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9)
89화 하나의 재능이 모든 걸 관통하는 (4)
거대한 세트장에 ‘해전2’의 게임사 대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의 회동으로 세트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긴장감이 흘렀다.
특히 담당자인 이 팀장은 어느 샌가부터 얼굴이 새하얬다.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저 사람들의 회사에서 광고 의뢰가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러니 영업직이나 다름없는 우리의 대표도 바쁜 와중에 전활 걸어 당부를 거듭한 거지.
물론 오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저들 각자의 인맥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잠재 고객을 잃는 것인지 상상도 안 가니까.
‘정신 나갈 것 같네.’
이 팀장이 사색이 되어가는 사이, 조찬 모임의 멤버들은 세트장 구경이 한창이었다.
“겉에서 보면 공장 창고나 다름없는 컨테이너인데, 안에는 기깔나네.”
“저건 배인가? 갑판 부분만 진짜고 나머지는 합성을 하나 보네.”
“이거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잖아? 신기하네.”
전체가 녹색으로 칠해진 공간에 배를 반으로 쪼개놓은 모형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정교하게 제작된 기계장치가 움직여 두 모형이 충돌한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대단하구만. 저게 어떤 원리로 저렇게 움직이는 거지?”
“나이를 먹어도 이런 걸 보면 두근거린단 말이지.”
“그나저나, 백승결 배우가 이런 사극 쪽도 어울리나?”
이어지는 목소리에 게임사 대표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대원군’ 안 봤어? 거기서 고종 역할을 얼마나 잘 했는데. 그때 해전2를 한창 개발 중이었는데, 영화 보자마자 바로 생각했지. 해전2 CF는 저 배우한테 맡겨야겠다고.”
팬심이 담긴 썰이 풀어져 나오고, 그러다 흥이 올랐는지 게임사 대표가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대역도 아예 안 쓴다더라고.”
대역을 안 쓰긴 하는데, 누가 들으면 백승결이 ‘아, 전 제가 전부 직접 하겠습니다’라고 한 줄 알겠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콘티였잖나.
“그게 가능해?”
“배우가 가능하다잖아. 그리고 대역으로 점칠 할 거면 내가 오늘 자네들한테 놀러 오라고도 안 했지.”
“크으, 성룡이 그런 식으로 한다며. 대역 없이 위험한 것도 다 본인이 하고.”
“톰 크루즈도 그렇지. 헬기도 조종하고,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비행기 올라타고. 미쳤더만.”
기대감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뒤에서 얘길 듣는 이 팀장은 자신의 광고주, 게임사 대표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필이면 가장 어려운 롱테이크 씬이잖아.
원테이크로 가려면 작은 실수에도 몇 번이고 NG가 날 텐데.
그러면 CF에 대해 모르는 저 사람들은 분명, ‘뭐야, 생각보다 지루하네?’라며 팍 식을 거고.
그걸 본 게임사 대표는 민망함을 우리한테 돌리겠지.
밀려오는 걱정거리들에 이 팀장이 할 건 뒤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백승결과 배우들. 그리고 촬영을 담당하는 모든 스태프들이 딱딱 맞아떨어져 ‘오’ 할 만한 장면을 한순간이라도 만들어주길.
그 사이, 세트장이 분주해졌다.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에 서고, 백승결도 어디선가 나타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섰다.
그 옆으로 다가서는 카메라 한 대와 마지막으로 동선을 점검하는 무술감독.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모니터로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들.
마침내, 총감독의 신호가 떨어지며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마지막 남은 아군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 사이로 나타난 건 이미 홀로 십 수명을 베어 넘긴 장수.
그가 갑판 위에 널브러진 동료, 수하들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그들을 쫓는 눈빛이 슬픔에서 고통으로, 고통에서 분노로 치닫는 게 종이에 물감이 번지듯 드러났다.
그리고 들어 올려진 시선.
수많은 적들에게 완벽히 둘러싸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적의 배에서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적들이 여전히 이쪽으로 꾸역꾸역 넘어오고 있었다.
그 위, 첨탑같은 적 배의 높은 곳에서 오롯이 서 있는 적의 수장.
이 순간, 장수는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방향을 정했다.
그리고 한 발을 힘껏 내디뎠다.
쿵!
도약하는 그의 몸.
갑주가 쩔그럭 거리며 망토처럼 흩날렸다.
동시에 몸을 비틀어 회전하며 솟아오르는 도(刀)를 피하고, 내려앉으며 칼을 휘둘러 둘의 목숨을 앗았다.
잠시 움찔거리다가 곧바로 달려드는 적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적들의 무기를 피하며, 장수의 칼이 번뜩였다.
그럴 때마다 적들의 몸이 한 명씩 허물어졌다.
“후욱, 후욱···.”
그렇게 쉬지 않고 홀로 수십의 수급을 아군의 원한이 깃든 바닥으로 처박은 그가 돌연 향하던 방향과 반대되는 곳으로 눈을 옮긴다.
마음이 바뀌어 도망치려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반대쪽에도 갑판에 오른 적들로 가득하다.
대신 그는 그 너머로 보이는 짙은 안개와 희미한 그림자를 확인했다.
씨익.
피로 범벅이 된 장수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오르며.
그가 다시 움직였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놈의 가슴에 칼을 틀어박고 그대로 밀어내어 뒤따라오는 놈들의 균형을 무너트린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적들.
그렇게 만들어진 찰나의 경사를 도움닫기 삼아, 그가 높이 날아올랐다.
단숨에 적의 배까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적들이 장수에 배에 올라탔기에 막상 적의 배엔 몇 명이 없었다.
놀란 그들이 조총을 들어 올리며 장수를 노린다.
공중에 뜬 장수의 몸은 비로소 사정거리에 들어왔고, 더는 어느 쪽으로도 도망갈 수 없어 보였다.
“멍청한.”
적들의 입가에 승리를 확신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슈우우욱!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리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무언가 날아오고 있었다.
“포탄이다아···!”
뒤늦은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리며, 안개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포탄 하나.
그것은 적들의 배를 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장수의 배를 정확히 요격한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장수의 배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
동시에 장수 한 명을 죽이기 위해 꾸역 꾸역 올라타 있던 수많은 적들이 순식간에 전멸했다.
그 여파로 휘청거리는 적의 배.
균형을 잃은 총구들이 목표물을 놓치고, 그 틈을 타 적의 배에 승선한 장수가 환한 미소로 안개 속에서 드러나는 아군을 반겼다.
뒤이어 당황한 적들의 수장을 올려다보며 칼을 말아쥐었다.
“장군이 도착하시기 전에 네놈 목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다급히 다시 정렬하는 총구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쏘아지며.
“마, 막아라!”
적들의 수장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어디 행사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게임사 대표와 그의 지인들이 다가와 이런저런 얘길 건넸고, 그 덕에 꽤나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내는 칭찬이 오히려 대기실에서 쉬는 것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것 같았지.
“무슨 팬 사인회인 줄 알았네. 우리 배우 쉬어야 하는데 말이야.”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
흐뭇하게 웃는 김성운을 보며 머릴 긁적였다.
“그러신 분이 명함을 엄청 빠르게 돌리시던데.”
“···그러니까. 비지니스라는 게 이렇다? 몸 따로 마음 따로야.”
곧바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김성운. 이게 유부남의 처세술인가.
피식 웃으며 걸어간다. 그때 뒤쪽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위드모어 이 팀장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배우님! 배우님!”
“네?”
“아휴,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대표님들한테 잡혀 있느라. 하하.”
“전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긴 줄 알았네요.”
“문제 없죠.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두 번 만에 촬영이 끝났는데. 그것도 한 번만 찍어도 되는 거 세트장이 아까워서 한 번 더 찍은 거잖아요.”
잔뜩 들뜬 그가 말을 이어나간다.
“대표님들 반응도 너무 좋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광고를 만들 생각을 했냐고 아주 난립니다. 덕분에 저까지 칭찬을 받았네요.”
“덕분 맞잖아요. 팀장님이 만드신 광곤데.”
그러자 손을 휘적휘적 젓는 이 팀장.
“아닙니다. 이건 어떤 배우가 맡느냐가 가장 중요했는데, 백 배우님이 진짜 완벽하게 해주셨어요. 정말 최고였습니다.”
옅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광고 잘 뽑아주세요.”
“물론이죠.”
호기롭게 답한 그가 덧붙여 말했다.
“영혼을 갈아 넣을 겁니다. 광고에도 고티상이 있다면, 바로 이 광고가 선정될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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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가 뭐지?
이 팀장 앞에선 모르는 티를 내기가 뭐해서 그냥 끄덕거렸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며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일명, Game of the Year.
즉 ‘올해의 게임’의 줄임말이었다.
게임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네.
끄덕거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신조어를 배우는 중년의 마음이 이럴까. 어쨌든, 또 하나 배웠네.
그때 운전을 하던 김성운이 다시 생각해도 감탄스러운지 헛웃음을 흘린다.
“광고주랑 이 팀장이 그러는 것도 이해가 가. 나도 밑에서 보는데 진짜 놀랍긴 하더라. 분명 뒷배경은 크로마킨데, 그냥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니까.”
“세트장이 영화 뺨치긴 하더라고요.”
“큰 돈을 한 장면에 몰빵하니까. 세트장이 퀄리티 있을 수밖에 없지. 그 와중에 진짜 대단한 건 너였어. 충분히 멋진 장면을 보여줄 거라고 믿긴 했지만, 그럼에도 또 놀랐다. 네 재능에.”
훅 들어오는 칭찬에 씩 웃으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액션도 재밌긴 해요. 대역을 안 쓰니까 생기는 매력도 있고요.”
“어떤?”
“기억력이 좋다 보니까 영화에서 보면 제가 찍지 않은 씬들이 눈에 계속 걸리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제가 직접 다 했으니 그럴 걱정은 없겠더라고요.”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광고니까 가능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서서히 대역의 빈도를 줄여나갈 생각도 있었다.
누구말마따나 톰 크루즈처럼 말이다.
‘그 배우처럼 헬기를 조종한다거나, 이런 건 꽤 쉬울 것 같은데······.’
결국, 그런 건 전부 기억력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니까.
헬기 조종사들이 들었으면 퍽 황당해했을 생각들을 하면서 웃었다.
그때 김성운이 고민한다.
“다음 작품은 사극 액션을 찾아봐야 하나. 연습한 게 아깝잖아.”
“괜찮아요. 계속 기억할 거라.”
내 기억력은 머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으니까.
오늘 했던 동작들을 앞으로 절대 잊지 않을 터.
내 말이 그냥 빈말이 아니란 걸 아는 김성운이 황당한 눈으로 날 본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린다.
“정말 하나의 재능이 모든 걸 관통하네.”
그 민망한 말의 출처도 홍보팀이냐고 물어보려는데, 김성운이 먼저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생각은 해봤어?”
다짜고짜 들어온 질문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
그러자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집 옮기는 거 말이야. 생각 해봤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