도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좋죠. 날짜 잡히면 알려주세요.”
시간을 벌었다.
내가 통역 없이 인터뷰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실력을 쌓을 시간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찾은 홍보팀.
기다란 테이블에 모인 우리는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직원이 USA 투데이 측과 주고받은 연락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질문 내용을 대략적으로 보내주겠지만, 현장에서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그 점을 인지해서 준비해달라고 하네요.”
“어떤 기자가 오는진 알아? 내가 조사한 바로는 USA 투데이에 유명한 기자들이 많다던데. 최근에 브래드 피트를 인터뷰했던 데이먼 셰리, 그 사람도 엄청 유명하잖아.”
살짝 기대 어린 홍보팀장의 말에 직원이 PPT 화면을 넘기며 답했다.
“이번에 오는 기자는 유명하진 않은 것 같아요. 마크 델런. 이 사람이에요.”
화면 속 외국인을 본 홍보팀장이 끄덕였다.
“아아, 젊네. 이제 수습 뗐을 것 같은데? 하긴 그러니 타국까지 와서 인터뷰하는 일을 맡았겠구나. 그래서,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잡혔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인터뷰를 진행할 기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가 적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꼼꼼히 진행되던 회의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돌다리를 두들겨 보듯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점검하는 말미에, 드디어 통역사 고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통역 관련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네, 말해요. 승결 배우.”
몰려드는 시선을 보며, 드디어 하려던 말을 꺼냈다.
“제가 직접 영어를 해보려고요.”
이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될 만큼 충분한 준비가 되었지.
“오, 좋아요. 인사말이나 간단한 소개 정도는 영어로 하는 게 좋겠네. 어쨌든 영상으로도 찍어서 사이트에 올라가니까······.”
자연스레 오해가 생겼고.
“인사나 소개뿐만 아니라 모든 내용을 영어로 해보려고요.”
그것을 바로잡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하는 직원들의 표정.
홍보팀장이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의아해했다.
“어······ 모든 내용을? 가만, 승결 배우 영어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고갤 돌리며 물었다.
질문을 받은 김성운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알고 있긴 한데······.”
심지어 그는 미국에서 내가 영어 하는 걸 봤다.
그러니 저렇게 더 당황한 표정이 나올 수밖에.
네가, 영어로 인터뷰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을··· 아니, 홍보팀 직원들까지 모두 훑어보며 나는 고민했다.
쩝, 뭐라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뜸 영어를 하는 것도 웃기잖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툭 내뱉은 대답이···.
“공부했어요.”
결국, 이 모양이다.
이게 사실이고, 현실이니까.
아 물론, 내 현실이 종종 드라마보다도 개연성이 없긴 하다.
#
미국 버지니아주, USA 투데이 본사.
문화부에서도 영화, 드라마, 배우 파트를 맞게 된 마크가 마른침을 삼키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지 이제 딱 반년.
겨우 수습 딱지를 뗀 마크는 지금 수석 편집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호출하셨을까? 처음으로 인터뷰를 맡아서인가? 출장 가기 전에 원래 이렇게 한 번씩 부르나?’
온갖 생각들이 다 튀어나왔다.
독대는 입사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긴장이 되는데, 지금 만나러 가는 수석편집장이 무려 데이먼 셰리라는 사실에 더욱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다.
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기자다.
과거 배우였으며, 감독이었고, 평론가였던,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그.
이미 파트장이 되고도 남았어야 할 그였지만.
여전히 필드에서 뛰는 기자가 되고 싶다며 한사코 승진을 거절하는 바람에 편집장으로 남아 있다는 얘긴 기자들에게 전설과도 같았다.
이러니 어떻게 긴장이 안 되겠나!
“후우······.”
깊은 심호흡을 하고서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똑. 똑—.
들어오라는 목소리에 문을 열고 널따란 방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멋스러운 중년이 그를 반겼다.
“자네가 마크 델런이군. 여기 앉지.”
“네, 넵.”
얼른 그가 가리킨 소파로 착석했다.
그 모습에 픽 하고 웃는 중년. 데이먼도 책상 앞에서 일어나 커피포트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차 마시나?”
“좋아합니다.”
이윽고 마크의 앞에 찻잔이 내려놓아 졌다. 그리고 반대편에 앉는 데이먼.
그가 손바닥을 내밀며 차를 권했고, 마크는 얼른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잔뜩 얼어있던 몸이 이제 조금씩 녹는다고 느낄 무렵.
데이먼이 물었다.
“음, 이번에 수습 끝내고 처음으로 인터뷰를 맡게 되었다고?”
“네, 맞습니다. ‘악의 링’이라고, 최근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멀티온 오리지널 드라마인데······.”
“알아. 그 기획을 내가 냈는걸.”
이에 마크가 화들짝 놀랐다.
“편집장님 기획인 건 몰랐습니다.”
“악의 링을 꽤나 인상 깊게 봤거든. 솔직히 최근 들어 본 드라마, 영화 통틀어서 가장 재밌게 본 것 같아.”
“저,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죠.”
“그러니까. 참······ 씁쓸한 일이지.”
“···?”
“더는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새로운 게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거니까. 바다 건너에서 찾아와야 할 정도로.”
담담하게 말하는 데이먼에 마크가 입을 벌렸다.
그런 그를 보며 옅게 웃은 데이먼이 자신의 찻잔을 들어 올리며 툭 말했다.
“아무튼, 자네의 첫 출장 사수가 나로 결정됐다고 말해주려 불렀어.”
“아, 그렇구······예? 펴, 편집장님이요?”
고갤 끄덕이다가 덜커덩 멈춰서며 휘둥그레지는 마크.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에 데이먼이 으쓱거렸다.
“뭐,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친구도 보러 갈 겸 함께 가고 싶은데··· 사수로 붙기엔 너무 부담스럽나?”
“아뇨, 아뇨! 저야 영광이죠!”
마크가 양손을 빠르게 흔들며 부정했다.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진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았던 한국 출장에 더 큰 걱정이 얹어졌다.
전설이 사수로 지켜보는데 인터뷰를 해야 한다니.
첫판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뱉은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정말 영광이지.
반대로 말하면 6개월 차 기자가 결코 얻을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준비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안 그래도 첫 인터뷰라 온 힘을 쏟고 있었는데, 이제부턴 혼신을 다해야겠다.
#
한편, 마크가 나가고 방에 혼자 남은 데이먼.
그가 한국 출장에 대한 직원의 동의까지 얻어내고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그.
잠시 기다리자 반가운 목소리가 퉁명스레 넘어왔다.
—자네, 여기 시간이 몇 시인 줄은 알고 전화하는 거야?
“아, 시차가 앞으로 14시간이 아니었나?”
—뒤로라네, 뒤로. 연락 전에 검색을 좀 해보라니까···.
말끝을 흐린 상대방이 덧붙여 물었다.
—그런데 웬일이야?
“나 이번에 한국엘 가게 되었어.”
—갑자기 왜?
“내가 제안한 프로젝트가 한국 출장이 필연적인데, 그냥 오랜만에 자네도 만날 겸 합류하기로 했지. 자네가 미국으론 자주 왔지만 난 자네가 있는 곳을 몇 번 못 갔잖나.”
—온다는 소식은 반갑다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일은 무슨···.”
풀풀 웃으며 고개를 젓던 데이먼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일이 있긴 있지.”
“뭐?”
“이번에 우리가 인터뷰하는 배우들 중에 한 명이 아무래도······.”
말끝을 늘리던 그가 아주 오래전에 나눴던 대화를 기억 속에서 찾아냈다.
“광윤, 자네가 예전에 입이 닳도록 말했던 그 꼬마 배우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