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97)
97화 대표 (2)
······1팀장과의 통화를 마친 김성운이 핸들을 돌렸다. 내 의견이 받아들여진 거다.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소속사 들어온 이후로 처음 뵙는 거 같네요. 대표님.”
기분이 묘하다.
떨리는 건 당연했지만, 부담스럽다거나 걱정이 되진 않았다.
“아, 그렇지. 미국이랑 일본, 중국 출장으로 워낙 바쁘셨으니까.”
관련 이야기는 김성운과 홍보팀장, 가끔 보는 1팀장에게서도 언뜻언뜻 들은 기억이 있다.
한·중·일 합작 영화에 하람이 투자를 했고, 거기에 하람의 배우가 4명이나 출연하게 되며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졌고.
거기에 할리우드 진출도 꾸준히 도전 중인 데다가, 여러 번의 고배를 마시며 축적된 경험으로 아예 할리우드를 위한 자회사를 만들 계획 중이라지.
말이 대표지 들어보면 그냥 하람 전체를 매니지하는 매니저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 큰 일은 아니니 걱정하진 마. 방송국이랑 기자들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이번 기회에 대표님 얼굴도 뵙는다고 생각해. 김미옥 작가 작품 관련해서 궁금해하실 테니 네 생각을 말하는 것도 좋은······ 걱정 없구나?”
룸미러로 나를 본 김성운이 피식 웃었다.
가서 무슨 이야길 해야 할까.
대본 내용을 머릿속으로 훑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룸미러에 떠오른 시선을 보고 입꼬릴 올렸다.
“좀 있어 보이는 게 나을까요?”
“아냐, 아냐. 지금 좋다. 난 아무것도 모르겠고, 이 드라마가 하고 싶어요. 이런 느낌. 맑은 눈의 광인.”
그 정돈가···?
차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투명하긴 하네. 유리가 투명해.
회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한 번에 꼭대기 층까지 쭉 올라가 내리자 문도 없이 곧바로 대표실이었다.
“안녕하세요.”
가장 먼저 익숙한 얼굴들로 시선이 향했다.
본부장과 1팀장, 그리고 홍보팀장.
그 너머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
단발머리의 여자가 손에 들린 대본을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린다.
하람의 대표, 하선경.
그녀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이네요.”
“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다시 한번 꾸벅 인사하고서 김성운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녀가 내가 앉길 기다렸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백승결 배우 만나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저한테요?”
가볍게 끄덕인 하선경 대표가 말했다.
“해외 진출이 무조건 할리우드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구나. 그런 가능성을 ‘악의 링’을 통해서 볼 수 있었거든요. 할리우드에서 우리 배우들이 성공하는 게 오랜 숙원인 내겐 유레카를 외칠만한 사건이었죠.”
싱긋 웃은 그녀가 손에 들린 대본을 표지가 보이도록 살짝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 작품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고요? 이걸 멀티온하고 만들어보고 싶단 얘긴 들었는데.”
“네. 제가 왜 이 작품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그걸 설명드리고 싶어서요.”
그러자 그녀의 의중 모를 시선이 다시 대본으로 떨어져 내린다.
“음··· 그 정도로 하고 싶어서, 작품과 배역이 끌려서 아녜요?”
“그렇죠.”
얼떨결에 답하자 그녀가 대본을 탁 내려놓았다.
“그거면 됐죠.”
“네?”
“해봐요.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그녀의 두 눈이 다른 이들을 순회했다.
다들 얼빠진 표정이려나. 나처럼.
이 작품에 욕심을 부리는 합당한 이유들이 머릿속에서 욕조처럼 차올랐다가 훅 빠져나간다.
이렇게 쉽게?
지금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내 말을 들을 시간조차 없는 건 아닐 텐데?
하선경 대표의 표정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정말 이해한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띤다.
뒤이어 그녀가 홍보팀장을 보며 말했다.
“그럼 아까 얘기한 대로 정정 기사 준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제법 익숙한 듯 놀란 표정을 지운 홍보팀장.
그녀의 대답에 만족스레 끄덕인 하선경 대표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승결 배우는 따로 얘기 좀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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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대표실에 하선경 대표와 나만 남았다.
그녀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띄운 채로 나와 ‘악역’ 대본을 번갈아 보았다.
“예전에 저도 그런 거 많이 했어요.”
“예?”
“선배님 찾아가서 회유하고, 대표님 찾아가서 설득하고.”
아, 방금 내가 하려던 거···.
“그분들은 항상 나한테 물어봤었죠. 이게 왜 좋은 거냐고. 그리고 전 그걸 알려주기 위해 늘 고민해야 했어요. 왜냐면 이 작품이 너무 좋다는 느낌은 읽자마자 오지만, 이게 왜 좋은지 설명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겹다는 듯 고갤 흔드는 하선경 대표.
그녀의 손끝이 대본을 향했다.
“근데 이걸 보니 굳이 듣지 않아도 알겠더라고요. 이 작품 느낌이 좋아요. 그러니 오늘 승결 배우가 날 설득하기 위해 준비한 건··· 댄에게 써먹는 게 좋겠어요.”
그래, 댄이 있었지.
눈앞에서 오해인지, 음해인지 모를 기사가 쏟아지니 그 너머를 보지 못했다.
하람의 대표인 그녀를 설득해도 그 뒤엔 다음 관문, 멀티온이 있었다.
“정정기사를 내는 순간 적어도 TBS 윤상희 부장과는 약간 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는데, 멀티온에서 대본을 거절하면 그땐 정말 양쪽 다 놓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
“그런데 왜······.”
자연스레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리스크가 있는데도 왜 이렇게 흔쾌히 내가 계획한 길을 밀어주는 거지?
“말했잖아요. 이 대본, 느낌이 좋다고. 그냥 자석처럼 착 붙더라고요. 백승결 배우 얼굴이 여기, 주인공 ‘차태석’에. 전 우리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이나 제 느낌을 믿거든요.”
“꼭 성사시키겠습니다.”
“내가 그걸 배우의 입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선경 대표가 매니저 해도 잘했겠다며 쿡쿡 웃었다.
이내 웃음기를 지운 그녀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덧붙인다.
“하긴 이것도 모르긴 했죠. 그 옛날 귀여워했던 아역 배우가 내 소속사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렇게 또다시 천만 배우가 될 줄은.”
“저도 대표님 성함이랑 사진 보고 깜짝 놀랐었어요.”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이태관 배우의 권유로 하람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했었다.
자연스레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반가웠다.
과거 아역이었을 때의 인연이라서.
“말씀 편하게 하세요.”
“소속 배우한텐 말 안 놔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내가 그냥 이게 편해서.”
싱긋 웃은 그녀가 다시 한번 인사했다.
“아무튼, 너무 반가워요. 2년이 되어서야 보네요. 아직 선배님은 만나본 적 없죠?
이름도 붙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선배님이 누군지 바로 알 것 같았다.
과거 그녀가 매니저였을 때 담당했던 배우를 말하는 거겠지.
나는 거의 확신하며 끄덕거렸고, 그녀가 고갤 흔들며 신기해한다.
“선배님도 참 독특한 분이야. 무슨 제자인 것처럼 그렇게 안타까워하셨으니 복귀했으면 연락 한 번 할만도 한데.”
“연락처를 모르시잖아요.”
“하시려 했으면 나한테 했을 거예요.”
“연락··· 하세요?”
“뭘 그렇게 조심스러워요. 가끔 연락해요. 안 좋은 이유로 갈라선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죠. 서로의 성장을 위해서였어요. 선배님은 배우로서, 저는 매니저로서.”
작게 웃는 그녀를 보며 주억거리다가, 문득 나도 그가 궁금해져 물었다.
“잘 지내시죠? 천광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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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잔잔한 대화가 오갔다.
앞으로 선배님을 능가하는 좋은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덕담까지 건넨 그녀가 뒤이어 묘한 말을 덧붙였다.
“기억력 좋은 건 원래 알고 있었는데······ 김성운 팀장님 말로는 감도 좋다던데?”
“운이 좋았죠.”
“운이 좋은 건 대본을 안 읽고 골랐는데 성공하는 거. 감이 좋은 거예요, 승결 배우는.”
“그리고 그거 중요하죠. 감. 특히, 실력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 그러고 보니 그 두 가질 다 가진 건가?”
그녀의 장난스러운 칭찬을 끝으로 나홀로 면담(?)이 끝났다.
곧장 한층 내려가 카페테리아로 향하자 아까 대표실에서 봤던 세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어땠어?”
마치 막내 동생 수능 기다린 사람들처럼 궁금해 죽겠는 표정들이었다.
“그냥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는 얘기였어요.”
“대표님이 매니저로 일할 때면 거의 17년 전인가?”
“네, 맞아요.”
“그땐 하람이란 회사가 있지도 않았을 때네.”
시간 참 빠르다며 한탄하는 1팀장.
커피를 홀짝이던 홍보팀장이 덧붙여 말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대단하셔. 그때 대표님이 지금 성운이 나이 정도 나이일 텐데 덜컥 회사를 독립할 생각을 했다는 게.”
“그것도 천광윤 배우의 매니저였죠.”
“그래서 대표님이 더 대단해 보여요. 이전 회사에서 대우도 최고였다면서요.”
그녀의 말에 1팀장이 말했다.
“천광윤 배우의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었으니까. 작품 고르는 능력이 엄청 좋으셨대. 꼭 성공할 작품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천광윤 배우의 커리어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불패 신화였잖아. 물론 할리우드에선 연거푸 쓴맛을 봤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1팀장의 말을 들으니 그녀가 할리우드를 목표로 하는 게 더욱 이해가 갔다.
그 사이, 커피잔을 다 비운 홍보팀장이 슬슬 애들 도와주러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곧 정정기사들이 뜰 거야. 물론 그렇다고 손가락 튕기듯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고, 산불처럼 진압하려면 꽤 오래 걸리겠지. 사람들이 정정 기사엔 큰 관심이 없거든.”
쉴 새 없이 기사를 내보내는 방법밖엔 없다 말하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그러면 같이 움직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응? 어디랑?”
“뮤튜브요.”
“이번에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찍은 거? 같이 올리면 훨씬 좋지. 근데 그거 완성됐대? 빨리 올려야 하는데?”
“완성은 이미 며칠 전에 됐었어요. 언제 올리는 게 좋을지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인 것 같네요.”
입꼬릴 올리며 현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내가 말했다.
“형, 이제 올려도 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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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태 형에게 전화한 직후, 정정 기사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뮤튜브에 내 첫 영상이 게시되었다.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드디어 떴다!
—이 잔잔한 브이로그가 이렇게 재밌을 일인가?
—중간중간 백승결 배우랑 매니저님 대화 꿀잼ㅋㅋㅋ
—그나저나 멀티온, 넷플리스, 디제니에서 휴가 중에 찾아왔다고? 진짜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긴 한가보다.
—어딜 가나 한두 명씩은 꼭 알아보네.
—근데 갑자기 TBS랑 한다고? 굳이?
—기사 떴어요. TBS랑 미팅을 했던 건 맞지만 확정은 아니라고. 여러 제안을 받았고 신중하고 검토 중이라던데요?
—그럼 기자들은 왜 TBS랑 한다는 기사를 냈던 거지?
—하여튼 기레기들 진짜······.
—TBS가 정정 기사 안 내고 버틴 게 더 웃김. 이 정도면 TBS가 기사 낸 거 아니냐고.
—백승결이 어지간히 잡고 싶었나 봄.
—그나저나 OTT 플랫폼 중에서 가장 큰 세 회사랑 미팅하는 거 엄청 뿌듯하다. 우리나라 배우가 해외에서 이 정도로 인정받는 건 처음 아님?
수많은 이들이 영상을 보았고, 홍보팀장의 말처럼 여전히 정정된 소식을 모르는 이들 투성이었다.
이에 기사를 확인한 몇몇 사람들이 댓글을 남겼고, 사람들의 오해가 점차 바로잡히기 시작했다.
연예 뉴스란을 들어가는 이들은 드물지만, 뮤튜브를 습관처럼 들어가는 사람들은 넘쳐나니까.
그렇게 예전 기사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팩트가 퍼져갈수록.
사람들의 궁금증도 더욱 커져갔다.
—솔직히 어디랑 하는진 그렇게 안 중요함. 무려 ‘눈속임’ 다음 작품이잖아. 천만 배우의 차기작! 어떤 작품을 고를지가 더 궁금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