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천재가 천재 연기를 하면 (6)
“촬영장엔 웬일이야?”
1팀장의 방문에 대기실에서 촬영을 준비하던 이태관 배우가 그를 반겼다.
커피와 군것질거리는 잔뜩 사와 풀어놓는 1팀장.
“뭐, 이유랄게 있나요. 선배님 촬영장인데. 오는 김에 감독님한테도 오랜만에 인사드리고요. 아, 그나저나 세트장이 듣던 대로 어마무시하던데요?”
생각보다 제대로된 판에 필터 없이 놀라는 1팀장.
내심 이 작품에 대해 불안해하던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듯 가벼운 표정이 되었다.
그 후, 촬영하는데 불편함은 없는지 이것저것을 확인하던 그가 내심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래서, 백 배우는 어때요? 선배님이 말씀하시던 그 폭탄은 터졌습니까?”
그러자 이태관 배우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백승결이 품고 있던 폭탄이 비로소 터지리라 생각했던 그였다.
그래서 이 영화에 선뜻 참여한 것도 사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어지며 그의 생각은 많은 것들이 변했다.
“아니, 폭탄은 애초에 없었어.”
“예?”
“심지(心―)만 있었지.”
그 말이 1팀장에겐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느낌으로 들렸다.
“그러면 실망하셨겠군요.”
“아니, 더 놀랐지.”
이태관 배우의 미소가 더욱 묘해졌다.
그럴수록 더욱 의아해하는 1팀장.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촬영하는 장면도 보고 싶다며. 마침 내 차례가 다가오니 가지, 촬영장으로.”
두 사람은 곧장 촬영장으로 향했다.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세트장 안에서 백승결과 고하윤이 복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씬.
그것을 잠자코 보던 1팀장이 나직이 감탄했다.
“연기력들이 아주······.”
지금까지 수많은 배우들을 만나온 그조차도 무방비했다.
세트장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피부로 와닿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열띤 연기였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 복수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진짜 미친 사람들 같—.
“광인(狂人)들이지.”
그의 생각을 이태관 배우가 정확히 맞췄다.
“저들뿐만이 아니야. 자네도 알겠지만, 배우들은 연기에 미친 사람들이 많아.”
누군가는 몰입을 위해 사도세자를 자처한다.
낡은 모텔을 잡아서 지독하게 음울한 영화만 틀어놓기도 하고, 살해 위협을 받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몰아세운다.
배역에 몰입하고자하는 광기가 이유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주처럼 팽창하는 연기 욕심을 채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욱 자신을 상하게 해야 하나.
그 해답이 저곳에 있었다.
눈앞에 저 청년이 진기원으로 보일수록, 머릿속에 웅크리고 있던 진륭이 몸을 일으킨다.
연기가 준비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를 뜨겁게 만든다.
눈앞에 괴물이 있는 척을 하는 것과 괴물이 있는 것이 엄연히 다르듯.
녀석은 완벽히 괴물이 되어 상대로 하여금 괴물이 있는 척을 할 필요를 없앤다.
그렇게 배우의 몰입을 극한까지 끌어준다.
이런 생각들을 1팀장에게 대략적으로나마 전한 이태관 배우가 덧붙였다.
“아까 말했듯, 녀석은 심지야. 그리고 거기에 불이 붙는 순간, 상대 배우가 폭탄이 돼. 내가 폭탄이 된다고.”
결과적으로 폭탄은 자신에게 있었고, 자신은 이 폭탄을 터트려줄 수 있는 녀석에게 끌렸던 거다.
“지금은 고하윤이라는 폭탄의 심지가 되었군.”
그가 말 그대로 정유화에 온전히 몰입한 고하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앞에 완전한 진기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1팀장은 이태관 배우의 씬까지 모두 보고서 회사로 복귀했다.
삭막한 사무실로 바로 가기엔 살짝 들뜬 마음이 남아 있어 곧장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커피 드시려고요?”
그곳에서 홍보팀장을 만나 커피 한 잔씩 손에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엔 그녀가 자리를 맡기 위해 올려놓은 몇 장의 프린트가 올려져 있었다.
“천재를 연기하는 천재?”
“아, 이번에 승결 배우 보도자료 뿌릴 거, 헤드라인 정리 중이에요.”
“그렇군. 그것도 딱 맞는 거 떠올리려면 머리 아프겠어.”
“물론이죠. 그래서 우리 애들이 다 정상이 아니잖아요.”
그 대장이 당신이잖아···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끄덕거리며 커피를 홀짝였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멍해 있던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이건 어때?”
“뭘요?”
“그거. 헤드라인.”
“아, 이거요? 뭐, 이미 픽스된 거긴 한데. 그래도 들어볼게요.”
프린트를 집어 든 홍보팀장의 말에 1팀장이 뜸을 들이다 답했다.
“···모두를 천재로 만들어줄 수 있는 배우.”
뒤이어 풉, 하고 웃음을 흘리는 홍보팀장.
1팀장이 돌아보자 그녀가 물었다.
“무슨 초능력자예요?
그녀의 조소에 쩝하고 입맛을 다시는 1팀장이었다.
나름 오늘 보고 온 모습하고 딱 맞다고 생각했는데···.
#
며칠 후.
한 장의 사진이 홍보팀을 발칵 뒤집었다.
하필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
“미국 1위! 누적 시청 시간 1억 돌파!”
딱히 설명이 필요 없겠다.
회사 전체가 알 수 있도록 홍보팀 직원들이 확성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지만 확실한 홍보네.
솔직히 나도 날아갈 듯이 기쁘다.
댄이 보내온 사진은 멀티온의 로비.
그 커다란 로비에 조명처럼 내려와 있는 액자 속에 ‘악의 링’ 포스터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드디어 ‘전당’에 오른 것이다. 멀티온에서도 아직 몇 작품 걸리지 못한 그곳에!
직원들끼리 보도자료를 위해 사진을 공유하길래 나도 얼른 한 장 받았다.
받아서 딱히 할 것은 없지만.
“아니, 사진 받아서 뭐하실 거예요? 국 끓여 드실 거예요?”
“아침마다 볼 건데요. 잠 안 오면 자기 전에도 보고. 운동하다가도 보고.”
나름의 철벽을 쳐봤지만, 직원은 그보다 더 끈질겼다.
“그러지 마시고, 자. 우리 그 사진을 좀 건설적으로 써보죠.”
“어떻게요?”
“아시면서.”
직원이 다가와 속삭인다.
“S. N. S.”
SOS 치고 싶네.
내 매니저님은 어딜 가셨을까.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하나 만들지 뭐.
마침 필요성을 종종 느끼던 참이긴 했다.
팬들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딱히 창구가 없기도 하고.
“근데, 이거 어떻게···.”
핸드폰을 꺼내자마자, 무려 홍보팀 직원이 알려주는 SNS 강의가 시작되었다.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법.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고, 대댓글을 남기는 법 등을 싹 배우고서 직원이 내게 물었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사진 올려야죠.”
“그렇게 아무 말도 안 올리실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에 힘입어······]석 줄 짜리 감사 인사를 적어넣자, 그제야 직원이 나를 하산시켰다.
“그, 네. 뭐 처음이니까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렇게 올리시면 돼요. 아까도 말했지만 인스타의 본질은 자랑이에요. 근데 너무 또 재수 없으면 안돼. 은근~히 자랑해야 해요.”
“어렵네요. 뭘 또 올리지···.”
“방금 티비 생각하셨죠?”
“오, 어떻게 아셨—.”
“미치겠다. 자랑할 게 없어서 연예인이 자기가 산 티비를··· 티비를 자랑하는 백승결이라니···.”
중얼거리던 직원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거 귀한데요?”
지나가던 홍보팀장도 거들었다.
“그래, 너무 만들어진 이미지보단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둬. 요즘은 그게 먹혀.”
“그러니까요. 저희한텐 티비 자랑하는 게 익숙한데, 팬들한텐 이거 은근 덕질 포인트가 될지도.”
그 사실에 내심 또 뿌듯해하는데, 김성운이 회의를 마치고 내려왔다.
‘악의 링’이 미국에서 1위를 한 건 때문에 그도 정신이 없었다.
뒤이어 홍보팀과 몇 가지 내용을 공유하던 그가 개인적으로 알아낸 내용을 덧붙였다.
“아참, 승결이 팬클럽에서도 슬슬 움직일 건가 보던데···.”
“팀장님 정보 느리시네.”
나에게 SNS를 알려준 직원이 그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
[‘하람홍보팀’님이 입장했습니다.] [하람홍보팀: 기전(—백승결 팬클럽 이름, 승결과 합치면 기승전결이 된다) 여러분.]복작거리던 채팅장에 비장한 문구가 떠올랐다.
[하람홍보팀: 제가 해냈습니다.] [기♡전♡: 설마···.] [피켓요정: 저번에 말했던 그···.]설마 설마하는 반응에 ‘하람홍보팀’이 자신있게 답했다.
[하람홍보팀: SNS에 tmdruf185 쳐보시죠.] [피켓요정: 으아닛!] [친구따라승결: 뭐야 찐 하람 홍보팀이었어요?] [하람홍보팀: 전 홍보팀이기 이전에 백승결 팬입니다.] [기♡전♡: 너무 좋다. 크으, 1억뷰~! 뿌듯하다!] [귀호귀여워: 다음 거, 다음 거 언제 올라온대요?]그때 이 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닉네임 하나가 채팅장을 가로로 자르며 떠올랐다.
[‘백승결혼’님이 입장하셨습니다.] [귀호귀여워: 방장님!] [피켓요정: 울배우 SNS 시작했대요! ㅜㅜ] [백승결혼: 이미 팔로우하고 왔습니다 ^^하람홍보팀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하람홍보팀: 별말씀을. 저도 일보단 팬심으로 한 거예요. (강백호가 서태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이모티콘)] [백승결혼: 자, 그러면 이제 저희가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제 정보통에 의하면 1차 예고편이 보름 뒤에 공개된다고 해요. 역대급 퀄리티라고 하니 올라오자마자 여기저기 퍼 나르면 효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친구따라승결: 근데 홍보가 너무 안 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비슷한 시기에 좀 더 빠르게 개봉하는 ‘연고’는 벌써부터 해외 영화제를 나간다느니 아주 난리던데.] [기♡전♡: 거기랑은 체급부터가 다르죠. 문제는 체급 다르다고 영화관에서 편의를 봐주는 건 아니니까······.] [피켓요정: 확실히 저희라도 나서서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홍보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 난감해요.]팬들의 아쉬움 가득한 이야기들에 방장이 모든 내용을 취합하기 시작했다.
우리라도 홍보할 방법을 알아보겠다며.
하람홍보팀도 이를 돕겠다며 나섰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팬들을 보며 누군가 물었다.
“아빠 왔다.”
왔다. 내 정보통.
핸드폰을 내려놓은 박혜진이 얼른 소파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그래, 어우 피곤하다. 엄마는?”
“여깄어~.”
안방에서 빼꼼 머릴 내미는 엄마.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하는 아빠를 멈춰 세웠다.
“아빠.”
“응?”
“‘눈속임’ 내부 시사회는 언제부터야? 아, 그리고 예고편 나오기 전에 홍보는 아예 없는 거야?”
“아무래도 예산이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까 홍보에 일찍부터 힘주긴 어렵지. 반응이 좋을 거라는 확신도 없고. 보통은 예고편 띄우고 반응 보면서 홍보에 들어가.”
“‘연고’는 벌써부터 엄청나게 홍보하더만. 경쟁작 아냐? 안 그래도 좀 더 늦게 개봉하는데, 홍보까지 늦으면 더 위험하지 않나?”
이것저것 질문하는 박혜진에 얘가 요즘 왜 이러나 하고 보는 굿픽쳐스 박 대표였다.
“‘연고’랑 엄밀히 말하면 경쟁작은 아니지. 애초에 들어간 돈부터가 다르고 올해 첫 천만 영화가 되냐 마냐 이러고 있는데.”
“또 모르지. ‘눈속임’이 이번에 막 천만 넘고 그럴지도. 아직 아빠 회사에서 천만 넘는 거 못 만들었지?”
“에이, 야 손익분기점이 150만이야. 그 2배가 들어오면 대박이라고 하고, 3배면 초대박인데. 천만 되려면 6배가 넘어. 그게 말이 되나.”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영화도 엄청 잘 뽑혔다며. 아빠 입으로 미쳤다며. 난 아빠 믿어!”
마지막 말이 감격스러웠는지 박 대표가 심하게 감동한 얼굴로 박혜진을 보았다.
“어이구, 우리 딸! 이제 네가 아빠를 이해하고 응원해주는구나.”
응원하지. 하는데, 사실 다른 이유가···.
와락 자신을 안는 아빠에 당혹스러워하던 박혜진이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굳이 말하지 말라며 고갤 젓는 엄마.
“그, 그치. 아빠 응원하지. 내가. 그러니까 얼른 홍보 해봐. 반응 좋을 수도 있다니까······.”
착한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녀의 응원 덕분인지 굿픽쳐스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눈속임’의 주요 3인방, 백승결과 고하윤, 이태관의 스틸컷들이 대거 풀렸다.
더불어 한이연 감독이 만든 ‘눈속임’의 세계관도 조금씩 풀렸고, 이를 팬들이 쉴 새 없이 퍼다 날랐다.
그러던 중 1차 예고편부터 차례대로 공개되면서 관심은 더욱 커져갔다.
굿픽쳐스 홍보팀은 물론이고 박혜진조차 예상하지 못한, 상상 이상으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이젠 적어도 ‘연고’에게 깔려 죽을 정도는 아니게 된 거다.
하지만 아무리 덩치가 커졌다고 해도 정작 그만한 힘이 없으면 의미가 없듯.
이만큼 달아오른 기대를 처참히 무너트리느냐, 아니면 그 이상을 해내서 ‘연고’마저 위협하느냐는 전적으로 영화의 재미에 달린 것.
그 결과를 손에 쥔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