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눈속임 (2)
진기원은 아버지가 가족을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했다.
돈에 눈이 먼 가장에게 가족들이 버림받는, 그런 뻔한 엔딩이라 치부한 거다.
하지만 정유화를 만나며 진실을 알게 되었고,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난 과거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세상 만물을 똑같이 그릴 수 있는 아들아.
사람의 얼굴이 모두 제각각이듯, 그것은 신조차 해내지 못한 것이니.
너의 재능은 이교도나 다름이 없구나.
그러니 너는 결코 붓을 잡지 마라.
이교도에겐 그에 걸맞은 악이 따라올 테니.』
재능을 이교도라 말하며 드러내지 말라고 했던 건, 놈들의 시야에 진기원이 들어가게 될까 봐서였다.
아버지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를 오랫동안 원망해왔기 때문일까.
진기원의 복수심은 밀린 이자를 치르듯 더욱 커져갔다.
그걸 원동력으로 진기원은 그림을 그렸다.
과거 아버지가 걱정했듯이, 진륭이 자신을 발견하도록.
신의 눈에 띄지 않을 재능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손을 잡았고, 진기원은 그가 원하는 수많은 명화들을 그려주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하진 않았다.
⌜그 힘은 다른 곳에 쓰여야 해.⌟
진륭이 유럽의 마피아들과 손을 잡고 유명 미술관의 명화들을 교묘히 빼돌리는 동안, 진기원은 진륭에게 그려주었던 그림들을 하나씩 더 그려냈다.
거기에 모든 능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이번엔 미술관을 속일 그림들이 아닌, 진륭을 속일 그림들이었다.
마침내 진륭이 수많은 명화들을 진기원이 그린 위작들로 바꿔치기에 성공했을 때.
정유화가 피해자들로 이루어진 팀과 함께 그의 그림들을 한 번 더 빼돌렸다.
신의 눈이라 불리우던 진륭조차도 자신의 그림이 바뀐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기원의 승리였다.
⌜이후 문제를 알아차린 것은 오히려 미술관이었다.⌟
특별전을 위해 옮겨지는 과정에서 작품들이 뒤바뀌었다는 제보를 받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정을 해보니 위작이 맞았던 것.
생각보다 일찍 이 사실이 밝혀지자 진륭은 허겁지겁 그림을 챙겼다.
그리고 꼬리를 자르기 위해 진기원을 주동자로 몰 계획까지 마쳤다.
⌜네가 챙긴 그림의 뒷면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적어도 진기원의 말에 그림의 뒷면을 뜯어보기 전까진 그랬었다.
[신의 눈은 개뿔]⌜이, 이게 무슨······.⌟
⌜아, 몰랐어? 내 사인.⌟
⌜이게 왜··· 왜 여기에···.⌟
이를 보며 진기원이 조소했다.
⌜신의 눈을 가졌다더니. 별거 아니네.⌟
이성을 잃은 진륭이 진기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다음부턴 격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마침내 진기원을 넘어트린 진륭이 칼을 진기원에 허벅지에 내리찍었다.
⌜끄아악!⌟
⌜고통스럽게 죽기 싫으면 얼른 말해. 그림 어딨어. 전부 어딨냐고!⌟
하지만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와중에도 웃음을 흘리는 진기원.
진륭이 몇 번 더 추궁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냐. 내가 그걸 못 찾을 거 같아? 네깟놈이 숨겨봤자지. 얼른 찾아주마. 찾아서 네놈을 도운 새끼들까지 싸그리 죽여줄게. 아, 죽기 전에 네놈 애비를 내가 어떻게 죽였는지 알려줄까?⌟
진기원이 핏물을 토해내며 쿡쿡 웃었다.
⌜말 안 해도 돼. 봤으니까.⌟
⌜네놈이?⌟
그때였다.
타앙—!
총소리와 함께 진륭의 손에서 칼이 떨어져 내렸다.
그의 손에선 피가 쏟아졌다.
⌜아니, 내가.⌟
정유화가 방을 가로질러 왔다.
칼부터 구두 굽으로 쭉 밀어 치우고서, 고통에 신음하는 진륭에게 총을 겨눴다.
진륭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진기원을 돌아본다.
⌜법에 맞기자. 죗값을 치르게 하자. 뭐 그런 개소리 안 할거지?⌟
그녀의 물음에 진기원이 피식 웃었다.
⌜영화냐.⌟
⌜그치?⌟
타앙—! 타앙—!
그대로 진륭의 양다리에 총알을 박아넣은 정유화.
그녀가 보았던 장면 그대로, 놈의 머리에 마지막 총알을 쏘았다.
털썩—.
그대로 고꾸라지는 진륭의 몸.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정유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빠 말고도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 텐데, 너무 깔끔하게 죽였나.⌟
⌜전혀 안 깔끔한데.⌟
맥없이 늘어진 진륭에게서 시선을 돌린 진기원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 저승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는 양반들이 있을 거거든. 귀를 잘리고, 뼈가 부서지고, 목이 잘리고, 사지가 찢길 거야.⌟
그게 진짜든, 아니든.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미련을 털어내는 정유화였다.
⌜그래서 진품들은 어떻게 할 거야?⌟
이번엔 진기원이 물었다.
그리고 정유화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전부 돌려줘야지. 제자리에.⌟
⌜안 챙기고?⌟
진기원의 물음에 정유화가 아까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영화냐. 이걸 어떻게 처분할 건데. 우리는 진륭처럼 음지 루트를 모르잖아. 이제 와서 알아보다간 중간에 잡히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일걸.⌟
⌜그렇겠네.⌟
동조하는 진기원에게 정유화가 다가갔다.
⌜그럼 넌 이제 뭐 할 건데?⌟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진기원이 잠시 고민하다가 피식 웃었다.
⌜그림을 그리다 깨달은 건데, 복수심이 불타는 와중에도 좀······ 재밌더라. 그래서 내 그림을 한번 그려볼까 싶네.⌟
⌜너 지금 범죄잔데?⌟
⌜당연히 정체는 숨겨야지.⌟
⌜그래?⌟
반문한 정유화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럼 대신 팔아줄 사람이 필요하겠네?⌟
#
진기원과 정유화.
두 남녀 주인공이 진륭의 방을 나서며 문이 굳게 닫혔다.
동시에 화면이 암전되며 영화가 끝났다.
이윽고 화려한 명화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
순간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기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곳곳에서 환호성과 휘파람도 튀어나왔다.
모두가 할 말이 정말 많아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기자간담회를 위해 무대 위를 세팅하는 사이, 기자들이 다시금 프레스 키트를 내려다보았다.
새삼 달라진 눈빛들이었다.
“이 정도면······ 프레스 키트(—홍보 책자)가 뭐가 중요합니까.”
“책자는 무슨, 난 이면지에다 줘도 된다고 본다.”
“그러니까. 기대 별로 안 했는데, 너무 재밌었어.”
반응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말문이 막힌 채로 ‘이야···.’, ‘와···.’ 같은 감탄사만 반복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특히나 패딩조끼를 입은 기자는 한이연 감독의 작품을 응원하면서도 아쉬워했던 터라 더욱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신선하고 몰입감 있는 영화가 재밌기까지 해버렸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그리고 배우들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특히 배우들··· 그중에서도 주연 세 사람은 정말 이 세계관 속에서 머무는 사람들 같았어.’
이태관 배우는 악랄한 카리스마가 돋보였고, 고하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고하윤이라니. 이건 귀하잖아.
그리고 주인공, 백승결은······.
“도그페이스 이 실장이 전혀 생각 안 나.”
“서귀호는 어떻고.”
“그전엔 누구였지? 최우진?”
“와, 떠올릴 때마다 전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만 드네. 같은 얼굴이 안 떠올라.”
“중간에 그림 그릴 때 연기 봤어요?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선 액션이 중요하니까 그림 그릴 때도 모션을 과장되게 담는데, 그런 게 전혀 없이도 역동적이더라니까요?”
곳곳에서 튀어 오르는 감탄에 패딩조끼 기자가 헛웃음을 머금었다.
시작 전이랑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나.
“쩝······ 망했네. 이거 심상치가 않아.”
영화 팬으로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게 반가운 그였지만, 한편으론 기자로서의 업무에 차질이 생긴 그였다.
“이래서야 질문 하나 하기도 빡세겠는데.”
#
무대에 오르며 바짝 긴장한 한이연 감독을 보았다.
아무래도 외부에 처음으로 ‘눈속임’을 공개했기 때문일 터.
그 반응이 나조차도 이렇게 궁금한데, 그녀는 어떻겠나.
동시에 그녀의 멘탈을 위해서라도 헛소리하는 기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무 소리가 없는 것도 문제고.
‘그건 진행요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질문해달라고 푸쉬를 넣는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무대 위로 올라섰다.
동시에 다시 한번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동안 다녔던 무대 인사와 비교해봐도 전혀 꿇릴 게 없는 큰 함성이었다.
이후, 짧은 인사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에 모두 착석했다.
무대 바로 아래 있던 진행요원들이 질문을 격려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어, 네. 그럼 이제··· 질문 받겠습니다.
한이연 감독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 말을 꺼내자마자 여기저기서 손들이 치솟았다.
흡사 묘지에서 좀비들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내심 반응이 좋으리라 예상했던 나조차도 놀랐다.
진행요원들도 마이크를 들고 뛰어다니려다 멈춰서서 우왕좌왕할 정도였다.
—플레이매거진 안성택 기자입니다. 감독님의 전작인 ‘정적’도 정말 인상 깊게 봤는데요. 이번 작품에선 감독님의 강점에 재미까지 더해져 정말 미친 작품이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제 질문은······.
—무비채널 김성의 기자입니다. 우선 정말 재밌게 봤다는 말씀부터 전하고 싶네요. 아직 올해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칭찬을 서두로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이연 감독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감격했다.
서너 번쯤 더 질문을 받았다간 대본 리딩때처럼 또 뒤로 넘어갈 판이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포인트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음, 키포인트라면 역시···.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민하던 그녀가 갑자기 바로 옆에 앉은 나를 바라본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백승결 배우였습니다.
순간 불안해졌다. 여기서까지 내가 이태관 배우와 고하윤을 영입했다는 얘길 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제가 평소에 제가 쓴 대본을 내 새끼, 내 새끼 하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대본에 등장하는 배역들도 제 새끼인데······.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지금 맨정신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진기원의 얼굴이 백승결 배우의 얼굴로 떠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다른 얼굴은 아예 상상이 안 됐어요. 큰일 났죠. 나는 이제 입봉 감독인데. 백승결 배우랑 같이 못 할 텐데······ 그러니까 화도 나고, 미안하더라고요. 내 새끼는 정말 대단한 대본인데, 그걸 쓴 내가 별로라서, 모자라서. 그래서 딱 맞는 배우를 못 구해준 것 같아서.
자조 섞인 말투로 말을 이어나가던 그녀가 목소릴 두어 계단 끌어올리며 옅게 미소짓는다.
—그때 백승결 배우가 거짓말처럼 제 앞에 나타나 앉았어요. 그리고 대본을 달라며,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꿈만 같았죠. 그리고 그 순간 욕심이 나더라고요. 내 새끼한테. 진기원한테. 백승결이라는 배우를 꼭 선물로 주고 싶었어요. 그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죠.
점차 고조되던 목소리가 다시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차분하면서도 밝았고, 그 속엔 설렘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은 저 스스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기원뿐만 아니라, 정유화, 그리고 진륭까지. 제가 머릿속에서 품은 모든 캐릭터들이 최고의 배우를 만나 여러분들 앞에 설 수 있었거든요.
그녀의 시선이 나에서부터 고하윤과 이태관 배우까지··· 모두를 훑었다.
우리 모두 웃으며 그녀의 시선을 반겼다.
다음 순간, 함박웃음을 짓던 그녀가 확실히 덜 떠는 모습으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다음 질문은요?
그녀의 물음이 마치 흑마법 주문인 것처럼 또다시 수많은 좀비를 소생시켰다.
수많은 기자들의 팔이 허우적거린다.
그날 한이연 감독과 우리는 김성운의 말마따나 네크로맨서였다.
수많은 좀비를 소생시키고, 그들에게 질문 세례를 받았다.
대답을 들은 좀비들은 만족할 줄을 몰랐다.
성불은커녕 지박령인 듯 또다시 손을 번쩍 든다.
누구도 연고에 대한 이야길 꺼내지 않았고.
주예린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으며.
오로지 ‘눈속임’에 대한 관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