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천재가 천재 연기를 하면 (1)
홍보팀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론을 펼치고 있었다.
이태관과 백승결.
이미 대원군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앞으로의 홍보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다들 궁금해 죽어요. 대체 어떤 영화냐고. 어떤 영화길래 투자도 못 받은 영화에 두 사람이나 들어가냐고.”
“그래서?”
“잘 모른다고 했죠. 그게 또 사실이잖아요.”
직원의 말에 홍보팀장이 끄덕거렸다.
그들도 전달받은 내용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확실한 건, 이태관의 역할이 악역이라는 것과 백승결이 주인공이고, 천재 역할이라는 것.
미술이 주요 소재라고 했으니 아마 그쪽으로 천재겠지.
여기까지만 생각했을 땐 일단 영화가 너무 마이너할까 겁나는데······.
“일단 주말 지나고 지켜보자. 일요일에 그거 방영되고 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다들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일요일엔 드디어 룸6가 시즌2 방영을 시작하니까.
신제품 홍보도 가장 이목이 쏠렸을 때 하면 좋은 것처럼, 차기작 발표도 똑같았다.
사람들이 룸6에 관심이 많은 만큼 방송이 주는 효과가 꽤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김성운이 와서 했던 말들을 돌이켜보면······.
‘나주영 PD가 아주 울상이었어요.’
‘왜요? 촬영 망했어요?’
‘망했죠. 아니, 망쳤죠. 승결이가.’
‘어머, 승결 배우가요? 근데 왜··· 기분이 좋아요?’
‘촬영은 망했어도, 승결인 아닐 것 같거든요. 아마 난리 날 겁니다.’
과거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난리가 나려나.”
만약 그렇다면, 그때가 차기작을 오픈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인 건 분명했다.
물론 그렇게 어그로를 끌어놓고, 막상 영화가 별로면 최적이 아니라 최악의 타이밍이 되겠지.
소리소문없이 망하는 게 차라리 나은 영화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영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그로를 잔뜩 끌어놓고 망하면 그건 정말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되어버리니까.
여전히 배우의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니는 몇몇 망작들을 떠올린다.
이번 작품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건 아니지만, 내심 걱정이 없진 않았다.
작품 수도 적고, 간격도 띄엄띄엄인.
전직 회사원 출신 독립영화 감독의 입봉작.
‘이게 어떻게 걱정이 안 되겠냐고.’
그러니 홍보팀 입장에서··· 아니, 아마 하람의 직원들 대부분이 바라고 있을 거다.
최소한 영화가 기본만 해주길.
#
룸6 시즌2 첫 화가 팬들의 기대 속에서 방영되었다.
편집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던 터라 집에서 방송을 봤다.
스케줄을 마치고 나를 데려다준 김성운과 함께.
시작은 매우 익숙했다. 모든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나주영 PD가 나타났다.
모두 기억난다. 저 때 최선을 다해달라고 거듭 강조했었지.
다음은 대기실이자 마지막 방에서 안대와 수갑을 차고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미션들이 시작되었다.
그제야 내가 모르는 장면이 나왔다.
제작진들이 상황실에 모여 ‘저건 못 풀지’, ‘우리가 너무 심했나?’라며 흐뭇하게 우릴 바라보는 모습.
‘저렇게 우릴 보고 있었구나.’
하지만 제작진의 으스대던 모습도 잠시, 첫 번째 미션을 가뿐하게 통과했다.
다음 방에선 조금 헤매긴 했지만 단서를 찾자마자 어렵지 않게.
그리고 그다음 방에서도 무난하게 통과했다.
상황실에서 우릴 지켜보던 PD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게 화면에 잡힌다.
가뜩이나 어두운 상황실이 더 음산해지잖아.
이쯤 되니 좀 걱정이 된다.
우리가 너무 빠르게 미션을 통과하는 중이다. 시원시원한 편집이 더욱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다.
‘나 왜 저렇게 열심히 하냐······.’
과거의 나에게 Stay···! 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김성운을 돌아보았다.
티비 화면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는 중인 그.
실시간 반응을 확인 중인 거다.
그런데 나처럼 심각한 표정일 줄 알았던 그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뭐지? 의아하게 바라보는 날 발견한 그가 피식거리며 말했다.
“내가 그때 말했지? 반응 난리 날 거라고.”
“···?”
“다들 이거 룸6 맞냐고 난리야. 왜 제작진이 당하고 있냐고.”
하긴, 룸6는 결코 저런 느낌의 예능이 아니었다.
제작진이 준비한 트릭들을 출연진이 골머리 싸매고 하나씩 풀어가고, 겨우겨우 하나 풀면 제작진이 음흉한 미소와 함께 더 어려운 미션을 내놓는, 그런 예능이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엄청 좋아해. 또 다른 맛이 있다고.”
그의 말에 얼른 내 핸드폰으로 반응을 확인해봤다.
—제작진 오열 ㅋㅋㅋ
—나주영 PD님, 이번 컨셉은 자동문인가요?ㅋㅋㅋ
—백승결 존나 섹시하다, 진짜. 이젠 하다 하다 뇌섹남 타이틀까지 가져가는 건가.
—또승결? 또 해결하나?
—와 원래도 재밌었지만 시즌1이랑 다르게 제작진이 처참하게 당하니까 너무 웃기네ㅋㅋㅋ
—중간에 세트장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보여주는 것도 웃김. 저렇게까지 했는데 30분 컷이라니.
—그것도 심지어 백승결이 일부러 안 찾은 거. 방송 분량 걱정해서 멀뚱멀뚱 카메라 눈치 보는 거 왜 이렇게 귀엽냐.
—대기실이 마지막 방이었던 거 소름. 근데 그걸 또 쉽게 푸는 백승결은 더 소름···.
—그나저나 김형준은 출연료 다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님? 오자마자 다시 벌칙 받으러 가는 거 왜 이렇게 웃김ㅋㅋㅋㅋ
김성운 말대로였다. 반응이 좋다 못해 넘친다.
“제작진이 완벽하게 당하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거기서 재미를 느끼나 봐. 뭐, 그때 얘기한 것처럼 제작진이 이걸 의도한 거지. 네 덕분에 계획이 틀어져서.”
하하 웃으며 다시 티비로 고갤 돌렸다.
모든 미션이 끝나고, 개인 인터뷰가 이어졌다.
—근데 승결 씨가 음감도 좋더라고요. 대충 흥얼거리는데 음정이 정확해. 목소리도 좋아서 노래도 잘 부를 것 같던데?
—그 친구 머리가 좋은 것도 좋은 건데, 운동신경도 남다르더라고요.
—진짜 신기하더라니까요? ‘최고의 악역’이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죠. 전~혀 없습니다.
임세주와 안기현 등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나에 대해 말한다. 너무 나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러던 중 이런 소리까지 튀어나왔다.
—와, 승결 배우 봤어요? 그 사람 진짜 아이큐 검사 한번 해보면 안 돼요? 천재예요. 천재!”
#
천재.
내가 아역 때 잠깐 그렇게 불렸던 적이 있다.
서귀호가 사이코패스이면서 동시에 그런 캐릭터이기도 했고.
그리고 데이먼이 저걸 주제로 나에 대한 칼럼을 쓰기도 했지.
거기다 룸6까지.
아무래도 홍보팀은 이게 아주 엮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듯하다
[백승결, 차기작에서 주인공 맡는다. 역할은 천재 화가?>천재라는 키워드와 내가 맞물린 틈을 타 본격적으로 내 차기작에 대한 내용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아직 이태관 배우의 합류 소식은 알리지 않았다.
굳이 나와 함께 알려서 두 번 언급할 기회를 놓칠 필요가 없어서겠지.
나 왜 이렇게 빠삭해? 나 정말 홍보에 재능이 있을지도···?
아무튼, 홍보팀이 의도한 대로 어제 룸6로 달궈졌던 반응이 쭉 이어졌다.
—드디어 주인공 백승결이라니!
—이렇게 천재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존버한 보람이 있네. 얼른 찍어주세요. 바로 영화관 달려갑니다 ㅎㅎ
물론 중간중간 차가운 시선도 있었다.
—근데, 감독을 처음 보는데? 이거 괜찮은 거 맞나?
—그러니까요. 막 잘 나가다가 영화 하나 잘 못 골라서 공백기 생기는 배우들을 몇 명 봐가지고 불안하네요.
—장르도 너무 애매함. 잠입인데 액션이 아니다? 주인공이 그림을 그려? 이게 재밌으려나···.
그럴 건데. 재밌을 건데.
그렇게 댓글을 달아주고 싶을 정도다.
괜히 한이연 감독이 이런 거 보고 멘탈 안 흔들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때였다. 댓글이 띄워져 있던 핸드폰 화면이 바뀌며 전화가 왔다.
이태관 배우였다.
“네, 선배님.”
—어,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 자네가 그날 대본 들고 찾아간 게 나 말고 더 있었던 건가?
“네?”
대뜸 넘어온 질문에 어벙한 반응을 보이자, 이태관 배우가 중얼거린다.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별 건 아니고. 아, 별건가. 아무튼, 박 대표 얘길 들어보니 배우 한 명이 굿픽쳐스로 먼저 연락을 해왔대. 이 작품, 하고 싶다고.
“누가요?”
갸웃거리며 묻다가 다음 순간 들려오는 대답에 더욱 어벙벙해졌다. 너무 상상도 못 했던 이름이라.
—고하윤. 자네랑 ‘그림자 변호’ 같이 찍었던 배우.
······그 배우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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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결의 걱정과는 달리 한이연 감독은 댓글 때문에 멘탈이 흔들리진 않고 있었다.
대신 다른 것 때문에 정신줄을 계속 손아귀에서 놓치는 중이다.
“고하윤이 왜······.”
믿기지 않는 목소리에 박 대표가 콧잔등을 긁적인다.
“글쎄. 이태관 배우가 합류한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나? 뭐, 이 업계에 비밀이란 게 없으니까. 그게 아니면 전적으로 백승결 때문이라는 건데······.”
박 대표의 말에 한이연 감독은 더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백승결이 이태관부터 고하윤까지 모두 끌어들였다는 거니까.
충무로의 기둥과도 같은 이태관과 차세대 여배우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고하윤이라니···.
“안 그래도 백승결 합류 소식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몇 있는데, 이태관에 고하윤까지 풀면 장난 아니겠는데? 이번엔 캐스팅이건 투자건 정말 문제없겠다.”
“······.”
“정작 네가 문제인 것 같긴 하네. 정신 차려. 정신.”
“아, 네네.”
자꾸 정신이 별나라로 가버리는 한이연 감독을 박 대표가 붙잡았다.
한편, 그녀를 따라 스크립터로 참여하게 된 손기훈도 정신이 없었다.
백승결이 주인공이래서 너무 놀랐는데, 거기에 이태관 배우까지.
그것만으로 놀라 자빠질 일이었는데, 갑자기 고하윤이란다. 고하윤.
박 대표가 전화를 받으러 대표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눈알만 굴리던 손기훈이 한이연 감독을 툭툭 쳤다.
“누나··· 이게 무슨 일이에요?”
“몰라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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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산더미처럼 보이던 촬영 준비가 착착 진행되기 시작했다.
연신 놀라기만 하던 한이연 감독이 제대로 지휘봉을 쥐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돌변했다.
그녀의 진두지휘 아래 영화 ‘눈속임’의 제작이 비탈길을 내려가듯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던 중 ‘눈속임’에 참여하게 된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다가왔다.
대본 리딩.
기다란 테이블에 캐스팅된 수많은 배우들이 앉았다.
벽 쪽엔 카메라 감독부터 미술 감독까지, 다양한 스태프들이 붙어 앉았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은 한이연 감독.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가 말문을 열다가 다시 주워 담았다.
“어···음··· 잠시만요, 제가 지금 너무 떨려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심호흡을 한다.
그러다 바로 대각선 자리에 앉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빙그레 웃어주었다. 잘하고 있다고.
주먹을 살짝 쥐어 화이팅 하라는 응원까지 보내자 잔뜩 상기되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점차 가라앉았다.
그녀가 다시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안녕하세요. 한이연 감독이라고 합니다.”
얼른 박수를 쳤다. 다른 배우들도 하나둘 박수로 그녀의 인사에 화답한다.
조금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가벼운 인사말들.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서 자신 앞에 놓인 대본을 손바닥으로 스윽 쓸어내린다.
그 모습이 마치 대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윽고, 그녀가 표지를 펼치며 말했다.
“그럼, 리딩 시작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