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1)
81화 눈속임 (5)
“하아······.”
대기실에 한숨이 불었다.
다음 상영 시간 전까지 기다리기 위해 대기실로 돌아온 주백기 감독이 연신 씩씩거렸다.
밖에서 맞고 온 뺨이 너무 아팠는지, 안에서도 분을 삭히지 못했다.
“시간 더럽게 안 가네.”
그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영화가 끝나고 무대 인사를 했으니, 이번엔 영화 시작 전에 무대 인사를 해야 할 차례.
보통 이런 식으로 두 탕을 뛰는데, 이게 안 그래도 불편한 주백기 감독의 감정을 더욱 긁어댔다.
이딴 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정경아.”
“네, 감독님.”
한동안 한숨만 뻑뻑 쉬며 고민하던 그의 곁으로 조감독이 빠르게 다가왔다.
반들반들한 머릴 쓸어넘긴 주백기 감독이 방금 결심한 것을 내뱉었다.
“새 팀 꾸리자.”
“예?”
“뭔가 단단히 잘 못 됐다. 내가 저··· 저딴 신인 감독한테 밀린다는 게 말이 되냐? 게다가 뭐? 연식이 오래돼? 저 새끼들이 나 오래 했다고 퇴물 취급하는 거야.”
“퇴물 아니십니다. 누가 400만이 넘은 영화를 두고 그런 소릴 해요.”
“400억을 들여서 손익분기점 겨우 넘길 것 같은 영화랑, 130억 들여서 700만이 코앞인 영화랑 같아? 저러다 저 새끼들 천만도 찍겠어!”
“그래도 퇴물이라뇨. 작품성이 좋아서 해외 영화제까지 다녀오셨잖아요.”
“그치? 관객들 수준이 낮아진 거지?”
끄덕거리는 조감독에 그는 화를 가라앉히긴커녕 오히려 더욱 얼굴을 구겼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한이연 그 애송이한테 지는 건 말이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 못 한다, 이거. 내 팀이 고여서 그런 거야. 다 썩어가지고. 싹 물갈이해야 돼.”
“아··· 예, 예.”
이러다 자신마저도 물갈이가 될까 어쩔 수 없이 고갤 끄덕이는 조감독이었다.
그렇게 사실상 팀 해체를 선언한 그가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삐딱한 눈으로 멀찍이 앉아있는 주예린을 보았다.
숨도 못 쉬고 있는 다른 배우들과는 다르게, 주예린은 다리를 꼬고서 핸드폰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주예린.”
“네?”
“넌 몸이 아프다는 애가 여기서 딸기랑 커피를 먹고 있었더라? 그것도 SNS질까지 하면서.”
“몸 아프면 음식도 못 먹어요? 그리고 만나기 싫었어요. 고하윤 그년이 기고만장해가지고 쳐다볼 텐데.”
오히려 짜증을 부리는 그녀의 반응에 주백기 감독이 머릴 감싸 안았다.
“어휴, 지랄도 풍년이네. 야, 배우도 마찬가지야. 저런 애 다음부턴 데려오지 마. 대표님이 같은 주씨네 뭐네 하면서 티 나게 밀어주길래 무슨 스폰을 받나 했더니. 이건 뭐, 아티스 엔터 믿고 고개만 뻣뻣한 애가 와가지고.”
그 말에 남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주예린이 쌍심지를 켜고 받아쳤다.
“감독님. 방금 말씀은 참 듣기 그러네요.”
“뭐? 너 지금 뭐라 했어.”
“아니, 막말로 이 중에 가장 고인 건 감독님이잖아요?”
“저, 저 미친년 봐라?”
강을 건너버린 분위기에 조감독과 주예린 로드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며 양측을 말렸다.
“가, 감독님! 진정하시고···.”
“예린아, 너 왜 그래. 감독님이 지금 너무 속상하셔서···.”
“속상? 속상하면 여배우한테 스폰 어쩌구 해도 되는 거야?”
“아니, 그게···.”
“너 이리 와봐. 어디서 배우가 감독한테···!”
“감독님, 제발 진정하시고!”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난 대기실에, 때마침 제작사 대표가 들어왔다.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그가 이마를 짚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아주 개판이네.”
그러더니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오는 사이에도 대기실은 난리였다.
조감독이 주백기 감독을 못 말리는 거야 당연했고, 주예린 매니저마저도 이성을 잃은 주예린을 컨트롤 못하고 있었다.
제작사 대표의 표정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
이윽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어, 우 본부장. 안녕? 안녕 못합니다. 아 얘긴 당신 배우한테 듣고, 주예린 이거 얼른 와서 데려가요.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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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복수와 기분 좋은 무대 인사가 모두 끝나고.
우리는 박 대표가 예약한 술집으로 자리를 이어갔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 어떤 표정이었는지도. 혹시 그쪽 제작사 대표도 있었어?”
만나자마자 잔뜩 기대한 눈빛으로 복수담을 갈구하던 그가, 영화관에서의 일을 듣고서 눈물이 고일 정도로 통쾌하게 웃어 재꼈다.
“아니, 백 배우랑 김 팀장이랑 애초에 그런 걸 짜서 간 거야?”
“그럴 리가요.”
김성운이 머쓱해 하며 손을 내저었다.
“갑자기 승결이가 그러길래, 맞춰준 거죠.”
“아니, 백 배우도 거기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서 그런 거고?”
“제가 택배 일 할 때 유일하게 보던 뮤튜브거든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하자, 박 대표가 잘했다며 엄지를 흔든다.
이태관 배우도 없겠다, 자칫 잘못하면 감정 싸움이 될 것 같아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속 시원히 맥이긴 하는데, 상대가 승질부리기엔 애매하도록.
‘그래도 김성운이 그렇게 잘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심지어 많이 해본 솜씨처럼 자연스러웠다.
역시 사람이 유해졌다는 정민우의 말이 사실인가 보네.
고하윤 매니저도 언젠가 비슷한 소릴 했었지.
김성운이 로드들에겐 악마 교관이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이거, 신빙성이 상당해지는데···.
어딘가 상쾌해 하는, 스트레스가 풀린 듯한 김성운을 바라보는데.
박 대표가 이번엔 다른 주제를 꺼냈다.
“아 맞다, 백 배우.”
“네?”
“그때 얘기한 천만 공약 있잖아. 그거 어떻게 되는 거야? 생각해본다며.”
그의 말에 며칠 전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천만 공약을 생각해두자는 말에 가볍게 던진 말이 큰 반응을 얻으면서 퍽 난감하게 되었지.
“아, 그거··· 근데 그분들이 원할까요?”
“당연하지. 백승결 배우가 본인 초상화를 그려준다는데 누가 마다해? 엄청 좋아하면 몰라.”
그러려나.
내가 입체파에 큐비즘을 접목시킨 초현실주의로 그려줘도 좋아하려나.
코가 막 미간에 붙어있어도?
“······해볼게요. 팬분들이 원하기만 한다면야.”
그렇게 아직 300만이나 남은 천만 공약이 땅땅땅 결정되었다.
이어지는 짠짠짠.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스케줄 때문에 무대 인사에도 참여 못 했던 이태관 배우가 곧장 이곳으로 합류했다.
그도 내심 궁금했는지 앉자마자 ‘무대 인사 어땠어?’가 아니라 ‘만났어?’부터 물어본다.
손기훈의 신들린 썰풀이가 이어졌다.
똑같은 내용인데도 재밌다. 스크립터답게 만담꾼이야.
그렇게 한참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엔 이태관 배우와 고하윤만이 남았다.
옆 테이블엔 한이연 감독과 손기훈을 필두로한 ‘눈속임’ 스태프들이.
그 건너 테이블엔 박 대표 휘하의 굿픽쳐스 직원들과 김성운 등 매니저들이 모여서 잔을 나눴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태관 배우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제 부탁 들어주신 거요.”
“그거 몇 번이나 감사할 건데?”
이미 ‘눈속임’에 참여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긴 했다.
그럼에도 오늘 또 하는 건, 오늘 또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 하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 행복하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거 같아서요.”
“영화 성적이 이렇게 좋으면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인데, 무슨.”
껄껄 웃은 이태관 배우가 덧붙여 말했다.
“근데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앞으론 이번처럼 못 도와줘. 당분간은 나도 혼자 연습을 좀 해야 할 듯싶으니.”
“연습이요?”
“심지 없이도, 내 연기력을 불태울 수 있는 방법.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방법.”
“···?”
그게 날 못 도와주는 거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지?
아, 당분간 연습을 위해 작품활동을 쉬겠다는 건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고하윤을 보며 픽 하고 웃었다.
“하윤 양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아는 것 같은데?”
그녀가 안주를 오물거리며 끄덕인다.
뭐지?
의문이 들었지만, 돕지 않겠다 해서 서운할 건 없었다.
이미 충분히 고마웠고, 매번 이런 식으로 일을 해결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태관 배우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만큼의 힘을 가져야 했다.
그 힘이 이미 나에게 어느 정도 생겼는지, 천만을 넘기면 생길지, 플러스알파가 필요한지는 모르겠다만.
묵직한 생각을 뒤로 넘기고, 즐거운 생각을 끌어왔다.
“근데 선배님은 연기할 때요······.”
당연히 연기 생각이었고, 연기 얘기였다.
돌고 돌아, 결국 연기.
그만큼 나는 연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건 나와 함께 앉은 이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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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다, 그림~.”
한이연 감독이 옆 테이블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술을 물처럼 마시는 이태관 배우.
물을 술처럼 마시는 백승결 배우.
물을 마시건, 술을 마시건 그게 곧 CF인 고하윤 배우.
세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저 배우들이 내 영화에 나왔다는 게 아직도 안 믿겨.”
“이제 좀 믿어요. 첫 상업 영화로 700만을 넘겼는데 자신감도 가지고. 곧 천만 영화감독이 될지도 모르는데.”
“천만······.”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근데 좀 불안하긴 해.”
“또 뭐가요.”
“첫 영화가 이렇게 잘 되면, 앞으로 얼마나 부담감이 심하겠어.”
“얼씨구?”
“다음에 기대만큼 안 되면 속상해하고. 다시 좀 괜찮으면 안도했다가, 별로면 다른 감독들하고 비교하고··· 그렇게 주백기 감독 같은 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하게 말하는 한이연 감독에 손기훈이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단호할 수가 없게.
“아뇨. 누나였으면 그렇게 안 됐어요. 확신합니다.”
그런 손기훈을 바라보던 그녀가 씩 웃었다.
“짜식, 고맙다.”
“대신 누나도 좀 단호해질 필요는 있어요. 누나는 촬영만 들어가면 완전 능력자고 여장부인데, 밖에선 너무 착해요. 내가 그래서 누나 존경하지만··· 이제부턴 누나 새끼인 대본이랑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단단해져 줘요.”
진심 어린 손기훈의 말에 한이연 감독이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로 입꼬릴 올렸다.
“그 말도 맞네. 그래 노력해볼게. 우리 팀을 위해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잔을 부딪치고서 핸드폰을 확인한 한이연 감독이 고개를 기울였다.
······홍준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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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팀 해산이다. 몰라 시발, 나도 짤렸으니까. 왜 해산을 하냐고? 야, 이홍준. 내가 널 왜 데리고 가야 하는데. 내가 너 퍼스트로 뽑은 건 네 필모가 좋아서였어. 근데 같이하던 감독 없으니까 필모의 반의반도 못 찍네? 근데 내가 널 왜 데리고 가.’
젠장! 제기랄!
이홍준은 불과 몇 시간 전 느꼈던 모욕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선택지가 없었다.
이미 자신이 여기저기서 뒷담을 까고 다녔다는 소식이 한이연 귀에까지 들어갔겠지만.
어차피 마음이 약해서 받아줄 테니까.
—어, 오빠.
“어, 이연아.”
‘눈 딱 감고 한 번만 읍소하자.’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없었는데 있어졌다.
700만 영화감독이면 가치가 넘치지.
“오랜만이야. 부재중 전화 보고서 연락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좀 바빴네.”
—알아. 오빠도 연고 촬영팀 퍼스트였으니 얼마나 바빴겠어.
“하하, 이해해주니 고맙다. 그리고······ 미안해.”
—뭐가?
“내가 그, 너 얘길 하다가 오해도 쌓이고 서운한 감정도 격해지다 보니··· 안 좋은 소릴 좀 했었어. 네가 워낙 완벽주의자니까. 그게 이제 카메라 감독으로서는 너무 힘들었던 거지. 그게 영화를 살리는 길인 줄도 모르고. 하핫. 내가 오빤데 이렇게 너보다 어리다, 야.”
술술 내뱉으면서도 속이 뒤집혔다.
자신이 동생한테 이렇게 굽신거리고 있는 게 한마디로 뭐 같았다.
그때 잠시 대답이 없던 한이연 감독이 말했다.
—아냐. 나 오빠 충분히 이해해.
“하, 그래? 고맙다. 그러니까 이연아. 앞으로 차기작 들어가는 거 있으면 혹시······.”
—내가 너무 만만했으니, 오빠가 그럴 수 있었던 거잖아.
“으, 응?”
—그래도 오빠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유명 감독이랑 일하게 된 거 축하해. 이 말을 보낼까 말까 했는데, 이렇게 하게 되네.
“아니, 그게 아니라 이연아···.”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자 당황하는 이홍준에게 한이연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끊을게. 나 지금 우리 팀원들하고 같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