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4)
84화 공약 (1)
‘해별이네’가 모두의 예상을 엎고서 대박이 나고.
꽤 많은 광고를 찍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짧은 시간, 큰돈을 벌 수 있는 광고 촬영은 아버지에게 새로운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을 터.
아동복부터, 아이스크림, 교육 광고까지······.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광고를 찍었다.
사실상 영화로 받은 수익보다 그런 광고 촬영으로 얻은 출연료가 훨씬 컸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그럼에도 그 시간이 고통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지.
광고 촬영 또한 내게 영화촬영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안에서 다른 사람, 다른 상황을 연기하는 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엄마한테 ‘작은 영화’ 찍으러 간다고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즐겼었다.
초반엔 그랬다.
아버지가 변하고, 연기를 그만해야겠다 생각한 이후부턴 그것마저 엉망으로 했지만.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김성운에게 물었다.
“어떤 광고인데요?”
사실 이번이 복귀 후 처음으로 들어온 CF는 아니었다.
‘악의 링’이 대박 나고서 몇몇 광고가 들어오긴 했었다.
그중엔 회사 입장에선 탐날 수밖에 없는 주류 광고도 있었지.
물론 주류 광고의 끝판왕인 소주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거절했다. 그쪽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단 말이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 마시는 연기는 할 수 있지만, 술을 맛있게 먹는 연기를······ 내가?
그랬던 기억 때문에 이어지는 김성운의 대답에 조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이번에 들어온 CF가.
“모바일 게임.”
······이었으니까.
#
“대박이네!”
모처럼 집으로 놀러 온 현태 형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도 과거 예능 PD였고, 영상을 업으로 하고 있다 보니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바일 게임. 심지어 지상파 CF면, 내가 알기론 광고들 중에서도 페이가 가장 센 편이잖아?”
“확실히 그렇긴 하더라고.”
그쪽에서 제안한 금액은 3억.
여기서 김성운은 5천 정도 더 올릴 생각인 것 같았다.
내가 악의 링으로 받은 출연료가 회당 2천이었는데, 아무리 그 후에 눈속임으로 천만 배우가 되었다지만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금액까지 들은 현태 형이 기함을 토한다.
“해야지. 해야지.”
그런 그를 보며 내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내가 게임을 해보질 않았으니 뭐.”
“게임은 술이랑 다르지. 아직 오픈도 안 했다며. 개발진이 아닌 이상 아무도 안 해본 건 전부 마찬가지잖아.”
“그건 또 그렇지.”
“그래서 어떡하기로 한 건데?”
안달이 난 현태 형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기로 했어.”
“오, 웬일이래.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뭐 이런 건가?”
“그건 아니고, ‘눈속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이태관 선배님뿐만 아니라 팀장님과 회사에도 고마운 마음이 있었거든. 이걸로 회사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러자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며 반박하는 현태 형.
“광고 찍는 건 좋은데, 그런 생각은 갖지 마. 그 영화가 천만 돌파한 거로 도움은 차고 넘치게 했지. 솔직히 너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놀기만 해도 될걸?”
설령 그렇다 해도, 그 당시 회사 입장에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잘 됐지, 뭐.
곧 콘티를 가져다주기로 했다는 얘길 끝으로 CF에 대한 얘길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아 그건 그렇고. 공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홍보팀에서 준비 중이야. 내가 놀랄 정도로 열심히.”
그래서 부담이 점점 더 커지는 중이지.
틈틈이 학원에 가서 열심히 준비 중이긴 한데···.
“아, 근데 네 공약 말이야······.”
말끝을 늘린 현태 형이 어쩐지 눈을 반짝이며 덧붙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컨텐츠가 너무 좋단 말이지. 잠깐 하고 버리기에 아까워.”
“응?”
“이번 아이디어가 ‘눈속임’에서 나온 거잖아. 미술이 주제니까. 네 역할이 화가였고.”
“그래서?”
반문하자 그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백승결이 알려주는 연기교실’”
“···.”
“백승결이 알려주는 한국사.”
“···.”
“백승결이 알려주는 법률······ 이건 좀 이상하네. 아무튼, 그 다음엔 백승결과 스파링하기. 그리고 백승결이 그려주는 그림. 크으, 좋다. 완전 뮤튭각이라니까?”
무슨 얘길 하나 했더니 내가 맡았던 캐릭터와 관련된 컨텐츠를 뽑아내고 있었다.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자 현태 형이 웃는다.
“흐흐, 직원들이 나보고 그러더라. 뮤튭각에 미친 괴물이라고.”
“확실히 그런 면이 있지. 그렇게 나도 출연시켰고.”
“야, 그건 그때 정말 상황이···!”
해명 타임이 시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갑자기 드는 의문에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 뮤미괴인가?”
“응?”
“아냐? 이런 식으로 줄이던데?”
멍하니 날 바라보던 현태 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요즘 뭘 배우고 다니는 거야?”
#
이른 아침, 동네 미술학원.
이젤 앞에 선 여자가 팔짱을 꼈다.
“와······.”
벌써 5년째 이곳에서 학원생들을 가르친 그녀가, 학원생이 그린 그림에 놀라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원생이 5~12세에 국한되어 있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이란 황당하면서도 박수를 치게 되는 면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그림의 주인공이 20대 중반의 배우라는 점에서 평소와 달랐다.
‘그리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이 정도면 인물화에 관해선 거의 실기생 수준은 되는 거 같은데?’
학원 선생 본인의 얼굴이 판박이처럼 그려져 있었다.
결국 눈앞에 있는 팬을 그려야 하기에 이걸 목표로 계속 연습하긴 했지만······.
“이게 진짜 가능할 줄이야.”
그녀가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뭐가 가능해요?”
“까, 깜짝이야. 너 언제 왔니?”
학원생이 노란 가방을 메고서 총총 다가왔다.
“방금요. 쌤이 뭐 보고 있길래 살금살금~.”
도둑 흉내를 내며 다가온 아이가 그녀 앞에 있는 그림을 보곤 물었다.
“근데 이거 선생님이 그렸어요? 선생님이랑 완전 똑같아요! 거울인 줄.”
“이거 선생님이 그린 거 아냐. 그때 네가 아저씨라 불렀던 분 기억나?”
“아아. 그 맨날 모자 일케 쓰고 오는?”
손바닥으로 챙 모양을 만들어 깊게 눌러쓴 것을 표현하는 아이.
학원 선생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분이 그린 거야.”
“에에에? 이상하다? 그 아저씨 엄청 못 그렸었는데?”
“엄청 늘었지?”
파닥파닥 끄덕이는 녀석을 자리로 이끈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열심히 그려보자. 그분처럼 열심히 그리면 저렇게 늘 수 있어. 알겠지?”
“네!”
아이의 대답은 당찼다.
하지만···.
“으어어~하기 싫어~.”
집중력이 5분을 못 가는구나.
학원 선생은 다른 의미로 놀라며 힘겨운 수업을 이어나갔다.
아이가 태권도 학원을 가며 비로소 얻게 된 쉬는 시간.
다시 그림이 눈에 걸린 그녀가 흐뭇하게 웃었다.
비록 물감이 쓰이지 않은 소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는 성취였다.
미술적 재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말도 안 되는 집중력과 노력.
그리고 자세나 표정을 정확히 기억하는 눈썰미와 한 번 알려준 건 결코 잊지 않는 기억력.
그 결과 미적 감각은 부족해도, 보고 그대로 그리는 거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빠르게 늘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한다.
오늘이 공약을 이행하는 날이라고 했으니, 혹시 그림을 올린 사람이 있나 싶어서.
아직은 없었다. 하지만 백승결 배우가 그린 초상화가 올라올 터.
그러면······.
“다들 무지 놀라겠네.”
#
“SNS 아이디 확인하겠습니다.”
“sd20f요.”
“확인했습니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백승결을 만나러 들어가는 팬.
품에는 흔히 조공이라 하는 선물들이 한가득이었다.
그 사뿐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대행사 진행 요원 중 한 명이 혀를 내둘렀다.
“무슨 행사를 7시간이나 한데요?”
이에 옆에서 명단을 확인하는 선배 요원이 12팀이나 되는 명단을 쭉 훑으며 말했다.
“말도 마. 이것도 더 많은 팬들 그려주고 싶다고 이틀 한다는 거 스케줄 때문에 하루로 줄인 거래.”
“공약 한 번 제대로 하네요. 보통은 가볍게 장난처럼 하던데. 앉아서 어떻게 7시간 동안 그리지?”
대단하다며 고개를 흔들던 진행 요원이 말을 잇는다.
“하긴, 백승결도 백승결인데, 팬들은 더 대단한 것 같아요. 부산 사는 친구는 이거 응모하겠다고 일주일 동안 영화를 일곱 번 봤더라고요. 그림 하나 받겠다고.”
“그림이 대수겠어? 여기에 그림 때문에 온 사람이 어딨겠냐. 다들 백승결이랑 잠깐 보는 것 때문에 오는 거지.”
“그래도 백승결 그림이면 나중에 막 경매 붙여도 돈 꽤나 받지 않을까요?”
“자기 얼굴도 아닌 그림을 누가 사?”
“아···?”
그림이 팬의 얼굴이라는 걸 상기한 그가 멋쩍게 웃는다.
“백승결이 굳이 다른 게 아니라 얼굴 그려주는 공약을 건 것도 그런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더라고. 따로 거래될까 봐. 그래서 속 깊다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뭐, 본인 그림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런 걱정까지 하냐며 비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림까지 잘 그리면 진짜 반칙이긴 하죠.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데, 머리까지 엄청 좋잖아요.”
“머리가 좋아?”
“룸6 못 보셨어요? 거기서 천재라고 난리였는데. 영어도 잘하고. 게다가 운동도 잘한대요. 세계챔피언이 인정한 남자! 거기에 그림까지 잘 그린다? 그건 사기죠, 사기.”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쏟아내는 진행 요원에게 선배 요원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야, 그런 거 다 회사가 뒷작업한 이미지 메이킹이야. 회사가 그런 거에 돈을 얼마나 많이 쓰는데.”
“그런가···. 근데 백승결은 진짜였던 것 같은데. 오히려 시청자들이 안 믿을까 봐 뺀 장면도 있다고, 진짜 천재라고 제작진이 직접 그러더라고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 잘난 걸 왜 숨기겠어. 다 그냥 하는 말이지. 아직도 티비에 나오는 곧이곧대로 믿냐.”
백승결의 능력(?)을 오히려 숨기고 있는 하람의 홍보팀이 들었으면 속 뒤집어졌을 이야기들을 두 사람이 주고받는 사이.
다음 팀이 도착했다.
이번엔 젊은 여자 셋이었다.
한 명은 직접 만든 듯한(—퀄리티가 별로다) 피켓을 손에 들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앞 사람처럼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SNS 아이디 확인하게습···.”
끼익—.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앞에 들어간 팬이 나왔다.
그녀는 잔뜩 들고 온 선물 대신 커다란 봉투에 넣은 캔버스를 품에 안고 있었다.
어쩐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이에 확인을 마친 선배 요원이 속삭였다.
“표정이 왜 저래?”
“그러게요. 들어갈 땐 엄청 행복한 표정이었는데, 오히려 왜 만나고 나와서 저렇게 벙쪘지?”
“그림이 그렇게 별로였나···.”
“에이, 그림이 대수겠냐면서요.”
“정말 건성 건성 졸라맨으로 그려줬어 봐. 그건 좀 기분 나쁘지. 선물도 그렇게 많이 사 왔는데.”
그때 방금 도착한 세 명의 여자가 나오는 팬을 보더니 넉살 좋게 묻는다.
“끝나셨어요? 얼마나 걸리셨어요?”
처음 보는 사이여도 여기에 왔다는 것 자체가 백승결 팬이라는 뜻.
그 사실이 서로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 네. 한 30분쯤 걸린 것 같아요.”
“오, 생각보다 엄청 길잖아?”
“대박이네. 개이득!”
한껏 신나하는 세 사람. 그중 피켓을 들고 있던 여자가 팬의 품에 들린 봉투를 보며 눈을 빛냈다.
“입체파에 큐비즘을 접목시킨 초현실주의 화풍은 어떠셨어요? 정말 낙서예요? 코가 막 미간에 붙어있고?”
장난스레 묻는 말에 픽 하고 웃은 팬이 자신 품속에 있는 봉투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올리며 고갤 흔들었다.
“완전 진륭 됐어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 목소리에 팬이 헛웃음을 머금으며 덧붙인다.
“우리도 진기원한테 속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