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6)
86화 하나의 재능이 모든 걸 관통하는 (1)
백승결 매니저와의 미팅을 앞두고, 위드모어 이 팀장은 담당 직원을 불렀다.
전투를 앞두고 적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처럼, 매니저의 성향이나 태도 같은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직원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성격은 꽤 나이스해요. 근데 의외로 단순 로드는 아니더라고요. 직급이 팀장이었어요.”
“팀장인데 성격이 나이스해? 그거 나이스한 뭔새끼일 확률이 높은데?”
이 팀장도 광고 업계에서 구를 대로 구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팀장급 매니저들이 얼마나 한 성격 하는 사람들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매니저가, 심지어 하람 정도 되는 소속사의 팀장급 매니저가 성격이 괜찮다?
이건 오히려 께름칙하다.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오늘.”
오늘은 백승결 없이 매니저와 단둘이 갖는 미팅이었다. 그리고 이건 간 보기에 가까웠다.
서로의 패를 보이고 조율하며 이거 메이드할만 하겠다, 아니겠다를 눈치 보는 자리.
기획서와 콘티를 챙긴 이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다녀올게. 게임사에서 전화 오면 백승결 섭외하러 갔다고 일하는 티 좀 내고.”
“넵.”
당부를 마친 그가 겉옷과 가방을 챙기다 말고 멈춰선다.
그리고 사뭇 심각해진 표정으로 직원에게 물었다.
“광고주가 백승결 팬이란 얘기, 그쪽 매니저한테 안 했지?”
“에이, 당연하죠. 그거 알면 몸값 올리려 들 텐데.”
“잘했네, 잘했어.”
마지막 점검까지 단단히 매듭지은 이 팀장이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의 목표는 백승결의 출연료를 애당초 제시한 3억 선에서 메이드하는 것.
분명 그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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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성운이 일찌감치 외근을 나와 백승결 집에 들렀다.
맛동산과 우유를 양손에 가득 사 들고서.
“어쩐 일이세요?”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 이거 받아.”
“뭘 또 이런걸. 감사합니다.”
넙죽 받아드는 백승결을 보며 피식 웃은 그가 방문 틈으로 보이는 캔버스를 보고 말꼬릴 올렸다.
“그새 그림을 그렸어?”
백승결이 공약 행사가 끝나고 캔버스를 가져왔다는 건 데려다준 김성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거기에 무언가를 그렸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엄청 잘 그린 것 같은데?
“가져온 날, 바로 그렸어요.”
“공약했던 날? 그때 엄청 피곤해했잖아. 갑자기 영감이 막 솟구치기라도 한 거야, 백 화백?”
그의 말에 가볍게 웃은 백승결이 방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게요. 갑자기 엄마가 그리고 싶어져서요.”
“엇, 어머니···셨구나. 미안하다.”
김성운이 얼른 사과하자, 미안할 일이 아니라며 웃는 백승결.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제가 엄마 사진이 몇 장 없거든요. 아버지 피해 도망쳐 나와서. 근데 그 몇 장 안 남은 걸 납골당에 못 놓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나 가져다 놓으려고 그려봤어요. 한 번 보실래요?”
“그래, 인사는 드려야지.”
부드럽게 웃은 김성운이 백승결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캔버스에 그려진 초상화를 본 그가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네가 어머니를 닮았구나?”
“최근 들었던 칭찬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네요.”
헤죽 웃는 백승결을 보며 김성운도 덩달아 웃었다.
“그나저나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이네. 이러다 나중에 개인전하겠다고 그러는 아냐?”
“개인전은 아무나 하나요. 근데 재밌어서 계속 그릴 것 같긴 해요. 승찬 씨가 왜 작품이 끝나면 그림을 그리는지 알겠더라고요.”
“왜 그리는데?”
“환기가 되더라고요.”
흥미로워하는 김성운에게 백승결이 설명을 덧붙였다.
“작품 내내 몰입했던 역할이 촬영 끝났다고 스위치처럼 싹 사라지지 않잖아요. 내가 연기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림을 그리면 그런 게 좀 휘발되는 것 같아요. 캔버스로 옮겨간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일종의 리프레시 용도인 거죠. 운동처럼요.”
“이거 취미가 점점 느네. ‘악의 링’ 이후로 격투기도 꾸준히 하고 있고, 이제 그림까지? 이거 다음 작품 잘 정해야겠다. 낚시 이런 거 하면 큰일 나겠어.”
하루 종일 배 타러 다닐까 걱정이라며 고개를 내저은 그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몸을 돌렸다.
“나 가야겠다.”
“벌써 가세요?”
잠시 떠오른 아쉬움이.
“응, 오늘 네 CF 건으로 미팅이 있거든.”
“그럼 오늘 콘티 받겠네요?”
훅 사라졌다.
이젠 아예 얼른 가서 콘티 받아 오라고 등 떠미는 듯한 눈빛이었다.
허허 웃은 김성운이 끄덕였다.
“그래. 받자마자 가져다줄 테니까 그렇게 얼른 가라는 눈으로 보지마.”
“문 열어드릴까요?”
“나간다니까?”
그렇게 백승결 집을 나선 김성운이 곧장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 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상대는 벌써 와서 자신의 커피까지 시켜놓았다.
간단히 인사 후,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위드모어의 이 팀장이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들며 물었다.
“백승결 배우는 요즘도 운동 계속하나요? 도그페이스보니까 몸이 장난 아니던데.”
“말도 마세요.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체육관에서도 이제 프로들이랑 스파링을 한다니까요?”
“작품이 끝났는데도 계속하나 보군요?”
“재밌나 보더라고요. 하긴 운동 신경이 그렇게 좋으면 저라도 신나서 다닐 겁니다.”
“하긴, 세계챔피언이 인정한 실력이잖아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 팀장이 물꼬를 살짝 트자 김성운이 애 엄마처럼 자식 자랑을 해댔다.
김성운과 백승결 사이의 유대감을 대략적으로 확인한 이 팀장이 콘티를 펼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저희는 여기 나와 있다시피, 액션이 칼을 휘두르는 거라 걱정이네요. 당연히 전혀 운동을 안 한 배우보다 낫겠지만······. 심지어 대역을 못 쓰는 부분도 있거든요.”
백승결을 깎아내리진 않으려고 노력했다. 김성운의 반응을 보니 잘못 건드리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었던 거다.
다만 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액션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건 비지니스니까.
그리고 그건······.
“문제없을 겁니다. 격투기 드라마를 찍었다고 해서 액션스쿨에서 관련된 액션만 연습하진 않거든요. 와이어도 써보고, 사극 액션에서나 할 법한 동작이나 무기들도 다 잡아보죠. 근데 제가 이 업계에 있으면서 본 어떤 배우보다 습득이 빨랐어요. 평소 사극 액션을 주로 하는 배우들하고 붙여놔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김성운도 마찬가지였다.
“팀장님은 백승결 배우를 대단히 신뢰하시나 보네요.”
“제 경험을 신뢰했었죠.”
받아친 김성운이 덧붙였다.
“그보다 승결이의 능력을 신뢰하고요. 제가 가지고 있던 ‘재능’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준 친구거든요.”
“재능이요?”
그가 끄덕였다.
이는 단순히 기 싸움이 아닌 진심이었다.
하나의 재능이 모든 걸 관통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백승결을 보며 느끼는 김성운이었으니까.
이후로도 줄다리기처럼 팽팽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언뜻 두 사람 모두 어떻게 해야 광고를 잘 찍을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이러이러해서 백승결이 적당한 출연료를 받아야 한다, 이러하니 백승결이 더 높은 출연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중이었다.
그때 안 되겠다 싶었던 김성운이 이 팀장의 균형을 빼앗기 위해 줄을 당기는 것을 그만두고 성큼 나아갔다.
선수를 친 거다.
“그러면 이제 말씀하셨던 출연료 부분에 대해서 얘길 좀 해볼까요.”
이 팀장이 당황하기 시작한 건, 여기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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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셨어요?”
“예상했던 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넥타이를 풀며 위드모어의 회의실로 들어온 이 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이스한 뭔새끼가 아니라 그냥 무서운 새끼였어.”
그가 도착하면 회의를 이어가기 위해 대기 중이던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람 팀장인데 만만하면 그게 이상하죠. 거기 CF로 연에 수십억씩 버는 배우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래서 대형기획사가 어렵다.
물론 하람이 대형기획사라고 보긴 어렵지만, 배우들 자체가 몸집이 큼직큼직하잖나. 웬만한 대형기획사보다도 더.
“그래서, 얼마나 올려달래요?”
“그게 문제다. 얘길 안 해. 본인이 출연료 얘기를 선빵으로 날려놓고 끝끝내 얼마를 원하는지 안 밝히더라. 한계를 안 정해놓겠다는 거지.”
돈 얘길 꺼내놓고, 정작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는 김성운 팀장을 떠올리며 이 팀장이 혀를 내둘렀다.
이에 직원들이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모바일 게임 단가가 많이 오르긴 했으니까요.”
“몇몇 톱스타들은 10억도 넘겼지.”
“심지어 이제 어엿한 천만 배우잖아요. 아역 때까지 합치면 쌍천만이고. ‘악의 링’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승승장구 중이지. 활동 시간이 짧다는 거 제외하고 이룬 것만 놓고 보면, 이미 어느 정도 톱배우 반열에 오르긴 했죠.”
직원들의 냉정한 평가에 이 팀장이 눈을 흘겼다.
“너네 누구 편이야?”
“그러니, 돈을 짜게 준 광고주가 잘못됐다는 거죠.”
“그건······ 맞지.”
이 팀장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돈 덜 주고 싶은 게 당연한 것처럼, 더 받고 싶은 것도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럼 어쩌죠? 저흰 시간이 없는데.”
“백승결 매니저도 그걸 노렸겠지. 2차 미팅까지 가는 순간 우리한텐 선택지가 없어지니까.”
거기까지 말한 이 팀장이 머릴 벅벅 긁으며 억울해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백승결이 캐스팅 1순위라는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배짱이지?”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CF다.
촬영 현장에서도 캐스팅을 갈아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인.
“광고주가 따로 연락했었나?”
“어, 그랬나?”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광고주인 게임사에 전화해서 당신들이 말했어요? 하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장난이 아니다. 김성운 팀장.
“그럼 어쩌죠? 아예 광고주 쪽에 돈 더 달라고 요청해볼까요?”
직원의 제안에 이 팀장은 대답 대신 고민을 이어갔다.
돈 더 달라는 광고 회사를 좋아하는 광고주는 없다.
설령 본인들이 빡빡하게 요구를 했더라도 말이다.
이 팀장이 고개를 흔들며 직원들을 훑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꼭 백승결이어야할까?”
“네?”
“좀 더 출연료를 낮출만한 배우를 찾으면 여러모로 편해지잖아? CG에도 힘을 더 실을 수 있고. 광고주가 아무리 백승결 팬이어도 100억 들어간 게임의 광고를 망치는 건 원치 않을 거 아냐.”
“그렇긴 하죠.”
“그럼 광고주를 설득하는 방법도 있는 거지.”
“근데, 무슨 수로 설득하죠?”
꼬리를 무는 질문에 그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무언가 번뜩였는지 눈을 크게 뜨며 한 직원에게 콕 찍어 묻는다.
무술감독 섭외를 맡긴 직원이었다.
“백승결이 콘티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명확해지면 광고주도 별수 없겠지. 김 대리, 무술감독은 어떻게 됐어?”
“이왕이면 ‘악의 링’ 담당했던 곳이 좋을 것 같아서 그쪽으로 했어요. 거기가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기도 하고요.”
“오히려 좋다. 백승결을 맡아봤으니 잘 알 거 아냐. 이 콘티가 백승결한테 가능한지 아닌지.”
“오, 그렇겠네요. 보자··· 콘티 보낸 거 읽음으로 바뀌긴 했는데 아직 답신은 안 왔어요.”
“그쪽은 기다리면 천년만년이야. 우리가 연락해야 돼. 얼른 전화 해봐, 지금 당장.”
직원이 얼른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얼마 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감독님. 위드모어의 김 대리입니다.”
—아, 예. 안 그래도 연락 드리려고 했는데. 이거 콘티 다 확인했거든요?”
거보라는 듯 끄덕이는 이 팀장을 보며 직원이 답했다.
“아, 예.”
—근데, 이거··· 사람에도 CG 쓸 겁니까?
“아뇨, 최대한 액션은 날 것 그대로 하고 싶어서요.”
—흐음, 그러면 일단 동작을 몇 개 수정하긴 해야 돼요. 아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있어서. 근데 몇몇 동작은 비슷한 결로 오히려 더 화려하게도 가능합니다.
“그럼 저희야 좋죠.”
—문제는 마지막 롱테이크신인데······.
역시나.
모두가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이 콘티에서 가장 중요한 컷이라 꼭 살려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거 대역도 못 쓴다면서요?
“네. 아무래도 원테이크가 목표다 보니까.”
—눈속임으로 하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살짝살짝 끊는 거죠.
“흐음······.”
직원이 침음성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팀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이 스피커폰으로 이 얘길 들으며 각자 여러 생각들을 하는 중이었다.
—안 그러면 힘들어요. 심지어 전문 스턴트 배우도 아니고 배우가?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면서요. 이거 힘듭니다.
“역시 그런가요···.”
직원의 대답에 무술감독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근데 배우가 누군데요? 뭐 웬만해선 누구라도 힘들긴 한데, 뭐 장혁이라던가 액션 쪽에 경험이 많은 배우면 그나마······.
“경험은 많이 없는 배우예요.”
—에이, 그럼 힘듭니···.
“백승결 배우요.”
—······.
“감독님?”
갑자기 대답이 없어진 무술감독을 부르는 직원.
뒤이어 들려오는 무술감독의 목소리가 급 신중해지더니.
—그러면······.
힘들다고 확신하던 말투도 확 사그라들었다.
—될 거 같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