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9)
79화 눈속임 (3)
우리는 언론 배급 시사회에서의 관심이 관객들에게도 옮겨붙길 바랐다.
어디까지나 진짜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니까.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개봉한 ‘연고’의 기세가 거셌다.
비록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초청받았다는 것에 애당초 큰 의미가 있었고, 공격적인 홍보를 끝도 없이 푸쉬하니 당연히 관심도가 높아질 수밖에.
그들이 이런 상황을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후발주자로서의 악조건을 견뎌내야 했다.
그렇게 며칠 후······.
한이연 감독의 네 번째 영화이자.
복귀 후 나의 세 번째 영화.
‘눈속임’이 극장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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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 눈속임
평점 8.97 (관객수 25만)』
[미술과 잠입이 조화로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무비채널 김성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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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눈속임
평점 9.15 (관객수 80만)』
[극한의 마이너함에서 오히려 대중성이 꽃피다>-무비무빙 이성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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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눈속임
평점 9.10 (관객수 150만)』
[우리는 한이연 감독의 세계에 들어가서, 진기원의 눈으로 여행한다>-플레이매거진 안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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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눈속임
평점 9.32 (관객수 270만)』
[문이 닫히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나는 그 세계에서 추방당했고, 그 이후를 볼 수 없다는 것에 좌절했다>-이명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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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으으으음···.”
“누나!”
오늘만은 한이연 감독의 매니저를 자처한 스크립터 손기훈이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굿픽쳐스에서 대절한 버스 안.
그동안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속수무책으로 잠들었던 한이연 감독이 두 눈을 번쩍 뜨며 눈알을 굴린다.
홱, 홱.
동시에 손기훈을 향해 대뜸 물었다.
“······호, 혹시 꿈이야?”
굳이 넓은 좌석들을 내버려 두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우리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꿈?
“왜, 왜 깨웠어. 엄청 행복한 꿈이······.”
여전히 손기훈을 바라보며 횡설수설하던 그녀가 우리를 돌아본다.
“꿈이······.”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지 얼른 외투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뒤적거린다.
이내 안도와 기쁨, 그리고 민망함이 범벅된 얼굴로 풀풀 웃었다.
“아니네? 아니구나···.”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우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마침 영화관에 도착한 버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무대 인사 가시죠,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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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안내를 따라 대기실에 도착했다.
대원군 때부터 무대 인사를 꽤나 돌았던 터라, 이젠 여기가 익숙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상암. 여긴 가뜩이나 영화관이 커서 꽤 자주 왔었지.
···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민망해진다.
감회를 느끼는 나와 달리,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배우들이 보여서였다.
1팀 매니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태관 배우.
새로 들어온 대본들을 조용히 읽고 있는 고하윤.
‘고수의 향기가 느껴지네.’
나도 대본이나 꺼내 읽을까 고민하다가, 방향을 바꿨다.
“감독님, 근데 진기원이요.”
“응? 어, 어.”
우리와는 다르게 얼어있는 한이연 감독이 눈에 들어와서.
내부 시사회 때도, 언론 배급 시사회 때도 줄곧 벌벌 떠는 게 보였었는데, 무대 인사는 벌써 네 번째인데도 나아질 줄을 모른다.
하긴, 관객들이 어느 정도 많아지고 박스오피스 순위도 오른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지.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독립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상업영화잖아. 관객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한.
꿈만 같으면서도 평가받을 생각에 불안할 수밖에.
오죽하면 차에서 눈을 뜨자마자 꿈인지부터 확인할까.
“영화 내용 이후로는 어떻게 됐을까요?”
긴장을 풀어주려 꺼낸 말은 맞지만, 아무 말이나 꺼낸 건 아니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작가나 감독에게 줄곧 던졌던 질문이었다.
“음······글쎄. 아마, 뱅크시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얼굴 없는 예술가가 되는군요?”
“그렇겠지. 개인적으로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 너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공식이 깨졌으면 좋겠거든. 애초에 그런 걸 염두하고 쓴 시나리오이기도 했고. 근데 왜?”
언제 얼어있었냐는 듯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하는 한이연 감독.
굉장히 후련한 대답이었다.
그 세계관의 신이 저렇게 말하는데, 누가 토를 달까.
목적과 궁금증을 동시에 해결한 내가 빙그레 웃었다.
잘됐네, 진기원도.
“이제 만날 일은 없지만, 뭐 하고 사는진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저도 감독님이랑 생각이 비슷하거든요. 캐릭터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서귀호도?”
예상치 못한 질문에 피식 웃었다.
“네. 그 새끼도요.”
내 말에 어느새 유심히 우리 얘길 듣고 있던 모두가 빵 터졌다.
관심을 보인 이태관 배우도 한마디 얹었다.
“그럼 진륭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정유화는요?”
고하윤 매니저도 들뜬 얼굴로 묻는다.
내심 궁금했는지 대본에서 눈을 떼어내는 고하윤.
“음, 일단 진륭은······.”
꽤 오랫동안, 우리는 ‘눈속임’ 이후의 이야기를 나눴다.
즐거웠다. 동시에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도 느껴진다.
작품 하나를 함께 완성한다는 건, 단순히 프로젝트를 마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준다.
그때, 밖에서 직원과 얘길 나누던 김성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 ‘연고’팀도 무대 인사 일정이 있다고 했었잖아요.”
살짝 머뭇거리던 그가 찝찝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그 팀이 방금 무대 인사 끝났는데, 우리랑 인사하고 싶다네요.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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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의 감독과 배우들이 우릴 만나려고 기다린다는 게 새삼 의외긴 하다.
애초에 우리 무대 인사 날에 굳이 굳이 자신들도 무대 인사를 잡았다는 건 결코 흔한 일도 아니거니와 맥이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아니, 그보다 먼저.
체급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인 그쪽에서 왜 굳이 그런 짓을 할까?
이건 며칠 전 박 대표가 찰진 욕을 섞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지금 우리가 ‘감히’ 그들의 경쟁상대기 때문에.
경쟁은 커녕 안 묻히면 다행일 거라 생각한 영화가 고작 100만 정도의 차이를 두고 맹렬히 따라붙고 있었으니까.
우경철 때도 느꼈지만 참···.
유치한 이유로 유치한 보복이 당연한 곳이었다. 연예계라는 게.
“어떡할까요?”
아무튼, 대놓고 기다린다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경기 직전 축구 선수들처럼 복도에서 우리는 ‘연고’의 주역들과 마주쳤다.
살짝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것도 잠시, 상대방 쪽에서 민머리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니, 맞을 테니 저 민머리 남자는 주백기 감독이다.
그 뒤에 가장 눈에 띄는 미인은 주예린이고.
“어이고, 역전의 용사들이시네. 안녕하십니까. 주백깁니다.”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그렇다고 능글맞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은···.
주백기 감독이 말 그대로 꺼드럭거렸다.
그의 인사에 의례 ‘눈속임’의 대표인 한이연 감독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한이연 감독입니다. 감독님 예전부터 정말 팬······.”
“이 선배님,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네요.”
그녀를 쌩하니 지나치며 이태관 배우에게 다가가는 주백기 감독.
‘이거 봐라?’
이러려고 기다렸구나.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조금 불쾌하게.
“영화 재밌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들려오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정말 의외라는 듯, 믿기지 않는다는 듯 덧붙이는 그.
그러거나 말거나, 한이연 감독은 표정 관리뿐만 아니라 괜찮은 척도 탁월했다.
그녀가 몸을 돌려 그 말에도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물론 그조차 가볍게 지르밟는 주백기 감독.
이를 지켜보던 이태관 배우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주백기 감독을 바라보았다.
“반가워요. 감독님 영화야 뭐 홍보를 그렇게 때려대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없겠더군요.”
“하하··· 그렇죠. 워낙 시나리오가 좋으니 투자가 잘 돼서 말입니다.”
“그렇지만도 않지. 주 감독처럼 대단한 감독이면 시나리오가 어떻든 뭐가 중요하겠어. 안 그래요?”
“······.”
“우리 한 감독이야 이제 막 입봉한 신인 감독이다 보니 시나리오가 살렸지. 시나리오가, 훌륭해서.”
이태관 배우가 딱 잘라 선을 그었다.
한이연 감독은 완벽히 그의 사람이었고, 주백기 감독은 스타 감독이고 뭐고 완벽히 느그 사람이었다.
우리 대원군 잘한다! 쇄국정책 화이팅!
“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주백기 감독을 보며, 평소였다면 가만히 있었을 나도 슬쩍 한마디 보탰다.
“시나리오 하나 보고 여기까지 왔죠. 저희 전부.”
이태관 배우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스러워하던 주백기 감독이 이번엔 내 쪽을 돌아본다.
오히려 어찌할 줄 몰라하던 그에겐 좋은 퇴로였을 터.
“아아, 해별이, 백승결 배우!”
무슨 호(好)도 아니고, 굳이 이름을 그렇게 길게 불러야 하나.
굳이가 참 많이 붙는 사람이네.
“아 참, 그 이름을 뛰어넘는다고 했으니 이런 말 실례인가? 하핫.”
“괜찮습니다.”
가볍게 받아주자, 그가 이태관 배우에게 깎인 자존심을 보상받으려는 듯 다시 한번 꺼드럭거렸다.
“근데 그게 쉽겠나. 천만은 넘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번 영화에선 좀 힘들지 않겠어요? 흐하핫!”
그의 말에 뒤쪽에서도 얇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연스레 시선이 향했다. 주예린 배우였다.
그녀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박혀있었다.
고하윤 쪽을 빤히 바라보며 조소를 전단마냥 뿌리고 있었다.
둘이 사적으론 만난 적도 없다며.
근데 왜 저렇게 의식하지?
반면 고하윤은 아무 생각이 없는 눈이었다.
얼른 무대인사까지 끝내고 대본 보고 싶다··· 이런 눈빛이랄까.
일방통행으로 흐르는 경쟁심을 지켜보는데, 주백기 감독이 흐흐 웃었다.
“물론 그 제작비로는 이미 대박 난 거니 자랑스러워해도 돼요. 연기 칭찬이 자자하더라고.”
내가 당황했다고 생각했는지 너스레를 떤다. 슬쩍슬쩍 이태관 배우의 눈치도 보면서.
“언제 한번 사무실 놀러와요. 차기작 얘기도 좀 하자고. 천만 관객이란 게 나도 두 번 정도 넘어봤지만, 이게 애초에 넘을 수 있는 영화를 골라야 하는 거예요.”
참 어렵다.
연기가 좋아서, 너무 그리워서 돌아왔는데.
이것도 사람이 엮이는 일이다 보니 자꾸 이런 경우가 생긴다.
그래도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이미 적으로 상정하고 건드는 사람한테까지 노력하고 싶진 않았다.
‘심지어 이 영화는 내가 대본까지 구해서 메이드한 소중한 작품이라고.’
사실 그 점이 가장 컸다.
“누가 봐도 넘길 수 있는 영화로 넘으면 안 되죠. ‘해별이네’도 천만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던 영화였는데. 그러니까 ‘연고’가 힘내주셔야 해요.”
지금 내가 참지 않는 이유.
“···우리가?”
“‘연고’를 러닝메이트 삼아 천만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앞에서 힘을 내주셔야 저희도 팍팍 올라가죠.”
조금 신나 있던 그의 얼굴이 팍 식어버렸다. 이내 딱딱하게 굳더니 상기되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들릴 듯 말듯 덧붙였다.
“근데 400억 제작비에 해외 영화제까지 간 것치곤, 러닝메이트가 영 힘이 딸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