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7)
77화 눈속임 (1)
“안 감독님, 축하드려요!”
팍하고 꽃가루가 날렸다.
뒤에 있던 ‘740만’ 풍선을 떼온 배우들이 안원상 감독 뒤에서 흔들어댔다.
나를 비롯한 굿픽처스 식구들, 그리고 ‘눈속임’의 한이연 감독과 배우들까지도 이에 박수를 쳤다.
그럴 만도 했다. ‘도그페이스’가 안원상 감독 개인의 최고 성적이자, 굿픽쳐스라는 제작사의 역대급 성적으로 종영하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충무로에서 흥행력 있는 감독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올라서게 된 거다.
벌써부터 차기작 투자 문의가 줄기차게 오는 중이랬지.
“아, 그 거지 같은 ‘관찰자’ 놈들 때문에 초반 관객들만 안 뺏겼어도 800만 가는 건데.”
“전 만족합니다. 욕심 안 부리려고요.”
“난 부릴 거야. 어후, 화딱지나. 더 열받는 건 ‘연고’인지 뭔지가 우리 다음 영화까지 또 방해하려는 거지. 배급사에 항의해봤는데도 별수가 없더라고. 느낌이 싸해.”
“맞아요. 좀 노골적이긴 해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좋은 날 떠올리기엔 알맞지 않은 얼굴이었다.
속단하지 말자. 정말 ‘관찰자’와 ‘연고’ 제작사들이 굿픽쳐스를 저격한 건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그렇다 해도 우경철과 연관이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
‘겁 많고 작은놈들이 이 바닥에 똘똘 뭉쳐서 어깨놀이를 하거든. 마음에 안 드는 놈 끌어내리려고 별 지랄을 다 해.’
유종원 피디의 말이 남아 있어서 그런가.
찝찝한 뒷맛이 아예 말끔히 지워지진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축하파티잖아.
그것도 내가 특별 출연한 ‘도그페이스’의 종영 파티이자, 주인공인 ‘눈속임’의 완성 파티!
애써 머릿속에 차오르던 잡념을 몰아내고 이번엔 한이연 감독에게로 몰려드는 포커스를 따라갔다.
“한 감독도 정말 수고했어. 내 기운까지 받아서 더 좋은 성적 거두길 바라.”
안원상 감독이 덕담과 함께 잔을 들었다.
어느 정도 취기도 올랐겠다, 신이 난 한이연 감독이 잔을 깰 듯이 부딪히며 한 번에 독한 위스키를 말끔히 비웠다.
그녀가 불안했는지, 스크립터 손기훈이 얼른 옆으로 다가간다.
“저 진짜··· 첫 상업영화! 너무 만족스럽게 뽑혔어요!”
그리고 그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이 정도 퀄리티면 진짜 망해도 돼, 망해···읍읍!”
손기훈이 다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건너편에 있던 박 대표는 기겁한 표정이었다.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잘 만들었으면 잘 돼야지. 평소엔 온갖 미신 다 믿으시면서. 얼른 퉤퉤 하세요. 퉤퉤.”
“퉤! 퉤!”
“한 번 더.”
“퉤! 퉤! 끄윽··· 이제 놔줘···.”
그제야 손기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스크립터가 감독을 죽이려 한다며 투덜거리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무튼, 다들 진짜 고마워요. 얘 빼고.”
손기훈을 흘긴 그녀의 눈이 누군가를 찾았다.
“특히 우리 백승결 배우.”
나였다.
“나한테 먼저 대본 받아가서, 이태관 배우님도 모셔와 주고··· 거기에 고하윤 배우까지···.”
그러더니 갑자기 지난 일들을 술술 실토하기 시작한다.
누가 그걸 뱉어내랬나. 나도 얼른 입을 막아야 하나.
그나저나, 고하윤은 아닌데?
고갤 돌려 고하윤을 찾았다.
그녀도 멀찌감치에서 그 소릴 듣곤 토끼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싸늘하다. 슬쩍 돌아보니 김성운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간도 크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이 있었던 거야?”
“확신··· 있죠.”
씩 웃으며 고갤 돌렸다.
위스키 한 잔에 제대로 취해버린 한이연 감독이 눈에 들어온다.
“승결 배우, 내가 진짜 은혜 꼭 갚는다으.”
지금은 저렇게 풀어져 있어도, 이야기를 엮는 매듭은 누구보다 탄탄했다.
그 탄탄한 길을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걸었고, 최선을 다해 끝마쳤다.
그러니 확신이 없을 리가.
“넘쳐요.”
내가 진지하게 답했고, 김성운이 픽 하고 웃었다.
여전히 한이연 감독은 은혜 타령이었다.
“난 까치가 될 거야. 까치가···.”
그녀는 모르는 듯했다.
이미 까치가 되어 내게 대본을 물어다 줬다는 것과.
그걸 심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기야 했지만, 성공적으로 자라 이미 ‘눈속임’이란 커다란 박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 박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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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배급 시사회는 외부에 공개되는 가장 빠른 시사회였다.
그러니 배우들을 비롯한 한이연 감독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달랐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특히 한이연 감독은 며칠 새 아주 초췌해져 있었다.
대본을 작성할 때는 그래도 눈빛엔 생기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없이 탁하다.
‘딱하네.’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돌고 온 탓이었다.
독립 영화감독이니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겠지.
“세상에 이렇게 많은 언론사, 잡지사들이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어.”
“오늘은 어디였어요?”
“무비무빙. 세렝게티의 영화들···.”
“오.”
“영화가좋아. 투데이씨어터.”
“아.”
‘오’가 ‘아’가 된다.
하루에 네 탕이라니, 생기가 있는 게 이상하지. 시사회까지 다섯 번째인 거잖아?
“심지어 세렝게티의 영화들, 여기 기자가 뭐라는 줄 알아? 나 만나러 와서 ‘연고’ 얘길 주구장창하는 거야. 연고가 경쟁작이 될 것 같은데 경쟁이 될까요? 이게 대체 뭔 소린지······.”
다들 ‘선 넘네?’하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때 점잖게 대기 중이던 이태관 배우가 슬쩍 묻는다.
“그 기자 이름이 뭔가?”
“아, 잠시만요. 선배님.”
한이연 감독이 옳다구나 하고 얼른 명함을 찾아 건넨다.
뒤이어 고하윤 매니저도 거들었다.
“우리 하윤이도 요즘 ‘연고’의 주예린이랑 엮어서 엄청 싸움 붙이더라구요.”
“두 배우, 진짜 케케묵은 논쟁 아녜요? 차세대 여배우가 왜 한 명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어이없어하는 김성운의 목소릴 들으며 옆에 있던 고하윤을 돌아봤다.
이태관 배우에게 한창 일러바치던 한이연 감독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혹시, 그 배우랑 사이 안 좋아요?”
그건 좀 궁금했다. 티비로 꽤 많이 본 두 사람인데, 그들의 실제 관계라니.
“아뇨. 만난 적도 없어요. 아, 영화제에선 몇 번 봤는데 사적으론 전혀 얘기도 안 해봤어요.”
관계고 뭐고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기자들이 싸움을 붙여대는 거다.
“싸움 붙이기 좋아하는 거 우리나라 기자들 특이잖아요.”
“뭐, 그거야 전 세계 기자들 다 똑같을걸요.”
“아마, 오늘도 엄청 물어보겠죠. 연고부터 주예린까지.”
“그래도 저희 영화 시사회인데 그럴라고요.”
매니저들끼리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한이연 감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덧붙였다.
“오히려 아까 담당자님은 질문이 너무 없을까 봐 걱정이시던데요. 돌아다니면서 질문해달라고 읍소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더라고요.”
“보통은 그렇죠. 질문이 안 나오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혹시라도 마가 떠버리면 대참사니까.”
“으, 생각만 해도 싫네요.”
무플이냐 악플이냐··· 그것인 문제로다.
뭐 이런 건가.
걱정섞인 목소리들을 듣다가 가볍게 물었다.
“근데, 기자간담회는 영화 상영 후잖아요?”
“그렇지?”
끄덕거리는 김성운을 보며 내가 말했다.
“영화 보기 전이라면 모를까. 우리 영화 봤으면 기자들을 안 할 리가 없죠.”
씩 웃으며 자신감을 보이자, 김성운이 피식 웃는다.
얘길 듣고 있던 한이연 감독과 다른 배우들도 저마다 미소를 지었다.
내 말이 웃겨서는 아닐 터.
함께 찍은 저들도 아는 거다.
우리 영화를 보고 나면, 절대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리 없다는 걸.
“자, 입장하시겠습니다! 상영 중 촬영은 불가하며, 영화가 끝난 후 곧바로 기자간담회가 있으니 퇴장을 원하시는 일반 관객분들께선 들어오셨던 뒷문으로······!”
저 멀리서 진행요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우리 쪽 문도 열렸다.
“이제 입장하실게요.”
또 다른 진행요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관객들과는 다른 통로로 상영관 안에 입장해 앞줄에 나란히 착석했다.
뒤쪽에선 수많은 기자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박을 터트릴 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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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상영관 안으로 들어서며 각자의 손에 들린 프레스 키트를 이리저리 살핀다.
마치 어제 다른 결혼식장을 다녀온 하객들처럼 여긴 어떻고, 저긴 어떻고 비교가 범람했다.
“확실히 ‘연고’랑은 다르네. 거긴 이렇게 A4용지로 안 주고 아예 책자로 만들었잖아. 심지어 기념품도 줬지. 제목이 연고라서 진짜 마데카솔 준 것도 센스있고.”
“거긴 제작비가 다르잖아요. 여긴 이런 거에 쓸 돈이 어딨겠어요. 그걸로 홍보 조금이라도 더 하는 게 낫지.”
“하긴. ‘눈속임’ 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들도 ‘연고’에 안 묻히려고 다들 엄청 노력하더라.”
“이기는 건 어불성설이고 살아남기만이라도 하자, 뭐 이런 거죠.”
그런 대화 속에서 패딩 조끼를 입은 기자가 말했다.
“이렇게 제작비 싸움으로 가는 게 당연하면서도 좀 그렇네요. 작품 자체를 봐야 하는데.”
“근데 보통 제작비가 높으면 시나리오도 평타 이상이고, 좋은 배우에 좋은 감독까지 붙어버리니 결과물도 좋을 가능성이 높지. 그리고 ‘연고’ 재미없었어? 아니잖아. 너도 호평했더만.”
“괜찮은 영화였죠. 잘 만들었어요.”
주억거린 패딩 조끼 기자가 덧붙여 말했다.
“근데 이런 소재도 좋잖아요. 흔치 않고. 묻혀버리기엔 좀 아까울 것 같아서요.”
그 사이, 자연스럽게 상영관 안으로 밀려든 그들.
맨 앞줄은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틸컷 사진작가들이 쪼르륵 앉아 있었다.
그 뒤부턴 자신들과 같은 각종 언론사 기자들이 차곡차곡 들어찬다.
그들도 4열쯤에 나란히 앉았다.
“기자간담회 때 뭘 물어봐야 하나.”
“연고 얘길 대놓고 하면 좀 그렇겠죠?”
“기자 하루 이틀 하냐. 좀이 아니라 많이 그렇지. ‘경쟁작’이라는 표현으로 돌려 말해야지.”
“그거 좋네요. 경쟁작.”
그런 얘기들이 오가는 와중에 시간이 되었는지 상영관이 어두워졌다.
“영화 시작하네요.”
패딩 조끼 기자가 여전히 이런저런 얘기 중이던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윽고 주변이 조용해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백승결의 독백으로 시작된 오프닝.
극 중 주인공인 진기원의 어린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어느 성당.
그곳에서 아버지는 진기원을 옆에서 놀게 하고,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진기원이 아버지의 그림과 명화의 다른 점을 캐치하며 그 재능이 드러났다.
이후 다시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동생이 아팠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큰돈을 벌어왔고, 그러다 갑자기 집을 떠났다.
상당한 액수의 돈을 남겨놓고, 더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배경 설명 뒤로 떠오르는 ‘눈속임’이라는 타이틀.
“오···.”
기자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의외라는 표정들이었다.
“이거, 시작이 좋은데?”
“괜찮네. 신선하고.”
그 모습을 보며 패딩 조끼 기자도 주억거렸다.
이어지는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사소한 엑스트라나 소품들조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정말 이런 세계가 어딘가에 있고, 그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
‘이 감독의 전작도 이런 느낌이었지. 근데 이번엔 정말 그게 극대화되었네.’
관객을 몰입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삼켜서 새로운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다.
‘이번엔 재미도 잡았을까?’
그건 퀄리티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니까.
이대로 재미가 없다면 잘 만든 페이크다큐와 다를 게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부터였다.
그의 평가를 비웃듯, 관객들을 삼킨 이야기가 미친 듯이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