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차기작의 행선지 (5)
[업로드 중···]이른 아침. 가벼운 바람막이를 걸치고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SNS에 사진 하나를 올리는 중이었다.
이윽고 화면이 점멸하며 새로운 게시물이 등록되었다.
파이널 컷(—편집 프로그램)에 수많은 영상 소스들이 잘라져 이리저리 기워진 사진이었다.
밑에는 화이팅한다고 적었다가 잘 부탁한다고 고쳤다가 그냥 엄지 척하는 이모티콘 하나 넣었다.
현태 형이 섭섭해할까 봐 그의 SNS 계정을까지 태그를 걸었다.
······기계치에겐 몹시 긴 여정이었지.
어쨌든, 뮤튜브 촬영을 암시하는 사진을 올리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내가 개인 뮤튜브 촬영을 하길 바랐던 이들이 그동안 엄청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이거 개인 뮤튜브 촬영 맞죠? 태그된 계정 보니까 근황 마라톤 PD인 거 같은데, 근황 마라톤 또 출연한 거 아니죠?
—근황 마라톤은 아니지. 백승결 근황 모르는 사람이 요즘 어딨다고. 태그에도 샌프란시스코에 브이로그라고까지 걸려있잖아.
—백승결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예능 촬영했다는 기사 있었는데, 그게 이거였나 보네!
—기자들 진위 확인 안 하고 기사 싸는 거 하루 이틀이냐. 팩트 체크 좀 하자. 지난 번엔 유재식이 집이 여러 개니 이런 소리 하더니.
—그래서 업로드는 언제죠? 최초공개일 알려주시면 알람 맞춰놓겠습니다.
—이봐, 이봐. 이러니 내가 뮤튜브 결제를 어떻게 끊어······.
—너무 기대된다. 백승결의 샌프란시스코 브이로그라니!
텍스트로 가득 찬 핸드폰 화면이 시끄러웠다.
그만큼 많은 댓글을 달고, DM을 보내오고, 좋아요를 눌렀다.
잔뜩 기대하는 게 화면 밖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쩝. 잘한 선택인진 모르겠지만, 좋아해 주니 다행이네.’
나도 기대 반, 걱정 반이다.
현태 형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결정했던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내가 보고 싶어서 시작한 영상인데 막상 보다가 오글거려서 덮어버릴지도······.
그런 생각들을 하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산책을 나섰다.
널찍해진 집 안에서도 이사하길 잘했다는 보람을 느끼지만, 밖으로 나오면 그게 배는 뛴다.
이전 동네가 별로였다는 건 아니다. 항상 뛰어다니던 코스에 공원까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늘 자전거와 차들이 혼재되어 있는 골목들을 지나야 했지. 공원도 관리가 잘 되는 편은 아니었고.
그런데 여긴 크고 작은 전원주택들을 이정표 삼아 달리면 어느새 완만한 언덕길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강변북로와 한강이 펼쳐졌다.
“경치 좋네.”
아기자기한 전원주택들과 넓은 도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그 너머에 보이는 고층빌딩 숲.
절묘한 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다가 터덜터덜 내려간다.
그때 찌르르한 감각에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이강현의 전화였다.
—형 오랜만이에요!
“······.”
—형?
“어제도 통화한 애가 오랜만이라고 하니 내가 어젠 누구랑 그 긴 대화를 했나 싶어서.”
갑자기 전화가 왔고, 드물게 울적한 목소리에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고민을 와르르 쏟아냈었지.
주말연속극을 통해 아주머니들의 황태자가 되었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는 연기가 그쪽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배우의 한탄이었달까.
이윽고 해맑은 웃음소리가 넘어온다.
—에이, 어제랑 오늘은 다르죠.
“그래서 어제의 너랑 오늘의 너도 다른 애인 거야? 목소리가 밝아졌네?”
—흠흠, 어젠 제가 신세 많이 졌습니다. 와인 한잔했더니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연기에 대한 고민을 약간, 아주 조금 털어놓았지요.
“전화 끊고보니 두 시간했던데, 통화.”
—하하핫······ 미안해요. 제 주변에 맘 터놓고 그런 얘기할 사람이 형뿐이라.
너무 굳어져 버린 이미지를 벗어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였다고.
친하기도 친하지만, 이미지 탈피는 내가 먼저 했던 고민이었으니까.
게다가 시상식에선 해별이를 넘겠다는 소리까지 했었으니 적임자긴 했으리라.
“그건 고맙네. 내 생각이 누구한테 도움 될 것 같지가 않아서 걱정했거든.”
심지어 어떤 작품을 차기작으로 해야 할까, 나조차도 고민으로 복잡한 상황이었지.
—엄청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마음 잘 추슬렀다면 다행이다. 괜찮아진 거 알려주려고 전화한 거야?”
—아, 그건 아녜요.
“그럼?”
—서은영 작가님이요. 작업실 구하셨대요.
“오? 그건 흥미롭다.”
방송국이 회사 같아서 글이 잘 써진다던 사람이?
—그죠? 그래서 집들이 갈까 하는데 형은 언제 시간 되나 싶어서요.
“나? 스케줄 한 번 확인해볼게. 별 게 없긴 한데······근데 누구누구 가는데?”
—최지연이랑 작가님 동료 작가분들도 오신대요.
“너는 언제가 편한데?”
—모레 어때요?
“그날 되겠다.”
—오, 그럼 형도 같이 가는 걸로. 어디서 만날래요? 제가 일일 운전기사 해드리겠습니다~.”
“나야 좋지. 그럼 너희 집 앞에서 보자.”
장소를 정하자 이강현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이 저희 집을 어떻게 알아요?
“대리 불러준 적 있었잖아. 왜 그래.”
—그걸 기억해요? 2년도 더 지난 일을? 아니, 그보다 형한테 너무 멀잖아요?
“아··· 내가 얘기 안 했구나? 나 이사했어. 저 대리석 마감된 주택이 너네 집 아닌가?”
이윽고 드르륵 하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며 내가 말한 주택 창문으로 이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도 날 봤는지 묻는다.
—···뭐, 뭐예요?
“이사 왔어. 난 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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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로 삐졌다고?”
뒷좌석에 탄 최지연이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핸들을 잡은 이강현이 억울해했다.
“생각을 해봐라. 이웃인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한 번을 연락을 안 할 수 있지?”
“그치. 그건 좀 심하긴 했지.”
조수석에서 잠자코 듣다가 말했다.
“미국 다녀왔어. 그리고 생각이 많아서 좀 조용히 있고 싶었고. 근데 이사 온 거 알았어봐. 나보고 집으로 오라고 했을 걸?”
“아녜요.”
“진짜 아냐?”
“제가 갔죠.”
이강현의 대답에 최지연이 소름끼쳐한다.
“어우, 그럼 나 선배편.”
그녀의 태세전환에 이강현이 징징거렸다.
“그나저나 차가 좋네.”
“그쵸? 크으, 역시 형은 뭘 좀 알아.”
칭찬 한 번에 금세 돌아왔지만.
“형은 차 뽑을 생각 없어요?”
“아직은.”
“선배도 혹시 저처럼 운전면허가 없···을 리는 없지.”
그치.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좁고 혼잡한 그 골목길을 택배차로 누볐는데.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딱히 차 욕심이 안 생겨. 운전도 싫고.”
“내가 대본 보느라 집 가면 책 읽기 싫은 거랑 똑같네.”
“배우 하기 전에도 안 읽었잖아.”
“네가 뭘 알아?”
“쓰여있어 네 얼굴에.”
확실히 오디오가 비질 않아서 그런가.
지루할 틈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잘 지내셨죠?”
서은영 작가가 웃으며 우릴 반겼다.
“아니, 유종원 PD님 덕분에 못 지내. 너 PD님이랑 연락하지? 그러면 전화 좀 하지 말아 달라고 전해줄래?”
“왜요. 또 싸우셨어요?”
이에 대해선 최지연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보이콧 중이시래요. 캐스팅 관련해서 대판 붙으셔서.”
“아니, 내가 백승결 복귀에 일조한 작간데. 적어도 캐스팅은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죠. 그건 PD님이 잘못하셨네.”
“그니까 말이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은영 작가의 작업실을 구경했다.
꽤나 넓은 구조의 오피스텔. 특히나 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길쭉하고 넓어 테이블 놓기에 딱 맞았다.
그사이 다른 작가들도 찾아와 작업실이 시끌벅적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님들이 여기 다 계셨네!”
“배우들은 누구 오냐고 그렇게 물었는데도 일단 와보라더니, 서은영 작가가 확실히 큰소리 칠만 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집필 중이던 대본 가져올걸!”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는 사이, 잠시 사라졌던 서은영 작가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물었다.
“혹시 여기 내 스승님 오셔도 되나?”
“스승님이요?”
누군지 몰라 갸웃거리는 우리와는 달리 작가들은 단번에 아는 눈치였다.
“스승님이면, 김미옥 작가님!?”
아, 저러면 작가들로서 모르는 게 이상하긴 하겠다. 서은영 작가의 스승이 김미옥 작가였구나.
“대박. 여기 오신대?”
“그러실 것 같은데,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으니까.”
“난 너무 괜찮은데. 안 그래도 요즘 집필 때문에 우울해 죽겠는데, 선생님 뵈면 힘 나지!”
다른 이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배우 3인방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나는 어렸을 때 워낙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기도 했고, 최근 TBS 미팅 때문에 여러모로 궁금한 상황이었으니 두말할 것도 없지.
“그러면 오시라고 말씀드린다?”
그렇게 서은영 작가가 다시 전화를 하기 위해 사라지고 얼마 뒤.
우아하고 차분하다는 말이 퍽 잘 어울리는 60대 여자가 자리에 합류했다.
그녀가 우릴 보며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안녕하세요, 김미옥 작가예요.”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있던 서은영 작가가 덧붙여 말했다.
“다들 모르시는 분은 없죠? 유종원 PD님 만나기 전까지 제가 선생님 새끼 작가였던 거.”
“그러고 보니 유 PD는 없네?”
“작품 준비하느라 바빠요.”
“요즘은 안 싸우고?”
“왜 안 싸우겠어요. 며칠 전에도 캐스팅으로 대판 붙었어요.”
고개를 흔들던 서은영 작가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치며 우리 쪽으로 고갤 돌렸다.
“아 참, 제가 여러분들한테 종종 하는 웰메이드에 대한 이야기들 있잖아요. 그 정수가 바로 우리 선생님한테서 나왔다고 보면 돼요. 아, 잘됐다. 선생님 오신 김에 저희한테 웰메이드 강연 한 번 해주세요.”
오. 그거 재밌겠는데?
그러면서 입 끝을 올리는데, 갑자기 작가들의 눈동자가 다급해졌다.
서로 눈치를 보던 중에 김미옥 작가 다음으로 연장자인 작가가 얼른 선수를 쳤다.
“그, 그건 이따 경청을 해보도록 하기로 해봅, 해봅시고··· 어우 나 말도 안 나와.”
뒤이어 최지연도 냉큼 합세했다.
“어, 일단 우리 뭐 좀 먹을까요? 배고파서 그런 것 같은데.”
“그, 그래! 무지 배고프다.”
“얼른 밥부터 먹죠? 음식들 식겠다.”
“어머, 다들 나 때문에 못 먹고 기다린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먹지··· 미안해요.”
김미옥 작가가 이리저리 사과를 했다.
얼른 서은영 작가를 도와 식탁 위에 배달음식들을 세팅하는 작가들과 이강현, 최지연.
착착 진행되는 테이블 세팅에 나도 두 손 거들며 입맛을 다셨다.
배고파서는 아니고······.
“아쉽네, 듣고 싶었는데.”
“······.”
내 중얼거림을 들은 최지연이 족발 패킹을 뜯다가 멈칫거리며 날 본다.
“잘 안 뜯어져?”
“아녜요. 잘 뜯어져요.”
그리곤 패킹을 주왁 뜯어내는 최지연.
방금 날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본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