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대표 (1)
—발신인을 보고 눈을 의심했어요.
스케줄은 김성운이 관리해주고, 대부분의 전화가 먼저 걸려오는 탓에.
누군가에게 전화 걸 일이 많이 없었는데, 오늘은 핸드폰이 열일 중이다.
댄의 목소리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제가 살면서 국제전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앱을 통해 그와 통화할 수 있는 방법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급한 통에 기계치인 내가 그런 걸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승결 배우의 연락을 줄곧 기다리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회사가 아니라 본인에게 직접 전화가 올 줄은 몰라 놀랐네요.
“상황이 조금 급해서요.”
—그럼 저도 급하게 들어볼게요. 얼른 말해봐요.
“우선 제가 직접 연락드린 만큼 이건 제 소속사의 생각은 아니라는 걸 밝혀두고 얘기할게요.”
그의 시원한 대답에 어울리지 않게, 밑밥을 슬쩍 깔았다.
별문제야 있겠냐만 혹시 모르잖아. 회사와는 분리를 해둬야 만에 하나라도 피해가 안 가지.
—알겠습니다. 염두에 두죠.
댄이 오케이하자마자, 내가 물었다.
“이번엔 저부터 시작해보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죠. 백승결이라는 매력적인 배우가 이번 프로젝트의 첫 단추입니다.
“저에 맞는 대본과 감독을 찾겠다고 하셨고요.”
—맞아요. 두 번째 단추부터는 첫 단추가 기준이어야 헷갈리지 않으니까요.
“혹시 그에 대한 것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상태인가요?”
—여러 후보를 만들어두긴 했죠. 대본도, 감독도. 아직 승결 배우의 확답을 듣지 못했으니 홀드된 상태입니다만.
“다행이네요.”
한숨과 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이에 댄이 물었고.
—왜죠?
내가 답했다.
“첫 단추인 제가 두 번째 단추를 잠가볼까 싶어서요. 대본이 하나 눈에 들어왔어요.”
—오, 급할 만했네요.
“그리고 저는 이걸 꼭 하고 싶어요.”
조금 강한 어조였다.
어쩌면 이 말이 협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들어온 대본이 아니라면, 멀티온과 함께 하지 못할 거란 말로 해석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맞으니까.
하지만 협박이라기보단 거래라고 하고 싶다.
어쨌거나 나를 먼저 원했던 건 멀티온이잖아.
이쯤 되자 나조차도 댄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이 안 갔는데, 그가 오히려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승결 배우가 그렇게까지 얘길 하는 거 보니, 더 그 대본이 궁금해지는데요?
“보내드리면 읽어보시겠어요?”
됐다. 속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묻자, 곧바로 대답이 넘어왔다.
—이젠 제가 급해졌네요. 최대한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너무 궁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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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백승결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서은영 작가의 작업실에 모인 이들은 김미옥 작가의 대본에 대해 감탄을 쏟아내다가 어느새 김미옥 작가 자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글을 쓰신다는 것 자체가 일단 대단하세요.”
“왜요. 내 나이에 대본 쓰는 작가들 은근 있어요.”
“나이 말구요. 경제적으로 자유로우시잖아요.”
“맞아요. 전 건물 있으면 글 못 쓸 거 같아요. 아니, 안 써요. 그런데 작가님은 이 작품을 쓰기까지 공백기 내내 노력하셨다면서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 상상이 안 가요.”
김미옥 작가는 그 사이에서 옅게 웃으며 말했다.
“건물 사 봐요. 그러면 딱 1년 좋아.”
“전 10년 좋을 수 있는데 건물한테 나한테 오라고 전해주실래요?”
이강현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그런 와중에도 작가들이 바라보는 김미옥 작가에 대한 동경 어린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
엄청나게 성공한 선배가 일까지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 거다.
“역시, 작가님.”
“멋져요. 글 쓰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저희도 물론 좋아는 하지만 문득 문득 버거울 때가 있거든요.”
이에 김미옥 작가가 고갤 저었다.
“무슨 소리. 아녜요.”
“···?”
“여전히 고통인걸요.”
의외의 대답에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과거엔 영광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오명이고.”
담담한 말투.
하지만 테이블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올려둔 촛불 때문일까.
눈빛이 일렁거렸다.
“어쩌면··· 나이든 사람의 철없는 복수심일지도 몰라요. 인정하기 싫은 거죠. 내가 퇴물이란 걸.”
“······.”
“그래서 쓴 글이에요. 흉터를 지울 순 없어도 적당한 문신 하나 그려서 덮을 순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잠깐, 침묵이 장막처럼 내려앉았다.
그 장막을 걷어낸 것은 백승결이었다.
전화를 마치고 들어온 그가 천진하게 묻는다.
“무슨 얘기 중이셨어요?”
서은영 작가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빙그레 웃으며 퀴즈 내듯 말했다.
“선생님의 영광, 흉터, 문신.”
“아아.”
키워드만으로 이해를 마친 백승결이 주억거린다.
“그 문신, 이왕이면 근사할수록 좋겠네요.”
“···!”
서은영 작가를 비롯한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놀란 눈을 했다.
유일하게 김미옥 작가만 금세 침착해진 얼굴로 끄덕였다.
“그렇겠죠.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럼 지금까지 쓰신 대본, 제가 아는 분한테 보내드려도 될까요?”
이때다 싶어 덥석 잡아채는 백승결.
서은영 작가가 고갤 홱 돌렸다.
“뭐야, 전화 통화하고 온 게 선생님 때문이었어?”
“작가님 대본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그러자 이번엔 최지연이 갸우뚱하며 묻는다.
“방송국이에요? 혹시 KNS?”
“KNS면 유종원 피디님하고 이진태 피디님······.”
“아니면 감독님일 수도 있지. 요즘엔 드라마, 영화 구분이 희미하잖아.”
“혹시 눈속임, 한이연 감독?”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보다 못한 서은영 작가가 나섰다.
“우리 승결이 얘기 좀 듣죠?”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고 날 바라본다.
“댄이라고.”
“댄? 외국인?”
되묻는 그녀에게 고갤 끄덕였다.
“네, 악의 링 총책임자였어요.”
“악의 링이면······.”
말끝을 늘리던 소리가 뚝 멈추고.
누군가 벌컥 소리쳤다.
“멀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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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윤상희 부장이 피식 웃으며 주억거렸다.
“그래요. 네, 선생님. 어차피 지금 공모전 당선작 중에 예정되어 있는 게 있어서요. 네,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보니까···예, 예.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그녀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김미옥 작가가 미안하다며 전화를 해왔다.
다른 곳에 대본을 보내게 되었다며, 혹시 자신 때문에 뭔가 무리해서 진행하고 있는 게 있으면 일단 멈춰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러니 윤상희 부장 입장에선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애초에 시청률도 안 나올 것 같은 그런 대본에 신경도 안 쓰고 있는데.
내가 뭐라도 하고 있을까 봐 노파심에 전화를 하다니.
“이것도 일종의 오만이라면 오만이겠네. 본인이 하려고 하면 모두가 도와줄 거라는 착각.”
그 대본을 어디에 보내겠다는 건지 궁금하지도 않아서 묻지 않았지만.
어딜 보내든 트렌드 따위 엿보이지도 않는 그 작품이 어딘가에서 환대받으리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안타깝다, 안타까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김미옥 작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낸 그녀가 부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 조건반사처럼 긴장하는 직원들.
그 모습에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그녀가 다가갔다.
“백승결 연락은 아직이야?”
“네. 아직 아무런 연락이······.”
윤상희 부장의 짜증 섞인 표정을 확인한 직원이 얼른 덧붙였다.
“대신 김동준이나 최상욱 회사에선 연락이 왔어요.”
“아~ 그 정도론 약한데.”
처음에 주인공으로 물망에 올랐던 이름들이었다.
나름 인지도도 높고, 연기력도 준수한 드라마 스타들.
하지만 백승결에 비하면 떨어지는 느낌이다.
‘악의 링’의 전세계 흥행이라는 타이틀과 ‘눈속임’의 천만 영화 타이틀이 너무나 컸다.
게다가 백승결과 미팅을 잡았다고 하니 위에서 거는 기대도 컸다.
“후우, 꼭 잡아야 하는데 말이지.”
OTT 플랫폼과 케이블 채널 사이에서 이리저리 작품과 배우들을 빼앗기는 판국에 백승결을 데려온다면 그래도 아직 지상파의 저력을 보여주는 셈이니까.
손톱을 뜯으며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직원에게 말했다.
“기사 터트리자.”
“네?”
“백승결이 우리랑 한다고, 기사부터 내보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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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바다에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나에 대한 기사가 하루에도 꽤 많은 양이 올라오지만, 그럼에도 이 기사는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당겼다.
[백승결의 차기작, TBS와 함께 진행 중>팬들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내 차기작에 대한 소식이었으니까.
나도 모르는 내 차기작 소식이라니!
기사가 터지고, 내 어이도 터졌다.
“일단 너 내려주고 곧바로 회사로 들어가 보긴 해야겠다.”
김성운의 말에 끄덕이며 기사를 마저 확인했다.
“거짓 기사가 되게 디테일하네요.”
나름의 심증을 넣어서 던진 말이었다.
김성운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작게 웃는다.
“아무래도 선수를 친 거 같지?”
“그럼 정말 윤상희 부장이······.”
“내 생각도 그래.”
“이런 일이 흔한가요?”
“흔하진 않지만, 효과적이지. 고민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압박을 줄 수 있거든.”
어깨를 으쓱거린 김성운이 말을 이었다.
“일종의 카운트다운이야. 기사가 뜬 이상 더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믿기 전에 확답을 줘야 하잖아.”
“일단 아니라고 하는 건요?”
“그러고 나서 다시 하는 거로 번복하는 경우 본 적 있어?”
“······없었던 것 같아요.”
“거 봐. 흔치 않지. 아니라고 하는 순간, 방송국 입장에선 지들이 터트린 기사인 거 뻔히 알면서 아니라 했다고 자존심 상해하거든. 그렇게 캔슬나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이런 쪽 생리에 대해선 전혀 모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성운은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가서 대표님하고 회의를 해볼게. 어쨌든 네가 푹 빠진 ‘악역’이라는 작품이 댄한테 갔으니까 우리 입장에선 이걸 캔슬하는 게 맞긴 한데. 그래도 최대한 뒤탈 없게 끊어내야 하니까.”
확정을 지은 적도 없는데 이렇게 조심스러워 해야 한다니.
대처 하나 하나도 신중해야 한다니.
시원시원하던 인쇄 골목 아저씨들 사이에서 비지니스(?)를 했던 나로선 참 머리 아픈 일이었다.
“저 때문에 하람이 곤란해지는 건 아녜요?”
“곤란? 누가 누굴 곤란하게 할 수 있는데?”
김성운이 씩 웃으며 되묻는다.
“하람이잖아.”
그의 말대로 하람이었다.
대형 소속사는 아니지만, 나뿐만 아니라 신승찬과 이태관 배우,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톱스타 자리에 있었던 배우들이 소속되어 있는.
“물론 윤상희 부장이 우릴 좀 싫어할 수는 있겠다만.”
키득거린 김성운이 덧붙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네가 계속 성공한다면 문제 될 거 없지. 성공이 곧 착함인 곳이니까.”
“그거 참··· 삭막하네요. 알고는 있었지만.”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연기가 여기 있으니 어쩌겠나.
삭막해도 이겨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턱을 괴고 차창 밖을 보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팔을 내리며 김성운을 돌아보았다.
“팀장님, 그냥 바로 회사로 들어가죠.”
“응? 왜? 어디 약속 있어?”
“아뇨, 저도 팀장님이랑 같이 회사 들어가려고요. 어쨌든 지금 상황이······ 제 욕심으로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러자 김성운이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며 반대 손을 흔들었다.
“무슨, 아냐. 원래 작품 고를 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거야 당연하지. 특히나 너처럼 차기작이 중요한 상황에선 더더욱 그래야 하고. 다들 이해할 거니까 해명할 거 없어.”
“해명 말고 설명하려고요.”
응? 하고 룸미러를 통해 날 바라보는 김성운.
내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욕심이 얼마나 합당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