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3)
83화 휴가 (2)
“오늘 생터뷰! 요즘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남자 배우죠. 백승결 배우님 모셨습니다!”
큐 사인과 함께 MC가 톤을 확 높였다.
옆에 세로로 세워져 있는 모니터에서도 채팅이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생터뷰.
기본적으로 지상파에서 하는 연예 중계 프로그램의 한 코너이지만, 이렇게 생방송적인 요소도 섞여 있는 방식의 인터뷰였다.
SNS도 이제 막 시작한 야만인에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백하!
—반가와요!
—반갑습니다~!
—백하~!
—결혼해줘요
—진짜 대존잘···.
“안녕하세요, ‘눈속임’으로 돌아온 배우, 백승결입니다. ”
“와 채팅창이 진짜 역대급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것 같은데요? 아니 근데, 돌아오셨다기엔 도그페이스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연기로 화제였잖아요? 이 정도면 돌아오신 게 아니라 그냥 계셨던 거 아닌가요?”
“아, 그러네요? 저 계속 있었네요.”
—바로 인정ㅋㅋㅋ
—배우계의 지박령인가요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을 하셨죠?
—ㅋㅋㅋㅋㅋㅋ
채팅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심지어 절반은 무슨 얘길 하는지도 모르겠다.
“채팅도 보시고, 제 질문에 답도 하시고, 정신없으시죠?”
“어후, 그러네요.”
“곧 적응되실 거예요. 그럼, 본격적인 인터뷰를 천천히 한번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단독 인터뷰인 만큼 영화 관련 질문에 있어서만큼은 꽤나 신중하게 답변을 해나갔다.
나름 채팅창에 적응도 되어서, 막간을 이용해 거기 올라온 질문에도 대답을 했다.
중간엔 밈을 잘 몰라 웃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중꺽마가 난 중년의 꺾이지 않는 마음인 줄 알았다고···.
어쨌든,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에 홍보팀에서 미리 전달한 내용을 MC가 자연스럽게 꺼내 들었다.
“참, 지난번 500만 공약에 이어서 이번에도 준비 중인 공약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네. 요즘 ‘눈속임’이 과연 천만을 넘기느냐 마느냐로 갑론을박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이참에 천만 공약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오, 이게 지금 저도 큐카드에 질문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내용은 전혀 모르는데, 어떤 공약일까요? ‘눈속임’과 백승결 배우님 팬으로서 너무 기대되네요.”
“기대하셔도······ 됩니다. 네. 돼요.”
마지 못해 답하고서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에라, 모르겠다.
“관객분들 중 몇 분을 초대해서 제가 얼굴을 그려드릴 겁니다.”
“와, 그분들은 진기원의 그림을 갖게 되는 거군요? 갑자기 영화 내용 중에 그 독백이 생각나요. 아버지의 당부였죠? 저 그거 정말 인상 깊었거든요. 사람 얼굴이 모두 제각각이듯 그것은 신조차 해내지 못한 것이다. 크으~.”
저 봐, 저렇게 기대할 줄 알았다고.
자포자기다. 무덤까지 판 김에 관뚜껑까지 셀프로 닫지 뭐.
이렇게 된 거, 아예 뻔뻔해지기로 했다.
“흐음, 근데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 뭘까요?”
“제가 화풍이 독특한 편이거든요.”
내 말에 MC도 살짝 어이가 없었는지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 화풍이요? 흐흐, 어떤 화풍이죠?”
“입체파에 큐비즘을 접목시킨 초현실주의라고나 할까요.”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시늉까지 하며 덧붙였다.
봤나, 내 일필휘지. 아 이건 그림이 아닌가.
“그 점 감안하시고 SNS에 티켓 사진을 올리시면 제가 직접 추첨을 해서, 또 직접 모셔서, 그림을 그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채팅창을 확인한 MC가 숨넘어가라 웃었다.
“댓글 반응이 아주 뜨거운데요?”
—입체파에 큐비즘을 접목시킨 초현실주의ㅋㅋㅋㅋㅋ 그거 그냥 낙서란 소리죠?
—뻔뻔하게 말하는 거 왜 이렇게 웃김 ㅋㅋㅋ
—평소에 얌전히 있다가 갑자기 급발진 하는 거 내 개인적인 입덕 포인트ㅋㅋ
—그 와중에 웃참하는 것까지 완벽.
—얼른 응모해야겠다. 가만 영화 본 티켓이 어딨더라··· 아, 또 보면 되는구나!
—안 되겠다, 백 화백 화풍이 너무 궁금함. 제발 천만 달성되라.
—천만 돌파 가즈아! 백 화백 가즈아!
—지금 관객이 점점 더 늘고 있으니까 정말 가능할 것도 같음. 감독이 배우랑 싸운다거나, 배우가 무대 인사는 안 하고 해외에서 SNS 하는 이상한 짓만 안 하면.
—ㅋㅋㅋ 그러면 ‘연고’ 발라드려야겠네.
채팅창에 글들이 엄청나게 올라온다. 심지어 채팅창만이 아니라 포털 사이트에도 벌써 기사가 올라왔다.
[‘눈속임’ 천만 공약, 백승결이 직접 선정해 초상화를 그려준다!>“이야, 기자님들도 지금 저희 방송을 계속 챙겨보고 계시는가 봐요.”
“······.”
초상화 아니야. 그렇게 거창하게 부르지 마.
—급 말 없어진다ㅋㅋㅋ
—일이 커지쥬?
—백 화백 힘내요!
—기대할게요~!
—야 우냐?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가 끝나긴 했다.
기가 쪽 빨린 시간이었다.
집에 가서 얼른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내가 판 무덤이 가만두질 않는다.
‘그림 연습이 시급한데······.’
귀가하자마자 곧바로 동네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다행히 학원 선생은 퇴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저도 그 방송 라이브로 보고 있었거든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비장하게 번뜩였다.
“동네 미술학원의 명예를 걸고 가르쳐드리죠. 인물화.”
#
하람의 홍보팀 고참 직원이 30분 전부터 일에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퇴근을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계속 시간을 확인하며 초조해하던 그가 마침내 핸드폰을 집어든다.
“지금쯤 집계됐겠네.”
이에 나머지 직원들 모두가 그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마치 의식처럼 요 며칠 이 시간을 기다린 그들이었다.
폭탄 심지에 불이 붙은 듯, 긴장감이 팽팽해졌고.
비장한 표정들에선 전운마저 맴돌았다.
“제발! 제발!”
두 손을 모은 직원들을 보며 고참 직원이 배급사에 전화를 건다.
이윽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는지, 인사를 시작으로 그가 본론을 꺼냈다.
“네, 여보세요. 네 실장님. 저희 오늘 오전 집계 결과 좀 알고 싶어서요. 네, 네. 아··· 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일일관객수에 오늘은 또 얼마나 올랐을까 하고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정말 천만 가는 거 아니야? 이 소리가 며칠째 그들의 밈이었다.
그때 전화를 마친 고참 직원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직원들을 훑었다.
거의 동시에 홍보팀장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오늘은 몇만이야? 15만? 17만?”
그러나 흥분한 것에 비해 대답은 시원찮았다.
“10만······.”
“에게? 갑자기 왜 그렇게 줄었지?”
물론 10만도 그다지 나쁜 숫자는 아니었지만, 천만 돌파를 바라는 그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성적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기 전까진 그랬다.
“1010만.”
“음?”
“이미··· 어후, 말이 안 나오네.”
넋이 나가다 못해 날아가 버린 고참 직원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나니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대단한 순간인지 상기했고.
그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홍보팀 동료들을 향해 버럭 외쳤다.
“이미 천만 넘었다고요!”
#
······핸드폰을 내려놓고서.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불 꺼진 티비를 바라보았다.
이불 속에 파묻힌 핸드폰은 지이잉 지이잉 요란을 떨었다.
축하 메시지가 밀려들고 있을 터.
‘눈속임이 천만을 넘겼으니까.’
그래, 이 사실이 방금 내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그래서 지금은 답장을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축하를 받으며 정신없이 보내기보단,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정말 코앞이다.’
영화 ‘해별이네’의 성적, 1027만까지.
내가 시상식에서 말했던, 그 목표까지 이제 고작 17만이 남았을 뿐이다.
지금대로라면 내일 그 기록이 깨지겠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단지 숫자일 뿐인데,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해별이로 기억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목표를 이룬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어쩌면, 그 전부터 내 첫 번째 목표는 이미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서귀호···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인 최우진부터였을지도 모르지.
어느 샌가부터 나를 해별이라 부르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주백기 감독처럼 일부러가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믿을 명확한 기준이 필요했고, 천만을 목표로 잡았다.
정확히는 1027만.
그 숫자가······.
“됐다. 승결아. 1035만.”
비로소 깨졌다.
천만을 넘으면서 누구든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
하지만 예상보다 기분이 좋았다.
정말 이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걸까.
김성운이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제 다음 목표는? 할리우드?”
그의 말이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악의 링’ 이후에 할리우드 영화 대본이 심심치 않게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은 그렇게 적극적인 어필이 오는 것도 아니거니와, 이방인이 맡아야 할 아주 전형적인 역할들이었기에 전부 거절했지만.
“글쎄요.”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슬쩍 묻는다.
“아직 안 정해졌으면, 무작정 일을 이어가기보단 잠시 쉬어가는 건 어때?”
“쉬어가요?”
“이참에 휴가 좀 다녀오는 거지.”
···휴가?
그날이 퍽 낯설었다.
그래, 나 한 번도 안 쉬었지.
살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문득 인쇄소 아저씨들이 하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남들 다 쉬는 휴일에 나와서 일을 할 때면, 그분들이 택배 박스를 함께 차에 실어주며 이렇게 말했지.
이게 다 팔자라고.
그리고 팔자에 대한 심오한 강의를 설파했었다.
‘자 이 팔자의 팔이 뭐냐. 바로 숫자 8이야. 그리고 이걸 이렇게 눕히잖아? 그럼 이게 뭐겠어. 봐봐, 무한이라는 뜻이야. 끝이 없다. 끝없이 일한다. 이게 우리 팔자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안 되겠다. 내 팔자를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다.
휴가 가자. 여행도 가자.
‘악의 링’ 배우들이 말했던 것처럼 나도 해외 나가서 푹 쉬다가 돌아오자.
‘그래도 대본 정도는 챙길까···?’
캐리어가 몇 킬로까지 추가 요금이 없지?
한 2, 30개 정도로 추려서 가지고 갈까?
이메일로 들어오는 건 타블렛 하나 사서 들고 다니면 될 것 같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휴양지에 늘어지듯 누워 음료를 마시며 대본을 넘기는 내 모습이.
‘생각만 해도 좋은데?’
그런 행복회로를 돌리며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며칠 후 김성운이 퍽 난감한 얼굴로 다가왔다. 근데 왜 입꼬린 씰룩거리지.
“그··· 미안한데, 휴가를 좀 미룰 수 있을까?”
“왜요?”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어쩐지 예능 촬영이 잡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엄습해서.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CF가 들어왔어.”
물론, 다행도 아니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