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천재가 천재 연기를 하면 (4)
“으아아아아···.”
곡소리가 나고 있었다.
꺄르르 웃는 게 어울릴 것 같은 어린아이의 입에서.
동시에 마녀가 수프를 만들듯이 붓을 물통에 넣고 휘휘 젓는다.
“너무 하기 싫다~ 하기 싫다~.”
본인 의사에 운율까지 넣어 흥얼거리는 녀석.
노란 앞치마를 맨 미술 학원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며 다가갔다.
“거의 다 그렸는데 왜 하기가 싫어. 꽃만 그리면 되는데? 지난주에 어떤 꽃 좋아한다고 그랬지?”
학원 선생님의 노력에도 아이는 제멋대로였다.
녀석이 붓에서 손을 놓고 이번엔 내 쪽을 살핀다.
“우웅, 뭐 그리는 거지~?”
어이, 그 말은 자칫 굉장히 상처가 될 수 있는 발언 같은데.
이를 본 학원 선생이 옳다구나 하고 말했다.
“저 봐, 저 오빠는 엄청 열심히 하잖아. 너보다 두 시간이나 먼저 왔는데. 지금 한 번도 안 일어났어.”
“오빠? 아저씨 아녜요? 히히.”
그게 요지가 아니잖아.
중얼거리던 학원 선생이 피식 웃었다.
“너 나중에 크면 후회할걸.”
“왜요?”
“그런 게 있어.”
결국, 아이는 10분 뒤 하원 시간이 될 때까지 집중은커녕 곡소리만 내다가 태권도 학원으로 가버렸다.
진땀을 뺀 학원 선생이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나.
동네 미술 학원이 복작복작 시끄러운 건 당연했다.
“아녜요. 저 나이 땐 다 그런 거죠.”
“아니지 않았어요? 해별이때, 완전 어른스러웠던 것 같은데.”
“그걸 기억하시다니, 혹시 연세가···.”
“어머, 어머. 연세라뇨. 호호.”
잠시 농담을 주고받다가 다시 붓을 쥐었다.
이번엔 아크릴 물감에 모델링페이스트를 적당히 혼합해 물감을 점토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한 획.
“음······.”
두 획.
“흐음······.”
뒤에서 들려오는 침음성에 멈칫거리자 학원 선생이 말했다.
“근데 진짜 신기하긴 하네요.”
“어떤 게요?”
“정말 말도 안 되게 느셨잖아요. 특히 붓 터치가 예술이에요. 저 건너편에서 보잖아요? 진짜 예술가 같아요. 아, 배우도 예술가 맞지.”
빙그레 웃으며 붓을 내려놨다.
“다행이네요. 곧 진짜 그림 그려야 하는 장면이라.”
“그때 말씀하신 것처럼 대역을 최소한으로 하셔도 전혀 문제없을 거 같아요. 제가 성인 취미반도 하는데, 진짜 이렇게 스펀지처럼 흡수하시는 분 처음 봐요. 예능에서 기억력 좋은 거로 유명하시던데, 그래서인가······.”
계속 혀를 내두르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그런데 그림은 왜 이 모양일까요?”
“어···.”
그녀의 목소리가 멎었다.
저런 극찬이 무색하게, 정작 그림은 엉망이었다.
형태감은 도공 술주정으로 만진 점토마냥 찌그러져 있고, 투시는 소실점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색감은 또 어떤가. 보통 어울리지 않아서 눈에 띄는 색을 배색이라고 한다던데, 이건 그냥 배신이다. 물감에 대한 배신.
“음···그게···.”
“눈썰미가 없나.”
“아뇨, 그건 절대 아녜요. 오히려 눈썰미는 저보다도 나아요. 사진이나 그림 같은 거 따라 그리실 땐 곧잘 그리셨잖아요. 저 정말 깜짝 놀랐는걸요.”
그러니까. 그땐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았는데, 왜 뭔가를 안 보고 그리면 이 모양이 되는 걸까.
의아해하며 내가 그린 그림을 보는데, 학원 선생님이 머뭇거리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엔 그냥 조금, 미적 감각이 없으신······.”
#
“저, 심해요?”
일련의 사건들을 말하고서 뒤에 덧붙여 묻자, 운전을 하며 한참 동안 웃던 김성운이 뒤늦게 정색을 한다.
안 웃은 척. 그게 더 상처인데.
“솔직히?”
···저 말로 대답이 되었다.
문득 박혜정 작가와 조규필 감독이 찾아와 급하게 회사로 갔을 때가 생각난다.
김성운이 그때 날 보자마자 상태부터 확인했었지. 옷 입고 온 상태.
이제야 착착 맞아떨어지네.
“심하구나. 나.”
“심한 건 아니고. 그리고 옷은··· 네 얼굴이면 뭘 주워입든 멋지고 섹시하고 다 하는데 뭐가 걱정이냐. 아, 그게 문제의 시발점인가? 뭘 입어도 괜찮으니까 그쪽으로 발달이 덜 된 거지. 그럼 기계치는 왜지?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데?”
“······.”
은근 잔인한 사람이란 말이지.
이 양반이 하람에 와서 엄청 유해진 거란 얘길 정민우한테 들었는데, 점점 과거에 어땠을지 윤곽이 그려지는 듯하다.
선임으로 만나면 뭐 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도착한 촬영장.
진기원이 정유화가 처음으로 만난 곳이자, 작당 모의(?)를 하는 세트장으로 갔더니, 한이연 감독이 고하윤과 나란히 앉아 뭔가를 이야기 중이었다.
“이 장면에서 제가···.”
아무래도 오늘 촬영분에 대해 이야길 나누는 것 같은데, 그게 좀 의외였다.
그림자 변호를 찍을 땐 주로 혼자 고민하고 있던 그녀였으니까.
“어, 왔어요?”
“아, 네.”
날 먼저 반기는 한이연 감독.
뒤이어 고하윤과도 눈인사를 하고서 내가 물었다.
“무슨 얘기 중이셨어요?”
“아, 하윤 씨가······.”
내용은 간단했다. 정유화의 감정선과 반응들에 대한 의문과 고민들.
잠자코 듣다가 내가 물었다.
“그건 저랑 맞춰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 그러네. 진기원이랑 얘기하는 게 제일 좋겠네.”
한이연 감독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라며 고하윤에게 말했다.
“하윤 씨, 승결 씨랑 가볍게 대사를 맞춰봐요. 그러면서 다듬는 게 가장 확실할 것 같은데?”
“네, 알겠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난 잠시 대표님이랑 통화 좀 하고 올게요. 개봉 날짜 확정 지어야 해서 난리야.”
손을 휘적거리며 감독 의자에서 일어나는 한이연 감독.
그녀에게 잘 다녀오시라는 말을 건네고서, 스파링 상대(?)가 된 고하윤을 바라보았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몇 번 이렇게 상대 배우와 대본을 두고 연습을 했었는데, 꽤나 유익했었지. 배우는 것도 많았고.
“그럼 맞춰볼까요?”
그녀가 끄덕거렸다.
#
며칠 후.
청담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중국집.
아티스 엔터테인먼트의 우경철 본부장이 프라이빗한 룸에서 두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아역 배우 차도영이 촬영한 ‘관찰자’의 제작사와 여배우 주예린이 합류한 ‘연고’의 제작사.
두 제작사의 대표들이었다.
“어떻게, 입에는 맞으십니까?”
“네, 맛이 참 좋네요.”
“확실히 지난번에도 그렇고 우 본부장이 맛집을 참 잘 알아요? 하핫.”
“제가 앞으로 잘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씩 웃은 우경철이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운을 띄운다.
“아참,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입니다. ‘관찰자’ 개봉 날짜 말이에요.”
“네, 말씀하세요.”
“안원상 감독의 ‘도그페이스’보다 반박자 빠르게 들어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잠시만요. ‘도그페이스’면 개봉 날짜가······.”
‘관찰자’ 제작사 대표가 핸드폰을 확인하는 사이, 이번엔 ‘연고’ 제작사 대표에게 물었다.
“그리고 우리 예린이 ‘연고’를 ‘눈속임’ 바로 앞에 붙이는 거 어떠세요?”
“눈속임? 아, 그 이태관 배우 나온다는?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딱히 경쟁상대도 아닌 것 같은데.”
“물론 경쟁 상대는 아니죠. 제작비도 반값인 싸구려 영화를 어디가 가져다 대겠어요.”
“아, 알았다.”
‘연고’의 제작사 대표가 눈을 좁히며 지레짐작하고 물었다.
“고하윤 때문이죠? 주예린이랑 차세대 여배우 놓고 몇 년째 경쟁 중이잖아요.”
이에 우경철이 피식 웃었다.
“에이, 고하윤도 우리 예린이한텐 안되죠. 걘 최근에 반짝 뜬 거고, 예린인 이 자릴 유지한 게 벌써 몇 년인데요.”
“그럼 왜요?”
“쉽게 가면 좋잖아요. 제가 말한 두 지점이 고만고만한 저예산 영화들끼리 경쟁하는 시기라 들어가서 알박하기도 좋고. 아시잖아요. 관객은 기세 따라오는 거.”
물론 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두 영화 전부, 백승결··· 그 새끼가 출연한다는 것.
마침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이 두 영화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언젠간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근데 우 본부장님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면 뭐 저희 입장에서도 좋긴 하겠습니다만, 이게 완전히 상대 맥이는 거란 말이죠? 배급사에서 오케이를 하겠어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합니다. 대표님들은 배급사에 요청만 넣어주시면 돼요.”
그러면서 그가 고량주 병을 들었다.
꼴꼴꼴 채워지는 잔들.
잔을 부딪치며 우경철이 입꼬릴 비스듬히 올렸다.
‘건방진 놈.’
독한 술을 목으로 넘기며 그 재수 없는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겠지.
그때가 가장 위험한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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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 ‘눈속임’의 촬영도 절반 정도가 진행되었다.
그 사이, 모든 후반 작업을 마치고 홍보에 전력투구하던 안원상 감독의 ‘도그페이스’가 개봉했다.
거기서 나는 이 실장이라는 역할로 출연을 했지만, 특별출연이라 따로 행사를 함께 다니진 않았다.
내부 시사회에 가서 응원 정도만 했지.
‘나보다 더 주목받아야 할 배우들이 있으니까.’
이태관 배우 홀로 주연이었던 대원군과는 달리, 도그페이스엔 여러 주연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제작발표회나 무대인사는 오롯이 그들이 주목받아야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날 밤.
나는 후드티에 캡모자와 마스크까지 쓰고서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동안은 바빠서 무대인사 때 말고는 영화관을 갈 시간이 없었는데, 오늘은 억지로라도 짬을 냈다.
관객들의 반응을 날 것 그대로 느끼고 싶었고, 그냥 오랜만에 영화관 자체를 즐기고 싶기도 했다.
작은 영화관에 심야 영화라 도그페이스를 상영하는 관이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딱 하나 있었다.
‘하긴, 8관까지 있는데 하나는 해야지···.’
티켓을 끊고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영화 시간을 기다렸다.
심야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도그페이스의 인기는 아니고, 영화관을 점령하다시피한 ‘관찰자’를 보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저 영화 때문에 박 대표가 아주 뒷목을 잡던데.
상영관 숫자도 숫자지만, 개봉 시기가 딱 반 발짝 앞서서 개봉한 게 더욱 문제였다.
영화관을 매일, 매주 가는 사람은 드물잖아.
끽해야 두, 세 달에 한 번씩 가는 관객들도 많은데 이건 대놓고 앞에서 관객들을 전부 흡수하겠다는 거였다.
영화관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도 ‘관찰자’의 포스터였지.
그쪽을 바라보며 씁쓰름한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난 딱히 악감정은 없다.
특별출연이라서는 당연히 아니고, 안원상 감독의 ‘도그페이스’가 너무 잘 만들어진 영화라서. 이런 영화가 흥행하지 못할 리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마음이 쓰이는 건 ‘관찰자’라는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 때문이었다.
우경철이 키우는 중이라던 배우, 차도영.
저 배우만 보면 괜히 내 어렸을 적이 떠올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였다. 설령 우경철이 노나더라도 저 영화가 잘 되길 바랐다.
뭐, 점유율을 보니 이미 잘 되어가는 중인 것 같지만······.
그때 미리 나온 팝콘을 받은 남녀가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남자가 앉자마자 ‘관찰자’ 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저거였어, 관찰자. 인스타 스토리 보니까 다들 저거 보는 것 같던데.”
“아, 난 저거 봤어.”
심드렁하게 답한 여자가 고개를 흔든다.
“조온나 재미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