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231
외전10. 스타, 그 이후의 이야기(1)
“민우야.”
“어. 진혁아. 왔어? 잠깐만.”
전화 통화를 하고 있던 도민우가 잠깐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는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야, 어서 와라. 고생 많았다.”
“고생은 뭘. 고생은 네가 하지.”
두 사람이 소파에 마주 앉았다. 진혁이 새로 단장한 대표실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전보다 훨씬 낫네.”
“그래? 다행이다. 마음에 들어서.”
“내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한가. 쓰는 사람 마음에 들면 되는 거지.”
“나야 뭐. 200% 만족하니까.”
이사가 된 지 2년 만에 다시 공동대표의 자리에 오른 도민우였다.
회사의 사업 영역이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회사 규모가 너무 커지게 된 탓에 이광수와 도민우가 사업 부분을 나누어서 대표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
사실 이미 전부터 기존 사업과 관련한 회사 운영의 실질적 엔진 역할은 도민우가 감당하고 있었다.
이광수 대표는 대외적으로는 회사의 얼굴 역할을 하며, 신규 사업 확장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었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회사의 엔진 역할을 해내고 있던 도민우의 활약은 대단했다.
친구들 사이의 별명이었던 도문어는 이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별명이 되었다.
시가 총액 5조 원의 대기업을 일군 회사의 핵심.
2년 전, 시가총액 2조 원을 기록하며 기존 3대 기획사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던 프렌드엔터였다.
사실 매출이나 규모 면에서는 3대 기획사에 미치지 못했으니, 주식의 가격 면에서는 거품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가라는 건 미래가치, 혹은 시장의 기대치가 반영되기 마련이었다.
프렌드엔터가 불과 3년 만에 일궈낸 엄청난 실적과 성장성, 특히 세계 시장에서 끝도 없이 치솟고 있는 진혁의 주가가 반영된 주식 가격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이 지난 지금, 프렌드엔터는 실적 면에서도 3대 기획사를 압도하며, 시가 총액 5조 원의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미 상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미주 사업 본부와 신규 컨텐츠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시가 총액 10조도 꿈은 아니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
“어이! 진혁아!”
도민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광수 사장이 공동대표실로 들어왔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근데 우리 어제도 통화하지 않았냐? 새삼 안부를?”
“얼굴 뵌 건 오랜만이지 않습니까.”
이광수 사장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왜 아니겠는가. 자타공인 워커홀릭으로 평생 일의 성취에서 보람을 느껴온 이광수였다.
그런 그가 지금 이승수 사장의 WP를 능가하는 대형 엔터 회사 탄생의 중심에 서 있었으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하하하. 안 좋을 수가 있나?”
이광수 사장이 더 이상 참지 않고 있는 대로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와이프 대접이 다르다. 대접이. 애들도 그렇고.”
회사를 시작하면서 진혁은 창업 멤버들과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나눠주었다.
이광수 사장에게 준 지분은 5%. 현재 시가로 2,500억이었다. 국내 200대 재벌 순위에 들어갈 재산 규모.
물론 대표의 지분은 섣불리 매각해서 차익을 실현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지분이 아니더라도, 연봉과 배당금, 그리고 실적 수당까지, 한 해 수입이 수십억이었다.
WP 실장일 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입이었다.
“근데, 용수는 같이 안 왔네?”
“아, 형은 잠깐 일 좀 보고 온다고요.”
“아.”
세 사람이 잠시 근황 얘기를 나눴다. 진혁이 시계를 보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사장님. 제가 또 스케줄이 있어서.”
“아, 그래, 그래. 잠깐 인사나 한다는 게 얘기가 길어졌다.”
그렇게 이광수 사장과 인사를 나누고 진혁과 민우가 함께 회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도민우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이야. 나 바쁜 사람이야. 무슨 일인지 알고나 끌려가자.”
“시간 오래 안 걸려. 가 보면 알아.”
진혁의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회사에서 멀지 않은 자동차 매장. 그냥 자동차 매장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F사의 슈퍼카 매장이었다.
진혁이 매장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전담 직원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진혁이 서둘러 말했다.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네. 필요한 절차는 거의 마쳤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차량 먼저 보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매장 직원이 차량으로 안내했다.
“이 차량입니다.”
보기만 해도 남자의 심장을 걷잡을 수 없이 뛰게 하는 단단한 근육질의 차체.
자신만의 특별함을 뽐내는 듯한 블랙퍼플의 번쩍임. 적재적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노란색이 선명한 야생마 로고.
슈퍼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스포츠카였다.
“어때 마음에 들어?”
진혁이 민우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냐고? 아니, 뭐 이게 무슨 호불호를 말할 만한 물건이 아니지 않나?”
“마음에 든다는 얘기지?”
“아니, 마음에는 안 들 수가 없지.”
“잘 됐네. 이제부터 이거 타고 다녀.”
“뭐?”
도민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명색이 우리 프렌드엔터 대표님이신데 이 정도는 타야지. 이제 네 차는 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라. 다른 회사도 아니고 연예기획사 대표잖아.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진혁이 빙긋 웃었다.
지금 도민우의 차는 국산 중형차. 물론 돈이 없어서 몰고 있는 차는 아니었다.
몇 번의 조정을 거친 도민우의 회사 지분은 이광수 사장과 같은 5%. 현 시가 2,500억이었다.
2,500억 자산가가 국산 중형차를 모는 건 궁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돈을 순식간에 벌었다고 마인드도 순식간에 바뀌는 건 아니었다.
회사가 설립된 지 이제 겨우 5년. 주식이 상장되고 민우가 이사가 된 건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민우는 아직 현장을 구르며 몸으로 부딪치는 매니저의 마음이 컸다.
국산 중형차도 이사가 되기 전 팀장일 때 구입한 차량이었으니 이제 불과 3년 된 차량. 민우는 불편함이 없었다.
이사가 된 이후 의전용으로는 회사의 고급 차가 있었고, 아직 딱히 자기 차에 욕심도 없었다. 회사 일이 워낙 바쁘기도 했고.
“야, 인마, 이런 걸 부담스러워서 내가 어떻게 받아….”
“부담스럽긴. 대표 취임 선물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선물로 9억짜리 자동차라.
그냥 9억이 아니었다. 이 차는 돈만 있다고 바로 살 수 있는 차가 아니었으니.
적어도 진혁이 1년 전부터 미리 준비한 이벤트였다.
민우는 아직 자신이 살게 된 세계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부모님 집을 넓은 아파트로 옮겨 드리면서 이제야 아주 조금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터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앞날이 캄캄한 지방대학 자퇴생일 뿐이지 않았던가.
물론 진혁 입장에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이었다.
기업을 공개하면서 상당 지분을 시장에 내놓은 진혁이었지만, 여전히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절대 대주주.
현재 주식가치로만 2조 원이었다.
게다가 기업 공개 시 현금화한 자산과 배우로 벌어들인 소득을 합하여 운용하고 있는 현금 자산이 1조 원.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대자산가가 된 진혁이었다.
게다가 회사 성장에 있어 도민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으니, 친구로서 뿐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서도 9억짜리 선물은 전혀 부담될 것이 아니었다.
“오늘 바로 몰고 가라. 민영이한테.”
“응? 민영이?”
“저녁 먹기로 했다며.”
“아, 그건 그런데….”
“스스로 납득할 만큼 성공하면 하겠다는 거 있었잖아. 오늘 대표 취임 첫날이니까. 딱 좋네.”
진혁이 빙긋 웃었다.
“뭐,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내 생각은 그래.”
민우가 그런 진혁을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자식. 남의 머리는 잘도 깎아주네.
***
“변호사들 다들 바쁘잖아요. 자주 보기 어려우니까. 그건 좀 별로더라고요.”
“의사도 마찬가지야.”
방송국 인근 카페. 점심 식사를 끝낸 민영의 동료 아나운서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후배가 조용히 듣고만 있던 민영에게 물었다.
“민영 선배님은 남자 친구 있으세요?”
“응.”
“우와. 어떻게 만나셨어요?”
“고등학교 동창이야.”
“와, 고등학교 때 동창하고요? 민영 선배님 진짜 낭만적이다. 그럼 고등학교 때 고백받으신 거예요, 아님, 나중에 다시 만나셨나?”
민영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동기 아나운서가 말을 가로챘다.
“얘가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단다.”
“네?”
“계속 쭉 친구로 지내다가 민영이가 먼저 고백한 거지.”
“와. 진짜 엄청 대단한 분이신가봐요. 어떤 분이길래 민영 선배님의 마음을 그렇게 쏙 뺏어가셨대요?”
민영이 피식 웃었다.
“그냥. 잘 생겨서.”
“아니, 얼마나 잘 생기셨길래. 진짜 궁금하네요.”
동기 아나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우 씨가 잘생기긴 했지.”
“선배님은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회사에 민영이 데리러 가끔 오잖아.”
“우와. 궁금하다.”
부서를 옮기면서 새로 만나게 된 후배들은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혹시 뭐 하시는 분이세요?”
“뭐. 그냥 회사원.”
“아….”
후배들이 조금 실망한 듯하다가 다시 물었다.
“대기업이요?”
“그냥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야.”
“아….”
민영이 늘 그렇듯 딱히 속이려는 뜻은 아니었다. 뭘 자랑하는 걸 썩 내켜 하지 않는 민영의 성격 탓이었다.
전혀 그럴 이유가 없었으나, 어쩐지 민망한 표정의 후배들.
“하하. 뭐 사람이 중요하죠.”
그 와중에 눈치 없는 후배도 하나쯤은 있었다.
“사람도 중요한데, 경제적인 것도 되게 중요하긴 해. 우리 엄마 아빠도 맨날 돈 때문에 싸웠는데.”
“야.”
옆에서 누군가 툭 옆구리를 쳤지만, 후배는 입을 닫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요즘 다 조건 엄청 보잖아. 솔직히 말해 봐. 니들은 아니야? 그니까 최소한 의사, 변호사 찾는 거잖아.”
너무 노골적이어서 없어 보이긴 했어도 사실 내심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난 솔직히 지금 남친 변호사 아니었음 안 만나.”
확실히 솔직했다. 그리고 확실히 없어 보이기도 했고.
저녁 퇴근 시간.
민영과 동료들이 함께 MBS 사옥을 나섰다.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빵. 빵.
도로변에 선 차량에서 클락션이 울렸다. 민영과 동료들의 시선이 전부 차로 향했다.
꽤 고급스러운 외제 세단.
차에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내렸다.
“자기야!”
무척 솔직했던 민영의 후배가 남자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남자가 일행에게 다가왔다.
“자기. 여기 인사드려 우리 회사분들이야.”
“안녕하십니까. 우진혁입니다.”
우진혁 변호사.
순간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자가 익숙한 듯 씩 웃었다.
“대 스타분과 이름이 같아서 영광이죠. 덕분에 고객님들도 제 이름을 한 번에 기억해 주시고요. 물론 이름이 아니라 얼굴이 좀 비슷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요. 하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아 했고, 딱히 별일도 아니었으나, 솔직한 민영의 후배는 그마저도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듯했다.
“어머. 나는 우진혁보다 자기가 훨씬 더 잘생겼다고 생각해.”
민영이 피식 웃었다.
네가 진혁이를 실제로 봤으면 빈말로라도 그런 말 못했을 텐데.
민영의 웃음을 본 후배가 기분이 나빴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곤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배우보다는 변호사가 훨씬 더 지적이지.”
그 말에 민영 대신 진혁의 팬클럽 ‘컨스’의 멤버 중 하나인 후배가 발끈했다.
“진혁 님도 한국대 경영학부 나왔는데. 지적인 걸로 밀리지는 않지.”
“하하. 맞습니다. 하하하.”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우진혁 변호사가 크게 웃었다.
그런 남자 친구를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민영의 후배.
그때였다.
부아앙―
12기통 엔진이 내뿜는 마력의 소음과 함께 미끄러지듯 달려온 슈퍼카가 우진혁 변호사 차 뒤에 섰다.
끼익.
모두의 이목을 주목시키는 강력한 슈퍼카의 등장. 민영 일행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차에 집중되었다.
특별함을 상징하는 블랙퍼플의 자체가 빛을 뿜었다.
차를 모르는 사람도 그 아름다움에 입을 떡 벌렸다.
특히 돈 문제에 있어 아주 솔직한 민영의 후배는 눈에 하트가 그려질 지경이었다.
차문이 열리고.
매끈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귀공자풍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도민우였다.
민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민우의 얼굴을 아는 민영의 동기는 동기대로, 민우의 얼굴을 모르는 후배는 후배대로 전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민영은 ‘갑자기 이런 차를?’ 하는.
민영의 동기는 ‘저 사람 민우 씨 맞아?’ 라는.
민영의 후배들은 ‘저렇게 젊고 잘생긴 사람이 이런 차를?’ 하는.
모두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르던 그때. 우진혁 변호사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도민우 대표님 아니십니까!”
민영과 동료들의 눈이 두 사람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 부록 ***
※ 주의 : 「외전10. 스타, 그 이후의 이야기(1)」의 분량은 1편 기준 분량 5,000자를 훌쩍 넘겨 6,200자 이상입니다. 혹시 오해 하실까 하여, 아래 부록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보너스 분량임을 공지드립니다.
크로우 레어카드의 소지자. LA 외곽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로버트의 퇴근길.
좋은 날씨였다.
LA의 날씨야 안 좋은 날을 찾기 더 힘들겠지만, 마음의 날씨까지 이렇게 상쾌한 날은 많지 않았다.
탈칵.
식료품점 문을 잠그고 돌아서자, 옆 상점 주인이 인사를 건네왔다.
“로버트 벌써 퇴근인가? 3시밖에 안 됐는데?”
“오늘 갈 데가 좀 있어서.”
“아, 그래. 그럼 조심히 들어가라고.”
“그래. 그럼 수고해.”
로버트는 곧바로 은행으로 직행했다.
오늘은 드디어 경매에 부쳤던 크로우 캐릭터 레어 카드의 낙찰 대금이 입금된 날.
낙찰가는 무려 25만 달러(한화 약 3억 원). 물론 경매 수수료와 세금을 합쳐 무려 8만 달러를 뜯긴 게 속이 쓰리긴 했지만.
‘하. 이 날 강도들 같으니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손에 쥔 돈이 17만 달러(약 2억 원)였다.
평생을 서민으로 살아온 로버트로서는 한 번에 만져 본 적이 없는 큰돈이었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은행원의 질문에 로버트의 어깨가 쭉 펴졌다. 은행 창구를 찾을 일은 돈을 꾸러 올 때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늘 어쩐지 고개가 내려갔고.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 돈을 좀 찾으려고요. 현금으로 1만 달러(한화 1,200만 원) 인출 부탁드립니다.”
“아, 네. 잠시만요.”
인출을 준비하던 직원의 눈에 살갑게 호가 그려졌다.
“고객님. 혹시 금융 상품 쪽에 관심 없으세요? 요즈음 꽤 좋은 투자 상품이 많이 나왔답니다.”
미국인의 대부분은 론에 기대어 사는 처지. 수십 년 동안 상환해야 하는 집 모기지론 혹은 집세부터, 자동차 할부, 또 학비 상환, 기타 할부 구매 상품 상환금까지.
서민은 서민대로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소비 규모에 따라 매달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달랐을 뿐, 매달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이 거의 엇비슷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다보니 한국 기준 역대 연봉을 받는 중산층들도 캐시를 억 단위로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은행 직원의 말에 로버트의 어깨가 더욱 펴졌다. 뭔가 자산가가 된 것 같은 이런 대접은 평생에 처음이었다.
“아, 네. 뭐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크흑. 잘했다. 잘했어. 여유 있었어!
로버트는 마치 자산가처럼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인 스스로를 칭찬했다.
“네. 고객님.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꼭 말씀 부탁드립니다.”
직원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현금은 백 달러 짜리 지폐로 드리면 될까요?”
“네.”
곧 직원이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를 봉투에 넣어 로버트에게 건넸다.
현금봉투를 받는 순간 헤벌쭉 웃음을 흘릴 뻔한 로버트가 ‘아차.’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수습했다.
여유 있게. 자산가처럼.
로버트는 최대한 여유 있게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행을 나온 로버트가 향한 곳은 인근 액세서리 샵.
“목걸이 하나 보러 왔습니다.”
“아, 네. 어떤 상품 원하시는지요.”
직원이 친절하게 물었다. 사실 로버트는 목걸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언제 사본 적이 있어야지.
“요즈음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제품은 어떤 게 있을까요?”
“아, 네. 혹시 가격대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실까요?”
“음, 3,000달러 (한화 약 360만 원)까지는 괜찮겠습니다.”
직원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목소리가 한결 나긋나긋해졌다.
“아, 손님, 그러시면 이쪽으로 와서 보시죠. 다이아, 루비, 사파이어 다양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혼을 할 때도 싸구려 반지 하나가 끝이었던 로버트.
이번만큼은 아내에게 등짝을 맞더라도 제대로 된 걸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또 오십시오!”
점원의 친절한 배웅을 받으며 액세서리 샵을 나온 로버트.
옷 가게에서 아내와 딸의 정장까지 한 벌 산 로버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꽃집이었다.
그렇게.
한 아름 꽃다발까지 안아 든 로버트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
“너희 아빠가 웬일로 다 외식을 하자고 하냐.”
“그러게.”
로버트의 아내 소피아가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
가계부가 걱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오랜만에 외식하자는 걸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근데, 뭘 입고 나가나….”
“이그. 엄마 무슨 호텔 식당이라도 가나. 그냥 대충 입으면 되지.”
딱히 딸 올리비아의 말이 아니더라도 별로 입을 것도 없었다.
10년 전 동생 결혼식 때 입었던, 유일한 단벌 정장은 이제 맞지도 않았고.
그때였다.
“여보 나 왔어!”
거실로 들어선 남편을 본 소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니, 이게 다 뭐야!”
“일단 이거부터 받아 봐.”
로버트가 조금은 멋없게 커다란 꽃다발을 아내에게 건넸다. 생전 이런 걸 줘 본 적이 없던 터라 그로서는 쑥스러웠던 이유였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이 무슨 날인가? 아닌데?”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얼굴이 환해진 소피아.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니 로버트의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자자, 저기 소파로 가자.”
로버트와 소피아, 딸 올리비아가 소파에 앉았다.
쇼핑백을 내려놓는 로버트의 모습에 두 사람의 눈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쇼핑백과 로버트 사이를 오갔다.
“자, 이거는 당신 거, 이거는 올리비아 네 거.”
얼결에 쇼핑백을 받아든 소피아가 옷을 확인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꺅!”
딸 올리비아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게 웬 거야? 당신 무슨 일 있어? 웬 옷을…. 이거 비싼 거 같은데.”
“일단, 입어 봐. 올리비아. 너도.”
두 사람이 얼떨떨하지만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니, 당신 어떻게 우리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있었데.”
“그 정도야. 내가 알지.”
선물하기 전에 몰래 조사를 했으니까.
로버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물론 아내와 딸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아주 예쁘네.”
로버트가 아내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예쁜 옷에는 장신구가 있어야지.”
“…..”
로버트가 준비한 다이아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케이스를 열어 아내에게 보여준 순간.
아내 소피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게….”
“진짜 다이아야. 한번 걸어 봐.”
소피아는 목걸이를 들지도 못하고 남편과 목걸이를 번갈아 보았고, 눈이 휘둥그레진 딸 올리비아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진짜 복권 당첨된 거야?”
“복권? 복권은 아니지만.”
로버트가 아내에게 목걸이를 건네고, 소파로 가서 만 달러 지폐 뭉치를 탁자에 턱 올려놓았다.
“뭐가 제법 큰 게 걸리긴 했지.”
로버트가 아내와 딸을 보며 씩 웃었다. 이제 아내와 딸 두 사람은 턱이 벌어지다 못해 빠질 지경이었다.
로버트가 곧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아내 소피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 장난감 카드 한 장이 25만 달러짜리였다고?”
“아니지. 원래는 몇 천 불짜리가 25만 불이 된 거지. 크로우 영화 때문에. 어때, 좋은 취미였지?”
“……”
아내와 딸 두 사람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만 끔벅였다.
“자,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
“어, 어디로?”
“아, 그건 나도 가봐야 알겠어.”
“뭐?”
“크로우 카드를 구입하신 분이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하셨거든. 아마 굉장히 좋은 곳일 거야.”
“구입한 분이 누군데?”
“그거야 난들 아나. 가 봐야지. 옷 그대로 입고 나가면 되겠지?”
그렇게 세 가족이 채비를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식당.
“우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고급 식당이었다. 로버트 가족이 홀에 들어서자마자, 종업원이 친절하게 물었다.
“예약하셨습니까?”
“네.”
“그럼, 혹시 로버트 씨 가족분들이신가요?”
“아, 네. 맞습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종업원이 가족들을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
“아빠, 이런 데는 진짜 비싸겠지?”
“그렇겠지.”
가족들이 프라이빗 룸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헉!”
제일 먼저 룸에 들어선 로버트의 아내 소피아가 숨을 들이켰고.
“꺅!”
딸 올리비아는 비명을 질러버렸다. 뒤따라 들어선 로버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서 오십시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배우 우진혁이었다.
“그, 그러면 제 카드를 매입하신 분이….”
“네, 제가 크로우 카드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진혁에게 크로우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특별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음식이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진혁이 말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로버트의 아내와 딸은 진혁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로버트의 아내 소피아는 진혁의 영화 “복수의 이유” 이후 완전히 팬이 되었고, 딸 올리비아 역시 “더 크로우”의 광팬.
“그런데 로버트 씨는 제가 언제 뵌 적이 있나요? 얼굴이 낯이 익으신데요.”
“아, 저, 전에 영화관 주차장에서 제게 사인을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아! 그 제가 카드에 사인해 드렸던….”
로버트가 기분 좋게 웃었다.
“네. 맞습니다. 그 카드를 주신 덕에 제가 이 카드를 팔기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날 뵌 게 저로서는 행운이었네요. 로버트 씨를 뵌 덕분에 이 카드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천만에요. 제게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죠.”
역시 사람 인연이라는 건 알 수 없다는 걸까.
진혁이 빙긋 웃었다.
진혁의 웃음에 로버트와 아내 소피아, 딸 올리비아 역시 환하게 웃었다.
로버트 가족들에겐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 “외전 속의 외전 – 로버트 씨 크로우 레어 카드 팔던 날” 끝 –