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rcher Who Became a One-Man Army RAW novel - Chapter (237)
일인 군단이 된 천재 신궁-237화(237/320)
◈ 일인 군단이 된 천재 신궁 (237)
“…….”
이곳까지 오기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던가.
리안을 만나러 에르칼에 온 그녀는 접객실에 앉아 차분하게 숨을 토했다.
하지만 차분한 표정과는 달리 허벅지 쪽에 올려진 두 주먹은 치맛자락을 잡은 채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걸음 소리.
일정한 걸음 소리가 아델란트에서 듣던 그의 걸음이었다.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
이윽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안을 맞을 준비를 했다.
비록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덜컥.
그리고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리안을 보며 릴리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 * *
저벅 저벅.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라니.
특히 디엘에게 찾아온 손님에 대해 들었을 때 리안은 놀람은 감추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릴리스 공주가 왜 여길…….’
불현듯 이번 전쟁과 관련하여 멜라디온 왕국과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와 관련된 일일지도.
하지만 의도를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선 그저 그녀를 만나 보는 수밖에 없다.
똑똑.
“리안입니다.”
정중한 말투와 함께 리안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릴리스 공주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워낙 치열한 전쟁을 벌인 탓인지 그녀의 말처럼 꽤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리안이 자리를 권하고 릴리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신 거지요?”
“지금 바로크 왕국에서 저희 왕국으로 사신을 보냈습니다.”
“…….”
역시다.
릴리스의 말에 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바로크 왕국이 사신을 보냈다는 것이 조금은 의외이긴 했지만,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멜라디온 왕국의 포지션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아르티안 왕국의 오른쪽으로는 바로크 왕국, 왼쪽에는 멜라디온 왕국이 있다.
앞과 뒤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어찌 되었든 바로크 왕국과 전쟁 중 뒤에 있는 멜라디온 왕국이 바로크 왕국과 손을 잡는다면 아르티안 왕국의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멜라디온 왕국이 바로크 왕국과 선뜻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멜라디온 왕국의 입장에서 아르티안 왕국은 바로크 왕국을 막아 주는 ‘방패’ 역할도 하니까 말이다.
리안은 말없이 릴리스를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리안이 침묵하자 릴리스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르티안 왕국에서도 사신단을 꾸려 멜라디온 왕국으로 보냈어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니요, 듣지 못했습니다.”
“사신단의 대표로 헤베론 디아티르쿤님이 가셨습니다. 그리고 반스트리올 가문의 아펠님도요.”
“아펠이……?”
헤베론님이 갔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멜라디온 왕국과의 외교는 아르티안 왕국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일이니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리안이 반문했다. 그에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르티안 왕국에서 저와 아펠님과의 정략결혼을 추진하기 위해서죠.”
“아.”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아펠이라면 왕국 간의 정략결혼에 있어 흠잡을 것이 전혀 없는 완벽한 인물이니까.
배경만으로도 그러하다. 그가 지닌 인품, 그리고 실력은 사실 배경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하다.
리안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생겼다.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제게 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이 먼 북쪽 땅까지 직접 와서 말이다.
그에 릴리스는 조금 놀란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입을 꾹 다물더니 리안을 응시했다.
뭔가 입안에서 말이 맴도는 듯한 그녀.
리안은 순간적으로 바뀐 그녀의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정략결혼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한 왕국의 왕족으로서, 그리고 공주로 태어난 이상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기도 하지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와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최소한…… 그 상대를 직접 고를 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저기…….”
뭔가 말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평소와 달리 격정적으로 말하는 릴리스의 모습에 리안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면 저는 리안님과 하길 원합니다.”
“……예?”
리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 *
달그락.
홍차가 든 찻잔을 내려놓은 수노크는 말없이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을 보았다.
멜라디온 왕국의 왕비, 리셀리아 멜라디온이었다.
제 1왕비이자 릴리스 공주의 친모이기도 한 그녀를 보며 수노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처음인 것 같소.”
“……그런가요.”
“항상 올바르게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도 내 말에 단 한 번도 거역하지 않고 말을 듣던 아이인데 말이오.”
“…….”
“허허허허허.”
수노크는 다시 찻잔을 들며 홍차의 향기를 살짝 맡았다.
적당히 우려진 홍차의 향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게 은은한 향이 코끝에 스며드는 듯하다.
그 홍차의 향처럼 수노크는 입가에 연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의 멜라디온 왕국의 상황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소신 있는 본인의 생각.
그와 함께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것이,
“마치 젊은 시절 당신을 보는 것 같구려.”
“제가 그랬습니까?”
“지금도 현명하고 똑똑하며 지혜롭고…… 아름답소.”
수노크의 말에 리셀리아는 그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에 수노크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기다려봅시다. 그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기다려 달라고 했으니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겠지.
수노크는 그저 말없이 홍차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 * *
“예에에에에에에?!”
“우아아아아아악―!”
리안의 집무실에 모인 간부들과 각 부대의 대장들.
무려 스무 명이 넘는 인원들이 복작거리며 모였는데, 리안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특히 카일은 평소 녀석답지 않게 몸을 부들부들 떨며 리안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겨, 결혼……이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결정된 게 아니라 그에 대해 상의를 하려고 너희를 부른 거잖아.”
“난 반대요.”
“……?”
카일의 말에 다른 이들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카일을 보았다.
카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먼저 가는 것이 어디있소! 갈 땐 가더라도 최소한 소개는 해주…….”
퍽―!
“켁!”
쓸데없는 소리에 뒤에 있던 플로랑이 카일의 엉덩이를 무자비하게 걷어찼다.
거구의 몸뚱이가 앞으로 벌러덩 쓰러지더니, 이내 플로랑이 리안을 보며 말했다.
“전 찬성입니다. 리안님도 사실 혼기는 훨씬 지났지 않습니까.”
자신들이라면 모를까, 리안은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지 않은가.
이제는 왕국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는 장군이다.
아무리 상대가 다른 왕국의 공주라 하더라도 자격에 미달이 되는 부분은 없다.
게다가,
“그리고 이건 진심입니다만…… 릴리스 공주님은 제가 본 여자 중에 제일 아름다웠습…….”
퍼억!
“캭―!”
플로랑이 채 말을 끝내기 전에 옆에 있던 헤릴다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쓸데없는 소리. 여자에게 얼굴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얼굴이 아주 중요한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옆에 있던 브랜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헤릴다가 쌍심지를 켜며 그를 보았다.
그에 브랜트는 ‘아니, 그냥 그렇다고……’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다들 진정해.”
어수선한 분위기에 리안이 말했다.
사실 리안도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이번 삶은 물론 과거의 삶까지 포함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부모님도 없는 리안의 입장에서 이런 일을 상의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야말로 연애, 결혼 쪽으로는 문외한과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디엘이 말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리안님의 결정입니다. 다만 외교적인 부분에서 조언을 드리자면, 만약 이 정략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만에 하나 멜라디온 왕국이 바로크 왕국과 손을 잡는다면 큰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엘의 말에 레이먼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멜라디온 왕국이 바로크 왕국과 손을 잡고 우리 왕국을 공격한다면…… 그다음은 자신들 차례가 될 테니까요. 그렇게 뻔히 보이는 악수를 선택할 리는 없죠.”
“그랬기에 가능성은 낮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하지만 왕국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엄청난 일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로 인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조건 상식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님은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이어지는 디엘의 말에 레이먼은 침묵했다.
작은 가능성이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의 입장에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니까 말이다.
그에 바루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데 외교적인 건 둘째치고 리안님은 어떻습니까?”
“……뭘 말입니까?”
“릴리스 공주 말입니다. 여자로서 어떠신 것 같습니까?”
“그, 그건……!”
리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이기도 했고, 바루스의 질문이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리안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자 앞에 있던 아이작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리안님, 얼굴이 엄청 빨갛게 변하셨는데요?”
“이런 모습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흐흐, 마스터라고 해도 별거 없군요. 여자 앞에선 그저 똑같은 수커…… 켁―!”
말을 하던 카일은 헤릴다의 주먹에 옆구리를 맞고는 다시 바닥에 꼬꾸라졌다.
그에 헤릴다가 조심스럽게 리안에게 말했다.
“저, 저는 리안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하고 따라갈 겁니다.”
“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략결혼이란 것이 조금 그렇긴 하지만 릴리스 공주는 그냥 사람으로나 여자로나 괜찮지 않습니까.”
그녀가 아델란트에서 보여준 행동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중했고, 한 왕국의 공주라고 해서 거들먹거리는 것도 없었다.
또한 똑똑하고 현명했으며, 말 한마디와 행동에 기품이 담겨 있었다.
리안은 부대원들의 조언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그 전부를 합친 것보다 어려운 일 하나가 생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리안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들어줘서 고맙다. 생각해보고 결정할 테니 나가서 일들 봐라.”
리안의 말에 모두가 무언의 응원을 보내며 집무실에서 나갔다.
홀로 집무실에 남은 리안은 창밖을 바라보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 세일라님께 상의를 한다면 좋을 텐데…….’
아마 그녀라면 보다 좋은 선택을 알려 주지 않았을까.
리안은 문득 윈더르트로 떠난 세일라가 떠올랐다.
상대는 상클렌 장군을 죽인 바로크 왕국의 장군이지 않은가.
하물며 윈더르트를 점령했다면 바로크 왕국 쪽에서 수성을 하는 입장일 터.
‘괜찮으시겠지…….’
묘한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