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천재가 천재 연기를 하면 (5)
“친구랑 봤는데 중간부턴 둘 다 아주 꿀잠잤다.”
누나의 말에 팝콘을 집어 먹던 동생이 의아해하며 전광판을 보았다.
시간표에는 ‘관찰자’라는 이름이 가득했다.
“그렇게 재미없다고? 저렇게 많이 상영하는데? 하루에 몇 번을 하는 거야···.”
“저건 재미랑 상관없어. 그냥 유명 감독이 찍은 거라 많은 거야. 진짜 보고 돈 아까워가지고··· 이거 봐봐, 평점.”
그녀가 내민 핸드폰 화면엔 6점을 간신히 넘은 평점이 찍혀 있었다.
심지어 그것조차 평점 조작했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었다.
“그러네. 반응이 엄청 안 좋네. 이거 개봉한 지도 며칠 안 되지 않았나?”
“그러니까 아직 소문이 안 난거지. 아마 다음 주쯤 되면 재미없다고 소문 다 날걸.”
“친구랑 보려고 했었는데 안 되겠네.”
쩝, 입맛을 다신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팜플렛을 펼쳤다.
‘돈과 권력이 부딪힌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비장한 표정의 배우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그페이스, 이건 재밌으려나.”
“중간만 돼도 좋겠다. 이건 평점이 좋은 것 같긴 하던데. 관찰자 보고 더럽혀진 눈을 얼른 씻어내야 해.”
어지간히 재미가 없었는지, 눈을 비비는 시늉까지 하던 누나가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릴 낮췄다.
“그나저나···.”
그녀의 시선이 동생 너머에서 후광을 뿜어내는 중인 한 남자에게로 향한다.
“잘생겼을 거 같지?”
동생이 ‘어휴, 남미새’라며 슬쩍 고갤 돌린다. 그리고 재빠르게 돌아와 격하게 끄덕거렸다.
“와, 실루엣부터 잘생겼음. 존잘일 듯.”
“누나 레이더 성능 확실하거든. 얼굴도 얼굴이지만 어깨가··· 그러니까 누나가 매번 말하잖아. 어깨 운동하라니까?”
“어깨는 타고나는 거야. 그리고 저분은 어깨도 어깨지만 얼굴이 진짜 주먹만···.”
주먹을 움켜쥐는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딸려 올라가는 시선.
“와, 키도 크네. 비율 미쳤다. 인플루언서 뭐 이런 거겠지?”
“얼굴 가린 거 보면 백퍼다.”
“말 걸어볼까?”
“아 쪽팔려. 하지 마. 곧 시작하니까 들어가자.”
동생의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가는 누나.
3관으로 향하는데, 계속 남자와 길이 겹쳤다.
“오예, 우리랑 같은 거 보나 보네. 개이득.”
심지어 자리까지도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이었다.
다시 한번 개이득을 중얼거리는 누나. 그리고 조용히 좀 하라며 치를 떠는 동생.
관객이 얼마 없어 횅한 상영관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 근데 이거 백승결 연기가 진짜 미쳤다던데.”
“아, 누나!”
“뭐, 왜왜?”
“스포 하지 말라고!”
“이게 뭔 스포야. 결말을 얘기한 것도 아닌데.”
“나 백승결 나온다는 거 몰랐다고!”
“아, 그래? 미안, 미안. 근데 그걸 왜 모르지. 뉴스 좀 보고 살···.”
투덜거리던 여자가 복도 건너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눈 큰 거 봐. 역시 존잘이 확실해.
“우리 좀 시끄럽나 보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조용히 하랬잖아.”
합죽이가 된 두 사람이 팝콘을 입에 넣으며 스크린에 집중했다.
광고 몇 개가 지나가고,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팜플렛 슬로건이 스포한대로 돈과 권력의 싸움.
정확히는 재계와 정치계 간의 이권 다툼이 주제였다.
그러나 정작 싸움의 당사자들인 정치인과 재벌들은 고고하게 앉아 말로 싸웠고.
그 밑에 있는 이들이 그들의 장기 말이 되어 칼을 휘둘렀다.
마지막은 더 가관이었다. 정치인과 재벌의 화해. 그들은 피 한 방울 묻혀있지 않은 깨끗한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들 밑에 수많은 장기 말들의 피가 찰박일 정도로 고였음에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았다.
원하는 것들을 서로가 얻어냈으니.
······씁쓸한 결말을 끝으로 영화가 끝이 났다.
상영관이 밝아지며 남매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굳어있던 몸도 이리저리 비틀며 스트레칭을 한다.
“하아··· 재밌긴 하다.”
“그러게. 기분은 더러운데, 재미는 있었어.”
“너무 현실적이라 엄청 몰입이 되는데, 또 그래서 찝찝해.”
“근데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 얼굴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도 많았는데, 다들 연기력이 미쳤어.”
“맞아, 맞아.”
그중에서도 재벌의 밑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던 이 실장이 사우나에서 토사구팽을 당하는 장면에선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 누나한테 백승결 나온다는 거 듣고 본 건데도 이 실장 나올 때 순간 누군지 몰랐잖아.”
“나도, 나도.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매번 달라지냐.”
“난 서귀호보다 이번 역할이 더 무서웠어. 차라리 서귀호는 좀 판타지스럽기라도 하지. 이 실장은 진짜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더 무섭더라.”
“그 와중에 몸 진짜 좋던데.”
“마지막 죽을 때? 진짜 남자가 봐도 멋있었어. 서귀호때도 그랬지만 어떻게 곱상한 얼굴에서 그런 남성미가 나오지. 아, 안 되겠다. 오늘부터 팬이다.”
“훗, 이 누님은 원래부터 팬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그들이 갑자기 머리를 모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 때문이었다.
“또 보네.”
“우리 너무 떠들었나.”
“영화 끝났는데 뭐 어때.”
“아님, 우리가 자기 얘기 한 거 아까 들었나? 왜 저렇게 쳐다보냐.”
“원래 잘생긴 애들이 좀 예민해.”
“그래서 내가 예민한가?”
“음음~ 아니, 넌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거.”
#
······사인 해줘야 하나?
옆에 앉은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나가버리는 남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팬이라길래 의자에서 엉덩이를 막 떼던 참이었는데.
뒤이어 양쪽 끝에 앉아 있던 관객들도 한둘씩 밖으로 나간다.
스쳐 지나가며 들려오는 반응들은 예상했던 대로 호평 일색이었다.
“진짜 최고던데?”
“오랜만에 진짜 느와르 본 것 같네.”
“그러니까. 평점이 높은 이유가 있었네! 이거 입소문 금방 퍼지겠다.”
그들의 반응을 들으며 엔딩크레딧에 시선을 올렸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내 이름이 떠올랐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최근 영화 ‘눈속임’의 주인공 자리를 얻기 위해 여러 일들을 벌이면서,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내 욕심이 이렇게 계속 커지면, 언젠가 나도 주연 아니면 좋은 역할도 마다하는 그런 배우가 되는 건 아닌가.
“아니네.”
역할이 마음에 들고, 연기가 즐겁다면.
앞으로도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앞에 나오는지 뒤에 나오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네.
작게 안도하고, 크게 기뻐하며 엔딩 크레딧이 완전히 끝나 직원이 들어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럼에도 여운이 남아서일까.
밖으로 나와 한참 동안 공원을 산책하다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두어 번 정도 더 영화관을 방문했다.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도그페이스’의 상영관 숫자가 ‘관찰자’와 비등비등해졌고, 결국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다.
기적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졌지만, 글쎄.
안원상 감독이 이 영화에 얼마나 공을 들였고, 힘들어 했었는지를 알기에 기적은 아닌 것 같다.
기술이지.
어쨌든, ‘도그페이스’의 역대급 성적에 제작사인 굿픽쳐스는 난리가 났다.
특히 박 대표는 안원상 감독을 얼싸안고 춤까지 췄다.
“이거 진짜 500만··· 아니, 600만까지도 갈 수 있겠는데?”
박 대표가 나름 보수적으로 잡아 예측을 내놓았다.
그것만으로 이미, 손익분기점의 두 배가 넘는 숫자였다.
#
“아, 승결 씨.”
촬영장에 도착하자 다가오는 스크립터, 손기훈이었다.
“저 어제 도그페이스 봤는데, 진짜 재밌던데요? 특히 승결 씨 연기가 진짜······.”
혀를 내두른 그가 나를 빤히 본다.
이렇게 보면 세상 사람 좋아 보이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덧붙인다.
“도그페이스 내려가고 얼마 안 지나서 우리 영화도 극장에 걸릴 텐데, 사람들 엄청 놀라겠더라고요. 작품 때마다 사람이 이렇게 확확 바뀌니까.”
그런 그에게 감사하다 말하며 함께 걸음을 옮겼다.
“오늘 제 동선이 어떻게 되나요?”
그가 콘티를 넘기며 나를 이끌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창고 같은 공간.
특유의 기름 냄새가 마중을 나와 코를 찔렀다.
“첫 장면은 간단해요.”
그리고 창고 안에는 이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전부 세팅되어 있었다.
“그림 그리는 단독 씬입니다. 대역 촬영도 따로 진행하니까 부담가지실 필요 없이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 연기를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차례대로 설명을 듣고서 대기실로 향했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나왔을 땐, 촬영 준비가 모두 끝나 있었다.
구도를 한번 확인하고 싶다는 한이연 감독의 말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나를 찍는 카메라들.
나는 손을 뻗어 도구들을 정리했고, 그 사이 한이연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승결 씨, 지금 너무 그림 좋아요. 바로 촬영 들어가도 될 것 같네요. 어차피 캔버스는 화면에 안 잡히니까 자유롭게 그려주면 될 것 같아요.”
이윽고 ‘액션!’ 같은 외침 없이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사실상 ‘눈속임’에서 가장 정적인 씬이 될 장면.
동시에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다.
이 장면은 진기원에게 자기소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면서, 그 속에 깔린 복수심을 보이고,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희열마저 느끼는.
단순해 보이기만 하던 진기원이 사실 얼마나 복잡한 사람인지, 그걸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그 복잡한 감정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정렬해야 했다.
원하는 색의 물감을 꺼내듯, 진기원이 되어 그의 감정들을 꺼낼 수 있도록.
마침내 새하얀 캔버스를 바라보며.
이 장면에서 흘러나올 나의 독백을 떠올린다.
⌜보다 완벽한 그림이 필요했다. ‘신의 눈’조차 알아채지 못할.⌟
페인팅 나이프(—물감을 뜨는 도구)를 집어 들었다.
푹 물감을 떠서 철썩 종이 위에 붙여버린다. 그리고 쭉 밀어 색을 채운다.
⌜그러니 그저 따라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품의 진짜 화가가 되어 그려야 한다.⌟
종이 위로 마치 도로가 나듯, 매끄러운 길이 생겼다.
그 길이 내 팔을 따라 점점 뻗어 나간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생각한 것을 퍼내고, 그가 떠올린 것을 잡아챈다.⌟
길에 방향이 잡힌다.
길에 뜻이 담긴다.
⌜그렇게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다.⌟
의도(意圖).
나는 화가의 의도를 따라 움직였다.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그림은 여전히 어설펐다.
하지만 내 의도만큼은 완벽히 진기원과 맞닿아있었다.
이 순간 나는 진기원에 온전히 몰입했고······.
그의 재능마저 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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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군.”
곧장 대기실로 향하려다 발길을 튼 이태관이 세트장 안쪽 상황을 지켜보다가 입을 벌렸다.
묵직하게 굴러떨어지는 목소리.
이어지는 감탄에 젖은 웃음.
마치 행위예술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릴 뿐인데.
큰 행동, 연기도, 하다못해 대사조차 없는데.
저토록 정적인 행위가 어떻게 저렇게나 격정적일 수 있을까.
정답은 눈에 있었다.
녀석의 눈이 자신을 찍고 있는 여러 대의 카메라보다도 더 집요하게, 캔버스를 파헤치고 있었다.
그 사나우면서도 뜨거운 눈빛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컷 소리와 함께 끝나는 연기.
이태관 배우는 그의 연기를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백승결이 진기원을 위작(僞作)했다.
신의 눈을 가졌어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